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월간지 현장에서 미래를

[119호]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쟁점과 가능성: 이행기의 국가와 사회

지상강좌: 노동자 정치학/

최형익 / 한신대 교수, 정치학

1. 문제제기

근대사회에 접어들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거대한 정치적 격변이 발생했다. 이로부터 심대한 사회-경제적 변동이 생겨났다. 이 점에서 인류의 가장 많은 구성원을 정치적으로 동원해낸 이념이 바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관계에 대해만큼 사회과학자들을 괴롭히고, 같은 이유에서 그만큼 관심이 되어 온 주제도 드물다고 하겠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이 문제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채 답보 상태로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각각의 주제를 규명하는 일도 어려운데 이 두 가지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작업은 더욱 더 어려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제 각기 인류의 오랜 이상으로 여겨져 왔다. 모든 사회구성원을 일체의 신분과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평등한 정치적 주권을 지닌 인민(people)으로 해체한 이후 자기결정권에 의한 정치적 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적 이상과 더불어, 모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억압을 제거하여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구현하기 위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결사체로서의 사회주의 실현에 관한 정치적 이상은 많은 사람들을 그러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들게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역사적 현실에서 제대로 조우해 본 경험이 없다는 데 있다. 아니, 조우하기는커녕 구(舊)소련의 몰락이라는 사태에서 보여지 듯, 거꾸로 민주주의, 곧 ‘민중의 힘’(people's power)에 의해 사회주의가 부정당하는 치욕을 맛보아야 했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현실이 맑스주의 정치이론의 측면에서 볼 때 그 원점에서부터 다시금 문제를 제기해야 할 계기를 제공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리고 무엇이 문제일까? 이러한 문제에 답하기 위해 이 글은 맑스, 엥겔스, 레닌 등 과학적 사회주의 창시자들의 주의, 주장에 의존하기보다 분석론적 관점을 택하고자 한다. 쟁점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 기존 사회주의 정치문헌 이론에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를 고찰한다.
한편, 두 개념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 문제와 이러한 이행기의 핵심쟁점으로서 국가 문제를 발생시킨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와의 관계분석에 이행과 국가의 문제를 대입할 경우,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단순 병렬해서 쓰는 용법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socialist democracy)와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를 각기 분리된 서로 다른 역사적 계기를 형성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2.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이행기의 정치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기의 정치를 표현하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다. 기존의 사회주의 혁명에 관한 이론에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채 곧바로 민주적 사회주의의 문제로 도약했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적이라는 단선적 추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변혁의 실제 과정인 이행기에 있어서 전면에 떠오르는 일차적 문제는 정치, 곧 국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레닌은 전적으로 옳았다. 하지만, 국가의 문제는 기존 부르주아 질서의 정치적 담지자로서 자본주의 국가의 해체와 함께 새로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갖는 국가의 형성을 절실히 요망한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종합해낸 정치적 공동체의 형식과 그 조직에 관한 해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는 인간사회가 무정부적으로 존립할 수 없으며, 그러한 전례가 없음에 비추어 볼 때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인민대중의 정치적 권위에 입각한 민중권력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으로 요약된다.
이것의 성사여부는 이후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라는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상이한 사회-경제체제로의 이행이 실제로 가능한가의 여부를 가늠해 주기 때문에, 비상한 정치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문자 그대로 정치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기존의 사회주의권에서의 이행기 논쟁, 특히 중소분쟁의 원인을 이행기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보는 글로는 江副敏生(1986).
따라서 이행기의 정치를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존 체제에 반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노동자의 국가 역시 변질되면 억압적 계급국가의 형태를 재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사회주의 정치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을 중심으로 정치 논의를 풀어왔고, 대부분의 논의 역시 이 문제에 과도하게 집중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양립하지 못했던 게 역사적 현실이었다. 소련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있어서, 사회가 국가를 환수하기는커녕 오히려 국가가 사회의 주인이 되었다. 이는 결국, 이행기의 정치, 곧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국가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소치로서, 현존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민주적 사회주의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채, 일당독재와 지령식 국가통제경제의 기묘한 결합을 낳았을 뿐이다.
정리하면, 이행의 정치는 바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규명하는데 놓여져야 한다. 여기서, 일차적인 쟁점은 국가 문제로서, 구체적으로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일이다. 그람시에 따르면, 억압적 국가보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지배력은 헤게모니적 동의기제로 무장된 시민사회를 통해 형성된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민사회가 사실상 국가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통해서다. 또한 고전적 사회주의 이론가들은 국가의 소멸과 폐지라는 문제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현실이 보여주듯 사회주의 사회에서조차 국가는 할 일이 많다. 이러한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형태의 이행기의 국가는 어떤 성격을 띨 것이며, 어떻게 개념화 할 수 있는가?


