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인가 사회주의인가≫를 읽고

≪파시즘인가 사회주의인가≫에는 여러 필자들에 의한 각기 다른 주제의 논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평도 주제의 연관성이 유지되어야 하고, 개인적 능력의 부족으로 모든 주제를 다루기도 힘들어, 몇 편의 논문만 다루기로 하였습니다. 다루는 논문들도 각 논문의 특징과 주제를 무시하고 지엽적으로 부분적으로만 언급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각 논문들의 취지자체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부차적인 의도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필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언급된 논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공황 8년: ‘좀비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채만수)에서는 당면 대공황의 성격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의 상황을 점검해 보고자 했습니다. <1950년대 인도공산당의 노선갈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병진)과 <기회주의에 대한 그리스 공산당의 투쟁 — 1949년-1968년으로부터의 경험>(마키스 마일리스)에서는 외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 변혁운동에 시사하는 바를 간단히 언급하고, <한국노동자계급의 경제공황기 대응방안>(김태균)에서는 공황기 한국노동자계급투쟁의 교훈을 몇 가지로 정리해 봤습니다. <한국의 국가권력과 사회주의 운동>(문영찬)에서는 국가권력의 성격규정에 대해 개인적으로 견해가 다른 부분을 언급했고, 객관적 계급투쟁의 조건에서도 다른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1.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


<대공황 8년: ‘좀비자본주의’와 노동자계급>(채만수)에서 현재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2007년 가을에 발발하여 2008년 9월 미국의 거대한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최고조에 달했던 공황. 발발 8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이 공황은 호황으로의 국면전환의 기미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장기침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파시즘인가 사회주의인가≫, p. 83, 이하 쪽수만 표기)


그런데 논문에서 나타나는 공황상황에 대한 절박함이 내게는 없었다. 어디 먼 나라의 큰 사건 사고처럼 그 여파가 생생하지 않았다.

왜 일까?

상황은 여전히 공황의 여진 속에 있지만 경기는 또 그 속에서 나름의 순환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2008년 거의 패닉상태에서 2011년 유럽발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위기는 계속되어도 그 정도는 약화되어왔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한숨 돌린 것 같고, 중국은 여전히 7%대를 넘는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미국은 고용지표가 호전되면서 금리인상을 고려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호황을 향해 가는 듯하다.

이에 대해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공황 구제를 위해서 살포된 엄청난 자금을 왜 ‘일본에서든,유럽이나 미국에서든,회사들은 더 이상 새로운 기계장치나 공장들에 거의 투자하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에, 전 세계적으로 주식과 부동산, 채권시장에서 가격들이 폭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 문제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지불의 연쇄가 파열되자,거대한 금융위기를 불러온 만큼의 지난 호황기 및 번영기의 거대한 신용 때문에 이미 과잉생산이 격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하여 거대한 재고에 짓눌려 있고 디플레이션이라고 비명을 지를 만큼 대대적인 할인판매와 투매로 자본가치가 파괴돼가고 있기 때문에,우선 ‘더 이상 새로운 기계장치나 공장들에’ 투자하여 그 과잉생산을 더욱 격화시킬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경기부양’을 위한 국가독점자본주의적 초저금리 정책으로 이자 소득 또한 적기 때문에 대대적인 투기가 벌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채권시장에서 가격들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다.”(p. 100.)


논문은 현재 진행되는 공황이 단순한 경기순환기의 공황국면이 아니라 구조적 순환기의 대공황임을 말하는 듯하다. 구조적 변환기의 대공황기에서는 경기순환의 국면들은 새로운 대 ‘붕락’을 향해가는 준비과정일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일시적으로 호전되는 것 같은 경제상황은 결국 주식과 부동산, 채권시장에 한정되어 나타나며 이는 실물경제에 기반 하지 않는 한 일거에 꺼지고 마는 거품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논문은 또 이 과정이 불가역적 자연적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케인즈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신자유주의적 그것으로의 이행은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반적 위기의 재격화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격화된 전반적 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는 한, 아니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이행은 불가역적(不可逆的)인 것,즉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공황 구제자금의 살포도, 케인즈주의적 총수요 진작이 아니라, 독점자본을, 그것도 금융자본을 직접적으로 구제하는 방식, 즉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밖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p. 107.)


