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반환 미군기지의 환경정화 책임과 협상 과정의 문제 - 미군, 그 오만함의 끝은?

5월 4일, 평택 대추리에 군부대가 투입되었다. 미군기지 확장 예정부지 확보를 위한 국가의 원대한 사업은 국가 안보, 한미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미관계라고 주장하면서 한국 정부에 평택 부지 확보를 강하게 요구하는 미군은 자신들의 의무인 반환 미군기지 환경정화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2003년 한국과 미국은 반환 미군기지의 오염조사와 정화 절차에 대한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A’(이하 부속서 A)에 합의하였다. 미군기지 반환 통상 1년 전부터 한미 공동오염조사를 실시하고, 여기서 발견된 오염은 ‘미측’이 치유하기로 한 이 합의서는 독일 다음으로 손꼽히는 높은 규정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2006년, 지금 한국과 미국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협상 난항 - 귀를 막은 미군, 입을 다문 한국

2004년 연합토지관리계획(Land Partnership Plan, LPP)과 용산기지이전협정이 국회를 통과한 후, 2005년 미군기지가 본격 반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의정부, 동두천, 파주 등 경기북부 지역을 흔들어 놨다. 그러나 2005년 반환 예정지 11개(연합토지관리계획 상)는 하나도 반환되지 않았다. 한미간 환경정화에 관한 큰 의견차 때문에 수시반환을 포함한 27개 기지에 대한 오염조사는 끝났지만 오염정화 절차가 시작되지 못했다. SOFA 환경분과위원회를 맡고 있는 환경부는 주한미군이 국내법을 존중하도록 되어 있으므로(SOFA 환경에관한특별양해각서)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을 기준으로 삼을 것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군은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만을 치유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1년 이상 계속된 협상은 2006년 올해 초부터 SPI(안보정책구상회의)의 안건으로 상정되어 국방부가 환경부와 함께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나름의 소신을 지켜온 환경부와 달리, 국방부는 어느 국가를 위한 부처인지 의심스럽다.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미군은 성의를 보이고 있다”, “환경부 때문에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며 미군의 주장을 받아들여 협상을 빨리 마무리하도록 환경부에 압력을 넣었다. 오염조사가 끝난 27개 기지에 대한 정화비용만 5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시위대 때문에 100억원의 세금이 손실된다는 주장을 하는 국방부 장관이 27개 기지 정화비용으로 추산되는 5천억 원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

주한미군기지이전의 최대 복병으로 꼽히는 환경현안은 그 동안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관련 정보는 모두 한미 양측 승인 없이는 공개할 수 없다는 조항에 가로막혀 오염조사 결과나 과정이 베일에 쌓여있다. 한국 언론과 여론을 두려워하는 미군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한국 정부, 특히 환경부는 입을 열기 두려워했다.

한편,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환경문제를 처리할 경우, 한미동맹을 저해할 것”이라며 발언을 했을 뿐 아니라, 이례적으로 한국 정부에 협의 없이 정화에 관한 계획서 개요에 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였다. 관련 정보를 대중과 언론에 공개하기 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을 엄밀히 따진다면, 미군은 부속서 A를 위반한 것이다. 환경부에서도 이에 대해 항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미군만큼 적극적이거나 공세적이지 않다.

협상 당사자인 미군은 귀를 막고 한국 국민 여론이나 한국 정부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있고, 환경부는 입을 다물고 국민들에게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다.

SOFA, 제대로 해석해 보자.