3. 두 개의 사회주의 이론:
국가 폐지론과 국가소멸론 사이에서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와 바쿠닌의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는 19세기 중엽에 등장한 대표적인 급진적 정치이론이다. 두 가지 모두 피억압계급 해방이론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며, 제1인터내셔날에서도 오랜 시기동안 나란히 공존했다. 하지만 두 이론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역사성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맑스는 해방의 여정에 ‘역사성’ 개념을 도입하는데, 이는 정치경제학비판에 기반 한 정치이론의 구성으로 구체화된다.
맑스의 정치이론과 정치경제학비판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유는 다음과 같다. 개인은 사회적 조건을 선택한다. 그러나 자의적 선택이 아닌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특정 환경, 곧 역사의 산물인 동시에 역사의 창조자로서 정치-사회적 실천을 구성한다(Marx, CW38, 96). 맑스는 자본주의 역사에 내재하는 이중성, 그 진보성과 반동성을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그것은 근대부르주아 사회가 인류사에 차지하는 지위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과도 같다. 무엇보다 자본주의는 일차적으로 고도의 사회적 생산력으로 인간을 물질적 곤궁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인류의 실질적 해방에 단초를 제공한다.
그러나 물질적 곤궁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해방의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부르주아 사회가 그 자체로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형태로 물질적 곤경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경제공황을 야기할 정도로 구조적 과잉생산이 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착취자, 억압자적 지위를 보존하기 위한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 국가, 사회-경제적 제도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맑스는 이 점에서 해방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그것을 실현할 수 해방의 정치조직과 아울러 해방 구성적인 사회적 실천의 내용, 사회적 주체의 문제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동시에 사고했다. 이 글에서는 전자의 문제, 즉 해방의 정치를 다루는 국가 및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20세기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정치 현상은 바로 일반 대중의 정치적 진출이 급격히 증가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이론적으로 간파하고, 그것을 이행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데 여전히 맑스 정치 이론의 최대 강점이 있다. 새로운 현실은 대중들을 고분고분한 통치 대상으로만 여겨왔던 부르주아를 포함한 지배계급에게 종래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정치적 난제를 던져주었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지배계급은 1980년대 이후부터 신자유주의라는 우익 포퓰리즘 전략으로 대응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커녕 종래의 제한적 형태의 정치적 민주주의마저 자칫 부르주아 사회 그 자체의 심대한 위기를 불러 올 것이라는 데 대해 현재 부르주아 계급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결국 해방의 조건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로 현실화시켜 나갈 수 있는 노동자계급 및 민중들의 대중 정치적 능력의 배양과 이러한 해방의 조직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 보다 구체적으로, 민중의 자기통치 및 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능력―노조, 평의회, 정당, 민중연합 조직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지역공동체로 이루어진 사회내의 대중정치조직―과 함께 이를 기반으로 궁극적으로 국가를 해방의 정치조직으로 구성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같은 이유에서 바쿠닌의 무정부주의 사상은 맑스의 그것에 비해 20세기 초반을 경과한 이후 해방의 정치이론으로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다. 이론 내적으로 비역사적일 뿐 아니라, 정치실천에 있어서도, 대중들의 정치적 분출에 전혀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새로운 형태로 그 옷을 갈아입은 채 무정부주의 이론이 재생되고 있다.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자율주의 등 포스트모던 맑시즘 이론은 그 정치적 인식에 있어서 바쿠닌의 무정부주의와 상당한 친화성을 보인다. 총파업을 통한 대규모 공장에서의 현장권력의 구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좌파 조합주의 역시 국가문제를 정치적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은 이러한 주장들의 이론적 연원이 상당부분 바쿠닌의 무정부주의론에 닿아 있다고 본다.
바쿠닌은 아나키즘을 ‘국가없는 사회주의’라고 규정하는 가운데, 그 어떤 형태의 국가든 시급히 폐지해야 할 정치-사회적 악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정치권력의 완전 철폐“를 역설하는 가운데, 그 어떤 형태의 정치적 지배, 곧 국가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한다(Bakunin, 1953:295-301). 바꾸어 표현하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이행기의 정치를 부정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직접적 전화를 주창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녕 국가가 모든 정치, 사회적 악의 근원인가? 그러한 주장은 부르주아적 자유방임주의자들의 핵심주장이 아닌가? 국가가 존재하기만 하면, 사람들의 노예상태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억압과 지배가 정치적 국가의 존재로부터 행해졌는지는 몰라도, 진정한 착취는 사회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가능하다. 앞에서 예로 들은 바쿠닌의 주장은 맑스와 엥겔스가 공유한 당대 사회주의 사상의 핵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바쿠닌이 맑스의 사상을 도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맑스와 바쿠닌 사상의 차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화려한 혁명적 수사나 지키지도 못할 정치적 공문구보다 운동의 일보 진전을 중시했던 맑스는 국가 문제에 관련 일반적 형태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구체적 정세의 필요에 의해 요청되는 이론적 개입의 형태로만 대응했으며, 같은 이유에서 정세에 따라 국가문제에 대한 맑스의 입장이 상호 모순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정세론이 맑스주의 내부에 국가론을 위시한 정치이론 부재의 책임을 면해주는 구실이 되지는 못한다. 더구나, 현존 사회주의의 실패 경험과 잔존 사회주의 국가의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이론의 부재로 사회변혁운동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를 감안한다면 더욱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맑스는 국가론에 관한 한 당시 독일 노동운동 내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라쌀 일파가 주장한 국가 사회주의 노선 라쌀주의 정치노선에 자세한 설명으로는 정병기(2002).
과 국가를 전면 부정하는 바쿠닌의 무정부주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국가문제는 맑스와 엥겔스를 포함한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힌 이른바 ‘뜨거운 감자’이지 않았을까? 따라서 국가문제와 관련하여 논리적 근거는 박약하나 있음직한 바쿠닌의 비판에 대해서 맑스가 제대로 반론했다고 볼 수 없다. 바쿠닌 비판의 핵심은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한 대로,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급선무는 ‘노동자계급을 지배계급의 지위’에 올려놓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 역시 또 다른 국가권력이 아니냐는 말이다. 나아가 현존하는 국가를 파괴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째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형태로 사실상 또 다른 국가권력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요컨대, 그 어떤 형태의 국가든 국가 그 자체가 존재하는 한,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착취가 영구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바쿠닌 주장의 골자다(Bakunin 1953a:287).
맑스, 엥겔스의 국가론은 크게 다음과 같이 대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공산당 선언󰡕에서 제출된 이른바 ‘계급국가론’이다. 근대 국가를 “부르주아 계급의 공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회”로 보는 관점이 그렇다. 다른 하나는 이행기의 국가형태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론’이다. 이 두 가지는 인과적 관계에 놓여 있다. 분석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부르주아 독재로 규정된 근대 국가를 파괴한 연후라면 그 자리에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형태로 노동자 국가가 들어서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를 폐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소멸되는 것인가를 둘러싸고 문제가 발생했다. 국가폐지냐 소멸이냐에 대해 엥겔스와 레닌이 모두 이론적으로 관여하여 심각하게 대응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양자 모두 그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정부주의와 차이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행기의 국가형태로서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수정주의 등 서구 사민주의 주류, 즉 국가주의에 경도된 정치적 입장에 반대하기 위해 무정부주의와 유사한 국가소멸론을 주장한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거의 동시기에 쓰여진 엥겔스의 서로 다른 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국가와 관련된 상반된 진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한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기구일 뿐이며, 이러한 점에서 민주적 공화제도 군주제와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아주 좋은 경우에도 국가는 계급지배를 지양하는 투쟁에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가 계승하는 하나의 해악이다(Engels, CW27:190).

