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3호] 민중연대: '상설연합체' 논의의 문제점과 전망

정세와 초점/

김태정/ 한노정연 연구원, 노동자의 힘 정책국장

자본의 분할 통제와 공동투쟁체의 필요성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방식은 포섭과 배제 즉 양날의 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부르주아민주주의가 가진 이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있는 대다수의 노동자 민중들은 ‘국민’ 혹은 ‘시민’으로 호명되면서, 자본가 혹은 자본가들의 대변인들을 자신의 대표자로 선출하고 있다. 부르주아 선거제도는 이런 점에서 자본가들의 계급지배를 합리화시켜주는 도구인 것이다.

한편 자본은 공황기에 노골적으로 위기론을 확산키면서, ‘상생’과 ‘화합’을 요구한다. 그것은 종종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결합되기도 하는데, 이는 ‘동북아중심국가론’ ‘나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 ‘남과 북이 하나 되어 부강한 민족국가를 건설하자’는 등의 각종 슬로건들로 표현된다. 또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이 대동단결하여 경제위기와 사회갈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양극화 해소’, ‘사회통합’, ‘국민통합’ 등의 슬로건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화합’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한 정권과 자본의 태도 즉 배제전략이다. 노무현정권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대공장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점에서 ‘공황기 노동운동의 대안은 케인즈주의’라거나, ‘전투적인 노동운동으로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할 수 없다’거나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거나 하는 주장들은 결국 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주장들에 불과하며, 노동운동진영이 계급간의 적대를 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사회통합’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은 노동자민중운동진영을 교란시키면서 포섭과 배제를 통해서 분할통제하고 있다. 때문에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과제 중 하나는 자본의 분할통제에 맞서는 이데올로기투쟁과 광범위한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다양한 노선적 차이, 운동주체간의 조건의 차이에도 단결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 함께 건설한 공동투쟁체가 ‘전국민중연대’인 것이다.

지난 2003년 5월 21일 전국민중연대(이하 민중연대)가 창립되었다. 민중연대가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이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선 공동투쟁을 전개하고자 만든 것임은 그 창립취지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창립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과 청년·학생, 그리고 양심적인 지식인과 종교인, 우리 모두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자본의 이윤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 논리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이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새로운 연대를 창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 개방의 파괴적 정책을 거부하고 모든 인간을 위한, 어떤 차별도 없는 평등과 사회정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대안을 건설하려는 굳건한 의지를 갖고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강령의 내용 민중연대의 강령: 1. 우리는 현대제국주의와 국내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철폐시키기 위해 투쟁한다. 2. 우리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민중의 생존권을 지키며, 여성의 권리를 실현하고 사회적 약소자의 권리를 존중하여 인간다운 삶과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3. 우리는 반민주적 제도악법을 철폐하고 민중의 민주적 권리들을 확대하는 등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다. 4. 우리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 5. 우리는 민족민주민중운동진영의 단결과 세계 진보세력들과의 국제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이러한 취지에 부합되는 내용들이며, 이는 민중연대가 말 그대로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공동투쟁체를 위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민중연대의 위상을 송두리째 부정하며, 민중연대를 특정 운동세력의 사유물로 전화하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통일전선론’의 문제점

최근, 민중연대 사무처에서는 정책조직책임자연석회의, 수련회 등을 통하여, '상설연합체 건설'안을 제출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발간하는 『이론과 실천』8월호에는 민중연대 정책위원장 정대연씨 명의로 ‘민중운동진영의 상설연합체와 진보정당’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바 있다. 정대연씨의 글은 ① 민중운동진영의 상설연합체와 진보정당 ②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에 즉각 나서야 하는 이유 ③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의 조건은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 ④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의 방도 등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대연씨는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상설연합체 건설이 민중진영의 집권전략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대연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민중이 집권을 목표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조직적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당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노동조합, 농민회, 학생회, 빈민조직 등 대중단체들이 공동의 정치 강령아래 연합하는 방법인데 이것을 ‘대규모 연합전선체’라고 한다.” 이 말은 상설연합체의 다른 표현인 대규모 연합전선체를 건설하는 것이, 집권을 위한 전략임을 의미한다. 때문에 ‘진보정당’의 역할 또한 이 연합전선체를 건설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중조직들은 본성적으로 자기 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을 일차적 임무로 하기 때문에 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중심역할을 담당하기 어렵다.” 심지어 그는 민주노동당의 지위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가 제도권에 파견한 정치적 대표체라 할 수 있으며,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는 진보정당의 대중적 조직적 기반이다.”

