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5호] 당면투쟁에서미래를그려가는운동

권두언

권두언


당면 투쟁에서 미래를 그려가는 운동

김동성 / 발전노조 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


운동의 목표

운동은 움직임이다. 무언가를 목표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환경에 수동적인 반사행동이 아니라 환경에 능동적으로 움직이려는 것이 운동이다. 운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다. 우리 노동자가 처해있는 사회적환경은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낳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부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경제적, 법적, 사회적 환경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자본가를 위한 환경일 뿐 노동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볼 때 척결의 대상이다. 노동운동의 목적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그 자리에 다수인 노동자를 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운동의 목표다.

활동의 시작

우리가 다니는 회사는 그 회사에 다니는 다수의 사람들이 주인이 아니라 그 회사를 소유한 사람이 주인이고 자본가 정권의 정부 관료가 주인이다. 회사에 입사해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계급적인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 규율과 질서 속에서 그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이 강제한 임금을 받고 살아간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위계체제, 규율과 질서, 임금 등은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역사적 투쟁으로 쟁취해 온 노동기본권을 바탕으로 세워진 노동조합의 집단적 행동을 통해서만이 제한적으로나마 시권∙두∙언
정 또는 변경될 수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운동은 우리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자본가들의 공격에 대응해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 하루하루 대처하고 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 그나마 근근이 우리를 집단적으로 방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방어는 전진이 아니라 약간의 후퇴를 동반한다. 누적된 후퇴는 또다시 큰 투쟁을 요구한다. 노동조합이 무너지면 조합원 개인들의 일상이 무너진다.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곧 노동조합의 활동이다. 노동자가 일상의 삶을 지키지 못하면 미래도 말 할 수 없다. 우리의 다수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노동운동을 접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경로다.

운동의 시작

운동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다. 우리의 거의가 수동적인 활동이 중심이 되는 노동조합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회사가 공격해야 대응해서 그나마 지키고 조건이 좀 좋아지면 태평세월이 된다. 건드리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않는다. 엄격히 말하면 참는다고 해야 한다. 우리의 권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확대되어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한다. 단순히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확보한 제한적인 권리를 지키고자 할 뿐이다. 자본가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권리에 초라하게 매달려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니다. 그 권리마저 봄에 눈 녹듯이 녹아 없어질 상황은 항상 존재한다. 운동은 정지가 아니라 움직임의 연속이다. 그 무엇인가를 향한 움직임 즉 자본주의를 철폐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노동운동이다.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일상생활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되 동시에 노동자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겠다는 목표를 가슴에 지니고 투쟁 속에서 그 것을 조금이라도 구현하고자 실천하는 것이 노동자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노동자의 미래를 그리지 못하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우리의 미래는 현재를 움직이는 동력원이기도 하다. 동력의 고갈은 좌초와 좌절 그리고 자본가와의 타협 이외에는 방안이 없다.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에 안착하려는 시도는 바로 노동운동의 사망선고와도 같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바로 자본주의에 안착하여 또 다른 기득권세력이 되어 노동자를 통제, 관리하려는 노동관료들의 정치적 진로이다. 노동조합에서 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실리마저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투쟁을 제대로 조직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으로부터 큰 양보를 얻어낼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의 미래를 염두에 두고 계급적으로 활동하는 노동조합은 자본에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현재조건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활동자세는 스스로를 퇴화시키고 노동운동을 변질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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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엮이기

운동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가 어떤 식으로든 맞물려 있어야 한다. 물론 노동조합의 공식체계가 있기 하지만 이것은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활동을 집행하기 위한 체계일 뿐이다. 노동조합의 조직체계는 일상적 과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적합하게 조직화되어 있다. 이것은 자발적으로 엮여있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결정으로 엮여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서로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엮기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활동의 원칙으로 삼는 자주성, 계급성, 투쟁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이러저러한 조직으로 묶여서 그 속에서 개인들이 단련되고 조직적으로 훈련되는 꾸준한 과정이 필요하다. 개인은 집단속에서 길러지고 그 개인은 집단에 이바지하는 구조가 확대발전해나가는 것이 운동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엮여져야 한다. 어떻게 엮여져야 할 것인가? 투쟁의 장이 계급적으로 확대되려면 노동자를 옭매고 있는 분할구조를 깨고 그 자리를 계급적 단결로 대치해야 한다. 계급적 의식은 자기의 사업장과 업종의 이해를 넘어서 전 노동자의 이해를 자신의 이해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업종이나 사업장의 동지들과 일상적인 만남과 공동실천이 필수적이다. 같이 토론하고 같이 행동하지 않고서는 계급적 의식을 키울 수 없다. 따라서 자기 사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은 일상 활동에 해당되며 자발적인 조직 활동은 과외가 된다. 일상 활동은 기본이고 과외는 특별 활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 활동에서 벗어나 특별활동을 통해 노동자의 미래를 그리고 그 그림을 일상 활동에 적용하려고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일상 활동과 특별 활동이 물려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킬 때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미래까지 담보한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운동이 될 것이다. 노동자의 계급성을 구현할 조직을 만들고 엮이자. 지역 현장조직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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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전개

