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이 미쳤다
이명박 정부는 오래된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을 되살려 냈다. 경제성장 몇 %와 수출 얼마 달성이라는 국가적인 목표, 기업과 재벌을 중심으로 한 성장발전, 이를 수행하기 위한 강력한 법질서 확립, 전국차원의 대규모 토목공사 등. 변형된 것이 있다면 개발독재에 신자유주의의 외피가 덧씌워진 것이다. 그러나 정부 출범부터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 비틀대더니 급기야는 목표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장 확대뿐이다. 이 시장화는 교육에도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터 선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은 한발 더 나아가 오래된 것과 가장 첨단의 것이 함께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인수위시절 충격처럼 다가온 영어 몰입교육은 파장을 일으키고 인수위원장의 총리 꿈을 접게 했다. 그러나 이는 잠시 숨고르기 일 뿐 수면아래서는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평가 등급을 매기겠다는 국가차원의 영어 평가시험이 착착 준비 중이다. 또한 수업을 영어로 하는 계약직 단기근로 조건을 가진 교사들이 양성 중이다.
2008년 3월 6일 아직 입학의 흥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간에 각 시도 교육청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같은 시험문제로 치르는 진단평가라는 이름의 일제고사를 실시했다. 정부는 진단평가를 실시하면서 학교의 모든 정보는 감추어져서는 안 되며, 현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부족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어떠한 후속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학교별 혹은 개인별 성적을 발표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학교들은 현실적으로 드러난 학교의 서열을 올리기 위해 학생들을 수단화하는 서열경쟁에 들어갔다.
교육 시장화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청사진이 4.15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통해 드러났다. 추진계획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1단계는 4월중으로 29개 지침을 즉시 폐지하고, 2단계는 6월중으로 규제성 법령 13개 조항을 정비하고, 3단계는 7월 이후에 추가 발굴 및 각종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학교는 10월에 있을 일제고사를 앞두고 학교자율화 조치를 백분 활용하고 있다. 즉, 10월 학력고사에서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 우열반, 0교시, 야자, 사설 모의고사 등을 하나하나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학교의 교사들이 0교시, 야자가 교육적인 효과가 있어서 이를 밀어붙이기 보다는 이 정도라도 성의를 보여야 학부모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학생들만 죽을 맛이다.
학벌사회는 강화되고 있고, 로스쿨을 통하여 신종 대학서열체제가 구축되어가고 있으며, 입시경쟁은 내신ㆍ수능ㆍ논술의 트라이앵글에서 영어를 더한 죽음의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어 가고 있다.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공교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적인 교육은 이제 노골적으로 시장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0교시와 심야 보충수업을 넘어 사교육산업에 학교와 학생을 내맡기는 야간방과후학교라는 변종이 등장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교육이 미쳤다’며 침묵하는 교사들과 사회를 향해 촛불을 들었다.
2. 자율화라는 이름의 시장화
신자유주의는 특히 교육의 시장화는 경쟁력, 수월성, 효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관철되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수사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미 모두에게 내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율성과 다양성이라는 포장지로 시장이라는 내용물을 포장하고 있다.
수월성ㆍ효율성이라고 하든 자율성ㆍ다양성이라고 하든 본질은 다르지 않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교육을 수단화하는 것이다. 이의 존립 근거는 경제 성장, 인적 자원이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참혹한 인적자원의 논리는 학교의 교육활동을 분업화된 생산과정으로 재편하고 있다. 교사의 교육활동이 더 이상 총체적이고 전면적이기를 부정한다. 업무는 영역별로 세분되고, 직무의 위계별로 분업화한다. 분업은 개인에게 업무량을 할당한다. 할당된 작업량은 성과 고과에 계량화되고 평가된다. 평가 결과는 등급이 되며 수당으로 지급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은 자본이 된다. 자본으로서 지식의 획득은 타인과 소유의 양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며, 그 지식을 통해 이윤획득 경쟁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획득한 지식의 양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이 등급에 따라 직업이 배분된다.
이를 사회적으로 계량화하여 판정하기 위해, 시장이 학부모라는 소비자들에게 학교라는 상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공급하기 위해, 일제고사는 필요하다. 일제고사 결과는 모두를 서열화시키기에 충분해야 하며, 그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당연히 공개된 정보에 의해 각기 다른 상품은 다른 가격을 가져야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는 다양화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프로젝트는 이를 지향하고 있다. 공교육에 관한 국가의 책무는 폐기되어야 하며, 학교는 수완이 좋은 경영인에 의해 경영되어야 한다. 학교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소비자의 선택을 위한 경쟁을 위해서 경영상 불필요한 규제는 폐기되어야 하며, 학교자율화 조치는 이를 위해서 필요한 수단이 된다.
3. 핵심에 일제고사가 있다
제한된 임기를 가진 정부가 가시적인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 특히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 가야 할 교육에서는 특히 그러하기에 이전 정부는 단기적으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을 공략하여 개혁을 가시화하는 전술을 보여 왔다. 그것이 대학입시제도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공약에서부터 대학의 시장화를 완성하기 위해 대학입시에 관한 통제를 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시장화를 추진하기 위한 무기를 어디에 숨겨둔 것일까. 그것이 일제고사다. 지난 3월의 일제고사는 정교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으며, 다음은 10월이 기다리고 있다. 학년초인 3월 시험이 아직 가르치지 않은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어서 교사들의 책임을 면하게 했다면, 10월은 가르친 학생들에 대한 평가이기에 시험장에 내몰리는 것은 학생들이지만 평가당하는 것은 교사와 학교다.
