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미일동맹재편> 한일 평화운동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평통사가 ‘미·일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 캠페인(AWC)’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작년 11월 16일, 17일, 18일 평택과 경주, 부산에서 ‘APEC 반대, 부시방한 반대,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신자유주의 반대’를 내용으로 공동 포럼과 집회 및 기자회견을 하면서였다. 당시 해외 참가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AWC 일본 연락회의 활동가들 중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전체 진행을 도왔던 이가 나가야 선생(AWC 일본 연락회의 전국 사무국 소속)이다.

AWC는 언제 만들어 졌나?

1992년 10월에 일본 자위대가 처음으로 캄보디아에 파병한 적이 있었어요. 그 직전에 12개 나라와 지역이 모여서 일미군사동맹과 자위대 해외파병에 반대한는 국제회의를 열었어요. 그 회의 후 참여한 단체들이 모여서 국제 네트워크를 만들게 됐어요. 그것이 AWC의 시작이었고 저도 그때 일원으로 참가했지요.

1991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한 후, 일본의 군사적 기여를 요구한다. 이때 일본정부는 자위대의 걸프전 파병을 계획하였으나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교전권의 부인과 전력보유를 금지한 일본 헌법 9조와 전수방위의 원칙에 반한다는 일본내 여론과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한 주변국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1992년 6월 [유엔 평화유지활동 등에 대한 협력법](PKO 협력법)이 제정되었고 이는 자위대가 해외로 파병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다. PKO 협력법이 제정된 3개월 만인 92년 10월에 자위대는 캄보디아에 파병되었다.

평화운동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 친구와 함께 차별이나 환경 문제를 공부하고 유인물도 배포하고 그랬어요. 불량학생이었지요(웃음). 80년대 들어서서 일본의 노동운동은 점차 우경화 되어갔어요. 그런 시대를 예측하면서 그 우경화 경향에 저항하는 노동운동가들이 지금 AWC 중심 중의 하나인 ‘자립노련’이라는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자립노련은 처음에는 기업노조였는데, 지역에 있는 작은 공장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면서 지역적으로 폭넓은 연대체가 만들어 졌어요. 그런 가운데서 청년부가 횡단적으로 조직이 되어 같이 공부도 하고 여름 캠프도 하면서 어느 정도의 젊은 활동가들이 생겼죠. 그 사람들이 지금 AWC 운동을 함께 해왔지요. 저도 그때부터 참여해 왔어요.

그렇게 하는 동안에 일본 자본들이 동남아시아에 침투했죠. 80년대 중반. 특히 필리핀에 대한 자본 침투와 지배가 심했어요. 그 즈음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정권이 타도되었고 필리핀과 연대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어요. 필리핀과의 연대를 중심으로 ‘JPM 90’이라는 운동을 펼쳤는데 일본이 다시는 아시아를 침략, 지배, 유린하지 않게 하는 운동이죠. 그 운동을 토대로 하면서 AWC가 생겼어요. 한편에서 자립노련은 직장에서 국제연대를 키워나가기 위해서 필리핀 노동자들을 일본에 받아들여서 함께 노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필리핀에서 큰 화산이 폭발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 지역 출신 노동자들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 필리핀 노동자들의 가족들에게 의류나 의약품을 보내는 인도주의적인 지원도 하면서 일본 노동자와 필리핀 노동자가 똑같은 노동자라는 교육을 결합했지요. 저에게는 의의있는 경험이었어요.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높은 수준의 운동과 필리핀 민중들을 돕자는 인정에 호소하는 방식이 결합된 것이지요.

그럼 한국말을 배우게 된 계기가?

1995년에 AWC 2차총회(국제회의)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이수갑 선생님이 참여하셨어요. 이수갑 선생님은 총회 참가 후 한국 자료들을 많이 보내주셨는데, 우리가 한마디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 전에는 재일교포 분들에게 번역을 부탁했었는데 매번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AWC 일본 연락회의에서 두명을 한국어 공부를 시키자 해서 제가 하게 되었지요.

2006년 AWC 활동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미군재편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공동 대응, 특히 이와쿠니 미군기지 확장 중단 투쟁이죠. 원래 이와쿠니 시에는 AWC 지부가 없어요. 이와쿠니 시가 포함된 야마구치 현의 다른 시에는 지부가 있죠. 작년 6월 처음으로 AWC로서 이와쿠니 시에서 기지 확장 반대 집회를 했구요. AWC 야마구치 현 지부의 학생들과 활동가들이 원정을 가서 같이 유인물도 뿌리고 공동투쟁도 계속 하면서 이와쿠니 시민들과 신뢰감이 쌓였죠. 그렇게 해서 평통사 박종양 부장이 참여한 올해 3월 집회가 성공리에 치러졌고, 주민투표를 통해 90%가 넘는 주민들이 기지 확장(아츠기 기지에서의 함재기 부대 이전)을 반대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어요.

최근 들어 평화운동이나 반기지 운동이 더 활발해진 것인가?

그런 편이죠. 미군이 진주하면서부터 참혹한 사건들이 많았어요. 사건이나 범죄가 끊임없이 있었는데 전국신문에서 별로 보도가 안됐을 뿐, 그런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나 분노가 계속 있어왔죠. 이와쿠니에서도 그래요. 정말 많은 범죄사건이 있었어요. 그런데 억압적 분위기 때문에 잘 표출이 안되었던 거죠.

최근 들어 미군재편과 재배치가 본격화되면서 반기지운동이 활발해진 그 이면에는 오랫동안 잠재된 깊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분노가 있었던 거죠. 아무런 의논도 없이 기지가 들어와요. 그러니까 지방자치단체들도 반대하는 것이죠. 그런데 일본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자세여서 더 분노가 커지는 것 같아요.

평택 투쟁에 대한 인상?

평택에는 5·4사태 전에 두번 가 본 적이 있어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었는데 무너진 대추초등학교를 보고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특히 어르신들이 생업을 빼앗긴 상태로 낙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제일 괴로웠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평통사 동지들이 희생적으로 투쟁의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게 너무나 존경스러워요. 일본에서도 여러 번 보도가 있었는데 주민들과 지원자를 분리하는 식의 보도도 많았어요. 우리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해요. 그리고 오는 6월 18일 범국민대회와 7월 9일 제4차 평화대행진에 일본과 해외에서의 연대를 집중하기 위해서 AWC로서 노력을 할 것입니다.

평통사에 대한 인상?

그냥 연구단체도 아니고, 그냥 활동가 단체도 아닌, 연구와 실천이 상당히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AWC도 연구도 열심히 하면서 활동해야 하는데 좋은 공부가 되었어요. 특히 작년 11월부터 공동으로 투쟁을 준비하면서 개별 활동가들에 대한 친근감도 생기고 있어요.

한일연대투쟁의 강화를 위해 필요다고 생각하는 점?

지금 한일 간에는 중요한 공동투쟁의 과제가 산적되고 있어요. 바쁜 일정으로 교류를 하는 동안에 역시 서로가 신뢰감을 갖고 서로의 운동상의 고민이나 새로운 시도를 함께 나누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진정한 국제연대를 키워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저의 한국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0일부터 미군문제팀 정용진 국장은 AWC 일본 연락회의의 순례투쟁에 참여하게 된다. 각 지부를 돌아다니며 반기지 운동과 강연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평화, 특히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주일, 주한 미군의 재편과 재배치를 막아내는 것이 평통사와 AWC 일본연락회의의 공통된 과제이니만큼 한일 평화운동의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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