우리는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을 가지고 있다. 또한 투쟁력을 배가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식의 상급단체를 가지고 있다. 단위노동조합, 연맹, 총연맹이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이들 조직이 각자의 투쟁목표로 서로가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는가는 투쟁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민주노총 10년이 되었다지만 10년의 세월만큼 전진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조적이 목소리가 더 높다. 규모는 커졌는데 무기력하다고 느낀다. 과거 전노협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조합원, 조합간부 모두가 위기로 받아들인다. 규모만큼 내용을 채우지 못하다 보니 속빈 강정이 되어 있다. 연맹의 조합간부가 아무리 외쳐도, 총연맹의 집행부가 아무리 애원해도 조합원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똑같은 목소리, 관성에 절어있는 목소리, 쉽게 예상되는 안 좋은 기억들이 조합원들의 뇌리에 축척되었다. 이것은 그간 조합간부들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운동은 대중에 의해 저절로 쇠퇴하거나 몰락하지 않는다. 대개가 집단을 이끌고 있는 조합간부들의 오류에 의한 것이다. 대중을 대상화하여 수동화시키는 운동방식이 대중을 분리해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합간부의 역할은 모든 것이 되었고 대중 앞에서 나약한 개인이 묘기를 부리다 빈번히 떨어지는 웃기는 광경을 연출한 것이다. 대중들은 식상해서 자리를 뜨고 있다. 자본이라는 조직 앞에 노동자 개인은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운동은 노동자 대중을 어떻게 운동의 주체로 세워낼 것인가에 있다. 이 속에서 활동가는 대중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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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활동

노동조합이 사업계획을 세울 때 사업의 내용은 조합간부들에 의해 엄청나게 달라 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사업계획은 조합간부들의 안목과 역량에 의해 많이 좌지우지 된다. 훈련된 조합간부들이 많은 수록 사업의 내용은 풍부해질 것이다. 노동조합 외 활동가 대중조직에서 단련되고 훈련된 간부들이라며 더욱더 기대할 만하다. 노동조합의 요구사항에는 단사에 국한된 특별한 요구도 있지만 많은 것들이 다른 노동조합의 요구와 유사한 것이 많이 있다. 특별한 요구는 개별단사에서 해결하는 투쟁계획을 수립하면 되지만 공동의 요구사항은 해당노조가 공동투쟁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다만 이러한 생각을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노동조합, 연맹, 총연맹 조합간부가 있는가가 문제다. 아무리 공통사안이 있어도 엮지 않으면 개별사안이 된다. 미리 예상된 투쟁마저도 제대로 조직하지 못해서 현장 조합원들로부터 비판받고 외면당하기 일쑤인 것이 현재의 조합간부들의 모습이다. 단사, 연맹, 총연맹의 사업이 계획초기 단계부터 유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한 해 투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다. 각 조직들의 참여와 현장을 바탕으로 하지 못하고 근거도 없이 각자가 임의대로 짜서 서로에게 도움이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러 단위들의 사업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단위노동조합의 건강성이 연맹과 총연맹의 건강성을 만드는 기초이듯이 노동조합 조직의 활발한 움직임이 노동자 정치조직의 기초가 된다. 노동조합 운동이 메말라 가는데 정치조직이 활성화되길 바라기는 어렵다. 물론 노동조합활동이 퇴락해도 노동자 정치조직이 발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노동자계급성이 탈색되어 더 이상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와는 무관해진 또 하나의 부르주아 정치조직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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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현장조직

