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2호]<'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 토론내용 요약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4) - 한노정연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움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 -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
토론 내용 요약
특집: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4)
심포지움 토론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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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의 위기논쟁’을 넘어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을 모색하고자 했던, 한노정연 창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움을 개최한 지도 벌써 1달이 다 돼 간다. 심포지움의 발제문은 [현장에서 미래를] 111호에 실었고, 당일 토론 내용에 대해서는 <참세상> 등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심포지움의 준비과정과 토론내용 등에 대한 ‘평가’는 별도의 [평가서](이번 호 ‘연구소 소식’면 게재)를 통해 제출했다. 여기에서는 당일 발제 토론한 내용 속기록을 가능한 한 그대로 풀어서 싣는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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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편집위원회


심포지움은 박성인 소장의 사회로 시작됐다.

“위기 논쟁 지형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판단 아래서 이번 토론회를 기획했다. 노동운동도 위기지만, 자본도 위기고 한국사회 전체도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있다.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위기를 노동운동이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라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다면, 자칫 ‘노동운동 위기논쟁’은 자폐적이고 자학적인 논쟁으로 될 가능성이 많다. 계급적 노동운동, 변혁적 노동운동의 논의지형을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문제의식, 특히 최근에 노동운동 내부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산별노조 중심으로 토론이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발제

이은숙 부소장이 [자본축적 구조의 변화와 노동운동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했다.

“노동운동 위기 논쟁을 보면, 자본은 발전하는데 노동운동 진영이 대응을 못했다는 것이 중심이 되어왔다. 주로 학계에서 논의가 진행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으로 인해 현장에서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위기논쟁만 하다가 더 위기에 빠지는 국면인 듯하다.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자본의 상황을 보고 노동자계급의 구성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고자 한다.
자본축적구조를 뛰어넘는 노동운동의 전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전망은 없다. 따라서 어떻게 자본축적구조를 뛰어넘는 노동운동의 전망을 찾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물론 자본축적구조를 분석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전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자본축적구조라는 것은 경제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을 유지하고 사회관계를 조직하는 모든 부분까지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작업을 하면서 경제구조 뿐만 아니라 노자관계의 변화를 작업했어야 했는데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이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자본축적구조에 대해 정리를 했는데, 산업 및 공업구조의 변화 즉 중화학공업 중심의 제조업화와 서비스화라는 자본 축적구조의 변화가 노동운동에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지만, 80년대 역시 내내 국가자본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고 봐야한다. 80년대는 산업구조조정 정도로 넘어갔던 것이 90년대는 경제구조조정으로 위기의 폭과 깊이가 심화된 것이 반영됐다.
본 발제에서는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이 자본 축적구조를 변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독점자본의 경제 지배력이 더 강화되고 중소 자본의 재하청화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외국자본의 한국경제에 대한 지배력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96년부터 기업부도가 시작해서 사업체 수가 줄어들고 있다. 사업체 종사자 수도 줄어든다. 98년에는 공식 실업률이 8%에 달하기도 했다. 특히 소규모 사업체 종사자들의 실직 현상이 두드러진다. 97년에는 전체 임금 노동자 중에 상용직이 54.1%였었는데 98년에는 103만 5천명이 줄어들어 52%가 된다.
또한 노동시장이 비정규직화되고 있고 양극화되고 있다. 자본축적구조의 변화와 노동력 구성의 변화가 주는 함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의 전략이나 축적방식이 변경됨에 따라 노동력이 재편되고 특히 분할 정립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심각한 노동계급 내의 분할이 전개되고 있는 상태에서 분할구도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자본축적 구도 내에서만 찾는다면 찾아지지 않는다. 자본의 위기가 노동의 위기로 전가된 상태에서는 노동의 전망을 찾을 수 없다.
노동자계급 내의 연대전망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조직화 전략을 찾는데 있어 조직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연대와 단결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한다. 지금 시기에는 지역적 연대의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종사지위별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나 규모별 차이(대공장, 소공장), 성별 격차에 대항한 투쟁을 다양하게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자본의 분할전략을 맞상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규직을 공격하니까 정규직들이 위축되어서 임단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은 한편으로는 공격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회유를 하고 있다. 자본의 회유와 포섭을 위한 제스처에 결단코 넘어가선 안 되며 오히려 임단협 등의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의 현장은 노동강도의 강화로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변혁의 전략을 생각할 틈조차 없다. 투쟁을 강화해서 생각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미처 생각할 시간이 없는, 그런 형편에 처해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기의 노동강도 강화에 저항할 수 있는 투쟁을 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길을 가야한다.”

사회자

“노동자계급 구성과 상태의 변화가 노동자들에게 모두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소위 중산층의 하향 양극화로 노동자 계급의 수가 굉장히 증대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노동자계급의 강점으로 가져갈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위기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를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 방안들이 논의되었으면 좋겠다.
이은숙 부소장은 자본축적 구조 내부에서 전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야한다고 예기했는데, 그런 연대의 전략 가운데서 최근에 산별노조 건설을 중심으로 여러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어 김영수 부소장이 [계급적 산별노조 건설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했다.

