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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등재를 위한 거리문화제

9월 6일 오전.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다시 마을을 나섰다. 물이며 커피, 가가호호 퍼 나른 밥에 김과 참기름으로 맛을 낸 주먹밥, 여러 선전물들을 트럭에 싣고, 오늘은 동사무소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지난 8월 29일부터 ‘주민등록 일제정리’ 가 시작되어, 주민등록을 복원하고자 한 탓이었다. 물론 ‘주민등록 일제정리’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게는 ‘남의 일’ 이긴 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지번 변경 또는 전입신고 착오 등으로 실제 거주지 주소와 주민등록상 주소가 다른”,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1988년 12월 서울시의 구획정리 이후 기존의 200-1번지라는 주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사건의 시작은 79년 ‘자활근로대’ 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강제이주와 강제노역이었다. 정부는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이들에게 노역을 강요했지만, 돌아온 것은 구획정리 이후 부과되기 시작한 토지변상금이었다. 90년대부터 꾸준히 부과된 토지변상금은 현재 가구당 수백만원에 이르는 형편이다. 토지변상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에는 한 부부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타워팰리스 바로 앞이라는 특수성과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이제는 꽤나 유명한 장소가 되었지만, 아직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끔찍한 토지변상금과, 가까운 학교로 아이들을 보낼 수 없는 곤란한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를 위한 거리문화제’는 9월 1일 목요일, 2호선 강남역 앞에서 이루어졌다. 2005년 여름 ‘빈민현장활동’ 이후 포이동 문제에 대해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는 여러 대학생들과, 여러 사회단체들이 함께한 이번 거리문화제는 포이동 266번지의 현실을 알리고, 포이동 266번지의 주민등록 등재와 토지변상금 철회를 위한 여론을 이끌어내고자 기획되었다. 필자 역시도 ‘빈민현장활동’ 이후의 연대활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거리문화제의 기획에 함께하였다.
이번 문화제는 포이동 266번지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진 장소임에도, ‘강제이주와 강제노역’ 이나 ‘토지변상금’ 등의 문제에 대한 공론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대부분의 지역주민들이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투쟁을 단순히 ‘보상금’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으며, 이를 부추기는 흑색선전들 역시도 계속되고 있다. 당장 자립하고자 해도 ‘보상금’이 아닌 ‘변상금’의 무게 속에서 허덕여야 하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상황은 구청과 서울시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에 국한되지 않고, 선전과 홍보를 통한 여론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문화제는 거리선전전과 서명전, 그리고 5시부터 시작된 문화제 본행사로 구성되었다. 강남역 3번 출구에서 이루어진 문화제를 위해 서명 부스와 여러 선전물, 플랜카드 등이 마련되었고, 민중가수의 공연과 랩 공연,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마련한 사물놀이 등이 준비되었다. 특히 노숙인 단체에서 일하며 홍대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랩퍼 김동현씨와 이지훈씨의 공연은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번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를 위한 거리문화제’ 무엇보다 포이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대학생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문화제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005년 여름 ‘빈민현장활동’ 이후 포이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여러 대학생들은 기존에 포이동 문제에 대해 함께 연대하고 있던 빈민해방철거민연합 등의 단체의 주도가 아닌 대학생들의 참여로 문화제를 기획, 추진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무엇보다도, 다른 철거현장들과는 구분되는 포이동의 특수성 - 100여 가구에 이르는 세대수와, 강제이주와 강제노역으로 인해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점, 변변한 건물조차 존재하지 않는 판자촌이라는 점, 현재 포이동 266번지가 시유지로 등록되어있다는 점 등 - 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학생들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탓이었다. 처음 266번지를 방문했던 누군가는 “동화같았다”고 표현할 정도의 열악한 상황은 이 장소가 대한민국이며, 어마어마한 땅값을 자랑한다는 강남구인지를 의심스럽게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이로 인해 문화제 역시 우선은 직접적인 투쟁보다는, 이후의 더 큰 연대활동을 위해 포이동 266번지의 열악한 상황을 알려내는데 주력하였고, 여러 공연과 선전전 위주로 꾸려졌다.
이번 문화제에는 여러 단체들이 함께하였다. 빈곤사회연대, 전국노점상연합, 빈민해방철거민연합등이 문화제의 기획과정에서 힘을 실어주었고, 민주노동당 강남지구당, 사회당 학생위원회, 노숙인 인권과 복지를 실천하는사람들 등이 당일 문화제에서 함께 했다. 인파가 많은 강남역에서 이루어진 행사였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문화제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주민등록등재’ 와 ‘토지변상금 철회’를 위한 서명에 700여명의 시민들이 호응해 주었고, 거리 선전전 역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마침 문화제 주변에 있던 해태 노동자들은 적극적인 서명과 응원의 목소리들을 보내 주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문화제의 성사를 통해 자신감을 잃고 있던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용기를 얻었다는 점은 큰 소득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보다 많은 단체들의 지속적인 연대와 투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포이동 266번지의 문제는 요원한 일이다. 무엇보다 ‘자활근로대’ 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강제이주와 강제노역에 대해 시와 강남구청은 인정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의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빛바랜 ‘자활근로대원증’을 가슴에 지니고 살고 있지만, 이들에게 주거권 쟁취를 위한 길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는 현실이다. 아직 투쟁은 가장 기본적인 ‘주민등록 등재’와 ‘토지변상금’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대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보다 많은 대학생, 단체들과의 연대를 위한 노력들이 모색되고 있고,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자 하는 움직임들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을 뒷받침할 지속적인 실천 없이는 아무런 해결 방안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포이동의 문제를 단지 포이동의 문제가 아닌, 강남구, 서울시, 더 나아가 군사독재 아래에서 행해진 인권유린의 잔재를 청산하고,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어내기 위한 노력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같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누군가는 1083채의 집을 갖고 있다고 한다. 주민등록상 등재된 1777만 가구 중 806만 세대(45.4%)는 주택을 한 채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포이동 266번지에는 주민등록 등재조차 되어있지 않은 가구가 100여 세대에 이른다. 빈부의 양극화는 이렇게 심각하고, 아직 수많은 민중들이 억압과 소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곳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아직까지도 ‘평등’은 요원한 현실이며, ‘인간’은 세상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다. 포이동 266번지의 문제는 단순히 한 동네 100여 가구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빈곤문제는 여전히 심각하고 해결책은 요원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경제성장만을 이야기하고, 보수언론들은 노조 설립조차 탄압하는 삼성이 X파일 문제로 휘청거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보다 실천적인 고민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포이동 266번지 문제의 해결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주간민중복지 108호 심희천(빈민현장활동후속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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