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I-전세계 반기지·평화운동에 접속하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평화를!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반대한다!

제목 없음

 

 

필자는 APWSL(Asia Pacific workers solidarity League) 한국위원회의 제안을 받고 12월 8일부터 11일까지 필리핀 세부에서 열리는 국제연대회의에 참가하게 되었다. 특히 ASEAN 정상회담 개최에 반대하여 열리는 국제회의이면서 회의 중간에 시위가 결합되어 있어서 그런지 더욱 흥미를 느꼈다.

주최 측에서는 필자에게 평택 미군기지 관련 투쟁사례를 발표해달라고 요청을 해왔다. 발표할 영문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평택지킴이 버튼과 평택투쟁 상징 깃발을 준비하였다. 팽성주민대책위에서 준비해준 상징 깃발에는 “Pyongtaek for Peace”가 적혀 있었다.    

출발 전날 APWSL 한국위원회 간사로부터 현지 사정을 간략하게 전해 들었다. 현지 정세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 대회 진행이 어수선할 수 있다는 것, 통역이 어떤 수준인지 가늠이 어렵다는 것 등이었다. 필자는 그런 상황이해에 기초하여 필리핀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인터넷에서 미리 파악해두는 한편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서 전자사전을 준비해서 출국하였다.

 

- 필리핀은 어떤 나라인가?

 

국명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이고 6년 단임의 대통령제 나라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1.3배이고 7천여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인구는 8천만 명이 넘는다. 기후는 전반적으로 고온다습한 아열대성 기후(연평균 27℃)이며 건기(12-4월)와 우기(5-11월)로 나뉜다. 태풍·지진·화산 등 자연재해가 빈발하는 곳이다.  

특히 외세의 지배를 많이 받았던 나라로서 스페인(1571∼1898), 미국(1898∼1946) 일본(1942∼1945)의 식민지 통치를 겪었다.

남부지역에는 반군인 모로 민족해방전선(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 Abu Sayyaf Group, NPA 등이 있다. 모로 민족해방전선(Moro National Liberation Front)은 1996년에 필리핀 정부와의 평화협정 체결로 민족해방전선 대원들은 대부분 정부군과 경찰 등으로 편입되었으나 아직도 일부 세력이 남아 정부군에 저항 중이다. 모로 이슬람해방전선(Moro Islamic Liberation Front)은 민족해방전선 내분결과 1979년 민족해방전선에서 이탈하여 창설되었다. 이슬람지역 내 완전독립과 정부수립을 주장하며 정부와 민족해방전선 간에 체결된 평화협정에 반발하고 있다. 2001년 필리핀 정부와 정전협정을 체결하였으나 정부군과 이슬람해방전선 간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2003년부터 양 측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이슬람해방전선 세력은 약 12,000명으로 추산된다.

Abu Sayyaf Group은 남부 민다나오에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1991년 창설된 단체인데,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정되었다. 2002년 5개월 동안 Abu Sayyaf 반군소탕을 위한 필·미 연합 군사작전으로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으나 최근 본거지를 Sulu 지역으로 이동, 현지 이슬람 반군세력과 합세하여 조직을 재정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력은 약 1,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공산 반군으로 NPA(New People’s Army)가 있다. NPA는 1968년 모택동주의 필리핀공산당 재건 직후 Jose Sison이 공산당의 무장조직으로 결성하였다. 1980년대 중반 크게 세력을 확장 전국의 약 1/4을 장악하고 1987년 25,000명까지 세력을 확장한 바 있다. 1985년 말 북부 마닐라근교 수도권지역에서는 도시게릴라부대 ABB(Alex Boncayao Brigade)가 대정부 전복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1991년 철저한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킨타나르 사령관 체포 이후 라모스 정부의 사면과 회유로 세력이 감소되어 남부 Luzon섬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소규모 병력만 유지했으나 최근 아로요 대통령이 Abu Sayyaf 등 이슬람 반군문제에 전념하는 사이 세력을 확대, 현재 12,000명까지 늘어났다. NPA는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정되었다.

