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에 나선 정부와 언론
정부는 지난 5월 3일 교원평가 공청회를 무산시킨 것에 대해 해당교사들에게 법적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튿날 대부분의 언론들도 일제히 사설을 내고 공청회를 무산시킨 전교조의 행동에 대해 분노와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언제나 사건의 결과만 가지고 왈가왈부 떠들어대는 언론의 냄비근성은 사실의 왜곡을 주도하고 있다. 무엇이 폭력적이고 비민주적이란 말인가. 대다수의 교원들이 반대하는 교원평가제를 일방적이고 졸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것인가. 한편 전교조 지도부는 교원평가 저지싸움을 당당하게 수행하기는커녕 여러 차례 정부와의 타협적인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현 집행부는 틈만 나면 “여론에서 절대 불리하다”라는 협박으로, 보수 언론보다 한 발 먼저 조합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집행부가 대응기조로 천명한 ”대안있는 반대를 통한 무력화‘라는 것의 의미는 “(자기평가의 형태로) 교원평가를 수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녹록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원평가 투쟁을 허술히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승산 있는 싸움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교육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싸움인데도 시작도 않고 지레 겁을 집어먹고 굴복할 것이냐, 당당히 맞설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교원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교원평가는 교육의 질을 높이기는커녕 반교육성과 부도덕성으로 가득 찬 교활한 올가미이다.
교사에게 경쟁을 강요하면 할수록 교사들은 자신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아이들을 ‘수단화’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등급이 곧 자신의 등급이므로 ‘높은 등급’의 아이들을 노골적으로 선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원평가는 ‘부적격 교원을 가려내기’는커녕 부도덕하고 비교육적인 교사로 길들인다. 학교교육은 저마다 따로 하는 게 아니라 ‘협력’하여 한다. 서로 비판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원 간 경쟁이 반드시 뒤따르는 교원평가는 교원 간 협력구조를 깨뜨린다. 영국에서는 이렇게 삭막해진 교원 풍토를 견디지 못하여 교직 이직률이 높고, 교직이 ‘꺼리는 직업’의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교원평가는 학교를 ‘상호협력의 공동체’가 아닌 ‘상호감시의 원형감옥’으로 만든다. 교사가 학생을 ‘우수/부진아/말썽쟁이’로 등급 매겨 차별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학생이 교사의 등급을 매기는 것은 더더욱 부도덕하다. 그들이 그럴 생각을 품지 않았더라도 현실에서 그런 결과에 가담할 것이고 비록 '들러리'일 뿐이라 해도 온전히 떳떳할 수는 없다. 인격적 교류보다 ‘평가, 갈라치기 버릇’을 익힌 학생은 이웃과 연대하는 시민이 아니라 영악한 상품 거래자로 커간다. 사제(師弟)가 서로 ‘평가’를 무기로 휘두르고 교사가 학생/학부모한테 ‘감시’ 당한다고 느낄 때, ‘스승’이 설 자리가 사라진다. 교육은 교원들이 서로 협력해야 이뤄지고, 그래서 학교를 ‘공동체’라 부른다. 교원을 서열화, 차별화하는 교원평가제도는 교육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러므로 교원평가의 “대안”은 첫째, 그 반교육적인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요, 둘째 교사가 공공성에 입각하여 평등한 교육을 펼칠 민주성과 공공성에 입각한 노동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률적 기준에 의해 교원의 교육활동을 평가할 경우, 교육활동이 그 좁은 틀 안으로 제한되고 왜곡되기 쉽다. 영미에서는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교원평가를 연계하는데, 평가의 객관성을 따지다 보면 영미의 방식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는 전인적 교육을 지향해야할 공교육을 학업성취 향상으로 편협하게 몰아서, ‘지필고사 성적경쟁 바람’만 일으킨다. 영미에서는 그 부담으로 하여 성적조작 비리가 흔한 일이 되었다.
둘째, 교원평가는 교사들에게 굴종의 삶을 강요하는 교원구조조정의 주춧돌이자 중심기제이다.
정부는 “‘교원평가’를 구조조정과 연계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이미 교원평가를 구조조정과 연계해온 국가들에게서 정책을 모방했으면서 그렇게 부인하는 것은 낯 뜨거운 일이다. “‘재교육’을 더 받으라는 것이지, 내쫓자는 말은 아니다”라는 변명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재교육’ 명령을 받는 사람은 이미 교단에서 무능력자로 낙인찍혀서 사회적·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사실상 자진사퇴 압박을 느낀다. 학부모들과 학생들 사이에 ‘저 교사는 재교육을 받았대’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담임교체 요구와 교과담당 교사 교체요구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담임과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게 된 교사가 그 수모를 이겨내며 학교에 출근할 수 있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견디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실제로 일본에서도 재교육 대상자 중에 다시 학교로 복귀한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 내쫓기 위한 수단이 ‘재교육’이라는 포장임을 잊지 말자.
당사자에게 ‘원자료 공개’가 아닌, 평가지표별 점수를 제공하겠다는데, 수업 자기계발 자료로는 ‘원자료’가 쓸모 있는 것이지, ‘점수’는 보수와 인사개편 자료로 쓰일 뿐이다. 또한 평가결과를 ‘자기반성의 계기’로 쓰라고 해놓고 ‘이의제기권’을 설정한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는 새로운 근무평정도구로 삼겠다는 속셈이다. 평가관리기구를 학교와 교육청에 별도로 설치한 것도 성과급, 자격증 갱신제 등과 연계하려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 일반화된 제도가 이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평가자의 주관을 피할 수 없어 악용되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극우 정치풍토가 만연된 일본에서는 ‘기미가요, 히네마루’를 거부한 양심교사가 ‘부적격 교원’으로 주로 낙인찍힌다.
셋째, 교원평가는 교육노동운동의 파괴공작이다.
교원평가의 타겟은 ‘자기 맘대로 안 되는 문제교사들’이다. 부적격교원이 교원평가로 가려질 성질의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면 타겟은 바로 전교조 교사들이다. 교원평가는 인성교육, 전인교육을 하려 애쓰는 교사들의 사기를 북돋고 지원하기는커녕 “학력경쟁”에서 유능한 고도의 ‘기술자’와 ‘시키는 대로 하는’ 교사로 옭아매려는 장치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학부모들이 원하는 0교시, 강제보충, 특별반 편성 등등의 온갖 비교육적 행태들을 거부하는 전교조 교사들은 곧바로 ‘부적격’ 낙인을 찍히게 된다.
정부의 강경대응은 더 큰 저항을 낳을 것
교원평가는 여러 말 하지 않아도 즉각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현장의 교사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지금 현장에서는 정년단축 때의 분위기가 재현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문제는 현 지도부의 수세적인 태도이다. 지도부의 애매모호한 태도로 인해 정부가 공청회 무산에 대해 엄정대처를 한다는 둥 더욱 기세등등하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나온다면 대중들의 강력한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교원평가는 반드시 막아야 하기 때문이고, 또한 충분히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