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내보내는 평화협정(시안) 해설

$특집 - 평화협정 시안 해설$

 

6자회담 진전에 따라 미국이 50여 년간 회피해왔던 한반도 평화협정이 곧 체결될 전망이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누구도 이런 흐름을 근본적으로 거역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고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현실화해 내기 위해 평통사 부설 평화·통일연구소를 중심으로 12명의 기안자와 29명의 제안자가 참여하여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시안)’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발표 및 토론회를 지난 1월 17일 진행했다. 이 평화협정의 핵심적인 특징은 ▲ 남한, 북한, 미국, 중국이 당사자로 참여하여, ▲ 북핵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남북의 평화군축을 서로 연동하여 해결하고, ▲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존중한다는 것이다. 발표 및 토론회에 제출된 해설 중 총괄해설 부분을 일부 수정하여 여기에 싣는다. -편집자 주-

 

 

가. 조약인가 협정인가

일반적으로 조약은 의회의 비준을 반드시 거쳐 국민적 합의라는 형식을 간접적으로나마 갖추는 성격을 갖게 되어 있다. 조약은 의회비준을 전제하지 않는 협정보다는 외교적 구속력이 높은 상위 개념이다.

미국의 경우 조약은 상원 2/3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성립된다. 이런 만큼 미국에서 조약은 초당적 지지를 얻어 법적, 제도적 장치로서의 안정성을 높은 수준에서 갖게 된다.

협정은 두 가지로 나눈다. 대통령이 의회(상·하원)에 상정하여 과반수의 동의를 획득하는 의회·행정협정(congressional-executive agreement)과 의회의 동의와 무관하게 행정부가 맺는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구분하지 않고 행정협정으로 통칭된다.

조약은 구속력이 높은 수준의 국제적 합의라는 매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냉전의식과 반북의식이 아직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상원 2/3 의석 확보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부시정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간 변수도 현실적으로 조약 추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반면 행정협정은 의회동의와 무관하게 정부 사이 외교적 합의로 그 절차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체결 절차가 상대적으로 쉽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회와 무관하게 맺어져 이행에서 의회의 제동이 걸릴 수 있어 안정성을 갖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협정은 의회의 과반수 동의를 거쳐 안정성의 정도를 어느 정도 갖춘 의회·행정협정의 형식을 갖추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또한 부시 정권 임기 내에 평화협정을 완결지을 필요성을 고려하더라도 비준에 어려움이 더 따를 조약보다는 의회 과반수의 동의를 얻는 의회·행정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나. 포괄기본협정과 부속합의서 형식

 이 협정시안은 하나의 포괄기본협정과 필요한 수 개의 부속합의서로 구성되어 있다. 포괄기본협정에서 총체적인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고, 이 원칙에 따라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의 문제를 부속합의서에서 합의하는 형태를 취했다. 총체적인 내용을 담은 기본협정이 핵심이므로 이를 성취한 전제 위에 세부적인 사항을 합의하는 것이 협정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고, 또 작은 일 때문에 큰일을 그르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속합의서는 아래 사항에 대해 맺어질 것이다. 이들 부속합의서는 각기 또는 연관성이 있는 사안들은 통합하여 맺어질 수 있을 것이다.

 (1) 제 5조, 6조, 7조, 21조 등이 규정한 외국군 병력 철수와 군사기지 철거, 22조가 규정한 군사 신뢰구축과 군축을 위한 남북미 사이 합의서

(2) 제 9조, 10조, 11조, 13조, 14조 등이 규정한 북미관계정상화를 위한 북미 사이 합의서

(3) 제 12조, 13조 등이 규정한 한반도비핵화 이행을 위한 남북미 사이 합의서(6자회담의 진행에 따라 유동적임)

(4) 제 4장이 규정한 남북 경계선 설정과 불가침 담보를 위한 남북 사이 합의서

(5) 제 5장이 규정한 평화지대 설치와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위한 남북 사이 합의서

(6) 제 30조, 32조, 33조 등이 규정한 남북미 간의 3자공동군사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위한 남북미 사이 합의서

(7) 제 31조가 규정한 남북공동평화관리위원회 구성과 운영을 위한 남북(북남) 사이 합의서

(8) 제 7장이 규정한 국제평화감시단의 구성과 운영을 위한 남북미중 사이 4자 합의서

(9) 제 40조가 규정한 통일을 저해하거나 통일과정에 외세개입을 허용한 조약 또는 협정의 폐기를 위한 남북(북남) 사이 합의서

  

