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호]왜 지금 비정규운동의 전략을 이야기하는가?(07년 5월호)

왜 지금 비정규운동의 전략을 이야기하는가?

특집 비정규운동의 전략을 이야기하자


이번 특집은 비정규운동의 전략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시기에 비정규운동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비정규운동은 참으로 열심히 달려왔지만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우리 앞에 갈래길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서 조금씩 차별을 없애고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연안정성’의 길이며, 하나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만드는 신자유주의 전략에 맞서 주체형성을 하고 투쟁해나가는 길입니다.
두 번째 길은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다만 막연하게 그 길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예측하고 나아갈 길을 제대로 개척하기 위한 무기를 손에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비정규운동의 전략이며, 그를 위한 논의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동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이 특집을 마련하였습니다.




동정과 시혜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분쇄하다

지금까지 비정규운동은 참으로 힘든 길을 달려왔다. 정말로 많은 비정규노조들이 만들어졌고 대부분이 길거리에서의 치열한 투쟁을 거쳤다. 정권과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을 부여하지 않기 위해서 투쟁을 가혹하게 탄압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런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부수고 노동자의 이념을 만들어왔다.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대립시켜서 관리통제를 하고자 했다. 자본의 이런 시도는 우리의 투쟁 속에서 분쇄되었다. 비정규직은 더 이상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이며 투쟁을 통해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인정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 논리를 넘어서서 공동투쟁을 만드는 과제를 우리 운동 진영의 중요한 과제로 제출하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작은 실패했다. 그래서 그들은 비정규직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바로 자신들임을 공표해야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을 자신들의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정권과 자본은 노동법을 강제로 개악하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유연안정성 논리를 들고나오는 자본

그 논리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유연안정성’ 논리이다. 비정규직은 대세이며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이라는 구조 자체에 맞서 투쟁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이라는 구조 안에서 조금씩 차별을 개선해가라는 것이다. 이런 자본가들의 논리는 더욱 세련되게 구사된다. 이제는 고용의 형태를 더욱 세분화하고 위계화한다. 그리고 이런 고용형태에 직무를 대입시켜서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마치 차이에 근거한 것인 양 왜곡한다.
이런 자본의 시도는 우리 현실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청소하는 노동자들은 당연히 ‘용역’이어야 하고, 저임금은 당연하고, 다만 너무 심각하게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저임금일 때에만 싸울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특정한 직무에 대해서 차별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노동자들이 믿도록 만들어버린다. 또한 파견법 9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2년에 한번씩 노동자들은 해고되지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투쟁하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무의 위계화와 단속적 고용관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자본의 시도에 맞서 싸워야 할 때이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이렇게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고, 때로는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를 직무의 차이로 은폐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2007년 지금 노동자들에게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자본은 비정규직이라는 근본 문제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하리만치 탄압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이제는 노조인정과 약간의 노동조건 개선을 허용해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너무나 힘에 부친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자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이다.
만약 투쟁의 힘이 없기에 자본의 이런 의도를 일정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시 힘을 키우고 어렵더라도 다시 조직해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교묘하게 대변하면서 노동운동 내부의 비정규직 투쟁을 한계 속에 가두려는 견해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투쟁을 열심히 하고 조직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하고 조직을 하더라도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투쟁을 보자. 예전에는 너무나 형편없는 저임금을 폭로하는 수단으로서 최저임금 위원회 앞에서의 투쟁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저임금 위원회라는 노사정위원회 구조가 최저임금을 협상의 대상으로 만들어 임금수준을 떨어뜨리면서 결국 저임금을 유지하는 전략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투쟁을 열심히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최저임금 위원회 앞에서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투쟁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의 결정 기준과 방식을 바꾸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저임금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영속화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칫하면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정당화한 채 최저임금을 통해서 우리가 그들의 임금을 대리하여 상승시켜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노동자들이 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던져야 한다. 그래서 생활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최저임금 투쟁조차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투쟁할 수 있는지를 이제부터는 꼼꼼하게 검토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투쟁이 자칫 자본의 저임금 전략을 유지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운동에 전략이 필요함을 이야기하다

