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6차 안보정책구상회의(SPI) 대응 괌 현지투쟁

2월 13일(월)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괌에서 6차 한미안보정책구상(SPI) 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평통사는 이번 회의가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한 한미 고위전략대화와 맞먹는 중대한 회의라고 판단하고 회의가 열리는 괌 현지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번 회의를 특히 주목한 것은 이번 회의에서 한미당국이 한미동맹의 미래비전에 관한 초안을 합의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박석분 국장, 유홍 국장, 조광수 전북평통사 사무국장으로 긴급히 꾸려진 현지투쟁단은 이틀 만에 준비를 마치고 12일 밤, 1차로 유홍 국장과 조광수 국장이 먼저 괌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허브라고 불리어지는 괌. 유사시 괌에서 출격한 미군 전폭기가 한반도로 날아올 수 있다는 바로 그 하늘 위를 날아 괌으로 가게 되니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다행히 괌 현지의 평화운동가 데비와 이메일과 전화통화를 통해, 현지 활동가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오고, 평통사의 현지투쟁을 돕겠다는 너무 고마운 소식을 출발 전에 전해 받았다.

13일 오전 1시 40분 괌에 도착한 대표단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출국심사를 마치고 세관을 통과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세관원이 대표단을 지목하여 정밀검색을 받게 되었다. 다 풀어 헤쳐진 대표단의 가방. 공항세관원이 보도 자료와 성명서 현수막 등을 유심히 보더니 일부를 가져가서 상급자에게 문의를 한다. 상급자가 윗선에 연락을 하더니 대기하라고 한다. 30분여를 대기했을까? 세관원이 유홍 국장을 부르더니 이민국으로 가자고 한다.
이민국으로 간 유홍 국장이 다시 30분여를 기다리니 이민국 직원이 인터뷰를 하자고 한다. 괌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한국에서 체포된 적이 있느냐, 평통사에서 몇 년 일했느냐 등을 묻더니 자신의 상급자의 지휘를 받는 눈치이고 다시 기다리란다. 한참을 기다리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신들은 판단하기 어렵고 다른 곳에서 누군가가 와서 인터뷰를 할 거란다. 다시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니 웬 백인이 인터뷰를 하잔다.

자신의 신분을 FBI라며 신분증을 제시하더니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의 책상위에는 언제 뽑았는지 평통사 영문홈페이지에 있는 일본평화대회에서 유홍 국장이 발표한 글이 사진과 함께 놓여져 있다. 유홍 국장은 정면 돌파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괌에 온 목적과 활동내용에 대해 보도 자료에 있는 대로 얘기를 하며, 괌에서도 평화적이면 정해진 구역에서 얼마든지 데모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가 주로 관심을 보인 것은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느냐, 일본에서는 어떤 내용이었나, WTO 데모와 유사하지 않은가, 평화적으로 아무도 해치지 않고 데모를 한다면 미국은 자유국가이니까 얼마든지 허용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체포를 할 것이라고 위협을 한다. 심지어 데모장소가 결정되면 자신에게 연락을 달라고 한다. 보도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금방 태도를 바꿔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하란다. 단지 평화운동 관련 현수막과 보도 자료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5시간을 억류해 놓고 나서 하는 말이, 미국은 자유국가이다??

유 국장은 5시간 만에 이민국에서 풀려났다. 공항에서 노심초사 대기하고 있던 조광수 국장옆에는 현지 평화운동 단체인 차모르네이션 소속 두분이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활동가들의 피곤할 테니 좀 쉬라는 제안을 만류하고 곧장 시위장소인 앤더슨 공군기지로 향하였다. 11시 45분경 기지 앞에 도착하니 이미 그곳에는 10여명의 차모르네이션 회원들이 "무기배치 반대, 대량살상무기 배치 반대, 핵항공모함 배치 반대"등을 외치며 피켓팅을 하고 있었다.
대표단은 서울에서 준비해온 선전물을 설치, 준비하여 피켓팅을 시작하였다. 현지 활동가들이 메가폰을 전달해 주어 "한국과 괌에서 미군은 나가라, 한미군사회담 중단하라, 우리는 미군 없이 살수 있다"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와 같이 피켓팅을 하고 있는 도중에 유홍 국장은 데비가 사전에 조직한 마리어나스 버라이어티의 신문사, KUAM TV 와 인터뷰를 하였다. 데비에 의하면 마리어나스 버라이어티는 CNN, AP, 로이터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 이들 통신사들에서도 보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한편, 이날 저녁 2차로 박석분 국장이 괌으로 출발하였다.