“내 발제는 세 주제 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가장 비판받을 수 있는 발제인 것 같다.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계급성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과연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노동운동을 해왔는가를 반성해야한다. 원칙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실현가능성이 있냐고 묻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선험적으로 원칙을 주장하거나 현실적 수준에 머무는 다양한 논의들은 노동자들을 속이고 자기를 속이고 노동자계급 전체를 속이는 행위’라는 남아공의 학자의 얘기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산별노조 문제에 대해 수많은 논자들이 말하고 있다. 전노협 결성 이후부터, 또한 일제시기와 해방정국 전평에서도 산별노조는 관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왜 또다시 산별이 논의되는가? 현장에서는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문제가, 내용적인 수준에서는 노동시장의 분절화와 자본축적의 위기가, 더 나아가 주체적인 조건에서는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촉발 원인인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산별노조 결성의 근거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본 발제가 기존의 논의와 무슨 차이가 잇는가?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이 산별로 되어야만 단결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산별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계급 단결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분열시키는 모습이 존재하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계급 간 대립의 강화’와 ‘노동자 계급 내부의 단결’이다.
계급적 산별노조의 구체적인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보고자 한다. 계급적 산별노조의 전망을 도출하는데 있어 자본의 위기 내지는 노동의 위기에 대해서는 앞의 발제로 대신하고, 먼저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소산별 노조들을 평가해보겠다. 기존의 소산별 노조를 일반적 수준에서 평가한다면 4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산별노조 결성 자체가 계급적 단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 다양한 소산별 노조들이 산별노조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계급 대립의 강화를 위한 노력이 부재했다.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현실화시키려는 운동이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셋째, 기업단위 조직체계를 스스로 인정함에 따라 소산별 노조의 형식적 체계조차도 갖추지 못하는 운동이었다.
넷째, 각 분회나 지역 집중도에 따라 활동 자체가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부나 분회가 집중되어 있는 지역의 소산별 노조 운동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별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계급주체들을 단결시켜낼 수 있는 구체적 기제들은 무엇일까? 대안은 지역별 산별노조를 토대로 하는 산별노조 건설운동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종적인 조직체계로 되어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횡적인 질서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또한 산별 구획을 현실적으로 제조업 분야와 서비스업 분야 두 개로만 구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산별 업종별 연맹들을 해소시켜 낼 수 있는 전국적 투쟁을 강화하면서 기존의 연맹틀을 해소해 들어가야 한다. 계급 주체들을 단결해내는 것이 계급적 산별의 과제이다.
그 다음으로 전국적인 전선을 형성시켜내는 투쟁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투쟁이 98년 이후에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현재의 민주노총을 보면 ‘관리중심의 패러다임’ ‘양적 성장의 패러다임’ ‘종업원 의식의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을 ‘조직 패러다임’ ‘질적 성장 패러다임’ ‘계급 패러다임’으로 바꿔내지 못한다면 계급을 약화시키는 산별이 될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에 걸 맞는 조직체계가 바로 지역별 산별노조이다. 즉 지역별로 서비스 산별노조와 제조업 산별노조 2개만 존재하게 된다. 전국적인 산별 연맹은 2개만 있는 것이다. 또한 중앙 차원에서도 노조 차원에서도 단위현장 차원에서도 파업권과 체결권을 보유할 수 있는 산별노조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 ‘지역별 산별노조’는 계급주체들의 단결에 기초하는 산별노조운동의 현실화가 가능하며 지역사회 구성원도 단결시켜 나가는 투쟁의 토대를 구축할 뿐 아니라 노조와 조합원간의 유기적 소통관계를 보다 강화할 수 있다.
산별노조의 조직 체계나 형식에 매몰되는 순간 정말 산별노조가 지향해왔던 것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낼 수 있을 것인가가 반영되지 않는다.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어느덧 민주노조 운동이 회고와 반성을 상실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반성을 한들 이것이 또 다른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반성에 따른 책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계급적 산별노조 건설 운동은 이러한 반성과 책임을 복원해야한다.”

사회자

“산별노조 건설투쟁을 ‘계급적 단결의 강화’와 ‘계급 대립의 강화’ 두 측면에서 검토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별 산별노조’를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병기 부소장이 [유럽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 비교 평가]에 대한 발제를 했다.

“본 발제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을 중심으로 서유럽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비교 평가하였다. 이들 네 나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통점보다는 특수성을 보였는데 노조의 기원이 길드에서 유래된 직업조합이라는 점은 동일하지만, 초기 조직형태에서 독일과 이탈리아가 처음부터 산별노조 형태를 취한 반면, 스웨덴과 영국은 직종별노조로 조직됐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후 스웨덴은 산별노조 원칙으로 전환했으며, 영국은 현재 직종별노조를 중심으로 하되 산별노조 및 일반노조와 혼합된 복수노조를 취하고 있다.
노동조합 체계를 보면 독일과 영국이 유사하게 단일통합노조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 사민당 및 노동당과 결속되어 있다. 반면 이탈리아는 정파노조로 분열되어 있고 스웨덴은 정파성과 직종에 따라 복합적으로 분열돼 있다. 서로 다른 역사적 전통과 조직 체계의 특징들이 노사관계나 사회정치적 투쟁에서 사뭇 다른 모습들을 가능하게 했다.
외국 사례의 연구가 반드시 모범 사례로 정해서 따라가기 위한 것은 아니다. 종합해서 바라보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외국 사례를 통해 가질 수 있는 함의 가운데 하나는 노조가 정치적인 파업권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별노조 체계에서 단위노조 차원까지도 협상권과 파업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회자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가장 많이 소개된 산별노조 사례가 독일의 경험이다. 독일의 경험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경험들을 비교하면서 함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발표였다. 우리 는 한국의 노동자대중투쟁의 역사가 산별노조 건설과 관련해서 무엇을 제기하는지를 정리해야 할 과제가 있다.”

1시간여에 걸쳐 3가지 주제에 대한 발제를 마치고 플로어에서 질의가 있었다.

“본인이 속한 공공연맹에서도 산별노조를 준비 하고 있다. ‘산별 건설’이라는 표현은 안 쓴다. 발제자가 지역산별 얘기를 했고, 그 기준이 광역 정도 될 텐데 지역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지역에 있는 노동자면 그 지역 노조에 속한다는 것 같은데 맞는지? 산별이 아니라 총연맹 형태라는 이야기인가? 발제자의 안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런 것들이 10년 내에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가?

