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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독일 거대연립정부 형성과 사민당의 미래

정세와 초점/

정세와 초점/



독일거대연립정부 형성과 사민당의 미래

갈현숙 / 한노정연 연구원, 베를린자유대 사회학 박사과정



지난 9월 18일 독일에선 연방총선이 치러진 후 수상을 결정하고 내각을 형성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소요됐다. 독일의 정치 제도상 한 당이 투표율 중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이념의 색깔이 비슷한 정당간의 연합으로 과반수 이상의 지지가 될 경우 연립정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선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없을 뿐더러 연립가능한 정당간의 연합으로도 과반수를 넘기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연립가능한 정당간의 연합을 조합한다면 보수당적 성향을 띤 기민/기사 연합당(이하 연합)과 자민당 그리고 보수당과 대별되게 표현되는 진보적 성향을 띤 사민, 녹색당간의 연합을 생각해 왔다. 아래 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선거에선 언급된 방식의 조합으론 지지율의 과반수를 넘을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좌파연합당의 성향이 분명히 진보적 성향을 띤 정당임에도 사민당과 녹색당은 좌파연합당과 연정의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봉쇄했다는 점이다. 적적녹(사민-좌파연합-녹색)의 지지율을 합산하면 51%로 보수성향당의 지지율인 45%보다 6%앞선다.

<표 1> 2005년 독일 연방총선결과(투표율: 77.7%)
정당명
의석수(총 614석)
지지율(%)
사민당(SPD)
222
34.2
기민기사연합(CDU/CSU)
226
35.2
좌파연합당(Linke.PDS)
54
8.7
자민당(FDP)
61
9.8
녹색당(Grüne)
51
8.1
기타
-
4.0


