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1년 7월 - 특집]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산업재해 첫 인정

-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에 대하여

반올림 상임활동가 이란

지난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진창수)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고 황유미, 고 이숙영의 백혈병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망 황유미, 망 이숙영에게 발병한 백혈병의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으므로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고, 따라서 피고(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부지급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세 명(기흥공장 망 황민웅, 온양공장의 김옥이와 송창호씨)에 대하여는 유해화학물질의 지속적 노출이 있다고 볼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기각하였다. 그러나 이는 매우 억울한 일이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4년 백혈병이 발병해 사망한 고 황민웅씨는 1997년부터 2004년 10월까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1, 5라인 화학적 연마공정(CMP, 백랩) 설비엔지니어로 지상과 지하를 오고가면서 7년간 정비작업(설비세정 등 PM업무 및 셋업작업)을 해오던 중 백혈병이 발병했는데, 재판부는 삼성 측의 주장을 인용하여 “95년 이후 설비 세정작업 및 셋업작업은 협력업체에서 실시”하였다고 보아 “유해화학물질에의 노출이 지속적이라고 보기 어려워 백혈병이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 반도체에서 함께 일했던 정애정씨(고 황민웅의 아내)는 고인이 설비 정비와 셋업 작업을 모두 직접 맡아했다고 증언했다.

판결문에서 밝힌 망 황유미, 이숙영씨에 대한 산재인정의 판단근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벤젠, 1,3-부타디엔, 산화에틸렌 등 일부 화학물질과 전리방사선은 백혈병의 발병 원인물질이고 TCE, 포름알데히드 등도 백혈병 발병 의심인자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 비록 그 화학물질이 백혈병을 발병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에 대한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까닭에 기인할 수도 있어 의학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는다고 하여 백혈병의 발병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② 참가인(삼성측)이 1996년경부터 제작하여 엔지니어들에게 나누어주는 ‘환경수첩’을 살펴보면 기흥사업장 3라인에서 수십 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고, 그 중 확산공정에서 HCL(염화수소), POCL3(옥시염화인)등을, 습식식각공정 중 세척작업에서 아세톤, IPA, ACT-CMI(디메틸아세트아미드,2-메틸에탄올 아민 혼합물), 염화메틸, TCE, 각종 신나, 과산화수소, 황산, 질산, 불산, 염화수소, 인산, 아세트산 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모두 눈, 피부, 호흡기 등에 자극성이 있는 물질들이고 위 물질들 중 ACT-CMI, TCE, 황산 등은 발암성 물질로 지정되었고 TCE는 림프조혈계암 발병을 유발하는 의심인자다.
③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결과를 인용하여) 기흥사업장 3라인과 작업환경이 유사한 사업장 5라인에서 사용하는 99종 화학물질 중 확산작업에 13종, 세척작업에 10종의 물질을 사용하고 있고, 미량이나마 측정을 통해 확인되었다. 이들은 모두 눈, 피부, 호흡기 등에 자극성이 있는 물질들로서 그 중 아르신, 황산은 국제암연구소가 발암성 물질로 지정한 것들이고, 포스핀은 백혈구 감소증이나 빈혈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또한 확산공정이나 습식식각 공정의 전 단계인 감광 공정에서 사용하는 감광제에서 백혈병 위험인자로 잘 알려진 벤젠이 검출되었고, 골수에 악영향을 미치는 2-메톡시에탄올이 검출되기도 하였다.
④ 설비 내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되었다고 하더라도 역학조사 결과에서 위와 같이 화학물질이 검출된 것을 보면 각 공정에서 사용된 유해화학물질이 모두 정상적으로 배출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망 황유미, 이숙영은 특히 수동 습식식각공정의 세척 작업시 유해화확물질에 더 많이 노출된 것으로 보이며, 라인의 공기순환 시스템 상 일부 공정에서 가스누출이 발생할 경우 다른 베이(bay)에도 확산되며, 반대로 다른 공정에서 배출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도 높다.
⑤ 위 유해화학물질들은 인체에 유해하므로 비록 노출기준에 못 미치는 양에 노출되었다고 하더라도 동일한 근무환경 속에서 장시간 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보이고, 망 황유미, 이숙영씨가 일했던 당시의 상황은, 참가인이 측정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다 더 많은 양의 유해화학물질에 노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및 그 결과를 반영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결과는 일정시점의 유해화학물질 노출정도를 분석한 것일 뿐이다.
⑥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함께 노출된 점이 전리방사선에의 노출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망 황유미가 근무기간이 짧고 (1년 8개월) 유해화학물질의 노출량이 허용기준 미만이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면역력의 차이에 따라 백혈병이 발병할 수 있다.
⑦ 비록 반도체 사업장 여성 근로자의 백혈병 관련 표준화 사망비나 표준화 암 등록비의 신뢰구간 폭이 넓어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지더라도, 일반국민보다는 높은 수준이므로 망 황유미, 이숙영의 백혈병 발병에 작업환경이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다섯 명 모두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억울한 일이지만, 지난 4년간의 싸움 끝에 단 두 명이라도 산업재해가 인정된 것은 다음과 같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째로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유해 화학물질로 인해 노동자들이 직업병에 시달린다는 논란은 세계적으로도 첨예한 대립을 빚고 있는데 한국에서 최초로 반도체 공장 노동자에게 발병한 백혈병(림프조혈계 암)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것이다. 승소의 소식은 미국과 영국, 스코틀랜드, 대만의 노동자들과 그 지역 안전보건단체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둘째, 이번 일부 승소 판결은 골리앗 삼성과 삼성편만 드는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피해 노동자와 그 가족의 끈질긴 투쟁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지난 4년간 삼성의 집요한 회유와 산재 취하 압력, 근로복지공단의 엉터리 재해조사와 부실한 역학조사를 토대로 한 거듭된 불승인 처분,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산재입증을 위하여 필요한 화학물질 정보조차 제공을 거부한 노동부의 냉대를 무릅쓰고 산업재해 인정을 위해 굳건히 싸워 온 피해자들과 양심적인 전문가, 수많은 연대 세력들이 일구어 낸 값진 승리다.

특히나 삼성전자가 이번 소송에서 근로복지공단의 보조참가인으로서 행정소송에 개입해 피해자들을 상대로 실로 방대한 분량의 서면과 입증자료를 제출하면서 적극적으로 산재가 아님을 증명해 보이려 했지만 진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승소한 2인(고 황유미, 고 이숙영)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이 항소의사를 밝히면서 공단 앞에서 ‘항소포기’를 요구하는 농성을 하는 중에 이 원고를 쓰게 되었습니다. <행정소송의 의미>에 대해 충실히 전달하지 못한 점, 독자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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