김영수 발제자의 답변

“거꾸로 말하면 2년 내에도 가능하고, 아니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산별노조 건설 운동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가장 핵심인 ‘계급적 단결의 강화’와 ‘계급대립의 강화’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역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만약 지역별 산별노조 건설을 실제로 진행한다면 다양한 논의가 가능할 텐데, 개인적으로 광역 단위로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논의가 촉발된다면 구체적 방법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기조토론

15분간 휴식 후에 토론이 재개됐다. 토론은 토론자들의 기조토론에 이어 3가지 주제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됐다.

사회자

“세 가지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해보자. 첫째,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 대한 총괄적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둘째, 노동자 계급 구성의 변화와 자본축적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셋째, 계급적 노동운동의 전망과 관련해서 산별노조 건설 전망에 대해서 토론하기로 한다.”

‘전노투’(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의 상황실장으로 있는 양효식 동지가 첫 번째 기조토론을 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노조운동에서의 노사협조주의, 관료주의, 개량주의, 이런 것을 막지 못한 것이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87년 이후의 노동운동의 특징인 자주성 계급성 연대성 전투성이 거세당하고 그 자리를 대신해서 노사협조주의나 여타의 관료주의 성격들이 운동을 지배하게 된 것이 위기의 본질적인 성격이다. 따라서 그것을 극복해야한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정규직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 오늘 기아 화성공장의 비정규직 지회가 파업하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는데 정규직 노조가 대체인력 투입을 저지하지 않고 버티다가 활동가들의 압력에 못 이겨 대체인력을 저지하는 것을 보았다. 옛날 같으면 당연한 임무가 이제는 그렇게 방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위기의 현실모습이구나 라고 느꼈다. 기아자동차만이 아니라 어저께 현대자동차에서도 3공장에서 관리자들과 경비에 의해서 폭력이 자행되었다. 그런데 정규직 노조가 팔짱만 낀 채 방관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이다. 특히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는 민주노총 상층부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공장 단사에서 노사협조주의․ 투쟁회피주의․ 투쟁을 관료적으로 통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거부터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해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전투적 조합주의는 노동조합 수준의 운동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투적 조합주의가 아니라면 실리적 노동조합주의로 나아가야 하는가? 전투적 조합주의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과거 가장 비타협적으로 싸웠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고, 87년 이래 지금까지 노동조합 운동을 엄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 정당이 없음으로 인해 노동자운동이 할 수 있었던 최고 수준의 운동이었다. 따라서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대상으로 보는 것은 실리주의적 운동으로 가자는 이야기 밖에 안된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사회적 노동운동’ 이 자본가들과의 대결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그것은 노동자들과 더욱 더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자신들이 말하는 ‘전투적 조합주의 극복’은커녕 노동자들의 절박한 이해와 요구를 해결해주는 운동과는 더욱 거리가 먼 방향으로 갈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첫째, 현장권력을 강화해야 한다. 계급적 산별노조도 일단 사측의 현장장악을 무너뜨리고 현장을 되찾지 못한다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또한 둘째, 계급적으로 연대투쟁이 활발히 전개되어야 한다. 상층중심의 산별노조를 만드는 것, 산별 교섭구조를 정착시키는 것, 산별합의를 쟁취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치에서는 민주노동당 자체가 위기의 하나의 현주소이다.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열망을 업고서 건설되었는데 과연 민노당이 그 열망을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중간계급의 정치세력화 아니냐? 또한 노조상층부와의 연합적인 질서 아니냐? 그런데 계급적 노동운동 한다는 동지들이 민주노동당에 개입하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전망을 아예 닫는 것이다. 전망을 열기위해서는 계급적 좌파들의 독자적 정당을 건설해야한다. 그것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세 번째 길이라고 본다.”

이어 ‘전진’(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의 의장을 맡고 있는 임성규 동지가 기조토론을 했다.

“본인은 조직가로서 주로 현장활동을 해왔다. 발제를 들어봤을 때 한노정연은 자본축적구조의 변화 속에서 한국 노동운동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산별노조로 가야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나와 관점이 다르다기보다는 몇 가지 지점을 전화시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노동운동을 얘기할 것인지 노동조합운동을 얘기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발제는 마치 노동운동 얘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노동조합운동을 얘기하는 것 같다. 노동조합은 어디까지나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이 가지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노동운동으로 발전할 때 계급운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본주의 분석에 있어 미국자본을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보면 망하는 게 당연한데 왜 미국은 망하지 않을까? 미국이 버티는 것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불공정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정도 밖에 없는데 현재까지는 초국적 자본이 세계시장을 주무르고 있고, 전 세계 경제는 구조적으로 70년대 이후로 만성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신자유주의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완전히 시장화시키고 있다. 비자본주의 국가를 공격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는 비시장 영역이었던 공공서비스 영역을 공격하면서 사유화시키고 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기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이다. 노동운동은 이것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본축적의 위기가 노동운동의 위기로 전가된 것이다.
즉 노동운동 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자본주의에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어떻게 자본주의를 공격할 것인가로 잡아야 한다. 자본주의를 공격할 무기는 노동조합에서는 산별노조고 정치운동에서는 계급정당이다. 양대 축을 정확히 자리 잡고 자본주의를 공격해야만 노동자들이 원하는 세상을 가져올 수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동조합이 잘못해서 왔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마지막으로 외국 사례를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모범으로 삼을 수는 없다. 외국 노동운동 사례 중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것은 일본노동운동이다. 보통 노동운동이 망한 국가이기 때문에 일본을 공부하지 않는데,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일본을 공부해야 한다.
일단 노동운동이 지금까지 왔던 길을 잃어야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각오와 결의를 가져야 한다. 과거에 대한 평가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잊어버리고 이제 새로운 길을 찾자.”
세 번째 기조토론은 한신대 사회학과 노중기 교수가 했다.