‘진보정당’ 즉 민주노동당의 위상이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가 제도권에 파견한 정치적 대표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집권의 전략주체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는 것이며,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역할은 ‘대규모 연합전선체’를 만드는 것이라는 표현에서처럼, 통일전선체 운동의 하위범주로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비단 정대연씨만 그런 것이 아니며, 대체적으로 한국사회 운동세력 가운데 민족주의진영의 경우 ‘통일전선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견해가 지난 7월 25일자로 인터넷 공간에 발표된 한호석씨의 ‘연정수립전략의 파산과 통일전선운동의 전진’이라는 글이다. 한호석씨는 ‘통일전선운동’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통일전선운동은 민족적 자주성과 진보적 민주주의, 그리고 조국통일을 실현해 가는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 청년학생, 여성, 지식인, 종교인, 문화예술인, 민족자본가, 그리고 군인까지 포괄하는 가장 폭넓은 사회정치적 결집력을 자기의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변혁운동이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사회역사적 발전에서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다니, 이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을까? 자본가 앞에 ‘민족’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지금이 일제하 식민지도 아니고 도대체 ‘민족자본가’들은 누구이며, 자본가들이 사회역사발전에 어떤 진보성을 가진단 말인가? 통일전선정부에 대해서 한호석씨는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선진적 정부형태”라고 한다. 그런데 자본가와 같이 함께 하는 사회변혁운동이 어떻게 가능하며, 자본가와 함께 하는 정부가 어찌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제 아무리 한국적 특수성 운운할지라도 그것은 계급연합노선이며, 노동자계급을 배신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세계변혁운동사 속에서 통일전선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917년 혁명을 이끈 레닌과 볼셰비키도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을 주장했고 실천했으며, 중국혁명을 이끈 마오(모택동)와 중국공산당도 국민당과 ‘국공합작’을 전개한 바 있다. 레닌에게 그것은 계급간의 동맹의 문제였고, 이 동맹은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한편 중국에서의 경우 1차 국공합작은 손문의 국민당이 지방 군벌적 지위였음에도 그 안에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가 존재하였으며, 국민당도 식민지 민족해방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2차 국공합작의 경우 공동의 적인 일본제국주의군대에 맞서기 위해 공산당과 장개석의 국민당이 평화를 선언한 것으로, 마오는 인민대중이 무장하여 항전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공산당의 독립성을 강조하였다. 즉, 레닌과 볼셰비키, 마오와 중국공산당에게 통일전선 혹은 계급동맹이란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강화하고, 대중을 단결시키고 투쟁에 복무하게하고 정세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전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본가계급에 의해 무장해제 되는 역사적 비극도 존재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1930년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인민전선이었으며, 1973년 칠레 인민연합의 패배이다.

‘통일전선’의 엄밀한 개념은 3차 코민테른 대회(1921)의 [전술에 관한 테제]에서 구체화되었는데 그것은 ‘노동자 통일전선’으로 명명되었다. 이후 6차 대회(1928)와 7차 대회(1935)에 와서 확정되었고 이것은 이후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지배적인 운동전략으로 승인되어 각국에서 적용되었다. 유로코뮤니즘, 인민민주주의혁명, 식민지에서의 2단계혁명론/민족민주혁명(NDR) 등 과거 우리에게 익숙한 혁명전략의 대부분은 이러한 코민테른 7차대회에서 굳어진 통일전선 전략으로부터 도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차 대회 이전에는 통일전선은 소비에트 혁명전략에 종속된 전술적 개념이었지만 7차대회의 [디미트로프 테제]로 인해 통일전선은 ‘전략’으로 격상되고 혁명 이후에 대체권력기관으로 설정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7차대회의 통일전선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선으로 자유부르주아지를 동맹의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때문에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아니라 (인민)민주주의혁명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실천적 결과는 스페인 내전에서의 패배와 종전 이후 공산당의 체제내화 그리고 6,70년대 유로콤으로의 전환이었다. 결국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 확대를 위한 전술로서의 통일전선은 전략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때문에 ‘조국통일을 위해 민족자본가까지 포괄하는 통일전선’ 운운하는 것은 이미 이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파산한 것을 가지고, 억지로 현실을 꿰어 맞추는 것에 불과하며, 더욱 문제는 이러한 관점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까지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연대는 통일운동기구가 아니다.

