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호]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전략(07년 2월호)

최종적인 목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화하고 노조의 대표성을 굳건히 하는 조직

장귀연 ⎟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


1.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라는 말의 한계

12%에 불과한 낮은 노조 조직률은 노조의 위기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징표로서 가장 손쉽게 들먹여진다. 그리고 이 조직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대기업 정규직인 반면, 이미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 밖에 존재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더 이상 확대가 어려울 만큼 거의 조직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소영세기업의 노동자들이나 비정규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조를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역시 조직단위마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담당하는 기구(이른바 미비실)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서 흔히 쓰이는 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라는 용어는 현 노조운동의 사고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즉 낮은 조직률로 대표되는 노조운동의 위기는 ‘조직화되지 못한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는 사고다. 그러나 현 노조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수적이다. 사실 한국 노조의 조직률에서 역사상 최고치는 1989년의 19%로, 당시에도 그다지 높은 수치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의 19%와 지금의 12%는 단지 수치가 7% 떨어진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조직 노동자와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 사이에 그 범주가 뚜렷이 구별되는 현상이 고착되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대기업·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실제로 더 확대가 어려울 정도로 조직률이 높은 반면,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률은 지극히 낮다. 즉 19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 노동조합의 급팽창 시기에는 많은 노조가 건설되고 조직되었으나, 그 후 주기적인 불황기를 거치면서 중소영세기업의 노조들은 소멸하고 대기업 노조만이 생존함에 따라 이러한 양극화 현상이 고착화된 것이다. 게다가 1997년 IMF 구제금융의 경제 위기 이후 상시화된 구조조정으로 인해 비정규직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는데, 이들이 노조로 포괄되지 못하였다.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조
둘째, 경제적인 호황기와 노조의 성장기에는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과 교섭이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끌어주기 효과’가 가능하였으나, 지금은 정반대다. 즉, 기업들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로 상쇄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에 따라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정규직 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가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나타나게 된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은 분명히 자본임에도 불구하고, 일견 겉보기에는 한정된 파이를 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끼리 몫을 경쟁하는 문제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의 전략이라는 제한된 조건에서는 이것이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즉 자본의 입장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 및 노동조건을 서로 교환하여 상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기존 노조와 같은 방식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 노동자대투쟁 이후 10여년 간 성공적으로 조직을 유지하여 현재 노조 조직의 주류를 이룬 것은 대기업 정규직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이들은 한 기업에 고용되어 있어 같은 ‘사원’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파업을 통해 그 기업의 일을 전면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었으며 그로써 단일한 기업주를 대상으로 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기업의 노사관계가 매우 다양해지고 중층화되었다는 점이다. 같은 작업장에서 같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같은 기업의 직원이 아니고, 임시직들은 업종 내에서 여러 기업을 전전하며, 특수고용의 노동자들은 개개 사업주로서 파편화되어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조직화되기도 어렵고 설사 조직되었다 할지라도 유지되기가 어렵다. 예전과 같은 방식을 고수할 경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일종의 진입장벽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노조의 대표성과 정당성의 위기란 것이 단순히 조직률이 낮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노동자계급이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과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그 간격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을 뿐더러, 자본의 통제 하에서 마치 서로 경쟁하는 것처럼 현상한다. 그리고 다양하게 분할된 비정규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단결하는 데 있어서 진입장벽마저 갖고 있다.
이렇게 보면 문제는 단순히 미조직인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노조를 만들거나 가입시키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다음 두 가지의 과제를 필수불가결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선 비정규 노동자들에 맞는 새로운 조직화 모델을 수립해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노총 총연맹에서부터 각 연맹과 산별노조 등의 조직 체계 및 활동 체계를 새로운 조직화 방식에 걸맞게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완성된 모델을 플랜대로 적용한다는 뜻일 수는 없다. 사실 지속적인 토론과 시행착오, 재검토의 과정을 거쳐 시나브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