“작년 9월부터 올해 봄까지 위기 논쟁을 했으니까, 한노정연은 그것을 넘어서자는 문제제기를 하고 산별노조라는 대안을 말하는 것 같다. 노동운동 위기 논쟁에 적극 개입했던 사람으로서 큰 문제의식부터 생각해 보자.
발제자는 노동운동 위기 논쟁이 ‘노동운동의 책임’으로 귀책한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소모적이고 자책적인 위기논쟁 대신에 적극적인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맞지만 혼동되어있는 것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노동운동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자본주의의 문제로 갈 수도 있고 혹은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로 갈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지만 우리랑 별 관련이 없고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위기의 원인을 한국자본주의 축적구조로부터 도출하겠다는 것은 맞지만 혼자 할 일이 아니라 진보진영 이론가들이 다 같이 해야 한다. 근본주의적으로 접근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운동은 잘못 없다’는 그런 입장에는 반대한다. 모든 문제를 구조적인 것, 원칙적인 것에 귀착시켜서는 안된다.
노동운동에 잘못이 있는가? 모두들 대기업 이기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런 점에서 ‘노동운동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위기논쟁도 반대한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고 논의할 수도 있지만 위와 같은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성격은 국가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일 뿐이다. 그런 수준의 논쟁은 배제하고 실제로 부닥칠 위기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좌파들이 그러한 문제들 다 지적하지 않았냐?’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우파와 좌파들을 향해서 좌충우돌해 왔는데 지금 느끼는 것은 별로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가 없는 것 같다. 진지한 자기 성찰과 문제의 과학적 인식을 위한 노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좌파들인 것 같은데 좌파들은 반성하는 게 있느냐?, 나는 반성하는 게 없다고 본다. 과학적 수준에서 분석하고 극복의 과제를 제시하는 좌파진영은 없는 것 같다. 좌파들은 ‘노동운동 위기논쟁을 넘어서자’는 주장은 하고 있지만 넘어설 수 있는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적 수준에서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얼마 전에 한노사연에서 만드는 잡지인 [노동사회]에서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서 토론자가 전투적 조합주의가 가장 계급적이고 철저했다고 말하는데 그런 지점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해야한다. 전투적 조합주의가 87년부터 97년까지 유효한 전술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97년 이후에는 그것만으로는 계속 발전시킬 수 없다.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롯해서 전투적 조합주의를 쓰레기통에 넣고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진영들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러나 반대로 전투적 조합주의를 옹호하는 좌파는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산별노조 운동과 관련해서 진지하게 산별을 어떤 모델로 가져갈 거냐? 지금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독일의 관료적 산별 모델에 대해 좌파가 대안이 있냐고 묻고 싶다. 모두들 산별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몸으로 실감하고 있는데 과연 좌파가 제시하는 모델이 있는가? 큰 틀에서 좌파의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대안은 있었느냐?
동시에 산별노조와 더불어 정치세력화가 현재적 과제라고 보는데 계급적 정치세력화에 대한 모델은 좌파가 제시한 적이 있느냐?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이론진영에서는 구체적인 논의들이 있어야 하는데 좌파진영에서는 원론만 존재한다. 좌파진영에서 반성은 없다. 좌파들이 계속해서 단지 ’우파가 사고 쳐서 노동운동이 위기다’라고 본다면 결코 노동운동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힘’의 노동위원장인 안재원 동지가 기조토론을 했다.

“현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곧 87년 노동체제의 붕괴라고 볼 수 있다. 9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IMF를 겪으면서 많은 변화가 왔다고 생각한다. 87년 투쟁을 통해 갖고 온 이념적 지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 평등세상이라는 구호가 사라지고 있다. 자본의 공세로 노동자 계급 내부가 분할되었다는 것, 그것에 대해 제대로 투쟁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그 투쟁의 패배로 인해 노동현장은 실망과 좌절과 패배감을 가지게 되었다.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정리해고를 막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것이 당면한 문제이다. 그에 반해 87년 이후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부르주아 정치가 활성화되었다. 이제 운동하던 사람들이 청와대에 가있다. 시민운동과 총연맹운동은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제 사회적으로는 총연맹이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현장은 탄압과 좌절과 실망과 패배감에 쌓여 있다. 현장의 양극화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에 대해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주체형성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현장운동에서 3분파 구도가 있었다. 이제 일정정도 그런 구도가 해체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주체형성 시기가 오고 있다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계급적 노동운동을 새롭게 복원할 수 있는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없다. 민주노총이 전체운동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현장활동가 대오를 재결집시켜 신자유주의와 전선을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계급적 노동운동 주체들의 결집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정치적 부대의 형성이 중요하다. 계급적 정치에 대한 분명한 요구와 과제를 제출해야한다. 현재 노동운동이 갖고 있는 요구를 한 단계 상승시켜야한다. 그것은 생존권 요구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 투쟁의 과제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흔히들 산별을 얘기하는데 계급적 산별이 되지 않는 한 요원하다. 산별에 대해 이미 정권과 자본도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정권과 자본의 후견에 의해 산별이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또 한 측면은 지역운동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80년대만 해도 정파가 달라도 모여서 같이 싸웠다. 최근에 보면 내부투쟁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적 투쟁을 중심으로 공동의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쟁점토론

네 명 동지들의 기조토론을 마치고, 쟁점토론이 시작됐다. 쟁점 토론은 크게 2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전투적 조합주의’와 ‘그 극복 방향’을 둘러싸고 토론이 이루어졌고, 두 번째는 ‘계급적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싸서 토론이 이루어졌다. 먼저 ‘전투적 조합주의’를 둘러 싼 토론은 다음과 같이 전개됐다.

