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자리에 가서 이주노동자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이주노동자가 뭐냐는 물음과 좋은 일 하신다는 덕담이다.
노동자는 나이, 성별, 국적에 따라 차별받지 않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라 부르는 것이 맞다고 설명해야 할 자리라면 다소 장황하게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흔히 외국인노동자라 하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라고 답을 한다.
좋은 일 하신다는 덕담에는 그냥 웃고 말지만,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정말 예외없이 듣는다) 좋은 일이라는 것이 뭘까, 자문을 던지곤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들이 누려야 마땅할 권리를, 이게 당신들의 권리라고 알려주고 그 권리를 찾도록 손톱 끝 만큼 보탬을 주는 것 뿐인데 좋은 일이라는 칭찬까지 들을 자격이 있을까 싶다.
이미 이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나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을 벌려는 목적 하나로', '불법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일자리까지 빼앗으면서' 와 있는 것이 아니다.
충남 부여에 흔히 정화조라 부르는 똥통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그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국에서 온 노동자들 여럿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똥통을 만들 때 플라스틱으로 형을 떠서 굳히는 줄만 알았다. 플라스틱으로 총도 만들고 차도 만드는 세상이니 강도가 센 플라스틱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회사에 찾아가 임금 체불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그 이야기를 하니 웃는다. 그렇게 만들면 백퍼센트 깨진다면서 특정한 틀에 얇은 필름 수백 장을 붙여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야 압력에 견딜 수 있다는데, 이 일을 사람이 직접 한다고 설명한다. 필름을 붙이고 접착제를 바르고, 또 필름을 붙이는 일을 똥통 안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는데, 접착제 냄새가 지독해서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도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어질어질하다는 설명을 한다. 그거 익숙해지는데 육개월, 일년이 걸린단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전국에 있는 정화조 회사에 이 일을 하는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한국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주노동자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이 점이다. 이미 이 나라에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
심야에 물류센타에서 물건을 내리고 올리는 사람들, 허영만의 식객에 나오는대로 순대공장에서 순대 만드는 사람들, 이들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들이다.
이 나라 정부는 미등록을 조장하고 있다
이른바 합법이라 하는 '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 또는 그보다 약간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이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거론할 필요도 없으려니와 다른 사업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같은 나라 동무들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월급이 적다. 단지 등록 신분이라 단속에 노출되지 않는다 뿐이지(단속할 때는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일단 잡아가고 보는 식이지만) 적게 삼십만원 정도 차이나는 처지는 이네들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대체로 삼십만원 정도면 이 나라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본국에서 한 가족이 한 달을 살 수 있다). 노동 강도가 비슷하다면, 처우가 비슷하다면 더 많이 벌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업장을 이탈하여 알음알음으로 돈 더주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제도는 없어졌지만 최초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에 들어올 때, 이네들의 신분은 산업연수생이다. '외국인등록증'에 E-3라고 기재되어 있는 산업연수생은 '현실적으로' 퇴직금이 없다. 대법원에서 산업연수생도 퇴직금 적용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지만, 노동청에 퇴직금 미지급에 대한 진정을 내면 E-3 기간의 퇴직금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나라 정부에서 하라는대로, 이른바 합법적인 산업연수생으로 있으면 퇴직금이 없다는 말이다. 사업장을 이탈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면 그 기간은 퇴직금 적용을 받는다.
내가 내 입으로 사업장을 나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주동무들이 먼저 말한다. 여기 나가서 다른 곳에 취직하면 퇴직금 받을 수 있는 거냐고.
이주노동자들은 상습적인 욕설과 폭행에 노출되어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퇴직금 문제만 문제가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 나라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일 마치고 술 마신다고, 사장에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상습적인 욕설과 폭행을 당한다.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이 감금되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지들 몇과 함께 갔더니 무슨 부장이라는 사장 아들이 나와 어떤 새끼가 전화했냐고 난리를 친다. 이주노동자들이 감금되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하니 감금은 무슨 감금이냐며 오히려 큰소리다. 지금 그 동무들 어디에 있냐고 물으니 방에 잘 있다고, 문을 걸어 잠근 것도 아니고 밖에서 못질을 한 것도 아닌데 무슨 감금이냐며 가서 보란다. 숙소에 가보니 방 안에 이주동무들 셋이 누워있다. 그 부장이 대뜸 이 새끼들 누가 누워있으래, 소리 지르며 눈을 부라린다. 같이 간 동지가 어따대고 이 새끼라고 하냐며 싸움이 시작됐는데, 조금 지난 후 부장 말이 자기는 나오지 말라고만 했다면서 감금이 아니라고 한다.
사장을 만나서 한국 노동자들에게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냐, 이게 감금이지 뭐냐, 당장 경찰을 불러 고발하겠다라고 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사정을 한다. 자기들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 아주 형편없는 놈들이라고.
얘기인 즉, 밥을 주면 반찬 투정을 한다는 것이다. 일요일에 술 마시고 병들을 제대로 치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업복을 제때 빨아입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버릇 고치려 조금 때렸다는 말을 한다.
조금 때리다니. 그 나라에선 훌륭한 인재라 해서 기술 배우러 온 노동자를, 버릇 고친다고 때리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우리 단체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린 적이 있다. 한국에 와서 일하면서 욕을 들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백퍼센트 있다고 답했고, 한 두 대라도 맞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구십퍼센트 이상이 맞은 적 있다고 답했다. 때리는 도구도 다양해서 막대기, 스패너, 빗자루 등이었으며 심지어 망치로 어깨를 맞은 이주노동자도 있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이주동무들과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저 새끼, 이 새끼 하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봤다. 그거 나쁜 말이라고, 그러니 쓰지 마라고 했더니 회사에선 자기들에게 항상 이 새끼 저 새끼 한다는 것이다. 그걸 무슨 호칭으로 알고 있는 이주동무도 있었다. 인사하면서 씨발놈 하지 않는 게 다행일까?
단결, 연대는 원칙이다
다소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은 항상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힘을 합치면 자본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단결하지 못하게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직군을 나누고 관리자와 현장노동자를 나누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자본은 이주노동자들이 이 나라 국적을 가진 노동자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가르친다. 월급이 적은 것도 당연하고 등록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불법이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근로기준법 제5조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고 나와 있다. 당연히 법만 그렇다.
민주노총 강령엔 "우리는 전세계 노동자와 연대하여 국제노동운동 역량을 강화하고 인권을 신장하며, 전쟁과 핵무기의 위협에 맞서 항구적인 세계평화를 실현한다."라고 나와 있다. 솔직히 강령만 그렇다고 보일 때가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현재 이 나라의 모순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할 것까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운동의 한 방향이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여성, 장애인, 어린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이주노동자도 사회적 약자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주노동자들의 집회에 가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다."
사람다운 대우도 받지 못하고, 노동자의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우와 보장을 해주는 것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출발선이라 할 수 있다. 이들에게 노동자의 권리가 뭔지 알려주고 그 권리를 쟁취하도록 연대하며, 이들이 자기네 나라에 돌아갔을 때 그 나라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전파할 수 있다면 "전세계 노동자와 연대"하는 일, "국제노동운동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가능할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 <노사과연>
아직 출발선에 서지도 않았다
서민식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