반권위주의자들은 어째서 정치적 권위에 대해, 즉 국가에 대해 반대하는 데 그치고 있는가? (…) 반권위주의자들은 권위적인 정치적 국가를 발생시킨 사회적 조건이 아직도 파괴되지 않은 가운데 정치적 국가를 일거에 폐지하도록 요구한다. 그들은 권위의 폐지가 사회혁명의 최초의 행위가 되도록 요구한다(Engels, CW23:425).

위와 같은 상반된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양한 형태의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과의 이론적 논쟁의 산물이라는 차원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나, 맑스, 엥겔스의 국가론이 혼란스러운 것만큼은 그리고 내부에 중대한 긴장이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단순 행정기능만을 담당하는 코뮌이 참된 사회적 이익을 배려할 수 있는 논리적, 정치적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참된 사회적 이익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행위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치적 행위 아닌가? ‘억압적 부르주아 계급국가-정치적 기능을 상실하여 점차 소멸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국가’라는 극히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만을 가지고는 적극적인 그리고 긍정적인 국가이론을 구성할 수 없다.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정치적 결론이란 봉기에 의한 국가권력의 접수와 급격한 정치권력의 파괴 또는 ‘좋게 보아’ 소멸이라는 대안 이외 제출될 내용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또는 긍정적(positive) 형태의 국가이론, 민주주의론은 과연 맑스주의 사상 내부에서 구성될 수 없는가?


4.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유산: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람시

러시아 혁명의 걸출한 그리고 대표적인 이론적, 정치적 지도자들이었던 레닌, 트로츠키의 국가론 역시 맑스와 엥겔스의 계급독재 국가론의 기조를 상당부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국가론에 대해서는 레닌(Lenin, 1990), 트로츠키(Trotsky, 1969).
1905년 무렵에 레닌은 󰡔사회민주주의자의 두 가지 전술󰡕이라는 저작에서 서구와 러시아 정치구조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등 정치이론의 문제에 관해 상당히 예리한 분석을 선보였다. 하지만, 1917년의 레닌은 이론적으로 무뎌졌고, 단순해졌다. 물론 보다 근본적으로 레닌이 인식할 수 있었던 국가의 모습은 억압과 부르주아 국가 이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즉, 상부구조로서의 경찰, 군대 등 억압적 강권력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국가형태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서구의 국가는 독점자본의 등장으로 인한 국가의 적극적 경제개입 및 대중투쟁의 결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국가와 사회의 경계가 사실상 허물어지고 재구조화되는 등 거대한 변동의 시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국가라는 같은 주어를 사용하더라도 의미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 술어가 대응되어야 했다. 레닌은 이 점을 간과했다. 그래서 그가 러시아에서 짜아르 전제권력과 부르주아 정치권력을 파괴하고 대체한 것은 결국에는 상부구조로서의 국가권력의 모습을, 다시 말해서 초기 부르주아 사회의 국가권력, 그러나 사실은 지주귀족계급의 과두지배에 의해 유지되었던 억압적 권력을 재현한 것으로 드러났다.
봉기에 의한 국가기구의 파괴,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통한 국가 소멸이라는 모순된 이론적 정식 하에서 정치적 국가가 아닌 사회와는 분리된 행정관료 중심의 국가권력이 등장했다. 이로부터 맑스주의 전통 안에 민주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관되게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파괴와 소멸, 이행기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론을 맑스주의 정치신조의 준별기준으로 삼았던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이론적 지도 하에 진행된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어째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공적 생활을 파괴하고 가장 억압적 형식의 국가주의 사회를 낳았는가? 이러한 역설이 맑스주의자들을 종종 정치적 위선가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가령, 혁명운동의 선두에 섰던 혁명가, 또는 활동가들은 일정한 시기 후에 기꺼이 자신의 권력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가? 그들은 인민에 의한 정치적 정당성의 기제를 거치지 않고 권력행사를 할 수 있는가? 사실, 혁명이후 러시아에 진정 요구되었던 것은 국가소멸을 향해 치닫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민주주의 국가’, 곧 민주공화국을 확립하는 작업이었다. 밀리반드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 상당히 근거 있게 들리는 것도 바로 같은 이유에서다.

맑스주의의 엄격한 의미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개념은, 특히 혁명적 상황에 있어서 지도의 필요와 민주주의의 요구 사이에 존재하는 불가피한 긴장을 너무 안이하게 처리해 버림으로써, 결국 전혀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있다. 레닌은 당 독재, 곧 당이 통제하는 국가의 독재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단언함으로써 그 문제를 처리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이 원래의 공약을 수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정의 했을 뿐임을 인식했다. 사실상 레닌주의 혁명의 시기를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가능한 때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혁명이 ‘파괴’한 국가의 폐허 위에 새로운 강력한 국가, 즉 ‘엄격한 의미의 국가’의 재창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맑스나 󰡔국가와 혁명󰡕 저작시의 레닌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아니다(Miliband, 1989).

