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의 분노가 폭발 하다.
지난 달 『정세와 노동』에 실린 짧은 글에서 다 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었다.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서 ‘서민물가’를 잡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연일 폭등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의료보험 민영화, 미 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등 ‘국민생활’에 직접적 피해를 주는 정책들의 추진함으로써, 이른바 ‘국정지지도’로 표현되는 그들의 척도로 보아도 대중적 반발에 직면해 있다. ‘민심이반’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그래 서 그들의 반발은 시작되고 있으며, 그들의 분노는 정권의 이러한 공세가 점차 가시화 될수록, 이에 비례하여 커져갈 것이다. 지하철 타기가 어려워질수록, 수돗물 가격 이 전기요금이 올라갈수록, 아파도 병원가기가 쉽지 않을수록, 자식들 교육시키기가 힘들어질수록, 그들의 분노는 커져갈 것이다.”1)
이렇게 이명박 정부는 집권을 하자마자 작심이라 도 한 듯, ‘중간계급에 대한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을 시작했고2), 그 특유의 ‘성실함(?)’을 바탕으로 이러한 지각 운동 을 계속하며, 곳곳에 더욱 깊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대중의 분노는 그 지각의 터진 틈 가운데 어느 곳에서 분출될지 모르기는 해도, 자신이 폭발할 곳을 찾아 끊 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역사의 필연은 이렇게 땅 밑의 거대한 마그마처럼 쉼 없이 운동하고 있었고, 그 틈 가운데 ‘광우병 쇠고기’라는 우연의 분화구로 마침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의 시작은 4월 29일, MBC의 PD수첩이었다.3)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이 방송된 후, 인터넷은 관련 글들로 들끓기 시작했고, 5월 2일에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첫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4일부터 대중들은 촛불집회를 넘어 거리로 나갔고, 이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은 가두시위가 엿새째 이 어진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연행자 수는 200명(불구속 입건 179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정부의 강경‧폭력 진압으로 인해, ‘광우병 쇠고기’문제로 촉발된 대중의 분노는 더욱 커져가고 있으며, 그간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 정권에 대한 분노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9일 정부의 고시 강행은, 대중의 분노에 가뜩이나 비싼(!) 기름을 드럼통째 붓은 격이 되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여론에 밀려 유보하기로 한, ‘대운하 계획’을 사실 물밑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양심선언, 정부 문건 등으로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다, 29일에는 언론 을 통해, 환경부가 담당하는 ‘환경영향평가’를 지자체로 이관하는 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대중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또 같은 날 행정안전부에서는 ‘지방 상수도 통합 전문기관 관리계획’이라는 ‘수돗물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였다.
점입가경(漸入佳境) 아니 점입광경(漸入狂境)이다! 정부의 소위 ‘밀어 붙이기’의 끝은 어디까지이며, 그들의 이런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소위 ‘다함께 논란’ 과 시위 대중의 성격
한편 우리가 이번 시위‧투쟁의 전개 과정 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바로 ‘다함께’를 둘러싼 논란이다.
촛불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함께는 그 대오의 선두를 이루며 가두시위를 이끌었다. 대중은 깃발과 방송차를 따라 행진했고, 확성기의 구호에 맞춰, 다함께 외쳤다. “행진”, “협상무효, 고시철회”, “민주 시민 함께해요”...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고, 시민들이 연행되기 시작할 때, ‘다함께’의 깃발은 거기에 없었다(물론 집회에 참가했던 ‘다함께’ 회원 모두가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회는 오늘만 있는 것이 아니니, 오늘은 해산하고, 내일 다시 모이자”는 그들의 말과 함께, 휘날리던 그들의 깃발도, 행진의 선두를 이루던 그들의 대오도 분명 사라졌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며칠 동안 반복되었다. 그 때부터 논란은 시작되었다.
“다함께를 따라가면 안 된다”, “다함께를 따 라가면 연행된다”, “다함께는 프락치다”, “다함께는 충돌을 일으키려고 한다”, “다함께는 반자본주의 단체다”, “다함께의 피켓을 들지 말자”, “우리는 순수하 다”, “우리의 깃발을 만들자”, “다함께를 몰아내자” 등등.
이 논란에는 물론 시위 대중을 분열시키려는 저 들의 교묘한 책동도 한 몫 했겠지만, 살펴본 것처럼 ‘다함께’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대중으로부터의 ‘신뢰의 상실’이다. 그들은 촛불집회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참가하고 있으 며, 그 속에서 발언을 통해, 신문과 유인물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알려왔다. 대중들의 호응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가장 중요한 순간, 그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그 러한 일이 며칠 동안 되풀이 되었다. 대중들은 그들을 의심하게 되었고, 그들의 신뢰는 무너졌다.