다. 협정당사자(주체)

 한국정부의 평화협정 당사자에 관한 입장은 2·13합의 이전 미국의 입장과 같이 ‘남·북 당사자와 미·중 보증자’라는 ‘2+2’ 형식이었다. 대부분의 관변 연구기관이나 학계 일반에서도 덩달아 남북 당사자 안을 제창해왔다. 이들은 이 같은 주장을 핵심당사자가 되어야 할 미국을 배제한 남북 당사자 안이 오히려 ‘자주적’이라는 궤변으로 정당화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아래와 같은 요인 때문에 전혀 정당성이 없고 전쟁위협을 구조적으로 제거한다는 평화체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다.  

 (1) 평화협정은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므로 정전협정의 핵심당사자인 미국의 지위를 당사자가 아니라 보증자로 바꾸는 것은 형식논리에도 맞지 않거니와 평화상태 회복이라는 의무와 책임에 면죄부를 안겨주는 셈이다. 일부는 형식논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해 유엔 참전국 모두가 참여하거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미국도 반드시 당사자가 될 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국(조선)전쟁에서 유엔 측을 총괄하는 군사책임은 ‘유엔군사령부’가 지고 있지만,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유엔사무총장이 지휘하는 유엔관할기구가 아니라 ‘미국 지휘 하의 통합사령부’(a unified command unde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 불과하므로 미국이 실질적인 전쟁주체의 역할을 전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과 다른 유엔 참전국이 동일한 지위와 자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2) 미군은 한국(조선)전쟁의 핵심당사자로서 1958년에 완전 철군한 중국군과는 달리 지금까지 남쪽에 주둔하고 있고,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고, 한국군 군령(軍令)의 대부분을 통제·감시하고 있고, 한(조선)반도에서 지속적으로 전쟁위협을 주도해 왔고1), 실제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 전쟁을 주도하는 핵심주체가 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위협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성격을 가진 평화협정에서 핵심적인 직접행위 당사자인 미국이 협정주체나 당사자에서 제외된다면 그 협정은 평화의 제도화라는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속빈 강정이 되고 말 것이다.

 (3) ‘2+2’형식을 주장하는 경우, 보증형식의 역사적 사례로 로카르노 조약을 들먹이고 있다. 그렇지만 로카르노 조약에서 보증자로 거론되는 영국과 이탈리아는 실제 보증자가 아닌 협정당사자였기에 역사적 예에도 맞지 않는다. 유엔 또는 미국과 러시아 등이 중동평화조약 등에 증인(witness)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보증자로서 참여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결과 보증자에 대한 명확한 역할과 의무 설정이 없이 막연히 보증이라는 추상적인 지위부여는 협정의 올바른 내용이나 이행을 담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당사자로서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에 면죄부를 주고, 협정 이행과정에서 내정개입을 허용할 여지를 줄 우려가 있다.

 (4) 남측은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상태이고 실제 군령권을 주권적으로 행사할 수 없기에, 미국이 제외된 채 남측이 단독 협정당사자로서 평화정착이나 제도화 과정에서 전적인 책임을 질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남북 당사자 협정은 실질적인 평화정착을 이행하기 힘든 구도가 되어 휴지협정으로 귀착될 위험을 가진다.

 (5) 53년 이후 이제까지 평화협정에 소극적이던 미국이 ‘2+2’ 당사자 안을 고집하다가 2·13합의로 평화협정에 나서게 되고 논의가 본격화 되자마자 별다른 논쟁 없이 곧바로 3~4자 당사자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급격한 입장 변화야말로 기존 남북 주체(당사자) 안이 얼마나 문제점을 가진 것인지를 미국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또한 협정주체에 관한 미국 정책이 4자로 밝혀지자, 남북당사자 협정을 줄기차게 주장한 학자나 관련자들이 거의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반론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그것은 자기들의 기존 남북당사자 안이 정당성이나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고 있지 못함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라. 한(조선)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평화협정의 핵심은 한국전쟁을 법적으로 종결짓고, 전쟁 재발방지와 평화를 정착시키는 구조적 조건을 갖추기 위한 것이다. 또 그 유래는 정전협정과 정전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평화협정이 핵문제와 무관하게 응당 오래 전에 매듭지어 졌어야 할 성격임을 말한다. 곧, ‘정전협정 4조 60항의 규정에 따라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변환되었더라면’ 핵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북의 핵무기 시험이 계기가 되어 2·13합의가 이뤄지고 평화협정 국면이 조성되었다 하더라도, 비핵화문제는 평화협정의 주요사항의 하나일 따름이지 핵심이거나 전부일 수 없다. 이러함에도 평화협정이 마치 비핵화 협정인 것처럼 비핵화에 주안점을 두는 협정시안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2) 따라서 본 협정시안은 평화구도의 정착에 집중하고 비핵화문제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 다뤘다. 핵문제는 당연히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단지 큰 틀에서 6자회담의 합의사항을 존중할 것과 핵우산 제거 및 핵무기 폐기를 다루었다.