이러한 맥락에서, 레닌주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러시아 혁명의 수행과정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치관은 경청할만한 하다. 특히, 볼세비키적 정치관에 대한 그녀의 비판은 대단한 직관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로자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결코 물신화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다양한 요소를 부르주아지의 계급지배의 산물로 환원할 수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민주주의의 확장을 통해 사회-경제적 해방의 문제가 프롤레타리아 대중정치의 의제로 각인될 수 있음을 이해했다.

이 모든 사례를 통해 민주적 제도의 ‘성가신 메커니즘’이란 것의 이른바 대중의 살아있는 운동이라든가 끝없는 대중적 압력과 같은 강력한 교정도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제도가 민주화되면 될수록, 대중의 정치적 생명의 맥박은 더욱 생생하고 강력해지며―비록 선거인 명단, 엄격한 정당의 기치 등에도 불구하고―대중의 당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직접적이고 완전해진다. 그러나 트로츠키와 레닌이 발견한 바와 같은 민주주의를 완전히 제거하는 식의 처방은 치료될 수 있는 질병 그 자체보다 더욱 나쁜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처방은 모든 사회제도의 선천적 결점을 유일하게 치료할 수 있는 바로 그 살아있는 원천을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원천이란 인민대중의 활동적이며 자유롭고 활력에 찬 정치활동이다(Luxemburg,1989:81).

로자의 비판이 러시아 정치현실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왔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이후 전개된 혁명이후 붕괴까지 소련 70년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그녀의 정치적 통찰은 대부분 들어맞았다. 한편, 그람시의 국가론은 부르주아 사회의 정치적 구조 그 자체의 변동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 국가의 개념변화는 정확히 구조적이다. 맑스가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구조변동에 착목하지 못했다는 그람시의 지적은 대체로 올바르다. 맑스가 주로 목격한 것은 억압적 강권력으로서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그람시는 종래의 부정적 국가관에서 발상의 달리하여 긍정적 관점에서 국가를 사고한다. 그것은 국가의 사회화 현상, 사회의 국가화 현상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성격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이해영, 1998).

그람시는 국가라는 동일한 형식과 명칭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의미에서, ‘차이’의 변증법을 통해 국가를 이론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람시의 국가론에서 국가는 단순한 억압적 상부구조의 지위만을 부여받지 않는다.

“두 가지 주요한 상부구조의 수준을 고정하는 게 필요하다. 즉 시민사회라고 불릴 수 있는 것, 즉 흔히 ‘사적’이라고 불리는 유기체들의 총체와 ‘정치사회’ 혹은 ‘국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이 그 두 가지다. 이러한 두 가지 수준은 한편으로 지배집단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행사하는 헤게모니 기능과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법률상의 정부를 통해 행사되는 직접적인 지배나 통치기능에 조응한다. 문제의 기능은 정확히 구조적이고 연관적이다”(Gramsci, 1971:12). “이러한 형태의 체제에서는 그 제도의 역사적 발전상의 헤게모니가 사적 세력, 즉 시민사회―이것은 국가이기도 하며, 실로 국가 그 자체(itself)이다―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간과된 채 넘어간다”(Gramsci, 1971:261).

이로부터 부르주아적 지배의 정치적 형식은 적나라한 폭력보다 지적, 도덕적, 정치적 헤게모니에 의존한다. 소위 ‘동의’에 의한 지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때 ‘시민사회’ 개념은 헤게모니, 곧 동의에 의한 지배를 산출하는 정치-사회조직 및 제도,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반대로, 노동자, 민중의 올바른 변혁전략 역시 새로운 국가형성을 위해서 요구되는 ‘카운터-헤게모니’를 창출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곧 부르주아 사회 및 국가에서조차 독자적인 노동자계급의 민중민주주의를 현실화하여 해방의 정치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이는 결국 다종다양한 해방의 정치- 사회조직들의 형태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과거 볼세비키 혁명과 같이 부르주아적 억압기구만 분쇄하면 혁명을 달성할 수 있는 일회성 기동전략의 시대가 아니라 지루한 낮은 포복의 일상적, 항구적 계급투쟁이 벌어지는 그러한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람시가 말하는 ‘진지전’이다(Gramsci, 1971:229~243).