결국 현재의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케인즈주의적 총수요 진작책 정도로는 극복자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과잉생산 과잉자본의 축적의 위기인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이번 공황에 대한 부르주아들의 대응이 결국은 신자유주의의 재건이고, 그럴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공황의 극복이 아니라 그 지연이며 심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끝은 어디일까?


“1930년대의 대공황의 끝을 상기하면,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이 대공황 역시 ‘대전쟁’이 아니면 그 끝을 볼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p. 115.)


독점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인해 불어 닥친 1930년대 대공황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극복된다. 그리고 1970년대의 케인즈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기반으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로 이행된다. 이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앞에 우리는 서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이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간의 충돌을 야기하였다면, 1970년대 대공황은 사회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을 격화시켰고, 결국 사회주의권은 패배하고 신자유주의가 승리하였다. 이제 신자유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는 어떤 모순의 폭발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 공황극복의 마지막 수단인 핵전쟁 직전까지 모든 모순이 극단으로까지 나타나지 않을까?

먼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대대적 압박과 이에 대한 사회주의국가의 반발이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간 모순은 북한과 미국의 군사적 대립의 격화로 나타나고 있다. 2013년에 있었던 군사적 대립이라든지 얼마 전 있었던 지뢰폭발과 확성기 사건이라는 사소한 사건이 준전시체제로까지 발전된 상황은 그 모순의 격화를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자본주의국가 간의 대립의 격화이다. 이 대립이 제 1, 2차 세계대전의 원인이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결코 간단한 모순이 아니다. 자본주의국가 상호 간 주된 대립이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에서는 러시아와 미국ㆍ서유럽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우끄라이나의 상황이 단편적으로 이 대립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라시아대륙의 동쪽에서는 중국과 미ㆍ일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조어도(釣魚島) 사건으로 중일이 대립한 사건이나, 한반도에 사드 배치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로 중미가 갈등하는 상황들이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아직까지는 협력을 기초로 하고 있다. 소위 ‘신브레튼우즈체제’(미국이 중국의 상품을 사주고 중국은 미국에 수출하여 받은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시스템)가 위태롭지만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유효하게 작동한다. 즉 중미는 당분간 상호 간에 협조를 기본으로 상호 견제하는 대립의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세 번째로 신식민지와 제국주의 간 갈등의 심화이다. 신자유주의적 축적위기를 신식민지에 전가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순이다. 이러한 모순은 약하게는 신식민지국가들의 외환위기(1997년 우리나라의 “IMF사태”, 2015년 현재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한다)로 나타나지만, 제국주의는 약소국에 노골적인 침략을 감행하기도 한다. 중동과 리비아, 이집트 등 북부 아프리카에서의 상황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자본주의국 내부에서 노동자들이 자본에 대항하는 투쟁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모순의 표출이다. 부르주아들이 자본의 축적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후보자로 나선 샌더스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공언하고 독점자본가들의 기부를 거절하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자본주의국가 중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이젠 사회주의를 미래의 대안으로 내세우며 대선 예비후보가 나서고 있으며 미국의 노동자들은 이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미대선 예비선거에서 사회주의자후보의 돌풍은, 노동자에 대한 독점자본의 압박이 노동자들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 네 가지로 현상하는 자본주의의 모순대립이 한반도에서는 중첩적으로 얽혀 있다. 어느 한 가지 모순이라도 격화된다면 네 가지 모순이 동시적 또는 순차적으로 격화되어 나타날 공산이 크다. 이 모순들은 국가권력에 집중되어 봉합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들의 봉합이 터지는 공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은 열린다. 우리는 그 가능성들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정치적 진출이 미약한 원인도 이 논문은 함께 진단한다.


“세계 도처에서 혁명적으로 진출하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의 노동자계급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 확연히 대비되는 정치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다름 아니라,노동자계급 자신의 과학과 세계관, 나아가서는 그에 기초한 자신의 혁명적인 정치적 참모부를 해체당하고 제거당했기 때문이다.”(p. 110.)


“그런데 지금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재무장은 지체되고 있는 데에 반해서, 독점자본은 곳곳에서 전쟁책동을 노골화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의 고조도 고조려니와, 특히 중동과 리비아, 이집트 등 북부 아프리카에서의 상황과 우끄라이나에서의 상황은 참으로 우려스럽게 전개되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렇게 자신의 과학과 세계관을 되찾아 혁명적 정치 지도부를 재건하기 위하여 노동자계급이 서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재무장을 위하여 깨어 있는 선진 노동자, 선진 활동가들이 목적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러한 긴박한 상황에 지금 우리는 처해 있는 것이다.”(p. 115.)


