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열며> 07 RSOI/FE 만리포 상륙훈련 반대 투쟁에 다녀와서


만리포 투쟁에 참가한 이세우 대표

새벽녘 어릴 적 추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서해안 바닷가, 우리 일행은 만리포로 향했다. 낭만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철 이른 바닷가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다. 싸움을 하기 위해 바닷가로 나선 것이다.

지난 해 신고식을 단단히 치를 뒤라 예상했던 대로 경찰의 경비는 삼엄했고 바다 내음과 함께 싸늘한 감이 전해졌다. 흐린 하늘 때문인지 싸늘했던 아침 공기는 금세 훈훈한 온정의 바람으로 변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중앙과 지역, 그리고 서울의 동지들이 반갑게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밖에 올 만한 단체와 사람들은 모두 집결해 있었다. 우리 평통사 식구들은 거리 관계로 지난밤에 출발해 새벽에 도착 했다고 한다. 모두 피곤들 할 것 같은데 피곤함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눈빛들이 긴장감과 함께 더욱 빛나는 것을 보았다. ‘이놈들 오기만 해봐라. 작살을 내버리리라’는 각오가 타오르는 듯 했다. 무서워서 그랬던지 배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의 기세에 짓눌려 훈련이 중단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여기까지 달려 왔는데 배구경도 못하고 돌아가면 어째 너무 시시해 버릴 것도 같았다.

그러나 배는 들어왔다. 5대의 상륙함이 바다 멀리 떠 있는 것이 발견이 되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사이 평통사의 지침에 따라 그날 함께 한 목사님들과 함께 대회를 마치고 별도의 거리 기도회를 갖기 위해 백사장과 시내 곳곳을 움직였다. 경찰력을 분산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우리의 작전을 수행하기 위함이었다.

예상시간보다 1시간 반 정도는 늦게 그 모습을 드러낸 훈련모습은 거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듯 했다. 거대한 파도보다도 더 엄청나게 우리를 공포스럽게 쳐 들어왔다. 해안선에 정렬해 있던 5대의 상륙함에서 48대의 수륙양용장갑차가 쏟아져 나와 1열 횡대로 이루더니 거침없이 뭍으로 달려 나왔다. 육지에 가까이 와서는 연막탄을 쏘아대며 모습을 감추더니 장갑차는 어느새 백사장을 지나 마을로 달려 나갔다. 어릴 적 이런 모습을 봤다면 신이 나서 쫓아 다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바다 멀리서 수륙양용장갑차가 육지를 향하여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노란 깃발을 들고 뛰어 나갔다. 막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을 중단하라!’ ‘너희 나라 미국으로 돌아가라’ ‘전쟁을 멈춰라’ 외치며 뛰어 나갔는데 군인들이 쳐 놓은 철조망에 가로 막혀 곧 멈출 수밖에 없었고 곧 바로 경찰들이 허겁지겁 뛰어 와서는 나를 잡아끌고 나갔다.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항의하며 대회를 진행하며 사수하는 평통사 식구들의 목소리는 어디서든 들려왔다. 요란한 굉음의 장갑차 소리가 바닷가를 소란케 했지만 우리들의 우렁찬 목소리는 하늘을 진통케 하며 내 가슴에 뚜렷하게 새겨졌고 주위를 압도했다. 상황은 그렇게 종료됐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만리포 상륙전 훈련은 RSOI/FE 연습이 대북 공격연습임을 나타내는 산 증거이며 가장 공격적인 훈련이다. 작계5027의 3단계 2부에 해당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는 만리포 훈련은 육, 해, 공 합동군의 북한진격과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 이름처럼 크고 아름다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평양을 적지로 간주하고 여기를 침략하는 상륙전 연습은 누가 보더라도 평화를 비웃고 통일을 짓밟는 짓이다.
각종 무기로 무장한 병력과 공군의 항공기까지 동원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연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할 때쯤 몸에서 생채기가 났다. 그리고 내 몸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스멀스멀한 느낌이 전해 졌다. 내 몸 이곳저곳을 파고들며 ‘저 요상스런 괴물이 이라크에서 수많은 민중들을 기아와 고아, 공포와 죽음으로 몰았겠지?’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월남에서, 아프칸에서 죽어간 영혼들이 만리포 해변 위를 맴도는 것을 느꼈다. 만리포 백사장으로 기어오르는 장갑차를 보며 괴물들이 내 어미와 내 누이의 자궁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은 착각에 깜짝 놀란다.

침략의 역사, 미국! 늘 배불리 먹고도 허기증을 느끼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미국! 그래야만 자기 체중을 유지하며 존재가치를 느끼는 나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발톱을 갈고 있는 야수의 나라 미국이 한반도를 그냥 놔줄리 없다. 이보다 더 좋은 먹이감이 없다. 홀라당 벗어 놓고 김이 모락모락 나게 해서 통째 먹으라고 내 주기까지 하니 이를 거절할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까불지 마라! 먹으려고 덤비다가 이빨 빠지고 턱 깨져서 나가 떨어진 멍청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기 바란다. 오늘은 비록 막거나 쫓아내지 못했지만 평통사가 있기에 ‘반드시 미국 너희를 내 쫓고 말리라’는 다짐을 만리포 갈매기에게만 살짝 알려주고 또 다시 올지도 모를 바닷가를 뒤로 하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조금 나와 바닷가를 근처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데 모래를 씹는 느낌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이 밤,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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