그람시 국가론의 장점은 국가와 사회를 동시에 사고하게 해준다는 데 있다. 그러면서도 맑시즘에서 공백으로 남겨져왔던 국가문제에 대한 긍정적, 적극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맑스 사상이 ‘사회중심’ 이론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노동대중들의 사회-경제적 해방이 해방의 정치가 지향해야 할 중심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방의 정치과정은 국가문제를 경시할 수 없다. 국가 또는 정치권력에 대한 정면대결을 하지 않고서 계급해방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국가주의적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국가를 민중민주주의의 형태로 개조할 방법은 없는가? 정치적 국가를 사회해방의 근거지로 삼을 수 있는 진정한 힘은 각급의 다기한 해방의 조직들, 즉 노조나 정당, 대안적 사회운동 공동체 등 대중적 정치-사회조직의 민주주의적 헤게모니 역량으로부터 나온다. 다시 말해서, 국가라는 정치적 중심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에 흡수되지 않는, 오히려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다방면의, 다차원적 형태의 사회권력, 대중적 사회운동의 진지를 구축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그 권력 방향에 있어 수평과 수직선상에 놓인 각각의 조직 사이에 정치적 접점을 마련하여 일종의 정치적 역동성(dynamism)을 생성시키는 일이다. 여기서의 핵심쟁점은 정치권력과 사회권력 사이의 긴장과 상호공존이 상당 기간 불가피하다 했을 때, 결국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확정하느냐가 이행기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될 것이다.