사회자

“첫째, 노동운동 위기 논쟁 관련해서, 노동운동 위기를 넘어 서자는 것은 모든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넘자는 것이 아니라 수세적인 논쟁 구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핵심적으로 노중기 교수가 제기한 전투적 조합주의 극복 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자. 첫째는 국가와 자본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 둘째는 계급적 연대성, 셋째는 현장성, 넷째는 조합주의를 뛰어넘는 노동 정치의 현실화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노중기 교수는 좌파들도 현장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고 구체적 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해서 말해보자.”

양효식

“흔히들 ‘전투적 조합주의’라고 이름 붙이는데 정확한 이름은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90년대 초중반까지 진행된 민주노조운동의 성격과 과정을 가지고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러한 민주노조운동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를 말해야 한다. 그러한 전투적 조합운동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발전의 대상이다. 물론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를 말할 수는 있다. 한계는 노조 자체의 한계이다. 그러나 그 한계는 노동조합운동의 다른 형식을 찾는다고 해서 극복될 수는 없다. 당이나 평의회 같은 형태의 운동으로 보완될 수 있겠지만 아이디어로 극복할 수는 없다. 계급투쟁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히 단순한 것이다.”

노중기

“내 자신이 구체적인 ‘발전된 노조운동의 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자가 제시한 4가지 지점에 대해 좌파들에 관한 이야기만 해보겠다.
전투적 조합주의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특수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87년부터 97년까지 현장에서 투쟁한 것들 모두를 뭉뚱그린 것을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로 표현하는 것이다. 전투성 부문에 대해 분명 노조운동은 자본과 국가와 적대적으로 싸워야한다. 그러나 ‘굴뚝에 올라가고 벽돌도 던지고 타협은 없다’는 것이 전투성이고 그것이 계급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 유효하고 타당한가라고 묻고 싶다. 계급성의 표현으로서의 전투성은 의미가 있지만 전투성만이 계급성이라는 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현장성에 대해 말해보면 좌파들은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모든 것은 현장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으로 돌아가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굉장한 관념론이다. 현장을 미화시켜 놓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예전에 현장성을 말했던 것은 그 때 가진 것은 분노한 현장 대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도도 적이고 국가는 수구반동이 힘을 쥐고 있었고 민주노총도 불법이었다. 그래서 현장의 동력에 기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현재조건에서 또 다시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올라오는 투쟁에 목숨 걸고 가야 되는 것이 민주노조운동인가? 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조합주의와 경제주의에 대해 말해보면, 요즘 대공장 이기주의에 대해 자본이 공격하고 있다. 좌파들은 국가자본이 공격하니까 대공장 이기주의를 방어한다. 그것을 칠팔년 째 해오고 있다. 좌파들이 그러니까 현대중공업노조 같은 사례가 나오고 현대자동차노조도 이상해진다. 물론 국가자본이 대공장 이기주의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자본에 대한 투쟁논리를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계속해서는 안 된다. 대공장 노동조합은 분명 문제 있다. 97년 이전의 긍정적 요소들이 이제는 부정적 요소로 완전히 바뀌었다. 대공장의 경제주의와 조합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좌파들이 먼저 주장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대공장 활동가들이 정치적으로 무장해야 한다. 우파들은 노사정위원회로 들어가서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좌파들은 대공장 이기주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방안을 말해야 한다.
연대 문제에 대해 말해보면, 좌파들은 노동계급이라는 것을 폐쇄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시민운동과 연대하는 것을 쁘띠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시민운동과 연대하자는 것이 시민운동에 포섭되자는 것도 아니고 수평적 연대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책임있는 노동운동을 하고자 한다면 ‘시민운동은 중간계급이니까 쁘띠’라고 보고 성명서 수준의 연대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시민운동의 주장들이 국가자본의 주장과 비슷하게 들린다고 해서 그들을 우파라고 말해버리면 안된다. 지금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임성규

“전투는 전쟁의 전부가 아니다. 전략과 전술의 일부가 전투다.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논쟁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짜증이 난다. 내가 서울지하철노조 간부로 있을 때 네 번을 파업했는데, 한 번도 교섭타결이 되었던 적이 없다. 그만큼 전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전투주의’ 대단히 위험하다. 전투해서 얻어진 것이 없으니까 조합원들이 싫어한다. ‘교섭해서 타결도 해봐라’라고 한다. 맨날 싸우자고 하고 막상 얻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물론 전투성을 갖는 노동운동 해야 하지만, 성과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가 중요하다.
기업별 노조체계에서 전투성은 소용없다. 전투를 산별노조 속에서 계급적으로 해야 한다. 점점 같은 계급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전투성은 유용하지만 어떨 때 유용한지 어떨 때 해악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예전의 전투성은 임금의 시기집중 투쟁 등을 통해서 큰 물결을 형성할 때는 유용했었다. 현재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지금의 투쟁의 총량은 예전과 다를 바 없다. 지금도 많은 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묶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한 날 한 시에 터뜨려야 한다.
투쟁의 의제를 바꾸어야한다. 그래야 전투성이 유효해진다. 이제 투쟁의 의제는 임금인상만이 아니다. 조직적 무기는 산별로 가자. 현재 공공연맹은 대산별 체계로 가되 조직적 기반은 지역별로 가자고 말하고 있다. 김영수 부소장의 제안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기업주의를 넘어서 계급성을 빨리 찾아야 한다. 조직은 산별로 가되 체계는 기업별 의식을 빨리 깨는 것을 택하고 사회 전체를 바꾸는 투쟁을 해야 한다.”