2. 5대 부문 비정규직 조직화 검토

민주노총은 사내하청/공공서비스/건설일용/서비스유통/특수고용을 ‘5대 주력 전략부문’으로 설정하고 5년간 이 부문 비정규직의 조직화에 주력하는 계획을 세웠으며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위 표에서도 보다시피 주로 그동안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과 조직화가 진행된 부문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조직화와 투쟁을 더욱 강화하도록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5대전략부문을 선정하였으나, 아직 성과가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경험에서 드러난 바 조직화 전략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1) 사내하청 부문

<특징>
대공장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사내하청은 형식상으로는 하청 형태이지만, 실제로는 인력 파견과 다름없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작업장에서 같이 노동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형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 연관된 노동과정에서 함께 섞여 일하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비정규직간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노동자 의식의 측면에서 같은 작업장에서 연관된 노동을 한다는 특성은 비정규직 차별이 부당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는 다음 몇 가지 상황에 의해 제약된다. 첫번째는 소속 기업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정의 그 자체이며 자본의 분할 전략의 기본이므로 부연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노동과정에서 이른바 직영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간에 위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서로 연관된 노동과정이되, 정규직이 기피하는 어렵고 힘들고 주변적인 일들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맡김으로써 노동과정에서 위계가 발생하며, 이에 더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을 통제·관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계적 분할에 의해 동료로서 같은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는 ‘같은 노동자’라는 연대의식이 희석된다.

<경험의 검토>
민주노총과 활동가 조직들은 적극적으로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고 시도해 왔으며 그 결과 여러 사례들과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였는데, 그 동안의 경험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파악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전주공장의 파업
초기 조직화 과정에서 예전에는 활동가들이 투신하여 비밀리에 보안을 유지하며 조직화 작업 준비를 해오다가 갑자기 노동조합을 띄우는 방식을 취했지만, 2003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부터는 원청 노동조합의 보호 아래 반공개적인 형태로 노동조합 조직화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방식들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조직화 가능성이 보이면 금세 해고당하는 등 원청 자본의 탄압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밀 조직화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은 대중화에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원청 노동조합이 비교적 강한 힘을 갖고 있을 경우 그의 보호를 받으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실시하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즉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초기 조직화부터 원청 노동조합의 지원과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 원청 노동조합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직화의 관계를 몇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원청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경우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무관심하였을 뿐 아니라 박일수 동지의 분신으로 내외의 압력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조직과의 관계를 단절하기까지 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나 투쟁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경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할 때 원청 노동조합이 이에 적어도 긍정적인 입장을 갖는 기반이 있어야 하며, 원청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해 내외적으로(상급조직이든 활동가조직이든) 압력과 교육이 평소에도 같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반대로 원청 노동조합에서 먼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원청 노동조합의 간부들 등이 사내하청의 증가가 장기적으로 원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노동조합의 힘 또한 잠식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거나 포괄하고자 하는 경우다.
이렇게 하여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단계적 또는 부분적 정규직화를 사측과 협상 타결하는 성공 사례들도 존재한다(대경특수강, 신호제지, 금호타이어). 그러나 이런 경우도 몇 가지 문제들이 드러났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정규직 노동자)의 주체화 없이 원청 노동조합 간부들의 적극적 노력이 결정적이었던 경우, 조직화 성과들이 지속적으로 담지되고 유지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때 일회적 성과에 만족하면, 자본측이 신규 비정규직을 도입하거나 노동조합 집행부가 바뀌었을 때 조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주체적 결정이 오히려 정규직 집행부에 의해 제한되기도 한다. 따라서 조직화의 성과들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조합원 수준의 의식이 깊어져야 하며, 특히 당사자인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주체화되고 자본 및 원청 노동조합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직으로서 형성되어야 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형태는 (자본측의 구별과는 달리) 적어도 노동조합 체계에서는 원청과 함께 같은 조직으로 포괄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조합은 따로 조직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물론 그것은 원청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포괄하여 책임지기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따로 조직된 후에는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미묘한 긴장 속에서 균형관계 속에서 활동을 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원청 노동조합은 내외적 압력(상급조직이나 활동가 조직의 압력, 연대의 당위에 대한 인식 등)에 의해 사내하청 비정규직과 연대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기득권적 이익에 해가 될 수 있는 선은 넘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한편 원청 자본의 탄압에 매우 취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로서는 원청 노동조합의 보호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원청 노동조합에 대한 서운함이 있더라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내외적 압력에 의해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활동을 조정하는 미묘한 균형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 상태에서 어느쪽이 더 적극적인 힘을 갖느냐에 따라 다시 유형이 갈라진다. 원청 노동조합 쪽이 힘이 강할 경우 원청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리하여 협상에 나서는 대리주의로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현대 자동차). 반대로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 노동조합의 선을 넘어서 더 적극적인 투쟁을 펼칠 경우는 원청 노동조합과 하청 노동조합의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캐리어). 따라서 조직적 연대의 수준을 높이는 노력은 균형관계를 고려하여 양쪽에 병행되어야 한다.

