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며> 대학가의 군사학 열기를 보며

63-책을 열며

대학가의 군사학 열기를 보며

평통사 공동대표 김흥수

최근 수년 사이에 삼군 사관학교에나 있을 법한 군사학과들이 일반대학에도 버젓이 개설되고 있다. 현재 4년제 대학 가운데 학부에 군사학과를 둔 곳은 2004년 대전대를 시작으로 경남대, 원광대, 조선대 등이다. 그 해 계룡대에서 열린 군사학과 개설 설명회에는 전국에서 23개 대학이 참석해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 후 군사학 분야 학과 개설을 희망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대학에서의 군사학 교육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군사학과 학생들에게는 전액 장학금과 장교 임관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지고 있고 졸업 후 군 관련 연구소나 방위산업체 취업이 가능해 인기도 있는 모양이다. 이미 몇몇 대학에서는 군사학 석사과정이 개설되었고 박사과정도 개설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방안보 관련 석사학위 과정을 두는 대학원도 증가추세에 있다.

전문대학에서도 군 관련 학과가 속속 개설되고 있다. 군의 기술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 기술 분야의 군사 관련 학과에는 현재 7개 전문대학에서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총포광학과, 유도탄약과, 특수무기과, 국방물자과, 특수자동차과 같은 학과들에서 공부하고 있다. 특수 기술 분야의 군사학과 외에도 부사관학과를 개설한 대학도 있다. 이 학과들은 학군제휴 협약에 따라 군의 주문식 교육에 의해 운영되며, 인근 부대로부터 교육실습장 및 교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학가의 군사학 열기는 국가안보 차원에서만 보면 학계와 군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는 현상으로 또는 군사학이 대학사회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학 저 대학에서 취업이나 신입생 충원을 이유로 군사학과를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군사학과에서 교육하는 것은 군사력의 개발, 유지 및 운용이 그 핵심적 영역임은 이미 개설된 군사학과의 교과과정에서 잘 입증되고 있다. 대학에서의 군사학과 개설은 사관생도와 군인뿐만 아니라 일반 대학에까지 군사학 교육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아무 주저 없이 많은 대학들이 전쟁 관련 일꾼 양성에 나서고 있음을 드러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전쟁의 비극과 참상을 경험했다. 6. 25전쟁 기간 동안 무려 50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숫자는 유엔군과 중국군이 포함된 것이나 대략 한 두 가족 중 한 사람의 사상자가 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2차 세계대전, 14세기의 흑사병, 1차 세계대전 다음으로 큰 재난이었고 따라서 한국인들이 겪은 고난과 스트레스도 그 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전쟁으로 이런 대 참사를 겪은 경험이 있기에 그리고 지금도 남북이 휴전상태로 대결하고 있기에 대학들에서 군사학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안보 차원에서 이해될 수는 있으나 이 대학 저 대학에서 군사학과가 개설되고 있는 것은 대학을 위해서나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나 결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전쟁 경험은 안보 차원을 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평화교육 운동이나 반전운동으로 발전해야 하며 대학사회가 앞서 해야 할 일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군사 관련 교육의 필요성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민군 교류와 협력을 통해 국민의 안보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일도 필요하겠으나 대학을 안보교육이나 취업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군의 태도나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대학들에서 생존의 돌파구로서 무분별하게 군사학과를 개설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는 것이다. 군은 영관급 제대군인에게 교수요원으로 활동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취업기회의 확대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이유들로 개설된 학과에서 전쟁이나 평화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교육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교육 없이 군사력 증강을 위한 교육과 전쟁 관련 기술교육만을 실시한다면 머지않아 한국대학들은 전쟁교육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남한에서는 국방비가 지속적으로 확충되어 왔으며 북한에서는 선군정치라는 낯선 말까지 등장했다. 이처럼 남과 북에서 국가안보를 군사력에 의존하는 상황이라 안보주의적 군사학 연구도 등장하겠지만, 바로 그 상황 때문에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통일운동이나 평화운동에 나설 일꾼을 교육하는 학과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대학 학부에 평화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평화학과나 그와 유사한 명칭의 학과가 개설된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평화운동 단체는 생기고 있으나 학문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평화학 연구의 불모지다. 군사 관련 학과는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대학원에서 계속 개설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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