세계자본주의가 대공황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결코 자동적으로 붕괴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를 담당할 주체가 올바로 서 있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이번 위기를 헤쳐 나갈 정치적 지도부가 건설되지 않는다면 공황의 위기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장기적 침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변혁의 주체가 없다면 모순들의 표출로 장기간의 고통과 비극이 지나고도 새로운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재편으로 끝날 수도 있다. 또는 미국 달러 중심의 일극화 경제체제가 달러, 유로, 위안화를 세 축으로 하는 다극화 체제로 변화될 수도 있다. 공황이 이 길을 앞당길 것이다. 그 와중에 중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사회로의 공간도 열릴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공간을 개척할 지도적 주체가 없다면 그 공간은 희망의 공간이 아니라 고통과 비극의 공간이 되고 말 것이다.



2.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1) 변혁운동의 재건은 구체적 현실인식과 노동자들의 구체적 요구로부터 시작된다



<1950년대 인도공산당의 노선갈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병진)에서 인도공산당의 실패원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950년대는 인도의 독립으로, 억압당하며 살던 피지배계급의 정치적 요구가 표출되면서 인도공산당에게 객관적으로 유리한 정세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인도공산당은 내부노선 갈등으로 그런 소중한 기회를 놓쳤다. 내부 노선투쟁은 수정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었으며, 결국 인도공산당은 부르주아지에게 투항하였고, 피지배계급의 대의를 배신하였다. 수정주의자들은 인도공산당의 연합전술이 네루의 비동맹 노선을 반제국주의전선으로 견인하고 사회주의식 계획경제 발전을 채택하도록 인도의 지배층을 압박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인도공산당은 ‘혁명노선’에서, ‘평화이행노선’으로 전환하면서 부르주아계급의 공격에 맞서 싸울 물리적 기반(혁명무력)을 포기하였다. 이것이 인도공산당의 실패의 연원이다.

인도공산당이 내부노선 갈등에 휩싸여 분열한 근본 원인은 사상적 사대주의(事大主義)였다. 인도공산당의 지도부는 인도 현실에 맞는 혁명노선을 추구하기보다는 쏘련공산당을 찾아다니며 승인이나 얻으려는 사대주의자들이었다. 인도 혁명의 전략과 노선을 쏘련공산당에게 물어보고 쏘련공산당의 후광을 얻으려 하며 권력 추구에 급급하였다.”(p. 228.)


<기회주의에 대한 그리스 공산당의 투쟁 — 1949년-1968년으로부터의 경험>(마키스 마일리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 공산당의 경험을 결론짓고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각국의 자본주의 발전을 정확히 연구하는 것이다.”(p. 297.)


“기회주의의 압력은 계급투쟁의 격렬함을 견뎌내지 못하는 개인들의 특수한 태도에만 관련되어 있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조류이며, 현대의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시대의 산물이다. 그 물질적 기초는, 다양한 동화 기제(mechanisms)나 뇌물을 통하여 노동계급의 계층들이 독점자본에 의해 매수될 가능성에, 그리고 소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으로 흡수되면서 노동계급이 확대되는 데에 있다. 이 때문에, 기회주의에 대한 투쟁은, 레닌이 주장했듯이, 제국주의적 발전 단계에서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필수불가결한 특징인데, 왜냐하면一 그 다양한 표현의 의도와 상관없이 一그것은 부르주아 정치로부터의 노동계급의 정치적 해방에 장애로 작동하기 때문이고, 노동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독자성을 반대하기 때문이다.”(p. 300.)


