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4]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특집II: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6)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특집II: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6)

현장에서 미래를 제114호
박효석


특집II: 노동운동 출구를 찾자(6)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박효석 / 부산지역 일반노조 조합원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한노정연으로부터 한 달 전 위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이유는 따로 묻지 않았지만 내가 부산지역 일반노조에서 잠시 상근으로 있은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에게는 이런 질문에 대한 특별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1. 단지 그릇이 만들어져 있으니 그 그릇에 무엇이든지
담기는 것이 아닌가?

일반노조에 가입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찾아 왔다. 그건 요새 현장으로 들어가는 학생이나 활동가들이 예전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솔직히 찾아오는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교섭하고 투쟁하는 것만 해도 일이 너무 많았다. 적어도 내가 일반노조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그랬다.
그렇다고 일반노조에서 아무런 조직화 사업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환경노동자, 케이블 노동자들이 들어오면 동종업종에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일을 했다. 지금은 버스노동자들이 가입을 해 버스노동자들을 부산지역 전체 차원에서 조직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이 모두 스스로 찾아오고 나서 진행된 부분이다.
생각만 있었지 대구 성서공단 노조처럼 공단을 조직하거나 어떤 산업과 직종을 목표로 기획하여 조직을 진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노동자들이 한 해 동안 꾸준히 가입해 그 일을 하는 것 만해도 엄청 일이 많아서 일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에 노동운동을 했거나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조합을 의식적으로 조직을 해서 가입을 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릇이 만들어져 있으니 그 그릇에 무엇이든지 담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못쓰는 글이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글을 한 번 써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금껏 일반노조활동을 하면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에 대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점이나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지만 여기에 그 문제의식의 일단을 적어보고 여러 동지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다.


2. 내 직업은 초단기 계약 파견 노동자

내 직업은 굴삭기 기사인데 내가 하는 일은 스페어다.
몽키 스페어가 아니고 다른 기사들이 쉬거나 기사가 없는 차에 가서 일을 하는 뗌빵 기사다. 하루 하는 적도 있고 삼사일 하는 적도 있고 그것보다 더 많이 일을 할 때도 있다. 이틀 일 한다고 듣고 일하러 갔다가 그 날 저녁 일을 마칠 때쯤 ‘내일 일이 없으니 나오지 마라’고 하면 내일 일은 없다. 이건 계약 위반인지 해곤지 모르지만 내일은 그곳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일을 하루 이틀 더 하는 경우도 있다. 그땐 재수라고 해야 할지 나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정된다. 일을 더하면 일당이 불어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내가 이런 일을 택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요사이 건설경기가 정식으로 개인 차주에게 기사를 타도 한 현장이 끝나면 다음 현장이 기약이 없는 상황이고, 차를 한 대 사서 차주가 되어도 되지만 거래처도 없고 돈도 여유가 없어 차주가 되지도 못하고 그래도 하루라도 벌어야 나와 내 가족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에 스페어 기사가 되었다.

내 연봉은 나도 모른다. 해봐야 안다.
한 달에 오일 할 때도 있고 열흘 이상 일할 때도 있다. 그 이상하면 집사람 얼굴이 달라진다. 나와 같이 건설 현장에서 밥 벌어먹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처지가 비슷할 것이다. 건설일용 말이다. 지금은 다른 말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채권 추심하는 노동자도 수당제라고 하니 나와 비슷할 것이고, 고상하게 번역일 하는 사람도 그럴 수도 있다.
일하는 형태는 달라도 이 땅에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엄청 많을 것이다.