<전략적 유의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있어서는 노동의 성격에서나 조직적 상태에서나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거나 그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청 정규직 노동조합의 엄호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원청 노동조합의 문제의식 수준을 높이는 과정과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주체화 과정이 필수적이다. 사내하청의 경우 상급조직이나 활동가 조직, 또는 원청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서 초기 조직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일정한 성과도 거두는 사례가 있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직접 조직적으로 주체화되지 않을 경우 그러한 성과가 조직적인 동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리고 원청 노동조합의 대리주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밑에서부터의 조직적 압력이 필요하다.

(2) 공공서비스 부문

<특성>
공공서비스 부문으로 지칭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지만, 일단 전략조직화 대상으로 정부부문, 교육부문, 의료부문 등을 들 수 있다. 이 부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움직임이 활발하되, 열악한 조건으로 인하여 전략적인 지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부문들의 노동자들은 크게 두 범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특정한 전문 자격과 입직 경로를 통해 진입한 노동자들이고(공무원이나 준공무원, 교사, 의료인 등), 다른 하나는 자본이 주장하는 바 ‘주변적인 업무’(업무 보조, 청소나 식당 등)를 맡는 비숙련 노동자들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전자의 비정규직은 직접고용 계약직이고, 후자는 외주 용역이나 위탁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전자, 즉 전문 자격을 갖추고 직접고용 계약직인 경우는 기존 노조(전교조, 병원의료노조, 공무원 노조나 공단 및 공기업 노조 등)에서 포괄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경우다.
이러한 비정규직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부문이라는 점이다. 특정한 업무를 통째로 외주화 또는 파견으로 대체하는 것은 다른 부문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이른바 비핵심 업무로 분류되는 비숙련·저임금 일자리의 외주화가 두드러진다. 이것은 공공부문의 핵심업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자격과 입직 경로를 갖추어야 된다는 점과도 관련된다(공무원, 교사, 의료인 등). 이러한 부문을 제외한 부문을 우선적으로 외주화하는 것이며, 이들은 ‘핵심업무’에 비하여 가치가 낮은 비숙련 저임금 일자리로 간주된다.
둘째, 따라서 ‘자격을 갖춘(!)’ 정규직 노동자들은 외주화된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해 ‘같은 동료’라는 의식을 거의 갖지 않는다(ex. 공무원에 대해서 환경미화원, 교사에 대해서 업무보조 학교비정규직, 의료인에 대해서 간병인이나 시설관리인 등). 이는 비슷한 진입 자격을 가진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대한 태도와도 다르고, 제조업 사내하청 부문과도 다르다. 즉 업종의 차이가 뚜렷하고 핵심/주변이라는 분할인식이 강한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나 노조가 자생적으로 ‘같은 동료’라는 의식을 가지고 연대를 추진할 기반이 상당히 적다. 노동자간의 위계와 분할이 확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특징은 이 부문의 조직화 전략이 중요한 실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운동은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개선해야 할 뿐 아니라 핵심/주변 숙련/비숙련의 구분에 의한 노동자간 위계와 분리를 타파하고 계급적 단결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험의 검토>
학교비정규직이나 의료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움직임도 활발하지만, 여기서는 특히 공공연맹의 지역공공서비스노조 건설 경험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역공공서비스노조는 위에서 말한 바를 기반으로 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전략적으로 조직화하고자 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지역공공서비스노조 건설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과 배경을 가지고 추진되었다.