위 두 논문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각기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 비슷한 결론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먼저 변혁운동노선의 올바른 정립은 기회주의자들과 투쟁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변혁운동은 노동자계급이 홀로 수행하는 게 아니라 농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함께한다. 따라서 각계각층이 변혁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소부르주아들의 노동계급으로의 유입은 소부르주아적 동요와 기회주의까지 노동계급운동에 유입시킨다. 따라서 기회주의자들과의 투쟁은 노동운동의 자연적 과정이며 피할 수 없는 과업이 된다. 위 두 논문에서 기회주의와의 투쟁을 잘 하는가 잘못 하는가에 따라 운동의 성패가 갈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로 변혁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기회주의자들과의 투쟁을 성과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도 자기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을 정확히 연구해야 하고, 그에 기초해서 노동자와 민중의 요구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도의 경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대주의를 하면 결정적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러나 그리스에서처럼 자기나라의 구체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분석 연구한다면 쏘련의 멸망이라는 결정적 위기의 시기에도 자신의 조직을 굳건히 유지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재무장을 위하여 깨어 있는 선진 노동자, 선진 활동가들이 목적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선진 활동가들은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기반으로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정식화해내야 하며, 이를 무기로 민중 속으로 들어가 기회주의와의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러면 한국노동자운동의 상황은 어떤가? 그 상황의 단면을 <한국노동자계급의 경제공황기 대응방안>(김태균)에서 몇 가지 교훈으로 살펴볼 수 있겠다.



2) 공황기 한국노동자투쟁의 교훈


<한국노동자계급의 경제공황기 대응방안>(김태균)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말하고 있다. 먼저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진척된다는 것이 노동자계급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노동자투쟁의 역사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1960-61년 장면 정권 시절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가장 활발하게 노동조합이 결성된 시기이다. 1959년 말 558개 노동조합에 280,438명의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1960년 1년 동안에 356개의 노동조합이 증가하여 914개 노동조합이 되었고 321,097명의 조합원이 조직되었다.”(p. 139.)

“6.29 선언 이후 2주일이 채 흐르지 않은 시기에 한국 노동자 계급은 격렬한 투쟁의 시위로 등장했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총 3,341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으며, 거의 대부분이 작업 중단, 비조직 파업, 거리 시위 및 가투의 형태를 띠었다. 이것은 지난 20여 년간 급속한 산업화 기간 동안 발생한 전체 노동쟁의 건수를 능가하는 것이었다”(p. 142.)


이러한 통계를 보면 노동조합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투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한국 노동운동이 자생성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오랫동안 누적된 노동자들의 한이 폭발하고 분출한 계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3저 호황에 근거한 열려진 경제적 조건과 함께 6월 항쟁의 결과 나타난 정치적 조건이 맞물려 전개되었던 투쟁이었다. 이는 그간의 노동조합 투쟁 즉, 임금인상이나 휴폐업에 따른 고용불안에 대한 요구 투쟁이라기보다는, 노동자의 장기적 목표하에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민주노조의 건설 투쟁으로 집약되었다는 점에서도 여타의 노동자 투쟁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 대중 투쟁을 지도하고 전개할 지도부가 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시기의 노동운동과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p.151.)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가장 획기적 사건이랄 수 있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도 자연발생성에 그 성격이 규정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 있는 민주노총도 자연발생성의 한계라는 테두리에 머무르고 있다. 더구나 1996-97년 총파업을 정점으로 노동운동은 후퇴하고 있다. 이 후퇴과정은 노동운동이 자연발생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합주의ㆍ경제주의가 심화되고 고착화되어 온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합주의ㆍ경제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는 노동운동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세 번째로 공황기의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무리 강렬하다고 해도, 그 투쟁이 자연발생적인 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투쟁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황기에 자본가들의 사활적 공격을 경제투쟁에 한정하여 대항한다면 경제투쟁이 목표한 성과도 그 투쟁의 격렬성에 비해 미미할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마저도 곧 빼앗기고 말았다. 공황기엔 자본가들의 지배방식에 균열이 가는 시기이기에 과감한 정치투쟁으로 자본가의 공격을 맞받아 쳐야 한다. 그래야 정치투쟁에 실패하더라도 경제투쟁의 성과만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로 투쟁 형태에 있어서 가두투쟁의 중요성이다. 파업투쟁이 가두투쟁으로 발전하여 연대투쟁이 되고 내용적으로도 정치투쟁으로 발전한다. 남한에서의 변혁의 투쟁 형태는 전민항쟁의 형태를 취해왔다. 4.19혁명도 6.10대항쟁도 작은 거리시위의 형태로 시작해서 거리시위가 확대발전하면서 전개되었다. 무장봉기도 게릴라전도 아닌 가두시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전민항쟁은 변혁투쟁방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외국의 경험에서 올바른 노선 정립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고, 공황기 한국노동자투쟁의 경험에서 현재 한국노동운동의 한계를 알 수 있었다.

