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동자들의 연대와 희망 월간금비

감정노동과 건강

언젠가, 비행기 안에서 마침 2등석 칸 출입구 쪽 스튜어디스 자리와 맞은편에 앉은 적이 있었다. 비행기가 막 이륙하는 순간이었다. 이륙, 착륙할 때 으레 그렇듯 젊은 스튜어디스도 안전벨트를 한 채 보조석 자리에 꾹 앉아 있었다.
그것이 생활이다 보니 이륙하는 순간의 공포쯤이야 승객들이 가지는 것만큼 느낄 리야 만무했지만, 그녀는 그다지 항공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손잡이를 꽉 그러쥐고 있었다. 그러다 비행기가 최고 속력으로 이륙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잠시 공포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내가 그녀 얼굴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턱에 잔뜩 힘을 준 채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순간 난 그 가장된 미소의 위력을 실감했고, 지금에까지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스튜어디스의 눈물, 감정 노동』, 웹진 소해피에서 발췌

감정노동이란 무엇인가

서비스업은 한국 전체 산업의 45%가량이고, 일하는 사람 열 명 중 여섯은 서비스업 종사자이다. GDP의 절반은 여기서 나온다. 이처럼 우리나라 산업에서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중요성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고객만족(CS: customer satisfaction)이나 고객감동을 강조하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고객만족이 기업생존의 화두가 됨에 따라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서비스를 제공받는 고객은 만족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서비스 접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처지는 대 고객 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는 기업의 방침이나 전략적 노력에 의해 감정표현의 규범을 표준화하고 강화함으로써 감정(emotion)이나 느낌(feeling)을 강제 당하고 통제 당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노동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규제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고객을 중시하는 직종에 근무하는 직업군은 개인의 감정보다 고객의 감정을 존중한다고 해서 '감정 노동자'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육체노동은 몸을 쓰는 것, 정신노동은 머리를 쓰는 것, 감정노동은 감정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누구에게 감정노동 스트레스가 많은가

백화점 식품부 판매직 정모씨(27) (한겨레 신문, 2005년 6월 1일자)
“우리는 매대 판매를 하잖아요. 어떤 때는 사람에 치여… 사람들이 물건 사러 오면서 우리한테 주는 스트레스 있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표현을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친절을 강조하니까… 대인기피증이 생기는 거예요. 사람이 싫어요.”

백화점 식품부 판매직 박모씨(38) (중앙일보 2002년 8월 19일자)
"나보다 어린 손님들이 반말을 한다거나 양반이 상놈한테 무조건 하라는 식의 말 있잖아요. 그런데도 회사의 담당은 매일 무조건 친절할 것을 강요하는데, 정말 대인기피증이 생길 정도예요."

기업 고객만족팀장 김모씨(35) (중앙일보 2002년 8월 19일자)
어느날 회식 도중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은 과호흡 증상을 보이며 의식을 잃은 뒤 공황 장애로 병원을 전전함. 고객의 다양한 불만 처리와 대인관계 책임에 따른 감정노동이 직무 스트레스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인정받아 산업재해 요양 판정을 받음

내부고객과의 접촉기회가 잦은 중간관리자에서부터 제조업체의 판촉 및 영업사원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간호사 등 전문직업종사자와 주유소, 편의점, 슈퍼마켓, 호텔, 패스트푸드점, 연체금 수금회사, 항공사, 보험회사의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감정표현이 직무의 일부분을 이루는 직업은 여러 산업에 걸쳐 폭 넓게 분포되어 있다.

고객만족 또는 접객서비스가 기업의 경쟁우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자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감정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감정노동은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감정노동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소개한 Hochschild는 항공기 승무원들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 감정노동이 약물남용, 알콜중독, 결근 등과 관련이 있고 근로자의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 well-being)에 유해하게 작용하는 것을 밝혔다.



감정노동이 과중해지면 가족이나 직장 동료, 하급 직원에게 짜증을 부리고 기혼 여성의 경우엔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마음은 침체의 늪에 빠지는 가면(假面)우울증, 내가 남이 된 것 같은 이인화(異人化) 현상도 겪는다. 자신이 못나 이런데서 일한다는 자기 비하를 하거나, 자기 존중심이 사라지는 것도 이들의 특징. 심한 경우 감정 불감증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궁극에는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풀지 못해 나타나는 일종의 화병에 시달리게 된다. 의욕상실로 심신의 피로를 호소하는가 하면 소화불량, 불면증, 생리불순,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같은 심인성(心因性)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는 다양한 연구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Holman et al., 2002; Grandey, 2000; Wharton, 1999; Spratt, 1996; Ashforth & Humphrey, 1993; Hodapp et al., 1992; Mills et al., 1989).

감정노동 스트레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고객만족을 향한 기업의 경영전략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서비스직의 비율이 높아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볼 때, 감정노동 종사자의 수는 앞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근로자 개인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감정노동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근로자 개인차원에서는 혼잣말 등의 인지적 기법, 분노 조절훈련, 생각 멈추기 등의 대처기법을 활용할 수 있다.

회사 차원에서는 업무량 조절과 직원들의 업무만족 측면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근무강도를 조절해주면서 ‘당신은 우리 회사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격존중의 회사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것을 권한다. 상급자나 동료의 상호 지지와 배려도 필요하다. 같은 입장에서 불만을 토로하거나 위로하다 보면 감정노동의 부담이 경감될 수 있다.
덧붙이는 말

글쓴이 이복임 - 대한간호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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