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차기의 이른바 대권을 결정하는 해인지라 지난 1월 25일에 열린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에서도 그에 대한 언급이 빠지지 않았다. 여러 얘기가 오갔겠지만,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국가의 계급성이나 부르주아 대의제, 선거의 의의나 한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주목할 만하다고 할 것이다. 관련 보도1)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노 대통령은 연말 대선 쟁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라고 하는데, 경제정책은 차별화가 불가능하다. 경제는 기본이고 사회복지, 사회투자, 민주주의, 공정한 사회질서 등에서 역사적 차별성을 갖고 전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물론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그리고 부르주아 언론이 ‘민족중흥과 국민경제 발전의 지도자’로 선전하는 박정희의 딸인 역시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들이 집권하면 경제정책상에 근본적인 변화라도 있을 것처럼 떠벌리는 데에 대한 정치적 조건반사로서, 발언자 자신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제는 기본”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복지, 사회투자, 민주주의, 공정한 사회질서 등에서 역사적 차별성을 갖고 전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즉 그의 말에 따르면 결코 ‘기본적이지 않은 데에서’ “‘역사적 차별성을 갖고 전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그가 스스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그런데, “경제정책의 차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연말 대선에서의 후보들 간의 ‘쟁점’의 문제로 형식상 제기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이번 대선을 통해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경제정책의 차별화는 있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에서 이 발언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고, 부르주아 정치, 그 정권 교체가 의미하는 바의 정곡을 찌르고 있기도 하다. 스스로 “경제가 기본이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적 차별성”운운하는 부르주아 정치가로서의 일종의 자존망상의 허풍이야 대중을 홀리기 위한 말의 성찬에 불과한 것으로, 누가 ‘대권’을 거머쥐든 “경제정책의 차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만이 진실의 위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차별화가 불가능하다는 경제정책은 어떤 성격의 경제정책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서, 이는 이미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고백한 바 있다. 아니, 지난 집권 4년 동안의 일련의 반노동자적․빈민중적 경제․사회 정책들을 통해서 그것을 명백히 해온 바 있다.
아무튼, 그리하여 그가 말하는 것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필연적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진실이다. 부르주아 국가의 기능 혹은 그 역할은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보증하는 것인데, 현 시기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는 국가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고, 부르주아 선거제도란 기껏해야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주기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한 것일 뿐 결코 그 사회를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 실제로도 그것은 그렇게 기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것이 국가와 부르주아 선거의 기능이고 역할이며, 임무이다.
대선의 해이기 때문에 혹시 갖게 될지 모르는 선거에 대한 일말의 환상이라도 경계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가장 대중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그 중의 한 사람인 앨빈 토플러조차 한 시대를 풍미한 「제3의 물결에서 선거의 기능․역할과 효과에 대해서 예컨대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더라도 그것[대의제 정부]은 결코 어떤 의미에서도 인민에 의해서 통제된 적이 없다. 어느 곳에서도 그것은 산업국가의 기본적 권력구조...를 바꾸지 않았다. 실제로, 지배 엘리트들의 통제가 약화되기는커녕, 대의제라는 공식적 기구는 그것을 통해서 지배자들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관건적인 통합수단의 하나가 되었다.
선거는 그리하여, 그것을 통해서 누가 당선되든, 지배자들을 위한 강력한 문화적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사람이 투표의 권리를 가질수록, 선거는 평등이라는 환상을 조장했다. ... 선거는 아래로부터의 불만의 김을 뺐다.2)
그는, “제2의 물결3)의 정부들의 최고의 목표는 산업적 문명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 즉 부르주아지의 성장과 지배를 유지하는 것이었다며 “이러한 임무 앞에서는 기타 모든 사소한 차이는 빛을 잃었다”고도 말하고 있고, “정당과 정치가들이 기타 문제들을 둘러싸고 서로 다툴지 모르지만, 이 점에 관한 한 그들은 암묵의 합의를 이루고 있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4)
그렇다. 선거를 앞두고 무어라 떠들고 다투든, 그들은 결국 독점 부르주아지의 지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임무 앞에서는 암묵의 합의를 이루고 있다. 즉, 이번 대선을 통해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경제정책의”, 따라서 사회정책, 대(對) 노동자계급 정책의 “차별화는 불가능”한 것이다.
정치가들이, 이른바 시민운동단체들이, ‘진보적 지식인들’이 무어라고 떠들어대든, 대선에 어떤 환상도 갖지 말자.
그리고 우리의 길을 가자. <노사과연>
신자유주의 국가의 계급성과 대선
―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털어놓은 정치적 진실
안재호 |회원
1) 신승근 기자, "노 대통령 새해 기자회견 -- 대선국면 정치행보 예고", 「한겨레, 2007. 1. 26.
2) Alvin Toffler, The Third Wave, London: Pan Books, 1981, pp. 88-89.
3) 그는 그6가 “제3의 물결”이라는 말로 강조하려는, 극소전자혁명이나 정보기술혁명 등 최근의 과학기술혁명의 효과를 강조할 의미에서 그러한 과학기술혁명이 본격화되기 전의 부르주아 사회의 제 조류를 “제2의 물결”로 총괄하면서 소위 “제3의 물결”과의 단절과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지만, 이는 물론 부르주아 사회의 동질성과 역사적․발전적 차별성에 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로서의 그의 이해의 부족을 드러내는 부당한 주장일 뿐이다.
4) Alvin Toffler, 같은 책, p.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