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라질의 룰라 정권
브라질의 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통칭, 룰라)는, 주지하는 것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노동운동가․노조위원장 출신이며, 따라서 그의 당(브라질 노동자당, 통칭 PT)과 그의 정치적 약진, 나아가 집권은 우리 국내의 많은 노동운동 지도자들, 민주노동당을 고무시킨 바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보도(「조선일보 2007. 3. 7.)에 의하면, 노동자들의 “파업권 남용[!]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고 한다. 그것도 “전(前) 노조운동가 출신들로 구성된 정부만이 파업권 제한을 확립할 권위가 있(으며)”, 이러한 파업 규제는 “노조에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려는 것”이라는 파렴치한 궤변과 함께 말이다.
“노조위원장 출신 룰라 브라질 대통령, ‘공공부문 파업 규제’”라는 제목의, 브라질 ‘상파울루=전병근 특파원’ 발 보도에 의하면, 그가 이렇게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한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그가 “핵심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으로 우리 모두가 대가를 치러왔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각료인 파울로 베르나르도 계획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의 인식에서 “국민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핵심적인 공공부문에 대해서는 일정 범위 내에서 파업권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들이 모두 “우리 모두(를 위해서)”, 혹은 “국민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자.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파업을 벌여온 공공부문 노조들은, 자신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 혹은 “국민과 사회” 일반의 이익에 반하여 파업을 해온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문제의 기사는 룰라 대통령과 파울로 베르나르도 계획부 장관의 발언과 방침을 전한 후에 대단히 ‘공평하게도’ 다음과 같이 브라질 노동계의 반응을 전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계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중앙단일노조(CUT)의 아서 엔리케 다 실바 위원장은 “합법적인 파업권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적인 의사표현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대략만, 아니 극히 추상적으로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극히 협소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관점에서의 반응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예컨대, 노무현 정권 등 국가가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노동자․농민 등의 집회․시위 등을 무력으로 유린할 때마다 ‘진보적인 시민단체’ 등이 마찬가지의 ‘주장’을 펴곤 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파업 제한 조치에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추상적인 혹은 ‘헌법상의’ “민주적인 의사표현의 권리”의 문제를 넘어, 무엇보다도 그것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억압하는 것이며, 오로지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前) 노조운동가 출신들로 구성된” 룰라 정권이 “우리 모두(를 위해서)”, 혹은 “국민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규제하겠다고 말할 때, 저들은 여느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나 부르주아 정치가들 못지아니하게 (독점)자본의 이익을 “우리 모두”의 이익 혹은 “국민과 사회”의 이익으로 바꿔치고 있고, 그러한 교활함에 능란함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대선을 앞두고 최근 더욱 자주 듣고 읽게 되는 얘기로,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온통 누구누구계(系)로 줄서기 하고 있다지만, 과거 쟁쟁했던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었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열렬하고 광범한 지지를 받아 집권한 저들이 여느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나 부르주아 정치가들 못지아니한 (독점)자본의 계(!)가 되어 있고, 그러한 계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래의 독점자본의 계가 할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리하여 「조선일보는 문제의 기사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브라질은 인플레 안정과 수출 호조 등의 경제 안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러 있다. 정부는 연초 연간 국내총생산(GDP) 5% 성장을 목표로 2010년까지 2344억 달러 투자를 골자로 한 대대적인 경제성장 촉진 프로그램(PAC)을 발표했다.
이 부분만을 떼에 놓고 본다면, 그 자체로는 무척 담백한 서술이다. 그러나 앞에서 소개한, 기사의 앞부분 내용들과 아울러 생각할 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인플레 안정과 수출 호조 등의 경제 안정”이나 “연초 연간 국내총생산(GDP) 5% 성장을 목표로 2010년까지 2344억 달러 투자를 골자로 한 대대적인 경제성장 촉진 프로그램(PAC)” 등은 모두 부르주아 국가의 공헌이고 고무적인 계획임에 비해서 “인플레 안정과 수출 호조 등의 경제 안정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이 2%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위시한 노동자들)의 “파업권 남용”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그리하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규제하는 것은 정당하며 또 규제하지 않으며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이 부르주아지 계 신문은 강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경제성장 촉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본질상 (독점)자본의 대대적인 이익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2. 현대자동차 노사전문위원회 박태주 대표
룰라 대통령이나 브라질 노동자당의 자본계로의 변신(?)은 물론 특별한 예외가 아니다. 저 유명한 서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이나 그 정치인들의 역사적 ‘변신’을 위시하여 국내외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변신’의 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그렇게 ‘변신’하게 되느냐 하는 것은 지극히 중요하지만, 여기에서 그 이유․원인을 논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문제로서, 여기에서는 부르주아 제도[정치]권을 주요 활동무대로 삼는 ‘노동자 정치단체’나 ‘노동운동가 출신들’ 치고, [물론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의 주요 인물들처럼 이른바 ‘민주화 운동가 출신들’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자본의 앞잡이로 ‘변신’하지 않는 단체나 인사가 극극소수[極極少數]라는 사실만을 지적해두는 데에 머물기로 하자.)
