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까지 등장한 영국 중등학교 선발방식

[진보교육뉴스 79호]

진보교육뉴스

 

제79호 (2007. 3. 22)

 
 
 
 

[초점] '제비뽑기'까지 등장한 영국 중등학교 선발방식

○ 계층간 불평등 확대시킨 학교선택권

지난 2월 말 잉글랜드 남쪽 해안도시인 브라이튼 Brighton 시가 ‘인기’ 학교에 학생들이 몰릴 경우 제비뽑기(추첨)를 통해 학생들을 배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추첨제의 공정성, 나아가 학교선택권을 둘러싸고 영국 전역에 논란이 진행 중이다.

영국은 이미 대처정부 시절인 지난 1988년 ‘교육개혁법’을 통해 학군을 통한 근거리 배정 원칙을 폐지하고 대신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개방 등록제’(open enrollment)를 도입했다. 선택권 확대와 더불어 학교의 운영권한을 지방교육청에서 개별 학교에 이양하는 대신 그만큼의 책임을 물었다. 예를 들어 학교의 재정을 학생 수만큼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학생은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학교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을 끌어들여야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게 되니 자연스럽게 학생모집 경쟁이 벌어졌다. 영국에서도 학교 선택의 기준은 단연 대학진학 성과인 탓에 대학진학 성과가 탁월한 ‘명문’ 학교는 학생들이 몰리게 되어, 이제는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영국(잉글랜드)에서 중등학교에 진학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9월에 새학기가 시작되면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중등학교들이 학교설명회를 개최하거나 학교방문을 허락한다. 집안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모가 둘 다 직장을 다니는 경우라면 학교를 방문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또한 선택의 과정에서 ‘league table’ 이라 해서 교육평가청(Ofsted)이 주관하는 전국학교평가의 결과에 따라 각 학교의 성적표가 학부모들에게 공개되면서 학교 선택의 중요한 정보가 제공된다. 학부모들은 이들 정보를 근거로 여러 개 학교에 복수지원을 하는데 1지망에서 탈락할 경우 여러 차례의 패자부활전을 거쳐 학교에 배정받는다.

학생들이 몰리는 학교의 입장에서는 지원한 학생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원 초과분만큼을 탈락시켜야 한다. 이렇게 학교선택권은 자연스럽게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부여했는데, 사립학교와 그래머 스쿨 등 일부 학교를 제외하고는 공립학교는 공식적으로 성적에 의한 선발은 금지된다. 일반적으로 통학거리, 종교, 형제자매가 그 학교에 재학중인지 여부 등으로 선별을 하는데, 실제로는 학생들의 성적이 선발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컨대 런던 루이셤 Lewisham 지역의 경우 초등학교 5학년에 실시하는 전국학력평가시험의 결과에 따라 이를테면 1등급을 받은 학생은 7km, 2등급은 5km, 3등급은 3km 반경까지 성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거리를 달리 주기도 한다. 따라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거리가 멀어도 명문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만일 여러 차례의 패자부활전을 거쳐도 지망하는 학교를 배정받지 못한 경우에는 재수를 하거나, 기피(똥통)학교에 보내거나, 비싼 사립학교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지원한 학생을 탈락시킬 때에는 학교측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식 항의를 하기도 한다. 잉글랜드의 경우 2004~5 학년도에 중등학교 배정에 항의한 학부모의 비율이 전체의 9.3%에 달했다. 반면 아직까지 근거리 배정 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비율이 0.6%에 불과했다.

그래서 아예 가정에 따라서는 높은 웃돈을 치르면서까지 명문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기도 하며, 이 때문에 해당 지역의 집값이 주변보다 30% 가까이 오르는 일도 벌어졌다. 영국판 ‘강남 8학군’인 셈이다. 런던의 학생들은 25%가 타 지역의 학교로 통학하고 있을 만큼 선택권을 잘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내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싶다면 통학거리일랑 아랑곳 않고 자가용으로 아이를 통학시킬 수 있거나, 집값이 비싼 명문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거나 하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아니면 아예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거나.

○ 추첨제 도입에 의견 분분

영국은 누구나 거리에 상관없이 좋은 학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일찍이 학교선택권을 도입했지만 특정 학교로의 쏠림현상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만과 낭비는 막을 수 없었다. 실제로 주로 도심지에 위치한 가난한 지역의 학교는 학생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하였고, 자연스럽게 학생 수가 줄어들어 재정난에 처하고, 심지어 폐쇄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외곽지역의 명문 학교에 지원조차 할 수 없는 저소득층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실패한 학교에 다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반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open! 명문 학교는 비싼 집값이나 먼 통학거리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이 독점하게 되었다.