만약 그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대중들과 함께 했 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경찰의 진압을 함께 몸으로 막아내고, 끝까지 저항하다 연행되는 상황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면, 대중의 ‘다함께’에 대한 입장은 정반 대로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그 때도 저들의 교묘한 ‘이념 책동’으로 일정한 논란은 있을 수도 있지만, 대중은 말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 .”, “그들은 우리 편이다. 내 눈으로 분명히 보았다.”, “색깔 논쟁으로 몰아가지 마라.”, “그들이 반자본주의단체라 할지라도, 광우병에 반대하는 이 사안에서는 우리 편이다.”
이렇게 대중의 신뢰를 획득해야 하지 않았을까? 1917년 7월, 러시아 대중은 ‘볼쉐비끼는 독일의 스파이’라는 임시정부의 선동에 잠시 혼란스러워했지만, 볼쉐비끼는 이러한 거짓선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대중들의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며, 오히려 대중들의 지지는 날로 높아졌다. 이러한 대중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몇 달 후 볼쉐비끼는 혁명에 성공할 수 있 었다. 러시아 대중들에게 볼쉐비끼가 주었던 믿음! 볼쉐비끼는 언제까지나 우리의 편이라는 그 믿음! 우리는 대중으로부터 그러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활동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다함께 논란’은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4)
또한 이 논란의 전개 과정에서 안타까운 한 측면 이 있는데, 바로 색깔 논쟁과 지도부 논쟁이다. 대중들은 스스로를 순수한 대중이라 생각하며, 소위 불순한(?) ‘깃발부대’와 자신들을 분리시키고 있다. 이 같은 전개 는 ‘다함께 논란’으로 증폭된 면도 있겠지만, 본래 집회의 초기부터 발생되고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이 시위의 성격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연호와 박수, 곳곳에 등장 하는 ‘태극기’, ‘대한민국의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헌법 제1조’ 그리고 ‘애국가’의 열창, “나는 빨갱이가 아니라”는 발언, “정치문제는 이야기하지 말자”는 발언, “우리는 순수하다”는 발언들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던 대중들, 그리고 촛불집회가 가두시위로 발전한 지금에도 경찰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비폭 력’이라는 구호와 예비군의 등장이 이 시위의 성격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들은 이 문제를 ‘이명박의’, ‘이명박 정권 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들의 삶이 힘들어진 것도, ‘광우병 쇠고기’의 위협도, 이러한 문제를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폭력뿐 인 것도 ‘이명박’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명박’은 ‘대미굴욕외교’로, ‘독도문제’로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이명박’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국민의 적이며, 매국노이다. 그들은 자 신이야말로,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는 애국자이며, 민주주의자, 바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민’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세력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가 어떠하든 현재까지는 분명 정신적으로는, 자신의 현재 처지에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는 중간계급이며, 따라서 이 시위는 ‘중간계급운동’이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지 금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재협상 선언’이 바로 그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정반대로 더욱 급진전될 수도 있는데, 바로 지금 ‘세계적 공황’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으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은, 이미 탐욕이 그들의 눈을 가려 이성을 잃었고, 그들이 딛고 있는 지반 곳곳에 균열을 만들어 놓았다. ‘광우병 쇠고기’는 그 균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이 강행하고 있는 ‘대운하’, ‘공기업 사유화’, ‘한미FTA’로 인해, 그 균열은 더욱 깊어 질 것이고, 거기에 정점에서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경제적 상황, 즉 공황으로 인해 균열 곳곳에서 대중의 분노가 쉼 없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상태를 신중 히 고려하며, ‘광우병 쇠고기’와 ‘대운하’, ‘공기업 사유화’, ‘한미FTA’ 등을 질긴 동아줄로, 끊어지지 않을 쇠사슬로 묶어놓아야 할 것이다. 대중이 이미 그들 삶의 고통을 통해 인식하기 시작한 이러한 연관을 끊임없이 그들에게 각인시키고, 나아가 지금의 이런 문제와 경제적 문제가 단지 ‘이명박의’, ‘이명박 정권의’ 그 것이 아닌, 자본주의 그 자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해야 한다. 그렇게 전선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분노가 ‘재협상 선언’으로 수 그러들거나, 체제 내적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곳곳의 균열에서 연쇄적으로 반응하게 하고, 저들이 딛고 있는 그 지반 자체를 무너뜨리며 거대하게 분출해, 땅 밑을 도도하게 흐르던 역사의 용암으로 새로운 대지를 만들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그 새로운 역사를 주도적으로 쓸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은 우리 노동자 계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청 계천 노숙 투쟁(?)
