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비둘기┃
봄에 철 지난 겨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또한 나는 어렸을 때 가톨릭 세례를 부모님 손에 이끌려 받았지만 고등학교까지만 다닌 성당에선 졸기에 바빴고 하얗고 조그만 세례 빵만 기다렸던 (맛은 없지만 어쨌든 먹는 거니까) 비 신자에 가까웠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이 글에 쓴 20여년 만에 만난 가톨릭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친숙한 것이었음을 이해하길 바란다.
2006년 12월 26일부터 28일까지 미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와 미 전략사령부(Strategic Command)가 있는 오퍼트 공군기지(Offutt Air Force Base) 앞에서 -오마하 남쪽의 벨뢰브에 위치- 아이오와 주 ‘데스 모인스 가톨릭 노동자회’(Des Moines Catholic Worker, www.desmoinescatho licworker.org)의 프랭크 코다로와 오마하 가톨릭 노동자회의 제리 애브너가 주최한 연간 28번째 ‘신성 무고 인들을 위한 묵상과 증인 축연제’(Feast of Holy Innocents Retreat and Witness)와 현재 전쟁 범죄 주범인 미 전략사령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다.
가톨릭 노동자회 운동은 1933년 뉴욕 시의 피터 모린과 도로시 데이에 의해 설립, 성서의 자애, 연민, 정의, 사랑의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비폭력, 자발적 가난, 자비를 삶의 길로 채택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는데 비 가톨릭교도도 이 공동체에서 많이 일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130여개의 공동체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헐벗은 이웃에 대한 무료 숙소와 음식, 정신적 양식 제공 이외에도 비폭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이자 굳건한 평화운동을 해 왔다. 행사는 사전 이틀 간 오마하 크레이대학 부속 성당 안 묵상 및 행사소개 모임과 28일의 기지 앞 시위였다. 이틀간은 11명이 모였는데 나를 빼곤 서로 다 알고 있었다. 28일의 시위에는 25명으로 불어났다. 행사의 의의는 프랭크 코다로가 28일 오퍼트 공군기지 앞 항의 시위에서 읽은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혀진다. 부분들을 발췌한다.
“카톨릭 성구에 의거, 성당은 12월 28일, (예수님 탄생 시) 헤롯왕의 베들레헴의 모든 남아 살해를 기념, 신성한 무고 인들을 위한 축연 행사를 한다. 매튜의 유아 이야기 복음을 이용, 우리는 헤롯왕, 그의 베들레헴의 무고한 아기들 살해, 그리고 미국의 지원 아래에 있는 현대의 헤롯들의 살인적 행위와의 관계를 검토하였다.”
“우리는 성서시대 이후 제국들의 힘 구조가 바뀌지 않았음을 보아 왔다. 예수님 시대의 헤롯은 로마 군단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현대 헤롯들은 미군의 전 지구적 현존과 오퍼트 기지의 핵과 우주명령국에 의해 유지된다.”
“오퍼트 공군기지는 미국의 핵무기 투하 본부이자 명령 본부로 56년간 그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오퍼트 기지의 전략사령부는 전 세계를 매년, 매일, 매시, 매분, 핵 섬멸의 위협으로 몰아놓고 있다.”
“우리는 오늘 미국의 반 생명, 반 평화, 반 사랑, 반 그리스도, 반 성탄적 삶때문에 수치감과 한탄에 차 서 있다. 우리는 회개의 기도로, 어둠의 시대와 땅이었던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인류 역사에 준 성탄 혼에 대한 신념과 신뢰로 왔다. 우리는 이와 같은 성탄 혼이 전쟁을 생산해 내는 제국적 삶을 바꿔 평화로운 삶으로 인도하기를 바란다.”
프랭크 코다로의 성명서 이후에 사람들은 가장 낮은 계급인 양치기들에게 예수 탄생을 알릴 사명이 주어진 성탄 혼을 상기하듯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혼신으로 불렀고 짐 머피 신부님은 경비원들이 숨어 있는 기지를 향해 군사 직업을 관두고 평화운동에 참가하라고 열정적인 즉석 탄원연설을 했다. (왼쪽 사진)
참가자
중 아이오와에 사는 빌과 진 베이싱어 부부(왼쪽 사진 앞줄)는 75년
인혁당 사건이 있었을 때 우연히 한국에 있었다. 그들은 뜻있는 가톨릭,
기독교 선교사들과 함께 미 대사관 앞 항의시위를 조직했었다고 한다.
8명의 그들은 8명의 사형수를 상징하는 검은 두건을 쓰고 사형수 복장
차림으로 미 대사관 앞에 서 있었다. 이 일로 빌은 한국 중앙정보부로부터
철야심문을 받았고 추방의 위기를 맞기도 했었다. 빌은 그때의 무고한 사형수들과 처절한 아내들, 당시 한국 정부의 반인륜적 탄압, 그리고 배후에 있었던 미국 정부에 대해 아직도 눈에 슬픔과 분노의 눈물이 고이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이다. 프랭크 코다로와 빌 모두 시노트 신부님(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인혁당 사건을 세상에 알려냈던)의 활약을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뜻밖에 나는 미국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들을 만난 것이고 그들이 미국에서도 온 몸을 바쳐 평화운동에 종사하고 있음을 목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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