5.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주요 구성부분:
이행기의 정치와 경제

현대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안착된 이후 혁명적 봉기에 의한 정치, 그람시 표현에 따르면, 기동전에 의한 권력쟁취는 일단 수월하지 않게 되었다. 플란쨔스가 ‘이중권력 정치’의 불가능성을 논한 것도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Poulantzas, 1987). 문제는 플란쨔스의 해법은 자본주의 국가제도 중심 내지 의회주의로 경도되었다는 점이다. 폭력 혹은 봉기에 의한 사회변혁의 전망이 어두워 졌다고 해서 반드시 기존 국가제도와 질서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운동의 대중적 급진화’라는 사회주의 정치의 핵심을 빠뜨리고는 이행이라는 것은 사실상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어떻게 ‘사회운동의 대중적 급진화’가 가능할 것인가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현대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가 구가하는 지구적 자본주의 노선이 일반대중의 삶을 피폐화시키며 파괴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 대중적 형태의 불만, 분노가 정치적 전복의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주체적 경로란 정확히 ‘정치적 대안의 존재유무’에 달려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안이 사회주의적일 수도 있지만, 극우 파시스트 독재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해답은 결국 ‘민주주의를 통한 변혁전략’ 혹은 ‘민주주의적 급진화’ 전략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민주변혁전략’의 이론적 원리를 구상함에 있어 한계 지워지는 정치적 제약은 다음 두 가지 이다. 하나는 어떤 형태이든 독재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독재는 원리상 그 어떤 형태이든 단일한 권력중심을 상정하고 그것을 장악한 국가주의 정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본주의적 착취구조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제약성을 고려하면서 잠정적으로 제출할 수 있는 견해는 ‘사회적 권리정치’와 ‘사용가치의 경제’에 의해 규정되는 이행기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행기 사회는 분석적 의미에서 사회권리국가와 민중사회의 형태로 구성되며, 이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원리가 ‘정치적 다이내미즘’ 개념이다.
중요한 정치적 다이내미즘이 ‘사회적 권리’ 개념을 근간으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권리는 사회적 대중 개별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정치적 인민의 권력관계로 증폭시킬 수 있는 정치개념이다. 노동자-민중의 사회적 권리는 근대부르주아 사회의 자본운동을 통해 내적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투쟁 속에서만 쟁취될 수 있었다. 이때 노동자 계급의 사회적 권리가 작동하는 논거는 정확히 근대부르주아 사회의 시민권과는 전혀 다른 사회-경제적 기원과 상이한 정치적 맥락을 통해 규정되는데, 구체적으로 그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권리들, 특히 사적 소유의 권리들과는 양립할 수 없는 생존과 생활의 권리목록들로 구성된다. 역사적으로도 노동자계급의 권리정치의 내용은, 근대부르주아의 권리실현인 착취기획에 맞서 자신의 인간적 삶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생존권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권리’라는 정치적 화용은 법 개념과는 다르게 그 자체로 ‘자기 결정’의 민주성과 함께 그러한 결정에 대한 불가침성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같은 이유에서 맑스는 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 사이의 공방을 화해할 수 없는 계급적 권리간의 적대적 투쟁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권리 대 권리 투쟁에서는 힘이 사태를 결정한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제기하는 ‘사회적 권리 정치’ 개념은 그 형식에 있어서 근대 정치담론을 빌려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구조변혁의 용법, 곧 정치변증법의 논리가 함께 내장되어 있다 하겠다.
다른 한편, 이행기 정치를 현실화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제위기의 정치학설’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전환의 계곡이론’으로 부터 벗어 날 수 있어야 한다. 아담 쉐보르스키(1985)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 계급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도정에서 경제적 하락에 의한 심각한 복지 손상의 시기, 즉 전환의 계곡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신의 복지수준을 가장 우선적 이익으로 생각하는 노동자계급이 합리적 선택을 하는 한에서 사회주의를 선택하기보다 비록 다소 불만족스럽다 하더라도 자본주의체제에 잔류할 이유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그 원리적 측면에서 결코 함께 할 수 없다는 비관적 견해로, 이행기 정치의 불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전환의 계곡이 불가피하다고 보는가? 