통일전선조직으로는 NDF(National Democratic Front)와 Bayan(필리핀 말로 ‘민족’)이 있다. NDF는 주로 급진 진보정당 등이 가입해있는 비합법조직이고 Bayan은 진보적인 노동자조직인 KMU와 농민조직인 KMP 등이 가입하여 활동하는 합법조직이다.   

NDF는 공산당 계열의 통일전선조직으로 1973년 창설되어 NPA의 정치기구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1992년 이래 네델란드에 망명해 있는 NDF 지도자 Jose Sison의 귀국을 종용하면서 회유하는 한편 NDF와의 평화협상을 진행하여 1995년 화해 선언을 채택하였다. 라모스 정부는 1998년 NDF와 ‘인권 및 인도 국제법 존중에 관한 협정’에 서명하였으나 적대행위의 전면중단 등 본격적인 평화협정은 체결하지 못했다. 2001년 아로요 정부 출범 이후 평화협상이 진행 중이나 NDF 측의 NPA 및 Jose Sison에 대한 테러단체·테러리스트 지정 해제 요구를 필리핀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협상이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 12월 7-8일, ‘Jobs and Justice’ conference

 

12월 8일, 세부에 있는 카톨릭 계열 대학인 STC(Saint Terresa College) 시청각실에서 ?‘Jobs and Justice’ conference가 열렸다. 7일에 이어 이틀간 열렸다. 필자가 참여하기로 되어있던 conference는 아니었지만 주제가 흥미로워 참관하였다.

20여 나라 12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각국의 정세 및 주요 노동운동 현황과 사례 등을 발표하고 자유토론 등을 진행하였다. 전날에는 저녁식사 후 행진과 시위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야간에 집회시위가 금지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되었다.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시위를 축제처럼 진행했다고 한다.

12월 8일에는 3가지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비정규직 조직화, 고용안정과 임금 및 민주적 기본권 쟁취 노동자투쟁, 여성노동자와 농업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투쟁 등이 다루어졌다.  

남한 대표로 참석한 비정규직연구소 김성희 소장의 ‘남한의 비정규직 노동자 현황과 조직화 과제’ 주제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통역이 문제였다. 사전에 통역을 하기로 한 친구가 주제발표 직전 발표문을 보더니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통역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지켜본 필자도 적지 않게 당황 했다. 그는 필자의 통역도 담당해야 할 친구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김성희 소장이 직접 영어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사리 발표와 질의응답을 마치고 내려온 김성희 소장에게 필자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데 그래도 참 잘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때부터 필자는 직접 발표하기로 작심을 하고 틈틈이 전자사전을 보면서 발표할 내용의 전개과정을 구상하고 영어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김성희 소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만일 김성희 소장이 통역문제로 먼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필자가 고3 수험생처럼 그토록 발표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우리는 숙소 앞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잔씩 하며 뜨겁게 동지애를 나눴다.    

 

 

- 12월 9-10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 군사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국제회의’

 

12월 9-10일, 같은 대학 대강당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 군사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에 관한 국제회의’가 열렸다. 27개 나라 17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자국의 반제, 반기지 투쟁사례를 공유하고 국제연대투쟁의 방향과 공동의 실천과제를 논의하였다.

참가국은 북미에서 캐나다와 미국, 유럽에서 노르웨이, 중동에서 팔레스타인, 오세아니아에서 뉴질랜드와 호주,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네팔, 몽고, 홍콩, 중국, 타이완,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태국, 파키스탄, 일본, 오키나와, 남, 북한 등이었다.

 

회의의 주요 주제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과 군사의제’, ‘동남아시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 ‘동북아시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 ‘서남아시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 ‘미군기지와 미군출입협정’, ‘군사주의와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다.