먼저 이명박 정권으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의 끝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을 보자.
2003년 손배가압류, 노조분쇄, 비정규직 양산 등 의 살인적 노동정책에 반대하며 수많은 열사들이 산화해 간 바로 그 열사정국에서 민주노총은 어떻게 대응했던가? 2007년 비정규악법에 반대하며 진행되었던 민주노총의 투쟁은 또 어떠하였던가? 10년 전으로 돌아가 1996/97년의 총파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이렇게 민주노조운동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역사를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으 며, 지난 20년을 이어왔다.5)
그리고 그만큼 독점자본은 의기양양해졌다. 최근 까지 그들이 밀어붙여서 되지 않았던 것이 있었던가? 정리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양산법, 해외파병, 한미FTA, 그 어느 것이나 그들이 마음먹은 그대로 일은 진행되었 다.
하지만 그들은 잊고 있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몰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지 않으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것을. 그래서 소위 ‘선진국’의 독점 자본은 적당히 도망갈 구멍을 열어주며, 말 잘 듣는 적당한 큰 쥐들(자유주의 혹은 사회민주당 정권)을 곧잘 자신의 대리로 내세운다.6) 그렇지만 한국의 독점 자본은 지난 10년 동안 적당히 큰 쥐들이 자신들의 일을 얼마나 잘 처리해주었는지를 모른 채, 앞 뒤 분간 못하는 너무 큰 쥐를 내세웠다. 쥐/박/이!
그들은 탐욕에 눈이 먼 채, 폭주하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태는 지난 시기와 전혀 다르다. 지난 시기의 공격이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주요하게 가해졌다면, 지금의 공격은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 모두에게 해당되는 지점까지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 는 것이다.7)
그래서 이명박 정권의 지지도는 급격하게 내려가 고 있는 반면, 그것에 불만을 품은 분노하는 대중들은 (지난 날 민주노총의 투쟁을 비난하던 국민들의 정서로 볼 때,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민주노총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민주노총은 중앙을 광우병 쇠고기저지 비상체계로 전환하고, 미국산 쇠고기 운송거부 투쟁, 대정부 투쟁을 선포했으며, 5월 25일부터는 청계천에서 지도부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그들이 그렇게 외쳤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장이 열렸다. 하지만 그것은 ‘국민’과 함께 할 수도, 우리 ‘노동자’ 대중과 함께 할 수도 없는 투쟁이다!
대중들이 먼저 투쟁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제 그 문 앞으로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는 그들의 모토대로 ‘국민’(의 수준에서) ‘함께’ 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으로 그 동안의 실추 된 이미지를 약간 만회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혹은 그것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들조차 민주노총에 기대하는 것은 그것의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가?
노동자 계급은 국민의 수 준으로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한계를 뚫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자 신의 투쟁을 ‘광우병 쇠고기’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말하고 있듯이,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교육자율화조치 반대’, ‘의료영리화 반대’, ‘ 대운하 반대’로 이 투쟁을 상승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원동력으로 실질적 ‘주간연속 2교대’ 쟁취 투쟁을 진행하고, 장기 파업장 투쟁, 비정규직 철폐 투 쟁을 전개시켜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총력투쟁인지 총파업인지 그 수위도 알 수 없는 6말/7초 총력투쟁의 방침은 공 중에 부유하고 있고, 조합원의 촛불집회 참여가 지침으 로 내려지고 있으며, 민주노총 촛불결의대회가 계획되고 있다. 서울 지하철‧도시철도로 시작된 공공부문의 투쟁은 완전히 방기되어 있고, 야간노동 철폐 투쟁으로 나가야 할 금속의 ‘주간연속 2교대’ 투쟁은 지금처럼 가다간 ‘주5일제’ 투쟁 때처럼 빈껍데기로, 아니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발목을 잡지 않 을까 걱정이다.
이런 바로 지금이 청계천 침낭 속에서 노숙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민주노총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고 광고나 할 때가 아니라, 실질적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대장정(!) 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이제 그만 침낭을 걷어치워라!)
물론 지침을 내려야 산별에서 거부하고, 산별은 단위 사정을 핑계되고...단위는 단위대로 조합원 정서를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잘 안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후퇴하고, 후퇴한 것이다!