정대연씨는 “남측의 민중운동세력이 남측의 6.15 공동위원회를 주도해 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가 건설되면 이 조직이 6.15 공동위원회에 참여하여 통일연대가 담당해 왔던 역할을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대연씨의 주장은 남과 북 해외의 상설적인 공동통일운동기구인 6.15 공동위원위회의 출범으로 통일연대의 위상과 역할이 애매해 졌고, 그대로 두면 통일연대의 이완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기에 통일연대와 민중연대가 통합하여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를 만들고, 이 조직이 6.15 공동위원회에 참여하여 통일연대가 담당하던 역할을 수행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중연대를 통일운동기구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특정정파가 현 정세를 바라보는 견해일 수는 있으나, 민중연대가 상설연합체 건설에 나서야 하는 이유로 제시될 수 없다.

정대연씨는 상설연합체 건설 방도와 관련하여 “민중연대 통일연대 두 축으로 발전해 온 연대연합의 성과를 하나로 결속하여 단일한 상설연합체를 건설하는 것이 기본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민중연대와 통일연대가 각각 성격을 달리하는 연대체라는 것을 간과한 주장에 다름 아니다.

앞에서 민중연대 선언문과 강령을 인용한 것을 다시 상기해보자. 민중연대 선언문 어디에, 강령 어디에 6.15 공동위원회에 대한 언급이 있는가? 강령 4번째인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반대하고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가 어찌 6.15 공동위 참여로 왜곡될 수 있는가? 다시 강령을 보자. 강령 첫 번째의 내용은 ‘제국주의와 국내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철폐시키기 위해 투쟁한다.’ 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펴는 것이 현 정권이고, 이 정권은 이라크전쟁파병, 주한미군의 아태지역 신속기동군화, 전략적 유연성 등에 동의하면서 평택으로 미군기지를 이전 확장시키고 있는 정권이다. 외세의 지배와 간섭과 관련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권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초국적인 자본이 지배하는 기업에서 고율배당액으로 가져가는 돈이 2003년에는 36억 달러, 2004년에는 49억 달러로 증가했고, 2005년 상반기에만 배당액은 51억 달러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세의 지배를 용인하거나 협조하는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노무현정권 아닌가? 그런데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이들 민족주의진영, 통일운동세력들의 정세인식은 어떠한가? 이는 6.15 공준위에 대한 언급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기관지인 『이론과 실천』8월호에는 6.15 공동위원회 관련 글에서는 이 조직의 의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남북해외와 민관,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남측위원회는 민화협, 통일연대, 종단은 물론이고 6.15 공동위는 남쪽 사회에서 자주, 평화, 통일 3대 민족공조를 가장 앞장에서 선전하고 교양하고 실천으로 나서는 조직이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모아진 대중의 힘으로 정부와 의회 등을 민족공조의 대열로 들어서게 만들어야 한다.” 민관이 망라된 조직, 정부와 의회를 민족공조의 대열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은 결국 이들이 6.15 공동선언을 이끈 김대중정권과 그 기조를 이어받은 노무현정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이들 민족주의진영이 가진 태도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 『이론과 실천』7월 호에 실린 「민주노동당의 집권과 높은 단계 연방제 통일의 변증법」이라는 글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친미개량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도 이 정권과 북한정권이 6.15 공동선언 이행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 ‘변증법적인 부정’이라 할 수 있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이남의 반미진보세력이 친미개량정권과 전술적 공조를 취한다는 것은 두 세력 간의 적대적 모순관계로 볼 때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이는 반미진보정권(자주적민주정권)의 정치적 담당자를 지향하며 진보개혁세력을 선도해야 할 민주노동당에게는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데서 복잡한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민주노동당의 반미진보성을 전략적으로 부각하는 한편 열린우리당과 6.15 공동선언이행을 위해 전술적으로 공조하는 세련된 전략전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의 계급대립과 그 화해불가능한 적대성을 눈감거나 자본의 지배를 용인하는 방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 글에서는 민족의 통일이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인 이해보다 상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있다. 이들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친미예속적인 열린우리당 정권이지만 정치외교권과 군사권을 통합하지 않는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은 얼마든지 합의, 이행할 수 있다. 남북 간의 경제, 문화 교류는 내외 독점자본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 정권의 가장 중요한 대중지반 중 하나인 중소자본가에게는 개성공단에의 투자가 점차 사활이 되고 있다. 이북정권은 진정으로 열린우리당 정권과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이룩하려고 한다.”