다만 여기에서는 ‘진보적인’ 언론매체인 「한겨레가, 필시 ‘진보적인’ 의도와 ‘진보적인’ 문제의식에서였겠지만, 제1면의 머릿기사로까지 다루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사전문위원회) 박태주 대표 인터뷰”(2007. 2. 22.)를 주목해보자.
박태주 대표는 민주노총 소속 전문노련의 위원장을 지낸 인물로서, 즉 그렇게 고위의 노동운동가 출신의 “권위”로써, 문제의 인터뷰에서 현대자동차 노조에게 “유연한 생산방식 도입과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필시 “우리 모두”의 이익 혹은 “국민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겠지만.
아무튼 보도에 의하면 그는, “지금까지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환경이 급변해” “자동차산업은 소비자들의 수요를 적기에 맞출 수 있는 생산방식 구축이 중요하다”며, “유연하고 다기능을 갖춘 숙련 노동자들이 생산현장에서 끊임없는 개선을 통해 품질과 생산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대차와 같은 대립적 노사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진단, 1
노동운동가 출신의 권위로써 노동조합에게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라니, 간단히 말하자면, 민주노총의 주요 사업장의 하나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그나마의 투쟁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 노동자들을 독점자본 간 경쟁의 노예로 만들고자 하는 수작 바로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대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노사불신이 치명적 덫이 되고 있다”거나, “현대차 노사관계의 위기는 생산방식의 위기를 거쳐 현대차 전체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노사관계의 불안을 낳는 악순환의 구조다”, 혹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도요타” 운운하며, 그는 자신의 의도를 노골화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는, “현대자동차 노사 모두 이대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고 공멸하니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운운하기도 하고, “세계 자동차산업의 경쟁방식이 바뀌면서 노사문제는 현대차가 지속성장을 하는 데 발목을 잡게 됐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물론 노동자들이 파업하지 않는 노사관계,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는 노사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그는 박사이자 한국노동교육원 교수이다. 그런데 그가 만일 노동운동가 출신의 교수다운 교수, 학자다운 학자였다면, 그는 “지금은 환경이 급변”했으니, 혹은 “세계 자동차산업의 경쟁방식이 바뀌었으니” 노동조합은 회사의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라는 속물적인 설교를 하는 대신에, 그 ‘급변한 환경’이나 ‘경쟁방식’의 변화의 원인과 성격이 무엇인가를 노동자들에게 밝히면서, 그러한 원인과 성격에 조응하는 대응을 요구했어야 할 것이다.
도대체 “현대자동차 노사 모두”(?) 혹은 박태주 박사로 하여금 “이대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고 공멸하니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게 하는 “급변한 환경” 혹은 변화된 “경쟁방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동차 산업에서의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 거대 자동차 자본의 부침에 다름 아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자본인 미국의 GM이, 그에 버금가는 포드나 크라이슬러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 말이다.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경쟁의 격화, 거대 자본들의 부침과 위기는 오늘날 물론 자동차 산업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산업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물론 거의 모든 산업부문에 “고용보장” 운운하는 속삼임과 함께 노동자들에게 철저히 자본과 경쟁의 노예가 되라고 독려하고 설교하는 박태주들, 맹목적 황금신의 사제들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에 협조한다고 해서 고용이 보장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노동자들의 고용문제, 실업과 빈곤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생산성이 낮은 게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거꾸로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 위에서는 생산성이 너무나 높은 것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혹은 생산성이 비해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이 이미 너무 낡은 생산양식, 너무 낡은 사회체제인 것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본 혹은 자본주의는 물론 최종적으로 그 생명을 다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동생산성을 높여가고 경쟁을 격화시켜 갈 것이지만 말이다.