2월 14일(화)
오전 8시 50분. 차모르인 퍼나이와 네비스가 이날 일정을 돕기 위해 숙소로 와주었다.
전 날 데비가 이 곳 기자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오늘 회의는 앤더슨 기지가 아니라 수메이(SUMAY) 해군기지라고 한다. 투쟁단은 두 사람에게 곧바로 수메이 기지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투쟁단은 그곳에서 체력이 닿는 대로 철야농성을 해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퍼나이와 네비스는 곧장 기지 앞으로 가는 일을 난감해했다. 오늘 오전 10시에 장례식이 있다면서, 그곳에 먼저 가자는 눈치다. 투쟁단만 기지 앞에 데려다주고 장례식에 가라고 했더니 그렇게 하기엔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는 거다. 순박한 두 사람의 진심어린 염려가 전해왔다. “그래요. 그럼 장례식에 들렀다 가죠.” 이렇게 해서 14일 일정은 차모르 사람들의 장례식 참례로부터 시작되었다.
장례식이 거행된 카톨릭 교회에는 수 백명의 차모르인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흰색을 쓰는 우리와는 달리, 유족들은 분홍색 꽃과 완장을 달았다. 추모객들은 유족들과 일일이 포옹하면서 볼과 볼을 맞대는 자신들만의 인사방법으로 조의를 표했다. 투쟁단을 안내해준 네비스와 퍼나이, 그리고 데비는 성가대석에 서서 흑인영가를 불렀다.
투쟁단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미국에 나라를 빼앗긴 채 식민지 백성이 되어 한 생을 마친 고인을 추모하며 부의를 전달했다. 차모르 인들은 “어제 KUAM TV에서 보았다”며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이유를 설명하자 훌륭하다며 투쟁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장례식장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빵과 과자 등을 봉지에 챙겨들고 기지 앞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15분이다. 퍼나이와 네비스가 뭔가를 의논하더니 기지 앞 삼각 모양의 잔디지역으로 안내했다.
이곳이 시위 장소였다. 미국 법에 따르면 시위대는 지정된 장소 이외의 곳을 돌아다니면 처벌대상이란다. 퍼나이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혼자 다른 곳으로 돌아다니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조금이라도 잔디 지역을 벗어나려고 하면 소리를 질러 주의를 주었다.
준비해간 대형 플랭카드를 기지 맞은편에 있는 신호등에 걸었다. 그리고 유홍 국장이 어디선가 구해온 쇠파이프에 펼침막을 걸고, 평통사 깃발을 꽂고, 헝겊피켓 하나씩을 목에 걸었다. 퍼나이와 네비스도 자신들의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에 경찰 차량 석 대가 기지 앞에 나타나 멈추어 섰다. 군복 위에 POLICE라고 씌어진 조끼를 입은 자들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고 주시하고 있다가 박석분 국장이 캠코더로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다가와서 시비를 걸었다. “기지는 촬영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카메라를 내놓아라”고 했다. 그들은 캠코더를 달라고 요구하다가 테이프만 주겠다며 테이프를 꺼내주자 그것만 받고 물러섰다. 입국 때도 고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의 경직된 태도에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쟁단은 마음을 가다듬고 의연히 시위를 시작했다. 어느 사이 차모르인들이 하나, 둘 도착하여 시위대는 10여 명으로 늘어났다. 어제 앤더슨 기지 앞 시위에 나왔던 분들이 대부분이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온 4살박이 게이슨도 한 몫을 했다. 게이슨은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솜씨로 ‘클루’라는 이름의 거대한 소라고동을 잘 불었다.