안재원

“논의의 쟁점이 전투성을 마치 골목길 싸움처럼 보는 것처럼 흘러가는 것은 곤란하다. 전투성이라는 것은 노자간 화해할 수 없는 대립구조 속에 내재하고 있고, 계급성의 한 표현이다. 요즘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쟁의하자는 흐름이 많다. 그래서 노동법 공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로드맵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앞으론 더욱더 투쟁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또한 요즘은 공장점거투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합원을 공장 밖으로 내보내 버린다. 점거투쟁을 하면 조합원들을 훈련하고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전투성’이 문제가 아니라 ‘조합주의’가 문제이다. 예컨대 한 회사의 공장이 지역 간에 물량싸움을 벌이거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을 둘러싼 갈등, 여전히 비정규직을 안전판으로 생각하는 정규직 노동자 등과 같은 흐름들이 지속되고 있다. 현장활동가들이 바뀌어야 한다. 계급적 노동운동이 복원되어야 한다. 계급성을 담보하는 활동가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조합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IMF 이후 많은 구조조정이 들어오고 있다. 노동조합들은 구조조정이 들어오면 어느 정도에서 타협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노동조합 태반은 타협을 전제로 투쟁에 들어간다. 이것이 97년 이후 바뀐 현실이다. 그런 것에 대해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한 기본 방침이 없다.
현장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는데 물론 현장에서 모든 것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은 이미 중앙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근활동가들이 5~6년 이상 현장과 유리되면서 중앙 상근자로서의 교섭을 중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현장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것이 관료화의 첩경이다. 노동운동의 주력부대는 이미 스스로 기성세대가 되어있다.
시민운동은 약간의 좌우분화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민운동의 성격을 구별하고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사회운동과의 연대와 결합은 필요하다고 본다.”

플로어에서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에서 활동하는 이철의 동지가 ‘전투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나는 전투성을 투쟁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투성이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환경에 따른 특수한 현상이라고 하는 노중기 교수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데, 그렇다면 그러한 환경이 바뀌었냐를 묻고 싶다. 내가 경험하기론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97년 이후를 보면 국가와 자본이 노동운동에 대해서 훨씬 더 비타협적으로 나오고 있다. 국가와 자본은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비타협적이고, 나아가 통제를 벗어나는 투쟁에 대해서는 무지막지한 탄압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역대 정권 중 투쟁사업장에 전경을 가장 단시간에 투입하는 정권이다. 국가와 자본은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는데 왜 전투성을 버려야하는가? 최근에 국가와 자본은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 투쟁에 대해서는 그냥 내버려두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면 화물연대나 LG칼텍스처럼 곧바로 때려 부순다. 그래서 노조지도부들이 합법파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환상을 품게 된다. 그래서 제 풀에 무너지게 된다.
임금인상투쟁이든 구조조정 저지투쟁이든 제대로 싸울려면 여전히 전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초국적 자본이 혹은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그것은 노동자들이 더 전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어 플로어에서 다른 동지가 발언했다.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어감이 안 좋은 것으로 비취지는 것 같다. 용어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투적 조합주의는 그 운동의 의미를 대중들에게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함께 할 수 있는가의 문제지 그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공격을 당할 때 무기력하게 가만히 당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닐까?”

노중기

“전투성 문제에 대해 말해보면, 국가자본이 추진하고 있는 로드맵의 기본 의도가 ‘전투적 파업을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고, 노동운동 내 우파가 공격하는 지점도 전투성이다. 나는 ‘전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싸워서 깨질 수도 있다. 그러나 97년 이전과 97년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는 내 주장에 대해, 플로어에서 “87년부터 97녀까지만이 엄혹했는가? 그렇게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 기간은 그래도 나았고 국가와 자본은 지금이 더 비타협적이다”라고 말하는데, 어떤 측면에서 바뀌었고 어떤 측면에서 바뀌지 않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87년에서 97년까지 노동운동은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전국적 투쟁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따낸 걸 보지 못했다. 전투에서는 깨졌다. 그러나 성과는 있었고 운동은 진전됐다. 노동운동은 대중적 기반과 조직적 기반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97년 이후 전투에서 승리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고 있지만, 전쟁에서는 전체노동계급이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다. 97년 이후의 상황은 구조적인 측면에서 많이 바뀌고 있다. 제도적인 측면, 정치역학 등에서 바뀌고 있다. 이제는 전투성에 대해서 협소한 개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양효식

“‘지금은 전투적 조합주의 안된다’ 라고 말하는데 지금 비정규직 노조들 얘기를 해보면 자본이 타협의 여지를 안준다. 그래서 전투적으로 싸우고 있다. 과거 정규직 동지들은 전투적으로 싸워서 승리해왔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그렇게 싸우지 않으면 처우개선조차 할 수 없다. 노동조합운동 차원에서 자본이 여지를 주지 않는데 노동자들이 먼저 타협하려고 하고 사회적 합의를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의미에서 전투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올해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청주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조, 울산 플랜트 노동자들이 전투적 양상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전투성을 비난하는 것은 누구를 이롭게 하겠는가?”

임성규

“나는 현장을 강조하는 좌파들이 현장으로부터 유리되어있는 상황을 우려한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정작 현장을 강조하는 활동가들로부터 유리되어 있다. ‘현장’에서 ‘현장을 강조하는 활동가’들이 왜 뿌리 뽑히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전투성은 중요하지만 기업별에서 요구하지 말아야 할 수준이 있는데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싸워야하고 싸우고 싶은데도 못 싸우는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에는 전선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것을 어디서부터 찾아야하는가? 그것이 전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어야 한다.”

다시 플로어에서 한노정연 연구원인 송기철 박사의 토론이 이어졌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한국의 87년 체제의 특수성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이 한국에만 존재하고 서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서구에서는 그것이 파시즘이나 코포라티즘 등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쇠퇴하고 패배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체제에 흡수된 것일 뿐이지 또한 그러한 전투성이 환경운동이나 여성운동 등의 계급적 모순으로 폭발한 것이지 그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얘기하는 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노동운동의 위기가 똑같이 논의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노동운동 위기 논쟁은 오히려 전투적 노동운동의 복원 움직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전투적 조합운동은 계급운동의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서, 한계는 있을 지라도 그것을 위기 원인의 초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운동의 중요한 측면을 호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별노조’에 대한 쟁점토론

사회자

“97년 이후의 변화된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계급성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토론자들 사이에서 몇 가지 다른 지점들이 존재한다. 이 점에 대해 추후 토론을 더욱 진전시켜 나가기로 하고, 시간관계상 ‘산별노조’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겠다.”

