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15년|9월|특집] 갑을대첩 비책공개

갑을오토텍은 그룹차원에서 노조파괴 용병들을 모집했다. 신입사원으로 위장해 갑을오토텍에 입사한 노조파괴 용병중 절반이상이 전직 경찰과 특전사 등 군경 이력을 가진 자들이다. 전직 경찰들은 경찰협동조합을 통해 특전사는 특전 동지회를 통해 사전 모집됐다.
특히, 노조파괴 총책 및 팀장급으로 활동한 자들은 이미 계열사인 동국실업에 부·차장으로 인사발령이 나서 투입됐던 자들이다. 용병들은 입사 전부터 수차례의 교육을 받고, 금속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어용노조 설립을 통한 노조파괴 활동을 준비했다. 갑을자본은 용병들에게 특정 지회간부 테러, 금속 파업 시 대체인력 및 파업파괴, 생산량 UP, 폭력사태유도 및 구사대, 직장폐쇄 후 선별복귀까지 계획한 것이 노조파괴문건으로 확인되었다.
금속노조 타 지회들의 노조파괴 시나리오에서 확인 되듯이 갑을자본도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목적은 명확하다. 자본의 이익극대화 수단(사내비정규직, 외주 용역화, 생산성 등 인원 및 사업구조조정)들을 아무런 저항 없이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즉, 모든 자본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민주노조를 이익극대화의 최대 걸림돌로 여기고 현장에서 치우려 하는 것이다.

분노한 조합원들의 1차 투쟁, 마침내 6·23 항복문서 쟁취!

갑을자본의 신종노조파괴에 맞선 지회대응은 크게 법적투쟁과 1차 2차 파업투쟁으로 나눌 수 있다. 지회의 법적투쟁은 충남지부에 익명으로 제보된 내용을 토대로 여러 가지 정황과 증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직 경찰관 출신의 이력과 용역들의 모집책과 경로를 찾아냈고, 이를 근거로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요청한 특별근로감독은 노사 쪽과 산안쪽 두 가지 모두 이례적으로 즉각 받아들여졌다. 노동부의 수사는 빠르고 신속했다. 그러나 딱 그만큼이었다. 신종노조파괴의 모든 증거를 손에 쥔 고용노동부 천안지청과 검찰은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반면 지회조합원들과 주변의 기대는 컸다. 노조파괴에 대해 법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증거도 충분했다. 적어도 노조 파괴 가담자들 중 한 두 명이라도 구속된다면 이후 투쟁의 고삐를 쥐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본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기대감을 버리기는 어려웠다. 결국 자본과의 1차전이 진행되는 내내 법과 공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목도하면서 그 기대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게 됐다.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은 자본의 움직임과 태도에 따라 말과 행동을 바꿔가고 있었다.
파업투쟁은 합의를 우선할 지 담판을 낼 지였다. 정상적 노사관계로 보자면 현안문제든 협상이든 밀고 당기는 노사합의 과정을 거쳐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정상적 노사관계가 모두 파탄난 상태, 즉 갑을자본에 의해 그 어떤 대화와 교섭도 차단된 상태에서 지회는 고민 끝에 섣부른 교섭을 청하기보다 최대한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갖춘 상태에서의 ‘담판’을 결정했다.
모든 역량을 아래로부터의 조직체계를 세우는 데 집중했다. 나아가 조합원들의 자발적 투쟁과 실천을 장려하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더불어 자본이 내세우는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했다. 노동부의 조사로 잠시 미뤄뒀던 신종 노조파괴의 모든 증거 역시 조합원들에게 전면 공개했다. 이 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은 신종 노조파괴 분쇄는 대화나 교섭에 앞서 조합원 스스로가 이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임을 알아가고 있었다. 이를 가능케 했던 것이 분임조 활동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한편,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으로 무장한 노조파괴용병들의 폭력은 무자비했고, 거침이 없었다. 때려보기만 했지 맞아 보지 않은 이들의 폭력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6월 17일 용병들의 무자비한 집단 폭력을 참을 수 없어 여기서 끝장을 내자며 기업노조 사무실로 향하는 조합원들의 분노를 보며, 오히려 전세가 역전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언론 카메라에 죽봉 든 조합원들의 모습이 나올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의지는 분명했다.‘공장 밖으로 쫓겨나더라도 용병들과는 더 이상 현장에서 같이 일을 할 수 없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고 다짐했다. 결국 7일간 정문봉쇄 투쟁을 통해 용병들을 공장 밖으로 몰아내고 6·23 합의라는 갑을자본의 항복 문서를 받아냈다. 6·23 합의는 조합원 동지들의 주체적인 투쟁, 가족대책위의 헌신적 투쟁, 그리고 어느 때 보다도 열렬했던 연대의 힘이 결합되어 만든 승리였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조합원들의 투쟁의지로 2차 투쟁도 승!!