이 특집은 비정규운동에 전략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기 위한 의도로 마련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특집에 실린 글들이 비정규운동의 전략 내용을 담고 있는 않다. 다만 그러한 문제의식을 충분하게 제출하고자 함이다. 그런 의미로 이 글 외에 세 개의 글로 더 넣었다.
첫 번째 글은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조직화 안에도 쟁점이 들어있으며, 전략조직화의 방향이 ‘조합원 수’를 늘리고 서비스를 대행해주는 산별노조의 전망과 맞물리게 되면 결국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전략조직화는 주체를 세우는 과정이며, 지금까지의 노동운동 내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운동의 전망을 만드는 과정이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를 자기 목적으로 삼는 산별노조의 시대에서 그 목적의 실현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면 계급적 노동운동진영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형태의 조직화가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글은 비정규직 투쟁에서의 쟁점을 간단하게 이야기한다. 자본의 유연안정성 논리가 우리 노동운동 안에도 들어와 있었고, 그 논리를 가진 사람들은 비정규운동 초기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격렬함과 패배의 이유를 ‘요구가 높은 것’에서 찾고, 차별개선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낮추도록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노동조합 안정화’를 목표로 만들고, 이것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나 투쟁의 계획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비정규 투쟁에서의 쟁점을 잘 살피면서 무엇을 위해 왜 투쟁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 번째 글은 정부와 자본이 노동법 개악 이후 비정규직을 일반화하면서 비정규직을 다양화·위계화하고, 차별을 허구적인 차이로 둔갑시키면서 비정규직들의 조직화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음을 밝히고 이에 맞서는 투쟁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세 개의 글은 주제에 대한 답을 마련하기보다는 이러한 현실적 조건에서 비정규운동의 전략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제제기 형식의 글이다.

비정규운동의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철폐연대의 계획

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는 2007년 한 해와 2008년까지 비정규운동의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의 토론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현재 철폐연대에 ‘비정규운동의 전략 기획팀’이 구성되어서 모두 12개의 주제를 제출하고, 이 내용을 토론하면서 비정규운동의 향후 전망을 밝히고자 한다. 12개의 주제를 완결한 이후에 비정규운동의 총론을 다시 제출할 것이다. 12개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관심이 있는 동지들이 주제별로 함께 하기를 바란다.

1. 노동시장의 변화과정과 유연화의 방향, 경향성
유연화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노동시장의 변화는 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리한다.

2. 정권과 자본의 통제방식의 변화와 노동자들의 대응
자본과 정권은 저임금과 경쟁 구조를 활용하고 위계화하여 노동자 내부 경쟁을 통해 강제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자본의 통제방식 변화에 주목한다.

3. 비정규운동의 쟁점을 통해서 본 비정규문제에 대한 입장
비정규운동을 인정하자는 유연안정성 논리에 맞서서 어떻게 비정규운동의 입장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4. 지금까지의 비정규직 투쟁 평가(비정규직 투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남기는 교훈과 비정규직의 상태에 대해 진단하고 이후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5. 조직화의 전망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이유와 조직한 성과가 어떤 방식으로 수렴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노동자들의 주체화라는 관점에서 조직화를 생각한다.


6. 공동투쟁의 가능성과 전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통해서 구조조정에 맞서는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하고, 그 조건을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한다.

7. 비정규노조의 상태 진단과 비정규활동가들의 자기 정립의 과제
지금까지의 투쟁 과정 속에서 형성된 비정규노동조합의 자기 정립 과제과 비정규활동가들의 자기 정립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8. 비정규직 노동권 투쟁의 방향
노동법 개악 저지투쟁과 노동기본권 쟁취 투쟁에 대해서 평가한다. 유연화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이후의 과제는 노동권에 확장 전략이다. 우리의 노동권을 다시 쟁취하거나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방안과 내용에 대해 고민해보자.

9.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정규직 조직과 투쟁의 전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역 조직화 전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는 경비연 등 지역연대체 활동을 통한 연대운동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지역적 조직화에 대한 고민도 많이 있다. 지역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의 전망을 밝힌다.

10. 생활권 투쟁의 과제
빈곤에 대한 저항이라는 면에서 생활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것은 반빈곤 포럼과 비정규노동자들의 빈곤문제와 연동하여 정리할 수 있도록 한다.

11. 비공식 노동자를 조직하자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광범위하게 산개되어 있는 비공식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보자. 신자유주의 유연화가 강제하고 있는 비공식 노동자 확대 전략에 맞선 우리의 조직화 전략을 세워야 한다.

12. 불안정노동과 여성
불안정노동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 신자유주의 전략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불안정노동으로 편입되는지 살펴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여성노동권 확보 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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