3. 내 일당은 십만 원

내 일당은 부산에서 일을 하면 이것저것 뜯기고 난 뒤 십만 원 정도 된다. 한 달을 꼬박 쉬지 않고 일을 하면 300만원, 오일 일을 하면 50만원이다.
지하철 청소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노조하기 전에 한 달 일을 하면 50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지금은 좀 올라 70만 원 정도는 될까? 우리 조합에 지금은 다 해고돼 투쟁하는 매표소 민간위탁 동지들이 한 달 내내 오줌 눌 시간도 교대해주지 않으면 누지 않고 버는 돈이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내가 오일이나 칠일을 일하거나 열흘만 일하면 버는 돈이다. 이들과 비교해서는 초단기 계약 파견 노동자들이지만 고수익 자가 된다.
내가 일하는 파산지원연대에서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서 한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한 달 내내 일해도 300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하철 정규직 노동자가 ‘일당이 십만 원 밖에 안돼’ 하고 이야기 할 때 나는 엄청 비참해진다. 쥐구멍이라 찾아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퇴직금도 없고 일요일도 없고 뭐하나 자랑할 것이 없는 직업인 것이다. 돈 벌이도 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청소 아줌마나 지하철 매표소 민간위탁 동지들은 엄청 부러워한다. 오일이나 칠일만, 열흘만 일하고 그들이 한 달 내내 일해 버는 돈만큼 가져가니까 말이다. 그것도 20일 넘게 놀고도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변호사나 지하철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 부러워 할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들 사이에서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나는 언젠가 배웠던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 과연 변호사나 청소부나 매표원이나 정규직 지하철의 노동자나 그 가치가 어떻게 나누어 지길래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 기준이 뭘까?
지하철은 하루만 청소하지 않아도 먼지와 오물로 더러워 질 것이다. 이들의 노동의 가치가 70만원 밖에 안될까? 나의 노동의 가치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치는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어리석게도 한가지다 이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우리가 이 가치에 대해서 하나로 투쟁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해방세상이 오면 지금의 사회에서는 잘 버나 못 버나 인정받는 변호사가 최고로 할 일 없는 직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몇 년 전 최저 임금 투쟁을 할 때 내가 나누어주던 민주노총 유인물을 읽다 나는 깜작 놀랐다. 간부였는데도 말이다. 이 땅의 노동자들 중 100만 원 이하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이 반이 넘는 단다. 나는 이것이 진짜인지 본부의 한 상근자에게 물어 봤다. 진짜냐고. 대답이 그렇단다. 80년대도 아닌데 백만 원도 못 버는 노동자들이 반이 넘다니 나는 놀랐다. 그리고 나서 이 직업 저 직업 곰곰이 쳐다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백만 원 벌어서 아이들 공부시키고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젊은이들은 백만 원 벌어서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온갖 선전의 옷과 음식들 중에 몇 개나 구입할 수 있을까? 돈 많이 쓰는 게 능력인 이사회에서 카드 선전은 얼마나 멋진가?
술 권하는 사회가 아니라 빚 권하는 사회로 치닫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은 아마 필연인지도 모른다.


4. 더 이상 가르고 줄서거나 줄 세우지 말아야 - 조직화에 관해서

몇 년 전 나는 내가 다니던 건설회사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한 적이 있다. 나는 단종이지만 정식직원으로 있었는데 같은 굴삭기 기사 뿐 아니라 크레인 기사, 용접사, 목수, 용역으로 온 사람 할 것 없이 무조건 조직했다. 무식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아마 노동계에서는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개념 없이 조직했다. 그래서 건설일용이든지 아무튼 건설 쪽 조직에 가입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심혈을 기울여 조직하려 했던 어느 날 한 용접공에게 전화를 하니 건설 쪽에 일이 없어서 일이 많은 현대 중공업에서 일당직으로 일을 한단다. 얼마를 할지 모르겠지만 최소 반년, 아니면 말뚝을 박을 수도 있단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 용접공과 같이 노조를 하려면 그가 건설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현대중공업에서 일을 하면 금속인데 어쩌나. 노조를 같이 할 수 있는 길이 없는가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처지가 기러기처럼 이리 저리 일이 있고 돈 벌수 있는 곳이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장, 도로, 산, 건물을 가리 않고 일을 하는 처지에 이곳에 가면 이 노조 저곳에 가면 저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경험이 노조나 산별에 대한 나의 사고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노동조합을 만들면 모두 다 할 수 있는 노조, 어디를 가든 한 조합원인 노조를 만들어야지…. 나는 노동조합을 결성하면서 토론을 통해 모두가 생소해 하는 일반노조에 가입했다. 일부는 건설 쪽에 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건설 쪽에서 일을 하니까 말이다. 나는 비록 지금은 깨어졌지만 우리의 처지 상 언제나 같이 조합을 할 수 있는 곳이 일반노조라 생각하고 그들을 설득했다.

