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안되나요?

$회원들의 이야기 마당$

 

*안동 평통사의 이상윤 회원이 2007년 12월 10일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형.

어디 가셨나요?

오늘은 대희 고등학교 시험 날인데.

형 어디 가셨나요?

대통령 선거가 코 앞인데, 할 일이 많은데,

일 잘 하는 형이 꼭 필요한데. 이쁜 연희 머리도 땋아줘야 하는데.

형.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술자리 잠시 비워 두고

담배 사러 가셨나요?

겨울 밤 때 아닌 비가 내리고 하늘이 잠시 열린 틈을 타

그리도 멀리 부지런히 가셨나요?

 

황망한 마음으로 돌아 보면

형은 이렇게 살았지요.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똑똑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하셨지요.

그래서 열심히 불도저를 몰고, 공돌이가 되고, 용접공이 되어

이 땅을 가꾸는 일꾼이 되셨지요.

풀꽃 같은 안동 색시를 만나 열렬히 사랑도 했지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나는 바보처럼 일만해도

배가 부르다고 했습니다.

근로기준법과 싸우고 독재정권과 맞붙어 싸우고

 

거대언론 조선일보와 싸우고 부도덕과 싸우고 반통일과

반평화와 쌈박질을 해댔습니다.

형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였지만, 거짓말이었지요.

무엇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인지 처음부터 형은 알고 있었지요.

말 많은 사람들 틈에서 똑똑한 사람들 틈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오직 온 몸으로 할 때만 가능하다고

성실하게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요.

 

 

아! 형의 하얀 웃음이 금방이라도 함박눈이 되어 내릴 것 같습니다.

형의 선 굵은 땀방울이 금방이라도 비가 되어 내릴 것 같습니다.

이를 어쩌지요. 이리 부산을 떨다 불쑥 형이 돌아오면 어쩌지요?

 

연희야, 대희야

이제 곧 슬픔을 거두고 아버지를 자랑하거라.

아버지는 통일의 일꾼이었다. 아버지는 평화의 파수꾼이었다.

아버지는 불의에 항거하는 진정한 투사였다.

그리고 너희들의 아버지 이상윤은 겸손하고 따뜻한

함박꽃처럼 웃을 줄 아는 맑고 착한 영혼을 가진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였다.

 

슬픔이 너무 커 눈물조차 말라버린 형수님.

이제 곧 슬픔을 거두고 형을 더 오래도록 사랑하세요.

세상 모두가 형을 사랑하였으니

세상 모든 일이 형이 해야 할 일이었으니

형수님 드릴 사랑이 좀 작아지기는 했겠지만.

그래도 형이 온 몸 바쳐 사랑했던 한 여인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열 아홉 숫총각처럼 수줍게 얼굴 붉히며

“나는 마누라를 열나게 사랑했슴다 죽도록 사랑했슴다”라고

우리에게 한 고백을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형.

어디 가셨나요?

비가 그치고 매운 바람 부는데 그예 어딜 가셨나요?

아직 나는 형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형은 어딜 그리 바삐 혼자서 가셨나요?

 

형.

좀 더 형을 사랑하면 안되나요?

술 한 잔 더 하면 안되나요?

마라톤 한 판 더 뛰면 안되나요?

조금만 더 오래, 사랑하면 안되나요?  

 

-2007년 12월 13일 모두의 마음을 모아 후배시인 피재현이 바칩니다.


지난 8월 15일 행사에 참여했던 故 이상윤 회원(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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