서경공공서비스노조 대우빌딩 투쟁
첫째,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과정과 함께 산별노조를 건설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산별노조 건설은 기존 노조들이 전환하고 통합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소수 조직된 노동자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을 노조에 합류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이미 노동자대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주체화할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을 앞두고 준비하면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를 함께 조직화함으로써 그러한 과정의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특히 지역 중심의 조직화 경험을 쌓음으로써 이후 산별노조의 지역별 골간 형태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둘째, 상급단위의 전략적 지원 하에 체계적으로 조직화하는 모델을 실험해 보고자 했다. 이에 따라 공공연맹은 대의원대회 및 중집위원회 결의사항으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건설을 결정하고 인력과 자원을 배치했다. 공공연맹이 직접 지원한다는 면에서 비록 연맹을 거치는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나마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기여하는 방식이라고 얘기되기도 하였다.
셋째, 노조의 요구와 활동을 더 넓은 맥락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염두에 두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이다. 하나는 여러 다양한 기업과 조건으로 분할된 노동자들의 통합된 요구안과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업별 분리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현재 중요한 과제인 만큼 이러한 시도들은 필수적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특히 지자체 비정규직을 주요 조직 대상으로 삼고 지자체를 대상으로 통합 요구안 및 공동 투쟁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다른 하나는 노조 활동을 더 넓은 사회적 진보 및 연대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려는 것이다. 노조 활동이 소속 조합원들의 협소한 이해관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사회운동의 하나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은 많이 얘기되어 왔다. 이 측면에서 공공부문은 필연적으로 사회공공서비스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유리한 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노조의 요구를 지역의 환경이나 공공성 문제와 연관시켜 지역 시민운동 단체 및 지역단체와 연대하는 틀을 만들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준거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조직화 활동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바를 평가해 보자. 첫째,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조직화 및 활동을 동력으로 산별노조 건설이 기존 노조들의 ‘통합’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노동자들과 함께 ‘건설’하는 과정으로 만들려고 했던 문제의식은 희석되었다. 기존 노조들은 지역공공서비스노조를 기존 노조들에 덧붙여지는 또 하나의 다른 노조로만 인식하였으며, 어떤 경우 오히려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길 수 있는 곳으로 간주하였다. 조금 시니컬하게 말하면 비정규노동자 조직화라는 ‘노조 임무를 외주화’해 버린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둘째, 그러면서도 연맹이나 기존 노조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도 못했다. 연맹의 예산으로 활동가들을 배치하고 지원하는 정도는 이루어졌다. 그러나 연맹 지역본부나 기존 노조들은 공공서비스노조를 전략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을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관할권 문제를 제기하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은 결국 전략조직화 사업이란 것이 예산을 들여 인력과 자원을 배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존 노조와 상급 단위는 돈을 내는 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이 아니다. 연맹이나 지역본부, 단위노조를 통틀어 전체적으로 문제의식을 공유하여 전략에 따라 체계적인 협조와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셋째, 기업별 한계는 공공서비스노조에서도 여전히 존재했다. 특히 각 사업장 사정이 열악하다보니 사업장별로 당면한 사안과 투쟁을 하는 데에만도 벅찰 수밖에 없었다. 이는 활동가들에게도 과부하를 지웠다. 그럼에도 공동 교육과 투쟁으로 조합원들이 사업장 울타리를 벗어난 시야를 갖게 된 것, 몇몇 사례에서 공동 요구안을 만들어내고, 사회공공성 문제를 제기하며 지역 사회단체 연대를 활발히 했던 시도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략적 유의점>
핵심/주변, 숙련/비숙련 노동이라는 분할선의 경계를 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이것은 완전히 허구적인 분할선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분리를 통해 비숙련-주변 노동이라고 간주된 부문의 노동조건을 계속 열악하게 전락시키고 저임금 일자리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위계와 분할은 노동자의 의식상에서도 관철되어, 이른바 숙련-핵심 노동자들은 비숙련-주변이라고 간주된 비정규노동자들을 ‘같은 동료’로 생각하기보다 무관심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이러한 상황이 금방 극복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실제로 조직화도 따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를 타파하지 않으면 노동자계급의 단결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것과 더불어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위계의식을 타파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것은 전체 노조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전력투구해야 하는 책임이지 단지 비정규노조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끊임없이 각인되어야 한다. 현재는 노조 간부 수준에서도 이러한 책임의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존 정규직 노조에게 연대적 책임에 대한 계기들을 만들어내면서 강제할 필요가 있다(ex. 학교비정규직에 대한 전교조, 병원 비정규직에 대한 보건의료노조, 외주 인력에 대한 공무원·공사 노조).