투쟁 속에서만, 올바른 노선이 정립될 수 있고, 노동운동의 조합주의적 한계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노동자계급의 경제공황기 대응방안>(김태균)에서 볼 수 있듯이 공황기는 기존의 지배방식의 재편기이고 새로운 지배방식의 도입기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전 노동계급과 민중을 정치투쟁에로 몰아간다. 정치투쟁이란 결국은 권력투쟁이며 권력투쟁은 국가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다. 노동자들이 권력의식을 갖고 모든 투쟁을 권력 장악에 복속시킬 때 올바른 노선의 정립도 달성될 수 있고, 조합주의적 한계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국가권력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제 <한국의 국가권력과 사회주의 운동>(문영찬)을 통해 한국의 국가권력의 성격을 알아보자



3. 한국의 국가권력의 성격과 반파쇼 전선의 문제와 정세규정성 문제


1)박근혜정권의 성격과 반파쇼 전선의 문제


<한국의 국가권력과 사회주의 운동>(문영찬)에서 박근혜 정권의 성격을 파시즘이라 규정하고,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첫째는 경제위기 상황에 의해 강제되는 공황 구제 정권이라는 점이다. 21세기 세계대공황에 의해, 대외의존도가 세계에서 수위를 달리는 한국경제는 치명상을 입고 균열되고 있다. 이러한 경제 위기에 대해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고 위기를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묶어 두는 것이 박근혜 정권의 가장 주요한 성격이다. 둘째로, 박근혜 정권은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정치적 차원에서 파시즘을 승인하고 있다. 유신시대가 좋았다, 군대가 정치에 개입하려면 60만 군대를 동원했을 것이다라는 발언이 거침없이 나왔던 것이 불과 1, 2년 전의 모습이었고, 이러한 모습은 단지 말로, 이데올로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선고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파쇼적 행보는 아직까지는 합법적 방식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박근혜 정권의 모습은 상황에 따라, 즉, 경제위기의 폭발 여부, 계급투쟁의 진전 정도에 따라 언제든지 전면적 파쇼화로 이행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 박근혜 정권의 반동적 공세는 1980-90년대 민중투쟁의 산물로서 획득된 민주주의의 파괴로 나아가고 있다”(p. 68.)


그리고 논문에서는 “한국의 정세는 공황에 따른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전환하고 있다.”(p. 74.)고 진단하고 ‘반파쇼 민주주의 전선의 강화’를 주요한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정권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계급집단의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 박근혜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다른 점은 한국 매판자본가집단의 우파라는 점이다.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한국매판자본가의 좌파를 대변한다. 박근혜 정권은 박정희, 전두환 세력을 정치적으로 계승한 집단이다. 박근혜 자체가 박정희의 딸로 직접적 계승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매판자본가의 좌파가 형식적 합리주의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자라면 매판자본가 우파는 비합리적 폭압에 기초한 파시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매판자본가들은 우파든 좌파든 기본적으로 매판적이고 종속적인 성격을 자기 규정성으로 가지고 있다. (한국자본가들의 매판성에 대해서는 ≪정세와 노동≫ 2015년 5월호 채만수의 <‘한국경제의 종속성’ 문제에 대하여> 참조)

그러나 정권의 성격을 지배방식만으로 규정할 때, 즉 파쇼적 지배방식이냐 형식적 민주주의적 방식이냐를 가지고 규정할 때 그 지배집단의 속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즉 한국 독점자본가들의 주요한 규정성인 매판성, 종속성은 드러나지 않고 은폐될 수 있다.

따라서 정권의 성격규정에 있어 지배방식뿐만 아니라 지배집단의 성격까지 고려해서 규정해야 한다. 지배집단의 파쇼적 성격만이 아니라 매판적, 종속적 성격까지 정권의 성격규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정권의 매판적, 종속적 성격에 대한 투쟁은 반제투쟁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되면 반파쇼전선의 형성만이 아니라 반제전선의 형성도 동시적 과제로 나선다. 즉, 반제 반파쇼 민주주의 전선의 형성이 당면 과제가 된다.