김영수

“공공연맹에서 고민하고 있는 산별노조 방식은 산별노조로의 ‘전환’이 아닌 ‘건설’, 그리고 대산별과 지역골간체계인데, 골간체계가 지역인 경우와 지역이 산별인 경우에는 차이가 있다. 지역 자체를 산별로 하자는 나의 안은 지역을 하나의 노조로 묶는 것이다. 현실가능한가? 라고 접근한다면 곤란하다. 관건은 올바른 전체기조를 형성해내고 현재의 기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다양한 패러다임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변화시키기만 한다면 현실가능한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계급적 단결의 강화’와 ‘계급 대립의 강화’라는 기조에서 올바른 주체가 형성된다면 지역 산별에 기초한 산별노조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주체는 현장 단위를 넘어서는 지역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이 왜 어려운 것인가? 기조를 변화시키는 데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노조운동과 노동운동과 계급운동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가 자본주의에서 과연 분리 가능한 것인가? 우리는 노동자들을 계급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운동으로 노조운동을 이야기해왔다. 노조운동은 그 자체가 노동운동이며 계급운동이다.
첫째. 주체의 변화라는 지점이 중요하다. 현재의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현장 활동가들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을 변화시켜 내야 한다. 둘째, 사업을 형성하고 집행하는데 있어 민주노조운동의 패러다임을 관리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조직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꾸자. 현재 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부들은 산하 조직을 관리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업도 관리되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산별 업종 연맹을 해소하고 지역 산별노조에 기초한 산별노조를 건설할 필요성이 있다.”

양효식

“지금 시점에서 계급적 산별을 이야기한다면 작년 보건의료노조 10장2조 사태를 비껴나서 이야기할 수 없다. 지부 쟁의권을 봉쇄했다. 그러한 산별노조라면 ‘무엇을 위한 산별노조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이미 민주노총 총연맹 차원에서 산별체계는 갖춰나가고 있다. 지부와 산별노조 집행부가 충돌할 때 산별 집행부가 지부의 이해를 받아 안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보건의료노조 산별협약 10장 2조 사태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일반적 양상일수 있다. 계급적 산별노조를 말하고자 한다면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그것을 비껴나간다면 당면의 핵심적 문제를 방기하는 것이라고 환기시키고 싶다.”

임성규

“김영수동지의 발제에 대해 결론에서 지역산별노조를 주장하는 것만 빼고는 원론적으로 내 생각과 모두 다 동일하다. 그런데 김영수의 안에서는 ‘어떻게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인가’는 빠져있다. 과기노조, 보건의료노조, 금속노조 등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전환투표를 해서 산별노조를 건설한 사례가 있는데 그들이라고 해서 계급성을 강화하고 대자본투쟁을 총노동과 총자본의 전선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겠나? 이후에 산별노조를 만든다고 한다면 현실의 그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김영수는 한국에서 도시의 불균형적 산업구조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도외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구별방식을 뛰어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는데 본인은 거꾸로 그것에 구속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전라북도에서 산별 건설 했다고 치자. 서울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가능할까? 지역의 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어떤 지역은 노조가 하나일 수도 있고 어떤 지역은 노조가 서너 개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산별이든 현실을 무시하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별 전환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시 되돌리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다. 지역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의 구체성이 부족한 것 같다. 지역 산별노조는 당위적으로 옳다. 문제는 어떻게 갈 것인가이다.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너무 현실성이 떨어진다. 지역간 산업간 불균형 문제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속도를 고려하고 있지 않고, 투쟁의제 등이 빠져있어서 공허하게 느껴진다.”

노중기

“‘지역산별 노조안’에 대해서도 지난번 ‘현장에서 미래를’에 실린 ‘전국단일노조론’을 보고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당혹감과 고민한 흔적이다. 임성규의 의견에 동의한다. 산별노조 운동에 대해서 두 가지 측면을 말하고 싶다. 관변노동운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모델을 우리의 모델로 말할 수는 없다. 모델에 있어서 고착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유럽의 경험들을 반영해서 고유한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산별노조의 기본정신이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지역 산별을 얘기하기 전에 역사적으로 존재해온 산별노조들이 왜 산업 업종으로 구획되고 전국적 수준에서 종축으로 구획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예컨대 공공부문 중에 교육과 관련한 노동조합들이 있다. 그 노동조합들은 교육에 관해 고유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지역적인 수준에서 산별을 하고 전국적인 수준에서 연맹체를 가질 때 그 고유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산업별로 자본축적과정에서의 특수성을 갖는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힘들 것 같다. 또한 현재의 공공연맹과 김영수 안에서 지역의 산별노조가 구별되지 않는다. 이름을 바꾼 차이 밖에 없지 않는가? 현재의 산별에서 지역본부의 역할과 권한과 책임성을 높이는 형태라면 김영수의 안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생각이 든다.”