그것은 이행기라는 격동적 시기에 자본이 몰수될지도 모른다는 위험 하에서 자본가들의 투자파업과 함께 대량의 자본도피가 발생하며, 이로부터 야기되는 경제공황의 발생으로 복지수준의 심각한 손상이 명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이 반드시 정치적 격동기에 투자를 회피한다고 볼 일반적 근거는 없다. 자본 투자의 일반적 기초가 수익성 원리(cost-benefit)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생산적 자본투자의 하락과 그것의 투기자본화는 ‘이행기’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 경제체제 그 자체의 내재적 결함으로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빈번했던 세계 경제 공황이나 거의 만성화된 세계적 경제 불황은 ‘이행기 없이’ 발생한 것이며, 오히려 과잉생산을 야기하는 과잉투자가 경제적 위기의 근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본도피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설혹 다소의 자본도피가 있다하더라도 정치사회적 불안심리 등 경제 내외적 위험(risk)의 분산을 조기에 실현 할 수 있다면, 사회적 수요에 걸 맞는 투자와 생산의 적정화 목표는 달성할 수 있다.
이행기 경제의 성패는 곧 경제적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민중생활경제부문,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시경제를 얼마나 민주적으로 구성해 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미시경제를 기업의 이윤추구 논리에 종속시켜 놓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시경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민중생활부문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미시경제는 ‘사회’ 그 자체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연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민생부문을 최우선으로 놓은 이행기의 경제학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자본, 화폐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는 ‘가치 경제’에서 생활수단의 생산과 삶의 질을 우위에 놓는 ‘사용가치 경제’에 대한 관심으로 인도한다. 맑스는 󰡔자본론󰡕을 가치와 사용가치 사이의 모순적 통일로서 ‘상품’ 분석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지만, 이후의 모든 입론과정은 사용가치의 문제를 배제한 채 화폐-자본 등 가치이론적 리듬으로 일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본주의 사회는 가치의 경제이며, 이는 자본, 상품생산을 특권화 하는 지배질서이기 때문이다.
사용가치계의 경제리듬에 가치계의 경제리듬을 종속시키는 대안경제 형성의 방법론에 대해 맑스는 이미 ‘소비적 생산’과 ‘생산적 소비’라는 개념을 통해 그 일단을 밝힌바 있다. 생산과 소비를 통합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이러한 논리는 사회주의적 생태페미니즘을 통해 개진되고 있다. 사회주의 생태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문순홍(1999).
사용가치의 경제학은 생태적 한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생태주의와 연접되어 있으며, 민중생활경제 부문의 주요주체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의 가계운영과 직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페미니즘의 문제를 시야에서 놓칠 수 없다. 이것은 다른 의미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폭력적으로 분리된 폴리스, 즉 정치와 오이코스로서의 경제의 재통일과정이다. 요약컨대,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여성들을 고된 가사노역에서 해방시켜 민중생활 경제부문의 건설자로 세울 수 있을 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결국 생산과 소비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나게 할 수 있고, 민주주의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수단이 과연 존재하는 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답하기 위해 시론적 차원에서 이른바 ‘생활경제’(life economy)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생활경제란 민중의 실제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과 그러한 삶의 내용에 대한 정의로서 사회주의이론에서는 그 동안 올바로 다루지 못한 현장 내지 로칼리티(locality)에 대한 적극적 사고의 소산이다. 그동안 현존 사회주의는 국가사회주의라고 불릴 정도로 정치-사회-경제를 당국가라는 지령식 경제중심을 통해 중앙집권적으로 지배했다. 이러한 경제구조로 사회와의 권력분산을 그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기란 애당초 요원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1년에 소비되는 인공위성과 미사일의 숫자야 중앙이 계획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국가가 무슨 재주로 ‘저 집에 수저가 몇 개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인민의 생활경제를 계획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말[言] 이전에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이미 실행되고 있는 오랜 현실 경험과 그것의 반복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삶이 구성되는 현장 혹은 그것의 소재지(locus)는 사용가치가 중심이 되는 민중생활경제의 기본단위로, 사회적 생산과 대중적 소비를 연결지우는 민중생활의 거점이자 세포다. 