선거결과를 두고 볼 때 국민들은 보수적 성향을 띤 정당보다는 진보적 성향을 띤 정당에 보다 많은 지지율을 보냈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세적으로 수용하는 정치가 아닌 보다 적극적인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사민당과 녹색당의 좌파당에 대한 거부, 그리고 좌파당 역시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치는 어떠한 당과도 연정을 할 수 없다는 당론으로 인해 진보적 성향의 정당간의 연정과 내각구성은 선거전부터 불투명하게 비춰졌다.
드레스덴지역의 최종선거(드레스덴지역은 선거직전 후보자가 갑자기 사망한 관계로 2주 후에 선거가 치러졌고 선거결과 연합당에 1자리 의석수를 늘려줬다.) 이후 독일에서 가장 큰 국민정당인 사민당과 연합간의 거대 연립정부에 대한 구체적 합의의 진행속도가 가속화됐다. 거대 연립정부(이하 연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음에도 미디어를 비롯해 정당들까지도 가장 구체적이면서 가장 최선의 대안이 거대 연정이라는데 합의하는 분위기였다. 부정적인 측면의 견해로는 우선 수상 자리에 대한 문제로, 슈뢰더 전 총리와 메르켈간의 인물 중심적 평가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보다 많은 지지를 받은 연합의 대표인 메르켈이 아니라 슈뢰더란 점과, 조기총선의 모험을 걸었던 슈뢰더의 측면에서도 수상 자리를 쉽게 내줄 수 없다는 점에서 양 당간의 합의가 도출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사실 슈뢰더는 드레스덴의 선거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수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정치적 발언들을 해왔다. 예를 들면 연합은 두 당, 즉 기민당과 기사당의 지지율을 합해 얻은 결과이므로 일당으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당은 사민당이고 그러므로 수상 자리는 사민당이 지켜야 한다는 식의 논리였다. 두 번째 부정적 측면은 두 당간의 선거 시 제시했던 공약의 내용을 중심으로 봤을 때 연정으로 향하기 위해 노동, 사회정책에서 서로 합의 가능할 수 있는 타협점과 향후 내각이 구성된 후 서로간의 갈등이 될 만한 요소들의 조화가능성에 대한 회의에서 나온다. (1965년에 연합과 자민당간의 연정이 깨지면서 1966년부터 1969년 까지 사민당과 연합당간의 연정경험이 이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 예상에도 불구하고 거대연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편으론 재선거를 치르더라도 연합과 사민당 모두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보다는 정치적 위험이 더 크게 계산된 부분이 분명 있다는 점과 다른 한편 양 당 간에 이견이 조율되지 않던 상황에서 미디어는 줄곧 현재 독일은 위기에 빠져있고 정치인과 정당들은 이러한 현실을 책임 지기 위해서 중대한 결정, 즉 거대 연정으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선거가 치러지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 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인지 국민도 정치인도 모두가 재선거를 기피한 부분이 있고, 그렇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연합당과 사민당이 거대연정을 실현시켜야 하는 점, 그것이 현실의 조건이라 할 땐 양 당은 보다 많은 권력쟁취를 위해서 서로 기 싸움을 벌여야만 했었다. 바로 이 권력투쟁 때문에 슈뢰더가 끝까지 수상 직을 쉽게 내놓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드레스덴 선거 이후 연합당과 사민당은 거대연정을 형성을 위한 협상에 박차를 가했다. 그 협상의 결과로 우선 수상직과 장관직 6개 그리고 각료 2개를 연합에 배정했고 사민당은 부총리직과 장관직 8개를 갖기로 협의했다. 모두 수상직과 부수상직을 포함해 각각 9개의 내각 직을 나누어 갖게 됐다. 이 협상의 결과로 독일 정치역사상 최초로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메르켈은 1954년 7월 신학생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와 선생이었던 헤르린트 카스너(Herlind Kasner)간의 첫째 딸로 함부르에서 태어났다. 이후 카스너 가족은 구동독 지역이었던 Templins(템플린스)로 이사했고 메르켈은 대학시기 전까지 이 곳에서 보냈다. 이후 (Leipzig)라이프지히 대학에서 화학전공을 시작해서 이후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 1989년 Demokratischer Aufbruch(민주주의 출발)당에 가입함으로써 처음 정계에 입문해 이듬해 현재의 동독지역 CDU에 입당하게 된다. 1991년 헬무트콜이 최초 통일된 독일의 수상으로 선출된후 여성과 청소년을 위한 부의 장관으로 최초로 장관직을 역임했고 정치적 경력을 쌓으며 2000년 CDU의 최고 당수로 선출됐고 2005년 10월 독일연방공화국의 최초 여성수상으로 등극했다.
이 여성으로서 수상 자리에 올랐다.
수상 직에 메르켈이 결정됐던 당일 독일 언론에선 여러 관점의 보도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치적 분석에 앞서 무엇보다도 가장 역점을 두고 보도됐던 뉴스는 바로 그녀가 최초의 독일 여성 수상이란 점이었다.
그런 보도를 보면서 메르켈을 여성으로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의구심이 생겼다. 이러한 의구심은 분명, 박근혜가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때 그가 여성이란 이유로 정치적 지지자를 확산시켜가는 현상을 볼 때 박근혜를 여성을 볼 수 없는 관점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러나 두 여성을 보며 공히 비판이 가는 지점은 여성으로서 최고 정지적 지도자가 될 경우 남성 중심의 정치판에 여성으로서 그런 자리에 올랐다는 결과만으로 다른 평가의 지점들이 탈각되는 것이다.
아무튼 수상 직 결정이후 사민당내부에선 여러 논의가 진행됐다. 우선 슈뢰더는 차기내각에 관여하지 않고 정계를 떠나겠다는 발표를 했고 기존에 사민당 당수였던 뮌터 페링이 부수상직을 맡게 됐다. 일반적으로 부수상직과 외무부장관의 자리는 겸직이었다. 그러나 이번 거대 연정에선 부수상직과 외무부 장관직을 분리하고 기존의 경제&노동부를 분리해서 노동부장관직을 뮌터 페링(사진) 사진 출처: http://www.spiegel.de/dossiers/politik/0,1518,285193,00.html.
이 겸직하기로 결정했다.

사민당은 수상 직을 연합에 주는 대신 아젠다 2010을 완수할 수 있는 중요한 장관직인 노동사회부와 건강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내각인 재무부를 가져옴으로써 비싼 거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 2> 2005년 독일 총선 이후 거대연정 내각(2005년 10월 17일 오후 현재)
연방수상
Merkel 메르켈
연합-CDU (여)
수상사무처장(각료)
de Maizière 데 마이지레
연합-CDU
연방의회의장(각료)
Lammert 람메어트
연합 원내교섭위원
내무부
Schäuble 쇼이블레
연합-CDU
경제&기술부
Schtoiber 슈토이버
연합-CSU
국방부
Jung 융
연합-CDU
가족부
Leyen 레이엔
연합-CDU(여)
교육부
Schavan 샤판
연합-CDU(여)
소비자보호&농림
Seehofer 제호퍼
연합-CSU
부수상
Muenterferig 뮌터페링
사민당
노동&사회부
외무부
Steinmeier 슈타인마이어
사민당
법무부
Zipries 집프리스
사민당(여)
재무부
Steinbrueck 슈타인브뤽
사민당
건강부
Schmidt 슈미트
사민당(여)
환경부
Gabriel 가브리엘
사민당
개발(도상국)지원부
Wieczorekzeul 비조렉죌
사민당(여)
교통&건설부
Tiefensee 티펜제
사민당