(3) 건설일용 부문

<특징>
건설일용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건설업의 특성상 일자리가 매우 불규칙하고 이동성이 강하다. 건설공사는 이곳저곳에서 시시때때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노동자들은 일용으로 그때그때 건설 현장들을 이동하면서 일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은 안정적인 조직화에 큰 걸림돌이 된다.
둘째, 건설산업은 다단계 하도급으로서 하청 단계가 매우 중층화되어 있다. 따라서 투쟁과 교섭의 대상이 되는 고용주를 획정하는 것이 복잡한데, 단순히 법적·절차적 문제 뿐 아니라 노동자의 의식상에서도 그러하다.
셋째, 실제 현장의 노동자들은 하도급 구조의 말단인 오야지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따라서 오야지는 노동자이자 고용주이자 관리자의 성격을 갖는다. 이들의 인맥으로 일자리가 공급되므로 이들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고용주이자 관리자의 성격 또한 갖기 때문에 조직화가 쉽지 않다.
넷째, 일자리가 매우 유동적이고 일용직이므로 노동자간 경쟁이 발생한다. 일할 수 있을 때 더 많은 물량을 따내고 장시간 노동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경쟁적 상황은 노조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단결된 투쟁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경험의 검토>
이러한 어려운 조건들에 비하면 건설일용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되어왔다. 지금까지 건설일용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구건설노조 파업투쟁
우선, 노조가 고용 알선 및 상담을 제공해 주면서 조직화하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즉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안전이나 임금 체불 등의 현장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해 주는 것인데, 이러한 서비스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노조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갖게 만드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노조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데 있어서는 서비스 제공의 한계는 매우 명확하다. 이러한 서비스 제공을 통해 노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할지라도 그 일이 끝나면 더 이상 노조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건설업은 한 공사가 끝나면 노동자들이 흩어지는 것으로서 지속적인 현장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연계를 갖는 것도 그만큼 어렵다.
따라서 현장을 옮겨다니는 건설 노동자들의 인맥을 장악하여 노조로 묶어낼 필요성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고정적인 현장에서 일하면서 동료 노동자를 조직하는 현장활동가가 중심이 되는 정규직 기업 노조와 달리 전문적인 조직활동가를 채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건설노조는 외부로부터 채용한 전문 활동가들이 조직화 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많은 편이다.
건설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처음에는 지역별로 이루어졌으며 지역별 편차도 컸다. 그러나 건설 노동자들은 여러 지역의 건설 현장들을 옮겨다니며 일한다(비록 주로 어느 정도의 지역권 내에서 움직이기는 하지만). 따라서 조직화를 위한 시야는 지역적으로 비교적 넓게 가져야 하며 지역 건설노조 간에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다(조합원 카드 공유 등).