우리는 현장조직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있었다. 계급적 노동운동을 목표로 각 단위사업장에서 활동가들이 만든 자발적 조직이었다. 집행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면서 성장하였고 많은 조직이 단위사업장에서 집행부로 들어가기도 했다. 현장조직이 집행부를 맡으면서 현장조직은 비기 시작했고 이들의 이해관계도 사업장별로 갈라지기 시작하여 공동투쟁이 어려워 졌다. 무대 뒤에서의 계급적 모습이 무대 앞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였다. 사람의 한계인지 조직의 한계인지 분석이 분분하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조직적으로만 얘기한다면 단위사업장별 현장조직의 한계가 아니었나 싶다. 단위사업장별 현장조직마저도 사업장의 이해관계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다. 하루아침에 사업장을 넘어설 수 는 없다. 활동가의 일상 활동이 사업장을 넘어 계급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해야 그나마 노동조합 내에서 계급적 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조직이 부재했다. 이제는 현장조직도 사업장별, 업종별이 아닌 지역적으로 모든 영역의 노동자가 하나가되어 일상적으로 움직이는 지역 현장조직으로 변신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조차 계급적 활동이 되지 않은 다면 먼 곳이야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지역에는 모든 노동자들이 다 있다. 그들의 요구조건이 천차만별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요구로 이해하고 같이 할 수 있는 투쟁이 부지기수다. 이런 투쟁과정 속에서 다른 영역의 활동가들이 일상적으로 모여 토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단연 지역 현장조직이다. 지역 현장조직은 특정 정치조직의 전유물이 아니라 현장 활동을 계급적 운동으로 추동하고 노동자정치를 꽃피울 지역 활동가 대중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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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의 대표성

누가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나? 누가 비정규직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나? 서로가 대표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조직을 많이 포괄하고 있어도 내용이 없으면 대표하고 있지 않다. 조직이 적어도 그들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키려고 최선봉에 선다면 그들은 그 계급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은 수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위해 활동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치환시켜서 자본가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하여 주입하여 노동자를 영구히 자본가에게 복속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사회적 노무관리체계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60만 민주노총은 1500만 노동자의 4% 밖에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수의 노동자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요구하고 실천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 계급을 대표한다면 요구와 투쟁에서 가장 앞서나가야 한다. 계급 뒤에 숨은 조직은 계급을 대표할 수 없다. 계급의 대표성은 계급의 앞에서 요구와 실천 활동으로 확인된다. 자본가와 노동자계급사이에서 타협을 주선하는 노동자 조직은 이미 계급적 입장을 포기한 거간꾼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투쟁에서 비정규직노동자 동지들의 투쟁성을 계급적으로 확대하지 못한 숱한 조직들은 바로 중요한 시기에 거간꾼 역할을 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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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운동의 주체로 세우기

노동자 대중을 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과정이 노동운동이다. 이런 운동이 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자기해방은 몽상에 불과하다. 시작부터 이렇게 사고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 대중이다. 조합원 대중을 조합의 주인으로 세워내지 못하면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조직이 될 수 없다. 대중을 주체로 어떻게 세워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조합간부와 활동가의 몫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수많은 시도는 정형화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대중적 고민, 대중적 판단, 대중적 집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노동조합간부와 활동가들이 할 일이다. 그들은 대중 앞에서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지 않는다. 활동의 시작부터 대중적 토론을 통해 같이 고민하고 각자의 무게만큼 같이 결정하여 집행을 같이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 조직의 주인인 대중을 주체로 만드는 방법이다. 대중이 고민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하고, 집행하지 못하는 조직은 대중조직이 아니다. 대중을 믿고 대중과 함께 가는 것이 운동이다.

2006년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는 비정규직 입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할 노사관계로드맵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농민들은 국회 쌀 개방 비준으로 이미 생존권이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 한국 전도사 노무현 정권은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농민을 고통에 넣어서라도 극복하고자 한다. 2007년엔 복수노조가 시행되고 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된다. 2006년은 노동과 자본의 한 판 싸움이 필수적이다. 조직은 투쟁 속에서 건설되고 건강성도 회복된다. 조직은 투쟁 속에서 전망을 가지고 자기모습을 만들어간다고 한다. 2006년은 우리가 가진 역량을 모두 바쳐 투쟁해야 할 시기이다. 적당한 타협은 노동운동의 타락과 쇠락을 가져 올 것이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 대해 집단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자. 2006년엔 전 노동자대중을 깨워 세우는 일부터 시작하자!


2005-12-28 18:4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