차모르인들은 식민지 괌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수십 년간 미국에 맞서 투쟁해왔다. 산호섬 괌 바다에 늘 정박해있는 핵잠수함의 철거, 괌을 차지한 채 원주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미군기지 철수가 이들의 일상적인 요구다. 요즘 차모르인들은, 미국이 NAS 기지를 반환하기로 했다가 일본에서 이동하는 미군을 위해 다시 기지 수용을 요구하는 문제에 맞서 투쟁하고 있다. 차모르 민족운동단체의 대표 벤은 “차모르 깃발은 평화를 상징한다.”고 자신들의 깃발을 설명하고, “우리는 성조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신 유엔기를 들고 나왔다”며 유엔 깃발을 보여주었다.
또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연합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차모르인들은 괌(GUAM)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GUAHAN(we have 라는 뜻의 차모르 말)인데, 미군들이 제멋대로 바꾼 것이라며 그 뜻은 'Give Us American Money' 라고 미국을 조롱했다.
투쟁단이 꽹과리까지 동원하여 시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자 웬일인지 경찰이 다가오더니 뺏아간 테이프를 돌려주며 수고하란다. 차모르인들은 꽹과리를 아주 신기해하며 금방 배우더니 쉴 새 없이 쳐댄다. 꽹과리가 기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데는 아주 좋다며 정말 마음에 들어 하였다.
오후가 되면서 언론사들이 찾아왔다. ABC 방송국 기자가 유홍 국장과 인터뷰를 했다. 또 어제 앤더슨 기지 앞에 왔던 KUAM 라디오 방송에서 유홍 국장에게 방송 출연 요청도 들어왔다. 알고 보니 서울에서부터 연락이 되어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데비 퀴나타가 KUAM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고 한다. 유홍 국장은 그녀가 진행하는 'TOMORROW SPIRIT CHAMORU'에 출연하기 위해 오후 2시경 방송국으로 향했다. 유 국장이 방송을 통해 “기지 앞에서 야간 농성을 할 것”이라고 했고, 진행자인 데비가 “이들이 과연 안전할까요?”라고 하자 청취자들이 방송국으로 “안전하다”, “아니, 안전하지 못하다”는 상반된 의견들을 전화로 알려오는 등 반향이 있었다. 시위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알려오는 시민들이 속출하는 등 이 방송은 뜻밖의 홍보효과를 내주었으며, 이에 부담을 느낀 경찰이 보호조치를 취하겠다고 알려오기도 했다.
언제 어디서나 대중들은 정당한 투쟁에 대해서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호응해온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 우리는 이런 일들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오후 3시 30분 경, 서울과 전화로 연결이 되었다. 반미연대집회에서 전화 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던 것. 차모르인들을 소개하고 연대투쟁을 알리고 싶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서울 투쟁은 잘 되고 있을까? 모두들 바쁘고 힘들겠지? 좀 더 여력이 있다면 양쪽의 투쟁을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미군들 중에는 차량 굉음을 내며 시위를 방해하는 자들도 있었고 욕설을 상징하는 손짓을 하며 지나가기도 하고 “GO HOME!"이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반면 차모르인들은 대부분 차량 경적을 울리거나 손을 흔들며 시위를 지지했고,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했다.
투쟁단과 함께 농성을 벌이는 차모르인들은 욕을 해대는 미군들을 향해서는 때로 같이 욕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하파데이(HAFA ADAY) - 편안하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으며, 지지의 뜻을 표하는 차모르인들에게는 “비바 차모르!”라고 하며 승리를 기약했다.
결국 우리는 차모르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호응에 힘입어 밤 10시 30분까지 촛불시위를 이어갔다. 우리의 촛불 행사에는 10여 명의 차모르인들이 함께 했으며, 이들은 얼음물과 햄버거, 랜턴을 들고 왔으며 호롱램프와 라디오를 가지고 와서 컨트리 뮤직을 크게 틀어놓아 농성장은 마치 캠핑장처럼 느껴졌다.

2월 15일(수), 16일(목)
투쟁단은 전날에 이어 오전 농성을 계속 진행했다.
역시 이날도 차모르인들이 투쟁에 동참했고 현지 의원과 한국인 교민이 지지방문을 와 주었다.
투쟁단은 오후 12시에 현지 대응투쟁의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한 후 16일에는 괌의 미군기지를 둘러보았다.(미군기지를 돌아본 이야기는 홈페이지에서 보세요) 조광수, 박석분 국장이 먼저 귀국하고, 유홍국장은 17일 미군이 반환해놓고 최근 오키나와 주일미군 해병대 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시 수용을 요구하는 부당한 요구에 맞선 현지인들의 투쟁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18일 새벽 귀국하였다.
한미동맹의 침략동맹으로의 전환이 가시화되고,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통해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고히 보장받기 위한 한미 양국의 밀어붙이기가 구체화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번 현지 대응투쟁은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 시민사회진영으로는 처음으로, 현지에서 현지인들과 공동으로 미군기지 앞 농성을 전개하고 이것이 현지 언론에 널리 보도됨으로써 민감한 사안을 다루고 있던 한미 당국에 크나큰 부담을 주었다. 아직도 한미 당국은 회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SPI 의제가 갖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한미 당국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번 투쟁이 그 부담을 더욱 더 크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고 본다.
다음으로 이번 투쟁은 괌이 미국의 전략적 요새로서 동북아 패권의 전초기지라는 사실, 미일동맹의 강화가 괌의 기지 확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지에 가보지 않았다면 미국의 군사전략적 이해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 생생하게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번 현지 투쟁은 차모르인들과의 연대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의 부당한 패권적인 군사전략적인 요구에 맞선 투쟁 전선을 확대하였다. 차모르인들의 해방과 독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우리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투쟁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의 확대가 국내투쟁을 촉발시키는 의의를 갖는 만큼 차모르인들과의 연대를 잘 살려내고 발전시켜내야 할 것이다.
멀리 괌에서 한국 교민들을 만나고 이들의 힘을 모아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현지 투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한 미국의 군사전략적 이해와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끼칠 엄청난 부정적 결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냄으로써 전략적 유연성을 저지, 파탄내는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야말로 이번 투쟁의 의의를 더욱 크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번 투쟁을 위해 물심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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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 , 한미동맹재편 , 안보정책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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