나는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나와 같은 처지라 생각한다. 업종가릴 것 없이 조금이라도 돈이 더 된다면 언제든지 다른 일을 선택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오면 더 좋은 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정규직과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리저리 연맹과 산별에 줄을 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워서도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같은 처지 상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 유리하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한노정연에서 나온 몇 달 전의 단일노조 건설에 대한 글을 쓴 발전 동지의 글에 동의한다.


5. 정규직이 노는 것 다 놀고 받는 월급을 노동조합을 해서 어느 천 년에
올릴까? 문제는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가 아니다.

요사이 노동계의 주요 이슈는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다. 논란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노동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논의가 진행 중이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화해 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라 한 쪽이 승복하거나 없어지지 않고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서 정규직 보다는 비정규직을 비정규직 보다는 차라리 밥만 주고 임금은 주지 않는, 아니 밥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는 노동자들을 원할 것이다. 아니 이런 고민도 할 필요 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저들은 사람대신 다른 것을 택할 것이다. 그들에게 사람의 가치는 없다. 고객만이 있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데 있다. 우리 내부의 문제이다.
나는 지금 ‘정규직화 투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정규직화 투쟁의 의의에 대해서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규직화 투쟁에 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협력과 갈등을 보면서, 이 비정규직의 문제가 이 시기 주요한 노동의 이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집중이 어쩌면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큰 공장의 눈에서 보면 중소 영세는 다 비정규직이다. 다 100만원 왔다 갔다 한다. 중소 영세 사업장 다 조직해서 정규직 만들 건가? 처지와 조건에 맞게 말이다. 죽을 때까지 해도 못할 거다. 몇 대가 걸려도 될지 모른 일이다.
또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을 볼 때는 더 가관이다. 배신했네 아니네, 도와줬네 아니네, 노선이 이렇네 저렇네….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일까?

언제나 우리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어줬던 게 있다. 그건 흔히 말하는 ‘노동자는 하나다’는 말이다.
나는 이말 앞에 ‘노동해방’이란 말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해방 한길에 노동자는 하나다.
월급을 많이 받으나 적게 받으나, 똑같은 말이지만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명확한 목표와 공동의 적에 대한 분명한 표적 없이, 노동노예의 사슬을 끊으려는 분명한 의지 없이 진행되는 여하한 정규직간의, 정규직 비정규직 간의, 비정규직간의 대립과 갈등은 해소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6. 기치를 분명히 세워야 한다.
- 노동해방의 기치, 변혁의 기치가 분명해야

노동자를 이리 저리 갈라놓는 자본의 목적은 최고의 이윤이다. 자본주의 최고의 덕목을 향해서 저들은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당장에라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거나 반발이 있으면 이리 저리 둘러대며 하거나, 몇 해라도 시간을 기다려서 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린다.
그 결과가 우리들에게는 요사이 신종언어인 노동빈곤층이란 말이다. 아무리 일해도, 부부간에 둘이서 같이 일해도 가난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노동자들, 그런 노동조차도 소외된 수많은 사람들은 이 이윤의 논리, 자본의 논리 앞에 설자리가 없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가 설자리를 만드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 조직화 이야기에 뜬금없이 아직 정확히 정립되지 않은 설익은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은 내가 그 동안 살면서 노동하면서 느끼거나 조합 활동을 하면서 보아온 우리 조합원들이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올 수 있는 길은 월급 몇 푼 올려서 될 일도 아니고 정규직이 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나아지겠지…. 나는 이 노력을 한곳으로 모으면 그 일이 더 수월할 것이라 생각한다.


2005-11-30 2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