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통사와 늘 함께 하겠다는 순수한 청년 - 부천평통사 노칠성 회원

이달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

노칠성 회원(부천평통사)

우직하고 성실한 노동자 노칠성 회원이 탱고 앞 시위에 나섰다.
평통사에서 다시 태어난 노칠성 회원의 이야기는 아래에 있다.

 

 

이 달의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
평통사와 늘 함께 하겠다는 순수한 청년-노칠성 회원

인터뷰, 정리 : 박숙경(부천평통사)

 

 


△ 홈에버 불매운동 1인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노칠성 회원

노칠성 회원은 부천시의 조그마한 공장이 우글거리는 내동에 터를 잡고 9년째 살아가고 있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23세에 이곳으로 올라와 제조업노동자로서, 또 부천평통사의 전신인 통일사랑노동자회 회원으로서 살며 활동하고 있다.
현재 그는 일하던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죽어도 평통사와는 떨어질 수 없다는 너스레를 떨며 실직 중이다.
그는 오랜만에 쉬는 시간을 활용해 국가고시시험(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고 취업을 준비하느라 이력서를 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회지에 실릴 회원인터뷰 이야기가 건네지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려는데 약간 쑥스러운 듯, 설레이는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순박하고 맑은 눈빛 그대로 회지를 통해 만나게 될 평통사 회원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역력히 드러난다.

- 평통사 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나는 어렸을 때 꿈이 없었다. 오로지 좋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마음이 전부였는데 함께 일하던 용진이형을 통해 단체생활을 알게 되고 사람들이 좋아서 마음을 열게 되었다.
처음으로 전태일 열사정신계승 추모집회에 참여했을 때 대학로에서 명동성당까지 행진을 함께하면서 들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아 이런 삶도 있구나! 참으로 멋있는 일이다. 함께하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 후에 효순이 미선이 투쟁이 계기가 되어 주한미군의 만행을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고 하루라도 빨리 미군철수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 큰일이며 꼭 필요한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통사 활동을 하면서 무엇이 변화되었나?
단체 생활을 시작한지 8년이 흘렀다.
내가 개인적인 삶을 택했다면 아마도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그에 관한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평통사에서 분회활동, 실천투쟁, 학습, 사람들과의 관계를 겪으면서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지금은 자기 생각, 주장을 말할 수 있게 되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꾸고 있는 꿈은?
대중적 실천,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보다 더 나은 활동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집회참가, 학습 등 나이 먹어서도 꾸준히 하고 싶다.

-가장 기뻤을 때와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
2006년 4월 7일 평택투쟁으로 연행됐을 때다.
연행되어 들어갔는데 저녁 9시가 넘도록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고 평일이라 내일 일하러 못가는가 싶어 불안하기도 한 상황에서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한 일이었지만 불안함이 고조되었을 때 10시경 사무장님과 회원들이 면회를 왔다.
회원들의 모습에 기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경찰서를 쩌렁쩌렁 울리는 사무장님의 목소리,
회원들...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싸워주는구나!
경찰서를 나올 때에는 어두운 긴 터널을 뚫고 밝은 빛으로 나오는 느낌이었다.

- 활동하면서 아쉬었던 점은?
탈퇴한 회원들을 붙잡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이다.

- 부천평통사의 자랑거리는?
회원들 전체가 다 친구 같고 편하다, 결속력이 강하다는 것^^

- 평통사에 바라고 싶은 말?
통일이 된 이후에도 평통사가 변혁운동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 길에 항상 함께 하겠다.

*** 인터뷰를 시작할 때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노칠성 회원은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처럼 그는 중단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평통사 활동이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는 노칠성 회원. 이 열정이야말로 오늘의 평통사를 만들어낸 힘이 아닐까?

 

→ 관련글 : 홈에버 중동점 불매운동 알리기 1인시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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