사민당은 연합과 비교해 비교적 일찍 장관직을 내정했다. 그러나 연합의 경우는 내부 기민당과 기사당간의 장관직을 두고 쉽게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 가장 큰 장애물은 경제부장관직을 맡게 된 슈토이버가 메르켈을 견제할 만안 그의 사람들을 심기위해 보다 많은 장관직을 무리하게 기사당에 배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보호 및 농림부 장관직만을 결국 얻어내게 됐다. 이렇게 해서 연합 내부에선 기사당이 두개의 장관직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기민당 의원으로 배정이 확정됐다.
10월 17일 오후 기민/기사 연합당출신 신임 장관들이 결정 난 후 이들 신임장관과 메르켈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슈피겔지는 이 사진 아래에 “메르켈의 대단히 친절한 가족(Merkels schrecklich nette Familie)”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출처: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0,1518,grossbild530311380206,00.html/

신임내각의 주역들이 완료됐다. 그러나 연합과 사민당간의 아직 조율되지 못한 중요한 쟁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연금개혁, 외교정책에 있어선 두 당이 공통분모가 많은 반면 노동시장정책, 세금정책, 사회정책, 에너지 정책 그리고 터키의 유럽연합가입문제 등에선 공통분모를 찾기가 힘들다.

<표 3> 사민당과 연합 사이의 갈등이 되는 주요 정책들

사민당
연합(기민/기사)
실업급여
최대 18개월로 한정, 실업급여II가 서독지역수준과 맞춰질수 있도록 동독지역 상향 지원
실업급여 최대 축소 기여금에 비례한 지급
해고규정
해고보호규정 유지 (변화 없음)
해고보호규정 최대 완화
세금정책
소득세 비례 세율규정
소득세 기준세율 축소, 실업기금 형성을 위해 부가가치세 인상(간접세 인상)
사회보험
시민보험(Bürgerversicherung) 확산-소득기준 보험료책정
소득과 무관한 무차별 동일보험액 책정(Kopfpauschal)
환경 및 에너지 정책
원자력폐기 고수 석탄생산 바람직
원자력에너지 복원 및 석탄생산 반대
외교정책
터키 유럽연합가입 찬성
터키 유럽연합가입 반대

선거전이 한창일 때 두 당은 상대 당에 대해 정책내용뿐만 아니라 인신공격까지도 서슴지 않고 했었다.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듯 보였던 두 당이 거대연정이란 지붕아래 공생하게 됐다. 양당의 대표들은 어제의 일은 덮고 독일의 앞날과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이해와 협력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며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느끼는 점은 사민당의 정치적 판단이다. 좌파당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었으나 연합과는 함께 할 수 있었던 현재 독일 사민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연합은 사회적 정의와 형평성 보다는 경제발전을 위한 노동, 사회정책의 유연성을 우선의 가치로 내세운다. 현재 독일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일자리 창출을 양 당이 모두 차기내각이 풀어야할 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해법의 내용은 너무나 다르다. 그 모든 차이를 인지하면서 사민당은 연합과 손을 잡았다.
혹자는 이번 사민당의 연정결정을 두고 제2의 고데스베르크 강령이고 이젠 정말 건너지 말아야 했을 강을 사민당이 건너고 말았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관점들에 대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사민당내부의 당권파들은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슈뢰더정권 1기 때의 신중도파(neue Mitte)들의 정치적 지향이 2005년 거대연정으로 결과된 점 - 조기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이 정책을 펼친 점, 선거에서 좌파성향의 당들과 연합하지 못한 점, 거대연정으로 밖에 향할 수 없었던 점 - 에 대해서 그들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 150년 사민당의 역사는 신중도주의자들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신중도주의자들은 그들의 노선만을 점철시켜 지난 7년간 사민당을 끊임없이 우측으로 개량화 시켜왔다. 의회정치 내에서 사민당 진화의 방향이 현재 독일 사민당의 모습으로 대표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일자리가 있고 조직된 노동자 이외의 노동자(대표적으로 실업자와 노조에 가입되 있지 않는 비정규직)와 그 외 시민들의 권리와 요구에 대해서 사민당은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사민당이 주요 타겟으로 삼은 중간계층을 포함하기에도 그들의 이념은 이미 많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다.
남한의 정치제도만 봐오던 내가 독일에서 거대 연정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소위 민주주의적인 의회정치의 다른 차원을 경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복잡하고 더딘 과정 어디에도 아래로부터의 개입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는 발견되지 못했다. 훨씬 세련되고 섬세한 유럽식 민주주의적 의회정치 제도, 그걸 통해 다시 한 번 인지하게 된 것은 의회 밖의 사회, 노동운동의 귀중함이다. 사민당의 혁신 역시도 이러한 의회 밖의 운동세력의 압력으로 당내의 당권투쟁이 다시 촉발되어야 하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이념이 재논의 될 수 있을 때만이 그들의 불투명한 미래가 보다 투명해 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형성되어 출발할 독일 거대연정의 수명이 과연 얼마만큼 유지될지 그 역시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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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사민당 , 사민주의 , 좌파 ,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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