중소자본의 사활이 걸린 개성공단 투자와 독점자본의 이해에도 부합하는 연방제 통일이 과연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이 바라는 통일이고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통일방안인가? 물론 ‘반미진보정당을 잘 이용하면 기층민중만이 아니라 중간세력까지 견인하는 대중적 항쟁과 진보적 집권을 추동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결국 허망한 꿈이거나 북한이 급속히 자본주의로 편입되는 것을 연착륙시키면서 김정일정권을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는 정도로 그치거나, 열린우리당의 소연정 시나리오 등의 체제포섭전략 속에서 노동자 민중운동의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성(자주성)을 훼손하는 길로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중연대는 창립취지가 그러하듯, ‘신자유주의 세계화, WTO 개방의 파괴적 정책을 거부하고 모든 인간을 위한 어떠한 차별도 없는 평등과 사회정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한국사회 민중운동진영의 공동투쟁체이지, 통일운동단체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민중연대가 ‘통일정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상설연합체 건설에 나서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정대연씨와 같은 특정정파의 바램일 수는 있어도, 신자유주의 반대하는 공동투쟁체인 민중연대 소속단위와 대중들의 이해와 요구가 될 수 없다.

효율성을 가장한 편의주의적 발상

한편 정대연씨 등은 내년(2006)에는 상설연합체 준비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면서 상설연합체 건설의 이유 중 하나로 운동진영의 분산성과 비효율성을 들고 있다. 정대연씨의 표현을 빌리면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오전과 오후에 이름만 바꾸어 회의를 하고 있고, 이미 연대체로서 기능을 상실하여 연대체인지 하나의 단체인지 알 수 없는 연대체도 있고, 일부단체 들이 해당영역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대체를 만드는 일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해 보이는 주장인 것 같으나, 이 때문에 상설연합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완전히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오전과 오후에 이름만 바꾸어 회의를 하는 것은 그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은 각각의 회의가 다른 질과 성격을 갖고 있지 때문이며, 같은 사람들이 몇 개의 회의를 나가야 하는 것은 현재 민중운동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민중연대 사무처 성원들이 수많은 회의에 참가하면서, 혹은 각 단체 연대사업 담당자들이 같은 어려움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상설연합체를 만들자는 것은 그야말로 편의주의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반세계화운동 관련하여서 민중연대 특별위원회로 반세계화 운동관련 연대체등을 통폐합 하려는 일련의 흐름이 실패한 것처럼, 반세계화운동 안에는 각각의 독자적인 영역이 존재하며, 이러한 투쟁의 흐름들이 그동안 반세계화투쟁의 흐름을 형성해 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각개약진을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공동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나, 각 연대체를 하나의 연합체로 만들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다. 단일한 투쟁의 구심을 세운다는 명분하에 존재하는 연대체들에 대해 “연대체인지 하나의 단체인지 알 수 없는 연대체도 있고, 일부단체 들이 해당영역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연대체를 만드는 일”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세에 대한 주관적 판단의 문제

정대연씨는 민중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의 조건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면서 그 근거로 △ 민중연대전선의 발전적 재편에 대한 기층대중조직의 요구가 강하고 △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 반미자주와 통일, 민주주의 쟁취, 민중생존권쟁취 등에 동의하는 운동세력의 폭이 크게 넓어졌으며 △노 농 빈 청 학 등 기층대중운동의 정치적 일치성이 과거와 비할 데 없이 높아졌고 △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합의와 일치성도 어느 정도 달성된 점 등에서 민중운동진영의 정치적 통일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주지하다시피 민중연대는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학생운동진영 등 주요 대중조직이 결합되어 있다. 민중연대전선의 발전적 재편에 대한 기층대중조직의 요구가 강하다고 할 때, 그 기층은 위의 대중조직이 일차적인 고려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이 대중조직들에서 민중연대전선의 발전적 재편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고?! 현재 대중조직들에서 민중연대 상설연합체 건설에 대한 대중적인 논의와 요구가 제기 혹은 전개되고 있는가? 혹은 상층간부들 수준에서 합의지점이 형성되고 있는가?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 노, 농, 빈, 청, 학 등 기층대중운동의 정치적 일치성이 높아졌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노동운동만 하더라도 노선적인 분화가 이미 진행되었고, 이는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기구 참여논쟁으로 이미 확인되었다.