북한 대표는 12월 9일, 동북아지역의 테러와의 전쟁을 발표했고 필자는 12월 10일 평택투쟁 사례를 발표했다. 북한 대표 2명은 평양에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세계인민을 위한 국제연대성 조선위원회’ 소속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필자는 너무나 반가웠다. 이국땅에서 그것도 ‘한반도의 평화와 아시아, 세계 평화’를 논하고 공동 실천과제를 모색하는 자리에서 만났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한번 상상해보라.  

12월 9일, 북한 대표는 동북아지역의 테러와의 전쟁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의 구체적인 실상을 낱낱이 폭로하는 한편, 소위 북핵문제로 지칭되는 한반도 위기상황의 배경과 본질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였다. 한반도 위기상황의 해법은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베이징 공동성명에 언급된 포괄적 방안에 대하여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북·미가 동시이행을 하면 된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12월 10일, 필자는 평택투쟁사례를 발표하고 평택투쟁영상을 상영한 후 5개항의 국제연대 요청사항을 참가자들에게 제안하였다. 참가자들은 박수로 결의해주었다. 특히, 평택 영상을 상영하자 참가자 중 50여명 정도가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공감을 표시해 오히려 필자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영상이 끝난 후 필자가 했던 영어 정리발언 한마디를 소개한다.      

“Pregnant women cannot give birth to without pains. Pyongtaek struggle too sameness. For keep land of life & land of peace, we will struggle until victory. Only our persistent struggle guarantee for victory. Pyongtaek US base expansion - it is hurt to Korean peninsula peace, Northeast asia peace, Asia peace & World peace. We are hope to your solidarity. North-Korea & South-Korea is one. You & I is one. We are comrades. Comrade is ‘Dong-ji’ in korean word. We are ‘Dong-ji’.”

12월 10일, 첫 번째 패널이 끝난 직후 시위행진을 하였다. STC 대학에서 세부 대통령 궁까지 행진을 하고 대통령 궁 앞에서 집회를 하였다. 행진 중 엄청난 폭우로 행진이 잠시 멈추기도 했지만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행진을 강행하였다. 약 2.5Km의 행진이 시작되자 점차 시위대가 늘어났다. 맨발의 어린이들과 주부들이 대형 칼라사진을 들고 행진에 참여하였다. 자세히 보니 필리핀 정부군에 의해서 피살된 가족들의 사진을 들고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안타까웠다. Arroyo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약 800명 가까이 피살되었다. 이틀에 한명 꼴로 죽어간 것이다. 필리핀 운동가들은 일정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운동가들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교묘한 탄압이 상쇄되는 현실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었다. 결국 민중의 단결된 투쟁만이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겠냐고 그들은 힘주어 말한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서도 공감이 간다.

필리핀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로요 정권의 활동가들에 대한 정치살인을 보도하는 신문들

세부 대통령 궁 앞으로 행진하자 경찰들이 행진대열을 막아 나선다. 시위대 500여명에 경찰 50여명, 이 또한 우리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적은 숫자로 막기 때문인지 경찰들은 M16으로 무장을 한 채 시위대를 맞이한다. 상당한 긴장감이 흘렀으나 많은 수의 해외  평화운동가들이 시위에 참여해서인지 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느껴진다. 끝내 민중들의 기세에 눌려 대통령 궁 앞 도로까지 경찰들이 밀려났다. 그러한 기세 때문인지 힘차게 집회가 진행되었다. 가난한 필리핀 민중들이 자연스럽게 집회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현실과 요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  

12월 10일 행사가 끝나고 각 나라 참가 대표들과 원탁회의를 가졌다. 이번 국제회의의 성과를 실천적으로 이어가자는 취지였다. 30여명의 각국 대표가 모여 2시간 여 토론 끝에 ‘Asia Pacific Anti US base Network’가 결성되었다. 향후 3년간의 정보 공유와 국제연대 실천을 도모한 후 조직적 수준을 높여나가기로 합의하였다.   

 

 

- 12월 11일,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 협의’ 회의

 

12월 11일, 세부 시내 민중교회에서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 협의’ 회의가 열렸다. 행사는  ILPS(International League of Peoples' Struggle) 국제본부에서 주최하였다. ILPS는 Jose Sison이 결성한 반제투쟁기구이다.   