한편 그는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급여가 많다고 비난하는 것도 옳지 않다”며, “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는 게 무엇이 잘못인가” 하고 물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역시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한 ‘고임금 노동자들의 양보’ 주장을 빼놓지 않고 있다. 문제의 인터뷰 기사에서 곽정수 「한겨레 대기업전문기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박 대표는 또 “산별노조의 기본은 사회적 연대정신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대원칙”이라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희생과 양보를 발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현대차 사내하청 및 중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60-70%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희생과 양보를 발휘해야 한다!? ― 지난해와 지지난해 비정규직 저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위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낮추라며 민주노총 앞에서 시위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소위 ‘사회원로들’이라는 저 속물들의 인식․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인식․주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학자라는 사람이 말이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그에 따른 빈곤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저임금은 결코 자본 측이나 사회원로들이라는 저 속물들, 조․중․동 등 독점자본의 나팔수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른바 ‘고임금’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서 조금씩이지만 임금을 올려가고 있기 때문에 저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그나마의 임금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희생과 양보를 발휘해야 한다”니? 이 역시 노동자들의 그나마의 투쟁력을 철저히 제거하려는 수작에 다름 아니다. 하기야 대통령 노동 담당 특보를 지내고, “아직도 나는 사회적 대화를 꿈꾼다”며 민주노총을 노사정위원회에 끌어들이지 못하여, 즉 민주노총의 그나마의 투쟁성도 제거하지 못하여 끊임없이 안달하는 그가 못할 소리가 무엇이 있으랴마는.
기사에 의하면, 현대자동차가 노사관계 개선안을 마련하고자 지난 2월 8일에 출범시켰고 박태주 박사가 대표인 ‘노사 전문위원회’에는 “노사가 추천한 10명의 노사 및 자동차 산업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고, 2009년 3월을 1차 시한으로 해서 노사관계 개선과 당면 현안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결국 현대자동차 노조는 이러한 너절한 위원회를 거부하는 대신에 “노사 및 자동차 산업 외부 전문가들”을 추천했다는 뜻이다. 작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3. 경쟁력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현대자동차 노조가 노사전문위원회의 구성에 동의한 것은 어쩌면 현대차가 조만간 맞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 혹은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착오, 그리하여 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브라질 룰라 정권의 파업 규제 방침도, 현대자동차 노사전문위원회 박태주 대표의 ‘노사 빅딜’ 주장도 모두 국가와 기업이 맞고 있는 경제적 위기를 ‘경쟁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경쟁은 위기를 끊임없이 격화시킬 뿐인데 말이다.
사실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자본의 허위 이데올로기가 사회를 지배함으로써, 만성적 과잉생산이라는 끝없는 위기의 원인은 대중들에게 은폐되어 있다. 그 때문에 대중은 경쟁력 강화를 통해서 위기를 해결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정치지도자가 그것을 해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만은 없는 기사겠지만, 예컨대 지난 3월 7일자 「조선일보는 “유권자 1015명에게 ‘만약 지지하고 있는 대선후보를 10분간 만난다면 무슨 말을 가장 하고 싶은가’ 하고 물었더니,” “‘경제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응답자가 10명 중 6명 이상에 달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만큼 과잉생산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위기란 필연적인 것이며, 결코 어떤 정치가나 정권의 정책 여하에 좌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대중적으로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운동가 출신 명망가들의 예의 속물적 행각들도 물론 그러한 은폐․환상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경쟁력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다면, 그들에게는 독점자본의 노예의 길, “생산성 향상에 협조하는” 길 이외에는 열려 있지 않다.
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노예화의 길에 맞서, 위기의 원인과 본질은 만성적인 과잉생산이자 노동생산력과 조응하지 못하는 낡은 생산양식, 낡은 사회체제라는 점을 끊임없이 대중에게 선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 하여야 노동자 대중이 경쟁력의 강화를 통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릴 수 있으며, 문제의 원인과 정면 대결에 나서 마침내 해방을 전취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정세
일부 ‘노동운동가’ 출신 명망가들의
반노동자 행각
채만수 |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