학생운동의 경우 이러한 분화는 더욱 심하며, 한총련은 더 이상 학생운동의 대표체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데도 정치적 ‘일치성’이 높아졌다니?! 게다가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합의와 일치성도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이며, 과연 전체 민중운동진영이 진보정당운동에 대해 합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민주노동당 내에서 그리고 밖에서 이에 대한 어떤 합의가 있단 말인가?
정대연씨 스스로 인정하듯이 “기층의 대중적 조직적 토대구축을 따져보면 전반적으로 전국민중연대가 아직 상층연대 조직에 머물고 있으며, ‘민중운동진영의 상설연합체’ 건설에 대한 기층의 공유가 낮은 것은 분명하다.”면 출발점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민중연대는 본연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민중연대는 통일운동기구가 아니다. 2003년도에 민중연대가 출범한 것은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운동진영의 공동대응을 위한 것이었다. 강령 또한 제국주의와 국내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대한 투쟁, 민중생존권 투쟁,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위한 투쟁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민중연대는 어떠한가?

2004년 탄핵정국에서 민중연대 내에서 논란이 벌어졌던 것을 기억해보자. 시민운동진영과 함께 노무현 탄핵반대 운동에 참여한 민중연대 소속의 단체 혹은 개인은 없었는가? 그리고 민중연대 이름으로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사안들이 한두 가지였는가? 그때마다 공동투쟁체인 만큼 합의 될 수 없는 것은 각 단체별로 결합하는 것으로 하지 않았던가. 결국 현재의 민중연대는 서로 그 성격이 상이한 단체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공동투쟁’을 전개한다는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인 것을 반증하는 사례들이 아닌가?

때문에 민중연대를 무리하게 단일한 정치적 통일성을 갖는 연합체로 만들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이거나, 특정한 정치적 의도의 산물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민중연대라는 소중한 민중운동진영의 공동투쟁의 경험과 신뢰를 파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최근 민중연대 내에서 벌어졌던 ‘사회양극화 해소 국민연대’ 참여 건이다. 이 연대체의 성격에 대해 민중연대 소속단위 내에 이견이 있음에도 무리하게 표결을 강행한 것이 그것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시민운동진영이 민주노동당의 참여를 반대하는 가운데서 민중연대 명의로 민주노동당이 참여하려는 시도조차도 시민운동진영에게 거부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연대가 연대체라는 점에서 각 단위들 간에 충분한 논의와 협의 하에 사업이 집행되기 보다는 효율성과 빠른 집행이라는 편의성을 빌미로 사무처 중심으로 업무처리 된다거나, 소속단위의 의견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성명서 등에 연기명 된다거나 혹은 누락된다거나 하는 점도 종종 지적되고 있다. 또한 노, 농, 빈, 청, 학 중심에 선다는 것이 자칫 대중조직을 중심으로 사업이 운영된다거나, 소수 의견이 묵살되거나 하는 식의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상층연대체가 갖는 형식적이고 하향식인 조직화나 사업적 관성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민중연대라는 공동투쟁체라는 틀은 있지만, 상이한 성격과 정치적 입장을 갖는 운동주체들이 투쟁을 통한 상호신뢰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함께 형성하는 것에는 충분히 도달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시민운동진영에 대한 태도, 노무현정권에 대한 태도가 실천적으로 검증되고 있지 못하며, 이는 현재의 공동투쟁체에서 상설적인 연합체로 나가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에도 그러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003년 민중연대가 결성된 후 3년차를 경과하는 지금, 민중연대에게 필요한 것은 상층간부들이 모여서 통일정세 운운하면서 상설연합체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이래로부터의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민중연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더욱이 각각의 투쟁에 대한 상호 품앗이조차도 제대로 조직되고 있지 못하고, 노무현정권의 ‘사회통합’ ‘합의주의’ 공세가 판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민중연대는 본연의 역할의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