투쟁전선에 반제적 성격을 포함시켜야 자유주의세력(매판독점자본가 좌파, 이를 노무현은 신자유주의 좌파라 명명했었다)에 의해 민중투쟁이 포섭되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투쟁전선에서 반제적 성격을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성과를 자유주의 세력에게 헌납하는 과오를 다시 밟게 될 수도 있다. 정권의 매판성은 파쇼적 정권과 자유주의정권 모두가 공유하는 기본적 속성이다. 따라서 정권의 매판성을 공격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들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된다. 당장 사회주의를 목표로 설정하지 않는 한 독점자본가들의 매판성을 공격하는 것이 투쟁의 주요내용이 되어야 한다.

만약 국가권력의 매판성이 분명하게 부각되지 않는 반파쇼 민주주의전선이 투쟁의 중심전선이 된다면 자유주의세력(매판자본가좌파)이 정권을 잡게 되는 경우 투쟁전선은 붕괴될 수 있다. 그리고 민중투쟁의 성과는 매판자본가좌파에게 돌아가게 된다. 1987년 체제가 그런 경우이다. 2017년 대선에서 자유주의세력이 정권을 잡을 경우 이런 우려는 또다시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정권의 매판성에 대한 공격은 한반도에 중첩되고 착종돼 있는 자본주의의 4대 모순을 푸는 중심고리가 될 수 있다. 즉 부르조아정권의 매판성에 대한 공격은 미제에 대한 직접투쟁이라는 우를 범하지 않고도 반제투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매개고리가 된다.

따라서 투쟁전선체는 반제반파쇼전선을 기본으로 하고 자유주의세력과는 사안별 상황별로 연대하면서 자유주의세력을 투쟁으로 무력화시켜야 할 것이다.


2)한반도 정세를 규정하는 대외적 조건


논문은 ‘계급투쟁의 조건들’에서 한반도 정세는 “중국과 미ㆍ일 동맹의 대립에 의해 조건지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한국의 노동자, 민중은 전쟁위기 반대, 한ㆍ미ㆍ일 전쟁동맹 반대를 기치로 싸워야 한다.”(p. 74.)고 말하고 있다.

전쟁위기는 중국과 미ㆍ일동맹의 대립에 의해 조성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북한과 제국주의 미국의 대립에서도 격화되고 있다. 논문에서도 지적하였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기본적으로 협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두 나라의 기본적인 군사전략도 대립이 아닌 협조에 방점이 놓여 있다. 중국이 급속히 부상하고 세계자본주의가 대공황의 위기에 처하면서 중국과 미국의 대립이 부각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세계경제의 1, 2위 대국의 군사적 대립은 위기의 마지막 국면에서나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회주의국가와 제국주의국가 간의 군사적 대립은 바로 오늘의 일이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행 중인 현실이다. 따라서 정세를 규정하는 요소로 북ㆍ미의 군사적 대립을 무시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은 중국의 포위환전략에 의해 규정된다. 그런데 미국의 대중국봉쇄정책의 핵심에는 북에 대한 적대정책이 놓여 있다. 사드배치의 명분도 북의 위협이며,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구실도 북의 위협이다. 즉 큰 틀에서 중ㆍ미의 대립구도가 한반도 정세에 관철되지만 그 구체적 현실화의 중심은 북에 대한 미국의 고립 정책이며, 북ㆍ미대결이다. 한반도 정세의 직접적 규정력은 중ㆍ미대립보다 북ㆍ미대결이 더 크다고 하겠다. 따라서 북ㆍ미대결구도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급변하게 된다. 이점이 북ㆍ미대결구도를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세를 규정하는 요소는 매판정권의 속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근원에서부터 미ㆍ일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의 매판독점자본가들은 현재의 공황국면의 위기에서 그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미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5.4%(2014년 기준,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통관자료)로 그 비중에 있어 미국과 일본 두 나라의 합보다 많다.(미ㆍ일의 합은 20%가 안 된다.) 경제적으론 이미 중화권에 포함된 상태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외 정치외교는 미국의 대중국포위환 전략에 편승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드 한반도 배치문제로 중국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심화되어 중국이 한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해 온다면 한국독점자본가들은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사드배치문제는 근본에 있어 한국매판정권의 미ㆍ일에 대한 종속성으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013년 10월에 박근혜 정권은 “북한, 러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물류 교통 에너지 네트워크와 인프라를 구축한 뒤, 장기적으로 전 세계 인구의 71%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단일시장을 만들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한국의 독점자본가가 공황의 타개책으로 모색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프로젝트는 중국의 ‘일대일로’(‘일대일로’는 유라시아 지역에 대한 인프라 건설과 무역 촉진 등을 통해 ‘육상 실크로드 경제지대’와 ‘해상 실크로드’를 구축하여 아시아ㆍ유럽ㆍ아프리카를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하려는 구상)전략에 동조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일대일로’구상을 한반도까지 연장시키는 것은 북과의 관계개선을 전제로 한다. 전경련은 지난 7월 15일 ‘남북경제교류 신(新) 5대 원칙’을 발표하고 남북관계개선에 경제계가 선도적 역할을 할 것을 주창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과 대중국정책에 변화가 없는 한 미국의 전략을 거스르지 않고는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대외정책이 한국독점자본가의 이익에 기초하여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에 맞추어 수행된다. 그 원인은 한국의 국가권력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의 독점자본가들은 작금의 축적위기를 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고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강화되고 중ㆍ미, 북ㆍ미 갈등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독점자본가들의 자본논리와 정권의 대미 종속성 사이의 모순도 표면화 될 수 있다.