학력의 변인이 학생개인이나 학교에 의하기보다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특히 개별학교내의 평가가 아니라 전국단위의 평가에 의한 서열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학교만의 서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서열을 확대해보면 그 지역의 서열로 이어지고, 축소해보면 지역의 학생 서열, 나아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의한 서열이 된다. 성적이 공개되고 객관적인 지표가 나오면 대학에서는 당연하게 이를 반영할 것이다.
제한된 조건에서 성적을 올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러나 평균성적을 올리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몇몇을 시험에 참가하지 않게 하는 것, 30명이 1점씩 올리는 것보다 바닥을 치는 학생 1~2명이 평균을 깎아내리지 않는 게 손쉬운 방법이다. 이는 교사의 도덕이나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일제고사의 경험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영국 등에서 보편적인 사례다. 학교의 서열을 위해 학생들이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 짓을 잘할수록 시장에서 선호하는 학교와 교사가 된다. 더 들여다 볼 필요도 없이 쫓겨나는 학생들은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학생들이다.
학부모들은 어떨까? 같은 학군에서 서열이 낮은 학교를 배정당하는 것을 누가 참을 수 있겠는가. 아예 그 지역을 떠나거나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면 교육청에 가서 전학 시켜 달라고 농성하는 수밖에. 해결책은 간단하다. 평준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평준화를 해체하고 학교서열을 현실화하여 명문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로 등급을 나누는 것밖에 없다.
이즈음에서 이명박 정부가 교육에 관한 권한을 교육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넘겨주고 있다는 것을 주시해 보아야 한다. 교육청 관료들을 개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부로 보면 무능력한 교사들이나 교육청 관료들이나 다 개혁의 대상, 뽑아버려야 할 전봇대다. 이를 보여주듯 정부는 교육청을 학교지원센터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교육청이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학교가 하는 개혁을 지원하는 역할만 하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선택한 개혁의 파트너는 교장임에 분명하다. 개별 사업장으로서의 학교를 경영하는 교육자가 아닌 경영형 교장. 이런 교장들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교장은 더 이상 자격이 필요하지 않기에 교장 공모제는 확대되어야 한다. 경영능력을 발휘하는 데 제약을 두어서는 안 되기에 자율화 조치가 필요하다. 제한된 예산을 최대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단위학교책임경영제는 실시되어야 하며, 예산의 대부분을 소모하게 하는 교사들은 조정되어야 한다. 상급관청의 지배도 없어져야 한다. 교육청의 힘은 학생배정권과 예산배분권에 있다. 그러나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게 하고, 선택한 학생의 수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면 되는 데 교육청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간단한 이치를 이미 무너져 버린 영국의 학교들이 보여주고 있다.
정리해 보면 일제고사 결과는 학교선택의 지표가 되며, 다수의 소비자가 선택한 학교는 시장에서 살아남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자에게만 부와 권력을 획득하기에 유리한 교육기회가 열리고, 그렇지 못한 학교는 조정당하는 그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학교의 지역 간 격차는 확대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기회의 차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다.
한국의 교육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서열체제와 학벌사회 그리고 대학입시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더 이상 장기적인 과제로 미뤄 둘 일이 아니다. 이와 함께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는 일제고사로 가시화되는 학력서열화 경쟁체제에 있다. 교육을 시장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동하게 될 일제고사에 파열구를 내는 것이 지금 진보가 해야 할 당면 과제이다.
4. 시장화, 저지를 넘어 사회화를
스스로 설정한 경제성장의 목표가 정권 유지에 족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시장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공기업과 연구기관장을 일괄적으로 교체하고, 감찰기구를 동원하여 공기업에 표적 감사를 하거나, 이사회를 동원하여 공영방송의 사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파렴치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세계화는 자본의 국경을 없앴으며,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욕망을 위해 산업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나아가 국가의 역할을 자본이 대신하고 있으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와 수요자의 권리와 의무로 대체하고 있다. 이 과정은 공적자원과 공적영역에 대한 파괴로 나타나고 있으며, 교육 보건의료 물 에너지 통신 교통 방송 금융 등에서 총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민영화 저지, 구조조정저지, 고용안정 등의 구호와 요구는 현실적인 것 같지만, 그것은 현상유지이자 결과적으로는 후퇴가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공적자원과 공적영역이 원래부터 그리고 앞으로도 자본의 이해를 위한 사적영역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며 공적인 영역임을 공세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생존 가능성을 묻고 있는 식량과 에너지의 사회화를 선언해야 한다.
교육은 태풍의 중심에 있다. 하기에 사안별 분리대응이나 애매모호한 입장으로는 수세에 몰리거나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입시경쟁 심화는 반대한다면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나 교원평가는 지지한다거나, 교육부 해체에 반대하면서 주요 권한을 다시금 중앙정부에 쥐어주자는 따위의 주장이 그것이다. 또한 교육의 문제만 분리하여 대응하거나, 교육문제를 교육주체라고 일컬어지는 교사나 학생, 학부모에게만 맡겨서도 안 된다.
다가오는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다. 이번 선거는 학교운영위원의 간선이 아니라 서울시 민의 직선으로 선출된다. 정부와 코드를 맞춘 교육과학기술부의 교육시장화와 일제고사를 저지하기 위해서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중의 교육권을 위해서, 아니 청소년들이 ‘교육이 미쳤다’고 광장에서 외치는 소리에 화답하기 위해서 이번 여름에는 교육감 선거에 뜨겁게 참여할 일이다. <노사과연>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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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37호(2008.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