일터

[11년 7월 - 풀어쓰는 판례이야기] 법과 제도의 취지대로 조속히 보상하라!

노무법인 필 김재민

안녕하세요. 노무법인 필의 김재민 노무사입니다. 얼마 전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삼성 백혈병 관련 판결에서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故 황유미님과 故 이숙영님의 사망원인이 ‘업무상 재해’ 라고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지면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고, 과거 <일터>에서도 수차례 삼성 백혈병과 관련된 기사들을 다루기도 했고, 이번호 <일터>에서 특집기사로 행정법원 판결과 관련해 다루고 있으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며, 제 글에서는 1심 판결문에 인용된 대법원 판례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의하고 있는 업무상 재해는 ① 업무상 사고와 ② 업무상 질병으로 크게 나뉘게 되며 이를 이유로 발생된 ‘부상, 질병 또는 장해, 사망’입니다. 이번 삼성 백혈병 사건도 그렇듯이 일반적으로 업무상 재해와 관련되어 다툼이 발생하는 사건의 대부분은 ‘업무상 질병’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해자에게 발생한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재해의 원인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이 있을 것”을 기본적 전제로 하게 되나 이럴 경우 산재법의 입법취지가 무너질 수 있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산재법의 입법취지는“노동자가 업무를 하다가 발생된 재해로 인해 질병이나 부상이 생길경우 그 치료비를 산재보험이 부담하여 재해자 본인과 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취지”에서 만들어 진 것인데 이러한 의학적 관련성만을 따질 경우 세상의 수많은 질병 중에서 그 중 의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해서만 보상을 해주겠다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에는 의학적 관련성이 필요하긴 하지만 비록 의학적인 관련성에 대한 파악이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업무상 질병" 즉, 산재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그렇기 때문에 "업무상 질병"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연관성에 추가하여 산재법상 인정되는 법리적 판단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학적 측면에서의 인정기준은 간단합니다. 질병의 원인이 업무와 연관이 있는지 의학적인 인과관계 여부만을 판단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질병의 인정기준을 결정하면서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된 질병"에 대한 판단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개정 2010.1.27>

2. 업무상 질병
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
나. 업무상 부상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
다.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


이러한 산재법상의 인정기준을 근거로 하여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 관계"의 판단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5.11.10, 대법 2005두8009 외 다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4조 제1호 소정의 업무상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재해를 말하므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이 경우 근로자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이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하여야 할 것이나,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또한 인과관계의 입증 정도에 관하여도 반드시 의학적ㆍ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단되는 경우에도 그 입증이 있다고 할 것이다.


상기 판례에서 알 수 있듯 법원의 입장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인과관계의 유무"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한 입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업무와 재해 사이의 연관성을 추측"할 수 있기만 하더라도 업무와 재해와의 연관성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살펴보면 재해의 원인이 의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그 사실만으로 업무상재해를 불인정 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요인과의 접촉 등 재해와 업무와의 연관이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업무상질병인정기준
․질병과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함.
․입증책임은 재해자에게 있음
․평균인과의 비교가 아닌 재해자 본인의 평소 건강상태, 지병 등을 근거로 판단하여야 함.

상당인과관계의 인정기준
․반드시 의학적, 과학적으로 질병과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명백할 필요는 없음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될 경우에도 인정할 수 있음.
<법원의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정기준>

대법원 판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업무상 질병의 인정에 있어서 의학적 판단기준은 법리적 판단기준의 한 근거로 활용되는 것일 뿐 업무상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절대적 기준이 아니며 업무상 질병이 발병하기 까지 재해자의 업무 중에 작업공정상의 유해물질 접촉여부, 과로, 동료직원간의 관계 등에서 발생되는 스트레스 등 질병과 업무상의 연관성이 추단될 수 있더라도 업무와의 상당인과 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현실적으로 재해자에게 발생된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것이 쉬운 일 일까” 하는 생각이 일견 드실 겁니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이 현실은 다르지요.

문제는 산재에 대한 가장 첫 번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 이러한 법원의 판단기준에 대한 고려 없이 "의학적 연관성"을 업무상 질병의 산재인정여부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특히 질병판정위원회가 도입된 2008년 이후 업무상 질병의 인정률이 급락한 것은 수치적으로도 입증되고 있고 이미 일터에서도 수차례 다루었던 이야기라 잘 아실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산재와 관련된 판례는 "최초 근로복지공단의 불승인"이 있었다는 점이 전제입니다. 승인난 산재가 소송을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법원 역시 이번 "삼성 백혈병" 관련 재판에서도 세 명의 노동자에 대해서는 산재를 불승인 하였듯 본인들이 스스로 마련한 기준이 있음에도 "의학적 연관성"을 판단의 잣대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매년 1조원의 흑자를 내는 것과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공단 이전비용 2300억 원을 산재보험료에서 사용했다는 점은 일단 넘어간다 하더라도 재해자가 최초 불승인 이후 심사, 재심사 절차를 거쳐 행정법원, 고등법원, 대법원을 까지 가서 최종적으로 산재를 인정받았다면 시간과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몇 년의 시간동안 재해자나 재해자의 가족이 겪었을 피눈물나는 고통스러운 일상은 과연 누가 보상해야 할까요?

이번 "삼성 백혈병" 사건을 계기로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에 대해 법과 제도의 취지대로의 보상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전에 더 이상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가 없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가 자리 잡길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에는 좀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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