결국 박근혜정권의 파시즘적 지배방식은 그 지배집단의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속성은 미ㆍ일에 대한 종속성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한국의 독점자본가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은 정치군사적으로 북ㆍ미대결을 기본으로 한미ㆍ일 군사동맹을 구축하는 것이며, 경제적으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한 대중국봉쇄전략이다. 당장은 중국이 미국의 아시아중시정책에 맞서지 않고 서진정책으로 피해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일대일로’전략을 미국에 대한 중국의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대립은 점점 심화될 것이다. 이런 대립의 심화과정에서 박근혜정부의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대외정책은 파탄 나게 될 것이다.

그럼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변화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북한이 이미 핵무장을 한 이상 미국이 언제까지 북과 핵전쟁을 가정한 대결을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어떻게든 북과의 군사적 대립을 종식시킬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일어난 지뢰사건으로 촉발된 준전시상황과 판문점 8.25남북합의가 그 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뀌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그 방향이 북과의 군사적 대립을 종식시키는 것이라면, 그 길은 북ㆍ미 간 평화협정의 체결이다.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박근혜정부는 북과의 평화협정을 반대하고 독자적으로 대북대립정책을 고수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독점자본가진영의 자유주의세력이 크게 힘을 얻게 될 것이고, 급격히 중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해 갈 것이다. 그리고 북과의 관계개선이라는 문제도 속도 있게 진행되어 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독점자본가우파의 이데올로기 진영을 무너트리게 된다. 그 때엔 박근혜정권의 내부에서도 갈등이 표출될 공산이 크다.

어느 경우이든 독점자본가들 내부의 갈등은 격화된다. 그럴 경우 지배체제에 균열이 생길 수 있고, 노동자계급을 선두로 한 민중의 투쟁 여하에 따라 새로운 민주정부수립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2017년은 대선이 있는 해이다. 그리고 2008년 공황이 폭발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다시 경기순환의 ‘붕락’의 시기가 앞으로 1, 2년 상간으로 불어 닥칠 수 있다. ‘붕락’이 정치적 공간의 확장과 함께 온다면 1987년을 뛰어넘는 노동자의 진출이 가능할 것이다.

한반도주변의 객관적 ‘계급투쟁의 조건들’은 어떤 조건이 형성되든 국가권력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지배계급내부의 갈등이 심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주도적 투쟁이 되살아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살아나는 것은 선진노동자들의 의식과 각오에 달여 있다 하겠다.



4. 글을 마치며


이상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재무장을 위하여 깨어 있는 선진 노동자, 선진 활동가들이 목적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주제로 논문들을 짜깁기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코민테른과 스페인의 반파쇼 인민전선>(권정기), <201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천연옥), <스딸린 문제에 대하여-쏘련공산당의 공개서한에 대한 두 번째 논평>(인민일보와 홍기 편집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전환점-중국공산당 18기 3중 전회의 총노선>(야마시타 이사오) 등의 논문은 모두 중요하고 의미 있는 논문들이지만 언급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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