이렇듯 선택권 확대가 계층간 격차를 더욱 벌려놓자, 현 노동당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놀랍게도 ‘제비뽑기’이다. 현행 공립학교의 근거리 배정 방식은 특정 명문 학교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독점을 하므로 다른 지역, 예컨대 저소득층 지역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다. 즉 타 지역 학생과 해당 거주지 학생이 그 지역의 명문 학교를 지원하여 서로 경쟁할 경우 과거처럼 거주지 학생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비뽑기로 학생을 가린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다 추첨으로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브라이튼 시 의회는 이 계획이 소외계층에게도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브라이튼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바로 반발했다. 특히 어느 신문에서는 추첨을 할 경우 영국 전역의 60만 명의 학생들 중 1/3인 20만 명의 학생들이 1지망 학교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분노와 혼란은 더욱 커졌다.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비싼 돈 주면서까지 집을 사서 왔는데 추첨으로 학생을 뽑겠다니 불만이 터지는 건 당연했다. 벌써 4천 명의 학부모들이 탄원서에 서명을 했고, 수천 장의 유인물을 나눠주며 시 의회의 계획에 반대하는 거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이 캠페인을 주도하는 집단의 대변인은 이번 계획은 내 아이를 동네의 학교에 보내는 것을 가로막는다며 반대의사를 피력했다.

반면 이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거주지에 따라 학교를 배정하는 건 명문 학교 근처에 집을 살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불공정하다며, 제비뽑기는 이들에게 최소한 기회라도 부여하는 것이라 말한다.

○ 서울시 학교선택권 확대 계획, 앞날이 빤~하다

기본적으로 무시험제와 근거리 배정에 근거하여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있는 서울시의 경우도 특목고가 꾸준히 확대되고 공동학군제(중부권)가 실시되면서 상당부분 선택권이 주어져 있는 상태이며, 영국과 마찬가지로 특정지역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강남 8학군은 특유의 지역적, 문화적 이점 덕에 대학입학에서 남다른 성과를 내고 있고, 이 때문에 누구나 강남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하지만 높은 집값 때문에 진입이 쉽지 않아 타 지역의 중상위 계층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고등학교 진학 시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거리에 상관없이 서울 전역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굳이 강남으로 이사하지 않아도 강남 지역의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었다. 이와 함께 언론을 통해서 서울대, 연대, 고대 입학자 수를 기준으로 전국 고등학교의 순위가 공개되고,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발의하여 통과된 ‘학교정보공개법’ 탓에 고등학교의 서열이 공식화되니 바야흐로 선택을 위한 시장이 창출된 셈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의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 상위권 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당연히 생기고, 이렇게 되면 이들 학교는 필수불가결하게 나름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게 된다. 만일 성적으로 뽑는다면 그 파괴적인 결과야 불을 보듯 뻔할테고, 추첨으로 뽑는다 해도 영국처럼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강남의 학부모들이야 지역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많은 덕을 보고 있던 차에 정원의 30%만큼을 타 학군 학생들에게 개방을 하게 된다면 그 손해야 이만저만이 아닐 터. 기껏 지원했더니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한다면 ‘내 아이의 미래를 운에 맡길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차라리 성적으로 가리는 게 공정하다는 주장도 충분히 나올 법하다. 그리 된다면 이제 고등학교 입학도 대학입시처럼 학교 맘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키 순서로 뽑든, 돈 많은 순으로 뽑든 대학이 맘대로 학생들을 가려 뽑는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인 문제가 없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선택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의 권리 또한 부여되므로 그들이 횡포를 부린다 한들 누가 제재를 하겠는가.

명문대학 진학 여부가 개인의 미래를 사실상 결정하는데 명문대 진학 성과가 좋은 중등학교에 보내려 하는 건 어찌보면 상식적인 선택이다. 허나 중등학교 간에 차이와 서열이 존재하는 순간, 추첨으로 뽑든 성적으로 뽑든 갈등과 불만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국 BBC의 마이크 베이커 통신원이 날카롭게 지적했듯,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불만은 더 높아지며, 언제나 승자와 패자로 갈릴 수밖에 없다.” 해당 학교와 학생의 성적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학교간의 차이와 서열을 조장하여 ‘시장’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여 소비욕구를 자극하는 한 차별과 불평등은 사라질 리 만무하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설사 모든 학교가 명문학교가 된다고 해도, 즉 선택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해도 자본주의 사회가 학교라는 기제를 통해 대중들을 끊임없이 분할하고 위계화하는 한 그 안에서 또 다른 차별과 배제는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다.

학교 간의 위계와 서열의 존재를 인정한 상태에서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법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거나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어서, 현행 대학입시처럼 완전 경쟁체제로 가거나 영국에서처럼 차라리 제비뽑기가 공정한 방법으로 인정될지도 모른다. 어느 모로 보나 결과는 뻔한데, 서울시 교육관료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관련 기사]
 학교선택권과 아동선발권이 교차하는 중등학교 진학시스템,『교육개발』152호(2005.7).
“Schools to give places by lottery”, BBC NEWS, 2007.2.28.
“The problem with school 'choice'”, BBC NEWS, 20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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