지금이 후퇴에서 반격으 로, 우리의 행군을 전환할 때이다. 지도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말의 자리에 연 연하지 마라. 이미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휘청거리고 있는 백척간두의 자리가 아닌가? 지금 우리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중의 수준에서 싸울 생각은 하 지 말라. 오히려 구속을 각오하고, 실질적 총파업을 조직하라. 제1의, 제2의 임시 집행부를 조직해 놓고, 싸워라. 대중이 열어놓은 공간에 우리의 조직을 가지고 들어가라. 그리고 이 싸움을 대중의 수준이 아닌, 우리의 싸움으로 확 대하라.
당신들이 그러한 각오로 싸운다면, 바닥까지 떨 어졌던 지도부의 신뢰는 다시 설 것이고, 우리는 다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래로부터, 현장 으로부터 이 싸움을 조직할 것이다!
6월 19일 임시대대 전까지 현장을 조직하자! 그 리고 다가올 임시대대가 자본의 목줄이 우리에게 있음을 힘차게 선포하는 자리가 되게 하자! <노사과연>
1) 김해인, 「사회주의에 ‘희망’이라는 옷을 입히자!」, 정세와 노동 제35호(2008. 5), pp.35-36.
2) “‘비즈 니스 프렌들리’, ‘엄중한 법집행’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친기업‧노동자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정부의 반노동자 정책에 대해서는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이다.”(김해인, 같은 글, p.36.)
3) 이것은 이 사회에서 매스미디어가 얼마나 강력한 힘과 파급력을 가졌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이 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해 ‘한미FTA반대투쟁’ 시기부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가?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재개방했을 때에도, 수많은 단체들이 ‘불매운동’ 등 투쟁에 나서며 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는 날개 돋친 듯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팔려나갔다. 물론 지금의 수입조건이 당시와는 다르고, 그동안 미국산 쇠고기의 문제점을 알리며 투쟁했었던 성과가 현 정세를 만드 는데 기여했던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것에, 이 방송이 작용했던 커다란 영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래서 다시 한 번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힘에 놀라며, (저들의) 매스미디어의 영향력 아래 있는 우리 자신을 반성적‧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나아가 (저들의) 매스미디어에 대항하는 우리의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4) ‘다함께 논란’에서 구호의 문제-대중들은 이미 ‘협상무효, 고시철회’의 구호를 넘었으나, 확성기에서는 ‘협상무효, 고시철회’의 구호만 반복됨-도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고, 우리 역시 이 지점에서 슬로건에 관한 일정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논란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본질적인 부분은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5) “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한 총파업은, 지도부에 의해 수요파업으로 수위가 조절되더니, 총선으로 심판하자며 물러났다. 98년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노동법상 해고요건 완화에 합의하고, 불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지도한 단병호 비대위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파업을 철회했다. 98년 7월 2기 이 갑용 집행부 역시,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파업을 철회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로 복귀했다. 2001년 상반기 단병호 위원장은 ‘김대중 퇴진’을 내걸고 파업을 하였으 나, 계속되는 파업 연기 방침에다, 대공장(현대차) 등의 참여 부족 등으로, 김대중의 약간의 양보만을 얻어내며, 자진 출두 후 구속되었다. 2002년 발전 파업은 민주노 총 지도부에 의해 유린당했다. 4‧2 연대파업은 유보되고, 항복문서에 서명하였다. 2003년 철도 파업은 어떠한가? 83%의 기관사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음에도 노조 는 파업을 철회하였다. 열사‧분신 정국에서 노조 지도부의 투쟁은 어떠하였는가? 11월 6일 4시간 파업과 12일 하루 파업!!! 열사‧분신 정국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여준 전술이었다...2004년 1월 16일 민주노총 4기 이수호 위원장이 당선된다. 이수호 위원장은 선거 때부터, “교섭을 강화해야 한다”, “2006년 준비된 총 파업을 하겠다” 운운하더니, 궤도 투쟁을 허무하게 마무리하고, 공무원 노조의 투쟁을 방기하고, ‘사회적합의주의’의 색채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2005년에는 거듭된 대의원대회의 무산에도 불구하고, 직권으로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비정규직 투쟁을 방기하고 교섭‧대화에 열중하였다. ‘비정규직 철폐 ’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비정규권리입법 쟁취’였다. 이렇게 한발, 한발 물러선 결과가 오늘 민주노조의 현실을 낳은 것 아닌가?”(김해인, 「후퇴-양 항공조 종사 노조의 파업, 긴급조정권, 그리고 민주누총의 후퇴」, 정세와 노동 제10호(2006.2), pp.48-49.)
6) 물론 또 다른 측면에서, 그 도망갈 구멍은 노동자계급의 싸움이 없다면 전혀 열리지 않는다. 그만한 구멍의 쟁취도 노동자 계급의 오랫동안의 투쟁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 다.
7) 물론 더 본질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은 노동자계급에게 집중적으로 가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