안재원

“산별노조운동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전노협 당시 조직발전논쟁이 있었다. 그 때는 좌파가 패배해서 전노대가 만들어지고 민주노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95년부터 이미 산별노조의 기반이 흐트러졌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노조운동을 계급운동으로 진전시켜 낼 수 있는 지점은 지역이다. 활동가들이 어떠한 전망을 가질 것인가? 이는 활동가들이 주체로 서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김영수 모델처럼 만들려면 주체 형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보건의료노조 문제는 산별노조에서 최저기준으로 잡을 것인가 최고 기준으로 잡을 것인가의 문제, 중앙 지도부의 결정을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런 문제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다면 좌파는 앞으로의 산별의 패턴에 대해 개입할 수 없다.
김영수의 안에 대해 왜 단일노조가 아니고 지역산별노조를 만들 것인가 등등의 의문이 든다. 왜 상급단체가 연맹이 되어야 하는가, 왜 제조업과 공공 두 가지로 나누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현 단계에서 우려되는 것은 자본이 요구하는 업종별 소산별이 구축되고, 그것을 통해 자기 공장 자기 업종의 경제적 요구를 받는 형태이다. 교섭비용을 줄이기 위해 지부교섭을 없애라는 것이 자본의 요구이다. 이미 자본은 노사정위원회에서 그러한 형태를 요구하고 있다. 자본은 교섭비용을 줄이기만 한다면 산별을 받을 수 있다고 나오기 때문에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좌파들은 투쟁을 통한 산별건설을 주장하지만 대공장들은 산별전환이 안되고 있다. 그 이유는 하나는 산별 전환에 대한 환상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공장 노동자들의 이기주의 때문이다. 대공장의 1/3이 자본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 없이 쉽지 않다.
계급적 산별이라는 것은 전국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이다.”

이어 플로어에서 전교조 활동가가 토론을 했다.

“양효식 동지는 민주노동당이 가는 방향이 계급적 관점을 이탈한다면 좌파 진영이 따를 수 없다고 말하는데, 노동자들이 노동자적인 관점을 광범위하게 가지기 위해서는 지금 당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계급적 노동운동 세력은 당 없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좌파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민노당에 대해서 그렇게 판단한다면, 똑같은 논리로 민주노총이 아닌 또 다른 노총을 새로 만드는 것이 계급적 노동운동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좌파들이 단결하지 못하는 이유와 어떻게 단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해야하지 않을까? 지역별 산별이 가능하려면 지역별로 노동자들이 공동 투쟁하고 연대의식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경험에 바탕 해야 할 텐데, 그간의 그러한 경험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제자, 토론자의 마무리 발언
김영수

“오늘의 문제제기들을 예상했음에도 발표한 문제의식에 착목하고 싶다. 지금 현재 논의되고 건설되고 있는 산별노조의 모습들을 평가하고 계급성을 강화할 수 있는 산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구체적 지점들에 대해서는 다양하고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산하의 연맹들에게 ‘헤쳐서 모이자’라고 한다면 꿈쩍도 안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계급적 산별을 모두 공감한다면 다양한 투쟁의제들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계급적 산별을 만드는 과정일 것이다. 노동자 계급정치의 토대로 이야기되는 현장권력과 지역 계급정치의 유기적 통일을 고민했기 때문에 지역산별을 주장한 것이다. 계급 간 대립과 계급 내 단결을 강화할 수 있는 산별을 건설하자.”

이은숙

“현재의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병기

“노동운동은 정당운동, 조합운동, 정치운동단체, 협동조합 등 4가지로 분류되다가 정당운동과 조합운동 두 가지로 되었고, 이제는 노동조합운동만이 노동운동을 대변하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이 모범사례를 정하고 따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이다. 계급적 노조운동을 이야기함에 있어 관료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관료성이 생기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을 것이다. 거대조직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고, 지나친 중앙집권화의 문제로 볼 수도 있고 주체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산별이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지 간에 그 나라의 특징과 조응해야 한다. 그래야만 효율적인 단체협상이 될 수 있다. 사용자단체와 정부와 어떻게 협상하고 투쟁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산업의 구획과 일치해야 한다. 노조 조직 자체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투쟁의 지점과 협상 파트너를 생각해야 한다.”

양효식

“민주노동당으로는 안되고, 계급적 좌파진영의 독자적 정당을 건설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와 민주노총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은 그 내부에서 계급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개량주의․사민주의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에게 개량을 가져다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은 개량조차 가져다 줄 수 없다. 또 다른 정치세력화가 지금부터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임성규

“민노당을 지도부 몇 사람을 가지고 재단하는 것은 8만 명의 당원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아직 혁명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혁명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속도로 승부를 낼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좌파는 무능으로 망하고 우파는 기회주의로 망한다.
한노정연은 예전의 추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중들이 해볼 만 하다 라는 느낌을 가져야하는데 황당하다 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어서는 안된다. 구체적 내용을 건너 뛴 산별노조 건설 주장은 황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진행 중인 산별노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산별노조는 상당 수준 진전된 상황이다. 이것을 어떻게 바꿔낼까를 고민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한국의 노동운동은 한국의 좌파로 인해 망한 것이다. 좌파간의 사소한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중기

“제3노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재 그것은 모두 다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운동에 대해서 너무 완벽한 걸 원하고 있다. 특히 좌파가 그러하다. 지도부가 잘하고 대중들도 조직적으로 발 맞춰 나가고 그런 것을 기대한다. 노동조합은 혼란을 항상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기회주의적일 수 있고, 반노동계급적인 의견이나 행동이 항상 분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점은 비판해야하지만 대중들을 분열시켜서는 안된다.
한국노총에 관해서 말하면 한국노총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도매금으로 어용으로 되는데 그렇지 않다. 한국노총보다 더 어용적인 민주노총 사업장도 있다. 산별노조 운동도 큰 틀에서 그렇게 봐야 한다. 보건의료노조 문제도 커다란 사건이기 보다는 산별 정착에 따르는 정상적인 것이다. 길게 보자.”

안재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주체의 문제라고 본다. 현장파 활동가의 문제는 대중지도력이 있으면 정치지도력이 없고, 정치지도력이 있으면 대중지도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대중지도력과 정치지도력 둘 다를 확보한 활동가 대오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전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