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4호] 잼있게 살고 싶다!

노동자민중세상/삶의 풍경

삶의 풍경

잼있게 살고 싶다!

밀자 / 노동자



반창회

한 참 전에 ‘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가 반창회를 유행시킨 적이 있었다. 그 끝물에 우연찮게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과 모 대학 근처에서 밤새도록 음주가무를 즐긴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반가우면서도 다른 생활환경과 가치관으로 혼자 떠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특히, 삼성전자에서 일하는 두 친구의 사고방식은 도저히 메울 수 없었던 강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간 술집에서 올 겨울에 스키장에 같이 가자고 친구들끼리 약속을 정하는 거였다. 난 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 지방에 살기에 함께 가지 못한다고 재밌게 잘 놀다 오라고 했다.

그날 난 속으로 ‘스키장가려면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일을 해야 되는 거야.’를 계산하며, ‘사는 놈들은 노는 것도 다르군.’ 하며 차이점을 확연히 느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편협했는가를 여실히 느끼지만, 당시에는 친구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경험한 일상들과 문화가 그랬던 거 같다.

경주마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경주마는 앞만 보고 달리라고, 양 눈 옆을 가린다고 한다. 그러면 집중력이 높아져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짧지만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 난 경주마처럼 살았던 거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별다른 취미도 없이 한 곳만 바라본 것 같다.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것이 좋아서보다는 조직하기 위해 만났었다. 거의 매일 회의와 술자리, 주말이면 학습과 집회 그리고 뒤풀이를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내 주변에 있는 활동가라는 사람들은 거의 그랬던 것 같다. 회의, 집회, 술자리가 생활의 중심이었고, 가끔씩 여유가 생기면 산을 찾거나 모자란 잠을 잤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벅차기도 했지만 말이다.

치이다

15년이 넘도록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인생의 황금기를 활동으로 채워나갔지만 후회한 적도 없고,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애를 낳은 후 점점 약해지는 거였다.

활동을 같이 하는 동료들과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세상을 뒤집겠다는 전망은 자신감이 없어졌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활동에 집중해 돌파구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더욱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덜컥 현장조직의 의장이 됐다. 의욕적으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지만, 임원선거에 패배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쳤다. 사람에 치였다. 내 스스로 사람에게 치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보드장

결국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스스로 중도에 의장직을 사퇴했다. 사람들과 만남도 피하고 술로 살았다. 그러다 친한 동생이 보다 못해 바람 쐬러 가자고 해서 간 곳이 모 보드장(보더는 스키장이라 안한다)이었다.
너무 쉽게 보이는 스노보드(스놉)가 실제 타보니 일어서는 것조차 어려웠다. 오기가 생겼다. 수백 번 넘어지고 뒹굴고 하다 보니 온 몸에 멍이 생기고, 모든 근육은 고통을 호소했다. 지금 생각하면 보호대와 강사만 있었으면 쉽게 될 것인데… 하는 추억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온 몸을 던지고, 정신을 집중해서 뭔가를 하니 모든 스트레스가 그 순간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더구나 하얀 눈밭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하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다른 세상

너무 잼있었다. 이렇게 잼있는건 처음이었다. 각종 회의와 집회를 제쳐두고 주말마다 보드장에 갔다. 그것도 모자라 가지고 있는 모든 연월차를 사용해 평일에도 보드장에서 살았다. 시간이 없는 게 그렇게 아쉬웠다.
그 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카페에 가입했다. 그러다 보니 헝글하게 보드를 타는 방법을 하나 둘씩 발견하게 되고 사람들과 친해졌다. 큰 맘 먹고 장비와 옷을 구입하니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달랐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빠진 거 같다. 우습지만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현장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움이었다. 이놈의 현장은 하루하루가 서로 살기위해 물어뜯는 정글이었으니까.

스케이트보드

시즌(보드장 개장에서 폐장까지)이 끝나고 다시 겨울만 오기를 기다렸다. 그때까지는 지겨운 일상을 탈출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였던 거 같다. 매일 헝그리보더닷컴이란 홈피에 접속해 헝글링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스케이트보드(스켑) 동호회에 가입하여 스켑을 배우기로 했다. 비시즌 동안 체력을 기르고, 스노보드에 대한 감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었다. 그런데 스켑을 배우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득을 얻었다.

참고로 스켑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배우기는 더욱 어렵고, 여기저기 많이 다치는 운동이다. 그래서 no pain no gain이란 말을 보더들은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래서 보더들은 고통과 상처를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열정

스켑을 타면서 만난 친구들을 통해 오랫동안 잊었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3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구성원이다. 그런데 모두의 공통점은 스켑을 잘 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것이다.

특히, 직장인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장시간 노동을 하고 12시가 넘어도 연습을 하러 스팟(스켑을 타는 곳)으로 와서 연습을 한다. 더 높은 난이도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그들의 열정과 자유로움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최근에 그들만큼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친구들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과 자유를 위해 스스로 생활을 책임지기 위한 노력도 참 멋있었다.

망설임

최근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다. 활동에 대한 시간 배분이 예전 같지 않고, 또 다시 예전처럼 경주마가 되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든다.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열정도 없이 자유롭지 않게 살기는 너무 싫다.

예전에 활동이 세상에서 가장 잼있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활동이 재미가 아니라 책임과 의무감에 의해서 관성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난 열정이란 것을 잃은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고통은 당연한 것으로 알았었다. 더구나 활동을 하면서 난 고통스럽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치 않는 일을 동지애로 하니 재미가 없다.

걱정이다

이러다 활동을 형식적으로 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다. 내 열정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 같아 걱정이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은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특이하게 보여도 그렇지 않다는 게 걱정이다.

서로 내색하지 않지만 열정과 전망이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그런데 마땅히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갑갑하다. 그렇다고 내가 새롭게 찾은 엑스게임을 포기할 마음은 전혀 없다. 되려 더 많은 열정으로 더 잘 타고 싶다.

뭐, 뭘 특별히 주장하는 거 없다. 요새 힘들었고, 세상을 좀 더 넓게 경험하자란 생각을 했고, 열정이 없는 활동은 재미가 없어서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래서 걱정은 하지만 좋아질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다. 참 대책 없는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