<전략적 유의점>
건설노조는 궁극적으로는 노동력 공급을 장악함으로써 건설일용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자 하며, 현재는 조합원 우선 고용을 따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자리 수요가 불규칙하고 이동성이 강하며 경쟁적인 노동환경이기 때문에 노조가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노조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조직화를 위해 노조가 노동력공급 사업을 독점하는 것이 가능한가 또는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주범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단결과 조직화에도 걸림돌이다. 이런 하도급 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게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전술적으로 한 현장을 조직화·장악하여 원청 사용자성 인정의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포항 사례).
(4) 특수고용 부문

<특징과 검토>
특수고용 부문의 노동자들은 노동과정이 협력적이라기보다 주로 혼자서 일하며 개별 노동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다. 이것은 단결과 조직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업종과 노동조건의 동일성이 조직화를 위한 공동체적 기반이 되기도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화물운송, 건설운송, 학습지, 보험모집인과 같은 부문들은 바로 이러한 업종 또는 직종의 공통성을 기반으로 조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편으로 업종별 경계를 넘어서면 공통 기반을 찾기 어렵다는 한계를 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직종별 조건을 넘어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공통 투쟁 사안으로서 ‘노동자성 인정’을 주장해 왔다.
또한 업종이나 직종 자체가 전체적으로 특수고용화되고 노동과정이 개별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업장에서 직접 정규직 노동자나 정규직 노조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지는 않은 편이다. 따라서 정규직 노조의 눈치를 보거나 직접적인 노노갈등이 현상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전략적 유의점>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자성 인정’이 중요한 이슈임은 분명하다. 특히 노조라는 조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조의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결코 사업주가 아니라 기업에 종속적인 노동자라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하는 것은 올바르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조직이 결코 ‘업종협회’와 같은 형식으로 취급될 수 없으며, 당연히 노동법을 적용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성 인정이나 비정규직 철폐라는 슬로건이 다시 직접고용되는 상태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다. 특수고용이라는 형태가 노동자간 경쟁을 부추긴다는 단점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용자로부터 좀 더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사용-종속 관계를 강화하자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덤프연대의 파업
그런 한 사실 현행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노동자성과 노조의 권리를 인정받는 것이 쉽지는 않다. 비교적 대규모로 조직된 경우 법적 불인정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세력으로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신규조직화의 경우나 세력이 약해졌을 때는 법적 인정을 통해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실망하여 조직이 더 약화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것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이나 노조의 권리 개념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쟁취해야 할 목표가 명확하다면 탄압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좀 더 버티기가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이론적·정책적·법률적 연구들이 시급한 편이다. 물론 이것은 현행 노동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노동자의 권리라는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현재의 노동법이라는 것도 앞선 세대들의 무수한 노력과 투쟁으로 성립된 것이다.
다른 한편,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있어서 법적 인정에 크게 목표를 두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를 목표로 내세우는 것이 신규조직화나 조직 유지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아 조직을 와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조직화 전략의 원칙