6·23 합의를 통해 노조파괴 용병들을 전원 채용 취소시키고, 기업노조 설립을 주도했던 기존 5명에 대해서도 7월 중으로 퇴사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파괴 분쇄투쟁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6·23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사항(채용취소에 따른 신규채용 및 채용원칙, 채용 취소자들과의 법적분쟁에 따른 후속조치, 2015년 발생한 민형사상 사건에 대한 징계 등 불이익 금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과 및 책임자에 대한 인사조치, 부상자에 대한 치료비 부담 및 치료기간 정상근태, 조합원 심리치료비 부담, 기숙사 퇴거조치, 합의서 불이행 책임 등)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갑을자본도 완성사의 일부 생산차종에 대한 물량회수를 빌미로 한시적인 일용직 운영, 비생산부서의 용역화 및 일부 생산 공정의 외주화, 생산성 향상 등을 공격적으로 요구하며 이미 6·23합의로 채용 취소된 용병들을 적극 활용했다. 기숙사 기거는 물론이고 식사까지 제공했다. 용병들은 한발 더 나아가 기업노조 사무실을 회사 정문 앞에 차리고 지노위에 채용취소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구제신청까지 했다.
이때 갑을자본의 이데올로기는 이랬다. “금번 사건으로 고객사로부터 일부 차종이 회수되고 주력제품에 대한 물량도 이원화될 위기에 있다며 더 이상의 파업은 고객사로부터 퇴출된다는 것과 통상임금확대, 주간연속 2교대 시행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 및 임금상승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이대로 가면 회사가 폐업할 수밖에 없다.” 비생산부서의 외주용역, 생산성 30% 향상, 적자 아이템의 외주생산 등에 노동조합이 동의해 주면 용병들 문제도 말끔히 정리하겠다는 것이 6·23 합의 이후 갑을자본이 취한 태도였다.
이런 갑을자본의 태도에 지도부는 완성차의 요구로 주력 차종 물량이 줄어들게 되면 고용불안으로 조합원들이 흔들릴 수 있지 않을까를 우려했다. 조합원 동지들이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그리고 물량 반납 얘기를 현장에 알리면 투쟁의지가 위축이 되거나 꺾이지 않을까. 어느 정도 수준으로 현장에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지도부의 우려와 고민은 기우에 불과했다. 분임조에 이 문제를 공개하고 토론에 붙인 결과 조합원동지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같이 죽자! 망하는 싸움하자!’는 반응이었다. 이에 따라 갑을오토텍지회는 곧바로 2차 투쟁을 선포하고 분임조 활동을 중심으로 조합원들의 기세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또한 휴가 기간 동안 확대간부동지들이 공장을 사수하며 사무 관리직들이 휴가를 가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돼서 생산하는 것을 저지하였다. 동시에 노동부 천안지청에 사무 관리직 사원들의 건강권을 위한 배치 전 건강검진, 작업변경 특별교육 등이 진행되지 않은 것을 고발조치하고 그 결과로 ‘부분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졌으나 갑을자본은 이를 무시하고 사무 관리직의 현장투입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에 따라 지회는 논의 끝에 분임조를 통해 휴가 중인 조합원의 공장집결을 결정했고 300여명의 조합원동지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러한 조합원동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도부는 이 싸움은 이겼다고 생각했고 회사는 이러한 조합원들 기세에 눌려서 현장 침탈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후 휴가 마지막 날인 8월 9일에는 전체 조합원들에게 철야농성을 위한 파업배낭을 꾸려서 공장에 집결하도록 했고 전면적으로 공장가동을 막고 싸울 것을 결의했다. 결국 전 조합원 철야농성 하루 만에 갑을자본의 교섭요청이 왔고 후속조치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안 전체를 합의하게 되었다.

갑을자본은 ‘조합원들의 분임조 활동’에 떨었다

2014년 교대제 준비 시기부터 두원정공동지들의 투쟁을 연구하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분임조에 대한 조합원 교육을 실시하고, 중대장, 소대장, 분임장 체계를 세우고 교육을 실시하면서 공정별로 5-6명씩 61개 분임조 조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복수노조와 노조파괴 문제가 벌어졌다.
두원정공 지회의 2차례 분임조 교육이후 처음엔 중대장, 소대장, 분임장 3명의 동지가 뭐라도 해야겠다고 시작한 아침 출근 선전전이 1주일이 지나면서 50명, 100명으로 늘고 전체 조합원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2조 근무 조합원들이 노동부, 법원 등에 가서 투쟁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분임조는 서로 투쟁을 결의하고 소통하는 논의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
이번 신종노조파괴 분쇄투쟁을 잠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상시처럼 지도부나 확대간부들만 공유하고 판단하여 결정했다면 조합원동지들의 자발성 역동성은 고사하고 기세도 떨어져 투쟁을 말아 먹는 꼴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갑을자본은 막바지 실무 교섭에서 “투쟁이 끝나면 분임조를 해체할 것인지" 묻고 분임조가 있어서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한다. 자본이 무서워했던 것은 지도부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제 자본은 더 큰 공격을 더욱 철저하게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도 이를 대비하기 위해 분임조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큰 투쟁이든 작은 투쟁이든 지도부가 하나하나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일상투쟁을 조합원들이 할 수 있도록 배치하려고 한다. 그리고 교육, 소모임, 학습모임 등을 더욱더 체계적으로 만들어 상시 분임조가 가동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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