10여 나라 100여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세계적 차원의 반제투쟁의 흐름을 공유하고 특히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경제침탈과 전쟁 사례를 발표하고 국제연대투쟁의 방향과 공동 실천과제를 논의하였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강행되는 행사임에도 참가자 모두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전 간식시간 후 자리에 모이자 주최 측에서 검은 띠를 하나씩 나눠주며 “노동운동가 한사람이 방금 피살되었으니, 애도를 표하는 뜻에서 왼쪽 손목에 검은 띠를 묶고 행사에 참가해 달라”고 공지한다. 필리핀 정세가 얼마나 엄중하고 운동가들의 삶이 고난의 연속인지 잘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저녁에 내용을 확인해보니 더욱 가관이다. 사탕수수기계를 만드는 일본계 회사에서 부당 해고된 노동자 2명과 노조위원장이 회사 앞에서 부당해고에 항의해 시위를 하려는 첫날이었다. 회사 측에 사전에 공지했음에도 사복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군인들에 의해서 3명의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총을 맞은 것이다. 그 자리에서 노조위원장은 즉사하고 나머지 2명의 노동자는 중태에 빠졌다 한다. 필자가 돌아오는 날 그들의 안부를 묻자 안타깝게도 곧 죽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현지 신문을 보니 연일 테러에 의해 희생당한 농민과 인권변호사 등에 관한 관련 기사가 주요 기사로 눈에 띠었다. 적어도 아로요 정권 치하 5년 동안 이틀에 한명 꼴로 운동가들이 피살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전 날 있었던 시위행진에 시위대의 상당수가 ‘Stop Killing’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참여했었다.  

 

국제연대 과정에서 느꼈던 교훈들

 

반제반미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나라를 초월하여 반제반미 세력의 총단결이 절실하다. 세계 최강의 미 제국주의와 싸워 승리하는 길은 우리의 힘을 극대화하고 국제적 반미전선을 끊임없이 확대하여 지속적으로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해 각 나라의 투쟁 상황을 공유하고 모범적인 투쟁사례들을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국제연대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의 투쟁만 앞세우기 보다는 각국의 투쟁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당면 투쟁을 승리로 귀결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민족민주운동 지도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이 절감하였다.

이번 행사 기간 중 Jose Sison의 두 차례 기조연설이 있었다. 30분짜리 기조연설을 영상과 자막을 통해 듣고 보았다. 왜, 필리핀 운동가들이 “베트남에는 호치민이 있고, 우리에게는 Jose Sison이 있다”라고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Jose Sison의 두 차례 기조연설을 접하고 느낀 소감은 크게 3가지다. 그가 세계정세를 관통하고 있다는 것, 미 제국주의의 폐해에 대하여 정확히 진단하고 전략전술적 투쟁과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 오랜 투쟁과정에서 단련되고 검증된 지도자란 점이다. 이는 비단 Jose Sison뿐 아니라 Bayan의장과 KMU의장 등 주요 운동 지도부를 직접 대하면서 알게 되었다. 필자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운동의 현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고, 과연 바람직한 지도자의 상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게 되었다.

 

운동가로서 끊임없는 자기혁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닫게 되었다.

국제연대회의 참여 직전 “필리핀 운동가들은 운동가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현실을 직접 접해보니 실감이 되었다. 필리핀 운동가들은 탄압의 표적이 되고 있고, 주요 지도부들은 끊임없이 살해위협까지 받고 있다. 주요 지도부들이 움직일 때 반드시 2명의 보디가드가 동행을 할 정도이다. 지도부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 마시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니 ‘술을 마시면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늘 긴장하고 깨어있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회의와 행사 진행과정을 보니 지도부들이 민주적 여론수렴과정과 올바른 결론 도출과정에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내용에 대한 총체적인 장악과 민주집중제의 체질화 수준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우리도 필리핀 운동가들의 모범을 따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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