비정규 노동자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노동조건과 노동형태 뿐 아니라 노사관계도 매우 다양한 범주의 노동자들을 통칭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노동자들이 자본과 계약을 맺는 형태가 매우 다양화되는 것이 비정규직화의 정의 그 자체이며 자본이 노동의 분할을 위해 노리는 것이다. 결국 이에 따라 구체적인 조직화 과정은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다양한 조건에 맞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화 모델을 위한 전략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은 일반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첫째, 비정규 노조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익집단적 성격보다는 공동체적 성격이다. 사실 초기 조직화는 이익에 호소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즉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과 그것이 부당하다는 인식에 의해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을 결성한다. 특히 해고 등 심각한 사안에 직면하였을 때 급격히 조직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당면사안이 해결(성공하든 실패하든)되고 나면 동력을 잃어버리고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보아왔다. 즉 단순히 이익 추구가 아니라 ‘우리(같은 동료)’라는 일체감을 갖고 묶어줄 수 있는 공동체적 고리들이 있어야 조직이 유지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비정규 노조 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노조의 주류로 유지되어 온 기업별 정규직 노조들이 이른바 사원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공동체라는 일체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그것이 옳든 그르든), 많은 비정규 노조들은 그러한 것이 어려우며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다른 매개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경우마다 다양할 수밖에 없다. 비정규 노조 중에서도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그것이 기본적인 토대가 될 수도 있고, 지역이 공동체의 매개고리가 될 수도 있으며, 업종 내 정보교환 센터를 통해 그러한 매개들을 찾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교섭을 확보하여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 못지 않게,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매개들을 찾고 유지하려는 노력 또한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공동체 의식은 작업장·지역·업종의 동질감을 넘어선 더 큰 계급의식으로 확장되어야 하지만, 그러한 의식 고양을 할 수 있는 장이 되는 것도 이러한 공동체적 매개인 것이다.
둘째, 법적인 인정을 투쟁과 조직화의 매개로 삼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투쟁에서 장기계약근무자의 정규직 인정, 불법파견, 특수고용의 사용-종속 관계 인정 등 법적인 소송과 진정을 주요한 고리로 삼아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한 바는 설사 법적으로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 성과는 결코 지속되지 않으며 오히려 자본측의 교묘한 빠져나가기 수법만 세련화시킬 뿐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법적 인정은 자본측이 고용계약과 노동과정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실효성이 거의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불법성을 강조하는 것은 초기 조직화를 위한 선전에는 용이할 수 있지만, 결국 제 발목을 잡을 위험성이 크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부지불식간에 합법의 테두리(불법성을 문제 삼거나 법적인 보호를 받으려는)에 가두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산별노조의 건설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매우 심도 있게 고민되어야 한다. 누구나 산별노조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조직하기에 용이한 구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기존 노조들이 통합하는 방식이라면 비정규 노조는 오히려 대규모 노조들 사이에서 흡수·통합되어 버리고 형식적이 될 가능성조차 존재한다.
현재 노조의 위기가 덩치의 문제(조직률과 조직규모)가 아니라 노동자 분할의 심화라는 점을 동의한다면 산별노조의 활동에서뿐만 아니라 조직체계에서도 비정규 노동자들이 주체화되고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bottom-up의 체계를 계획해야 한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자율적인 노조운동의 깃발이 세워진지 20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성과들이 있었고 탄압과 어려움 속에서도 노조 조직화의 전형들을 세워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자본은 노동착취를 위한 새로운 기법들을 개발해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조운동은 새로운 어려움들에 부딪치고 있다. 옛것의 관성에만 매몰되었다가는 노조운동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 성과에 미련을 갖기보다는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할 때다.
물론 한꺼번에 노조운동의 틀과 판이 바뀔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분에서라도 새로운 조직화 전략과 전형들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그것이 미래 노조 운동의 틀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 민주노총 전략조직화 사업의 문제점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과정은 대체로 실망스럽다. 예산을 편성하고 활동가들을 배치하는 것이 전략조직화 사업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 전략조직화 사업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추진하려고 했다면, 최소한 전조직적으로 전략조직화 사업을 지원하는 계획이 함께 추진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총연맹이나 연맹의 결정사항에도 불구하고 지역이나 기층 단위로 내려가면 이에 무관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사업계획을 잡아놓고 그 사업을 담당하는 단위에서 알아서 하면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문제는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를 모아 또 다른 노조 몇 개를 더 만드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노동자계급의 분할과 대표성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앞서도 누누이 얘기했듯이 이른바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서라도 기존 노조들의 변화가 더불어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은 외부에서 진행되는 것일 뿐, 기존 단위들은 전혀 변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은 이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최종적인 목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화하고 노조의 대표성을 굳건히 하는 조직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적어도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조직을 갈아엎고 새 판을 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면, 적어도 전략조직화 사업을 매개로 부분적으로라도 그러한 전형들을 만들어냈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러한 노력들이 없었다는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민주노총 전략 조직화 사업에서 주체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빠져 있다. 수를 많이 늘리고 조직을 많이 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그 노동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주체가 되고,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투쟁으로 쟁취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조를 만드는 과정이나 투쟁과정, 조직과정에서 주체들과 어떻게 호흡하면서 갈 것인지 세세한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전략조직화는 조직활동가라는 외부의 능력있는 개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사고되고 있다. 조직은 누군가 대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하는 것이며, 그렇게 주체화된 조직화야말로 의미있는 조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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