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머> 천년은 살았을 은행나무에게

5월 4일 대추 초등학교 건물이 무너지고
당신도 무참히 찍혀 쓰러지던 날,
어머니들은 우셨지요.
땅에 엎드려 울부짖으셨어요.

“엄니, 제가 이 꼴이 되었어요. 우리 땅이 이 꼴이 되었어요. 아이고… 아이고… 죽은 소사 아저씨가 날마다 물주며 애써 키운 저 은행나무는 왜 죽이는 거여, 이 천벌을 받을 놈들…”

다음날 아침 일찍 폐허로 변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당신은 허리가 패이고 뿌리 채 뽑혀 옆으로 누워 있었어요. 여리고 여린 당신의 잎들이 아직 시들지 않은 고운 자태로 당신이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 빛나고 있었지요. 은행나무야 정말 미안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당신의 죄라면 단지 그곳에 심어져 무성한 잎을 피워냈다는 것 뿐… 그래서 미군부대에서 바라볼 때 적의 움직임을 관찰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죄였지요. 그래요, 그날 우리 모두는 우리 손으로 뽑은 정부에 의해 모두 적으로 간주되었지요.

여명의 황새울… 애써 키워 나라 지키라고 군대에 보낸 우리 아들들이 미군부대 쪽문을 열고 쏟아져 나왔어요. 그리고 채송화 봉숭아 백일홍이 피어야 할 운동장에 우리들의 피가 뿌려졌지요. 4년 전 효순이 미선이가 죽고, 서울 시청 앞에서 우리가 10만 촛불을 들었을 때 그들은 표를 구걸하였지요. 대통령만 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겠다. 바로 이것이었나요?

노무현 정부를 선택하며 그때 10만 촛불이 원했던 시대정신은 평등한 한미관계이지요. 이렇게 주한 미군의 숫자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역할이 변경될 때에는 분명 할 말은 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게 그를 뽑은 그때의 시대정신이었지요. 노무현과 그의 정부는 철저하게 우리를 버렸어요. 그리고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천벌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백성의 마음은 하늘의 마음, 평생을 땅을 일구며 고향을 지켜온 그들에게 상은 못줄지언정 이런 패악질을 해댔으니.

지난 3월 4월 5월 황새울에서 있었던 여러 일들을 지켜보며 ‘아, 저들은 제 무덤을 파고 있구나, 천벌 받을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도 말씀하셨어요. “옛날부터 논에 물길을 막으면 천벌을 받을 거라고…” 물길만 막았나요? 별 요상하게도 하늘 길을 따라 철조망이 날라져 왔지요. 임진강에 둘러쳐진 철조망을 조금씩 걷어내도 시원찮을 이 때에 어머님 아버님이 피땀으로 이룬 저 황새울 벌판에 쳐진 철조망을 보고 있노라면 국가라는 이름으로 땅을 죽이고 생명을 죽이는, 땅을 사형시키는 2006년 판 인혁당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 죽은 사람이 억만금의 보상금을 준다 해도 재심을 한다 해도 살아오지 못하듯이, 이 땅이 미군부대로 만들어지면 결코 살려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5월 5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전국에서 달려온 여러분들이 그 철조망을 걷어냈을 때 이민강 아저씨가 온 팔로 달려와 우리를 껴안던 그 기쁨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무심한 듯 거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김석경 아저씨의 얼굴에 살짝 비치던 그 미소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평화가 거저 주어진다면 좋으련만 우리는 다시 싸워서 그분의 얼굴에 미소를 돌려드려야만 합니다.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오신 그분들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쓰러지고 한 달 후 지난 6월 4일 대추리 도두리 리민의 날 행사가 대추 초등학교에서 열렸어요. 전날 마을 청년들이 열심히 운동장을 쓸고 다듬었답니다. 철조망에 막혀 농사일을 못하고 계시는 주민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돼 버렸지요. 여러 어르신들과 천막을 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잠시 맞은편 당신의 빈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쯤 당신의 그 여린 잎들은 더욱 무성해져서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을 텐데…

당신이 몹시 그리웠어요. 그리웠어요.

천년은 살아 이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았을 당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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