상품이 자본주의 경제의 세포인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러한 미시적 민중생활 현장이야말로 사회경제적 형태의 민중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비국가 사회 경제네트워크로 하여금 점차 시장체계를 대체한 힘을 갖게 하여 민중권력을 구체적으로 발원시킬 수 있는 전략적 근거지다. 이와 달리 시장체제를 사회주의 이행기 경제의 중추동력으로 제안하는 시장사회주의론에 대해서는 노브(Nove, 2001), 뢰머(Roemer, 1996).
요컨대, 현장성, 곧 로칼리티에 대한 고찰은 민중사회론를 구체화 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적 접근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행기에 있어서 국가와 사회의 관계 및 그 정치동학은 대단히 중요하다. 맑스는 󰡔고타강령비판󰡕에서 새로운 공동체 사회의 초기국면에서의 경제적 배분 원리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그 원리란 바로 동등한 노동의 권리와 노동에 따른 분배다. 문제는 이러한 노동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정치조직체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행기에서 사회적 입법을 통해 전 인민적 생존, 생활의 권리를 보증하는 정치체의 성격은 대체로 사회적 권리국가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국가도 그 자체로 사회를 대체할 수 없다. 이때 민중생활경제를 중심으로 대안사회를 실제로 구성해내는 사회권력적 세포가 바로 로칼, 곧 현장권력이며, 수평적 현장권력의 자유로운 교통으로 구성되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민중사회로 명명 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맑스주의 정치이론의 제1법칙은 피억압계급 대중들의 자기통치능력과 해방의 자치적 역능에 대한 긍정이다. 70년대 후반, 서유럽 좌파들 사이에 맑스주의 국가론을 둘러싸고 이른바 ‘보비오 논쟁’이 전개됐다. (보비오는 대중정치라는 맑스주의 원칙에서 벗어난채 맑스주의적 국가론을 구성하려 했다. 그 결과, 그가 제출한 대안은 정치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정당화하는 국가중심적, 자유론적 민주주의 주장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구갑우/,김영순(1992) 참조.)
이것을 부정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결국 계급적 소수 엘리트 지배를 항구화하는 과두주의를 옹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결국, 관건은 사회를 국가에 몰입시키는 국가주의적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국가를 해방의 정치를 실현하는 조직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민주주의의 문제를 사회주의와 동일한 비중으로 적극적으로 사고해야한다. ‘민주주의 없이 사회주의 없다.’ 새로운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추진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사회 내부에 다양한 대중운동 진지가 필요하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항구적 민주화를 압박, 강제함으로써, 사회의 힘에 뒷받침되는 민중권력의 상을 형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람시가 말하는 ‘역사블록’ 개념의 핵심내용이다. 이를 위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형태의 국가론 및 이에 기초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입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행의 전 기간을 통해 국가의 형태와 역할, 무엇보다 사회와의 관계가 재정립되어야 하겠지만, 국가의 소멸이 어떻게, 언제 이루어질지, 실제로 소멸이 가능한지에 대해서조차 현재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더 정확히 국가의, 정치의 소멸이 대중들의 해방에 실제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더 모르겠다. 오히려 현존사회주의의 경험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국가소멸론’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배경 하에서 더 많은 국가적 억압이 행해졌다. 국가-사회의 일정한 분리, 이를 통한 권력중심의 다원주의적 분산체제는 민중들의 실질적 해방에 도움을 주면 줄 일이지 해악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오랜 기간동안 제도적 국가권력과 대중운동의 활력을 통해 사회에 광범위하게 포진된 대중적 민주주의 권력간의 구분 및 일정한 세력균형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국가체제만이 아닌 국가권력과 다양한 형태의 사회 권력과의 공존이라는 정치적 다이내미즘의 확보를 통해서만 국가권력의 관료적 자립화 및 특정 정치지도자들의 독재화를 막고, 국가에 대한 인민대중의 민주적 통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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