지난 2월, 한겨레신문에서 단독 보도한 환경부 문서와 당시 한미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5개 미군기지 중에서 14개에서 토양환경보전법의 오염기준치를 초과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오염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기지 내부의 토양오염이 심각할 것이라는 것은 예상된 것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자신들이 주장해온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정도가 아니므로 정화가 필요없다는 입장이었다. 소위 말하는 KISE(Known, imminent and Substantial Endangerment)는 2001년에 신설된 SOFA ‘환경에관한특별양해각서’에 명시된 것으로, 여기에는 ‘이러한 오염의 치유를 신속하게 수행하며, 그리고 인간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추가적 치유조치를 검토’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군은 KISE라고 하는 정확한 수치도 없는 기준을 들이대면서 현재 반환 예정인 미군기지의 오염은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이 주장하는 KISE는 미국법인 CERCLA(환경오염보상법, 정화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내용을 국방부 지침에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CERCLA에는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대해 “긴급한 상황이거나 혹은 위험이 현재 나타나는 해가 아니더라도 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위험’은 수 년 동안 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긴급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국 내 판례에서도 이렇게 해석되어 왔다. 따라서 현재 인체에 끼치는 영향이 없기 때문에 KISE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미군의 주장은 미국법에 따르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미군이 주장하는 정화책임 회피의 또 다른 근거는 ‘원상복구 의무 면제’조항이다. 그러나 SOFA 제4조에 명시된 ‘원상복구 의무없다’는 것은 환경조항이 아니라 미군이 건설한 시설을 한국 정부에 반환할 때, 이전 상태로 되돌릴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다. 헌법재판소도 이 조항이 “합중국 군대에게 그 공여 받는 바의 시설과 구역을 오염시킬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거나, 환경오염을 방치한 상태로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2003년의 부속서 A는 오염과 정화에 적용할 기준을 정하지 않은 반쪽 합의서이기는 하다. 하지만 부속서 A에는 한미 간에 협의를 거쳐 치유 기준 및 방법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SOFA 제7조에서 “주한미군은 대한민국의 법령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합의하였고, 2001년 개정된 SOFA합의의사록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합중국 정부는 자연환경 및 인간건강의 보호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이 협정을 이행할 것을 공약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관련 환경법령 및 기준을 존중하는 정책을 확인”한다고 합의하였으므로 한미 협의를 거쳐 국내 환경법을 기준으로 정화할 것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환경법은 국내법보다 더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예로 미국법에서 정하고 있는 규제물질은 130여종이 넘는데 비해 한국은 불과 16종에 불과하다. 미국에 무조건 엄격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군의 오만함, 그 끝은?

미군은 지난 4월 7일, ‘토지반환을 위한 실행계획서’를 국방부에 전달하면서 언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정확한 정화 계획서는 비공개 자료로 분류되어 전체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군의 보도 자료와 성조지 기사 등을 종합해 보면 지하의 유류저장고를 제거하고, PCBs와 사격장의 불발탄과 납, 구리 성분을 제거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부가 꾸준히 주장해온 토양오염의 정화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미군은 마치 이런 정화계획이 주한미군이 한국 내 환경을 끔찍이도 고려하고 있으며 ‘성의’를 보이는 것처럼 굴고 있다. 그러나 오염의 원인이 되는 토양오염의 정화 없이는 지하수 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계속 남게 된다. 전체 오염을 정화하지 않으면서 생색내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 계획을 받아들인다면 미군에게는 ‘정화’를 한다는 명분을 주면서 한국은 나머지 오염을 정화해야 하는 재정 부담을 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을 공산이 크다.

6월 5일, 버웨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국방안보포럼에서 한국정부가 SOFA에도 없는 기준을 주장하면서 미군이 보인 최대한의 성의를 거부하고 있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KISE가 미군의 정화기준인데 이를 넘어서 지하유류저장탱크(Under Storage Tank)를 제거하고 지하수 유류를 제거하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년 이상 협상의 쟁점이었던 부분은 모두 부인한 것이다. 미군은 정화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성의’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군이 밝힌 정화계획의 범위에는 토양오염의 정화는 제외되었는데도, 마치 그것이 첨단 기술로 완벽한 정화를 이룰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용산기지이전협정에서도 환경정화는‘SOFA 관련 규정’에 따른다고 되어있다. 관련 규정은 위에서 언급했던 ‘환경에관한특별양해각서’와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A’를 말하는데 2000년 이후에 10건 이상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용산기지를 반환받을 때에도 역시 환경정화의 책임 소지를 두고 미국과 논란을 벌일 것이다.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작성한 문서에서도 ‘우리측이 막대한 환경치유 부담을 떠안게 됨으로써 심각한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 바 있다.

물론, 미군은 해외 기지의 환경문제에 대해 소홀하고 우리뿐 아니라 어느 국가도 미국을 상대로 환경주권을 제대로 지켜온 곳은 거의 없다. 파나마, 캐나다, 필리핀 등 많은 국가에서 환경적 고려를 안 하거나 오염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미군기지를 반환받고 난 후 증가하는 문제에 버거워하고 피해자가 뒤늦게 나타나고 있다.

SOFA에 세부조항이 마련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 현재 규정으로도 충분히 미국의 정화책임을 주장할 수 있다. 미국은 항상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호의’와 ‘성의’로 포장한 정화계획을 발표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실천해오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더 적극적인 협상 의지가 필요하다. 막바지에 이른 관련 협상은 2011년까지 반환될 62개 기지의 환경정화 책임에 대한 중요한 선례로 남을 것이다. 미국은 각 국의 환경권을 존중할 때에만 동등한 외교관계를 이루고, 각 국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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