 

마.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핵심무력의 주체로서 확고한 위치를 누려 왔고 또 지금도 누리고 있기 때문에 협정 당사자로서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뿐 아니라 핵심무력의 토대인 주한미군문제가 평화협정에서 반드시 핵심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평화협정이란 평화를 제도화하는 것이고, 이 제도화는 한(조선)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평화위협을 제거시키는 일이 그 본질이다.

냉전기간이나 탈냉전기간을 막론하고 한(조선)반도에 전쟁위협을 지속적으로 일으켜 왔으며, 구조화 시킨 장본인이 미국이고, 이를 뒷받침해 온 것이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이다. 이들 전쟁위협의 실체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평화협정은 근본문제를 방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협정시안은 주한미군, 한미군사동맹, 유엔사 문제,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을 핵심사항의 하나로 다뤘다.3)

  

바. 통일과 평화협정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협정이나 ‘항구적 평화체제’는 평화정착과 그 구조화를 이룩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를 넘어서서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디딤돌이나 중간과정으로서의 위상을 가진다. 이런 차원에서 ‘제 1장 한(조선)민족의 기본 권리’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는 권리를 민족 고유의 신성한 권리로 규정짓고 미국과 중국은 이를 존중할 것을 분명히 했다. 더 나아가 별도의 장을(8장) 통일에 할애하여 통일의 원칙인 자주와 평화를 명기하고, 한(조선)반도 통일이 한(조선)반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나 지구촌 평화에 기여함을 밝혀 그 의의를 폭넓게 설정하고, 이에 저촉되는 외세의 간섭이나 조약 등을 제거하는 선결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사.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완벽한 평화체제는 전쟁을 하고 싶어도 전쟁배제 구조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없는 조건이 장기적으로 구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하여 주한미군 철수와 북의 핵무기를 폐기시키는 한편 주한미군 철수와 연동하여 남북 간에는 응당 공격형 군사체제를 비 공격형 군사체제로 바꾸고, 이에 따른 상호 군축을 이행하고, 동시에 군사적 신뢰구축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화체제를 위한 선결조건인 평화협정 역시 이들 남북 간 비 공격형 군사체제로의 변환, 신뢰구축, 군축 등을 요구한다. 물론 이들은 선후가 아니라 동시에 병행하여 진행시켜야 할 과제이다. 이 협정 시안도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5장에 관련 내용을 담았다.

전통적으로 남쪽은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부분에서 전체로 상향하는 기능주의 접근을 중시하고 선호해 왔다. 북쪽은 정치·군사 문제를 통한 본질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포괄·근본적 접근을 우선시 해 왔다. 서로 왕래하고 가까이 하다 보면 신뢰가 구축된다고 보고, 쉬운 것부터 먼저 풀어나가자는 올림 차순의 남쪽논리는 바로 강자가 약자를 흡수하는 논리에 가깝다. 북측 논리대로 숲을 먼저 그리면 거시적인 전체의 방향은 설정된다 하더라도 부분을 구성하는 미시적인 나무가 자동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남북은 이미 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에서 양 접근법을 동시에 병행하기로 합의했다. 군사부문 역시 신뢰구축이라는 기능주의적 접근과 군축과 비 공격형 군사체제로의 변환이라는 포괄·근본적 접근을 병진하는 동시행동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1)전쟁위기에 관해서는 강정구 :한반도 전쟁위기의 실상" 강정구 외. 전환기 한미관계 새판짜기 한울 , 2005

2)박명림은 평화협정 초안 발표에서 "북행위기 해소를 궁극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도정으로 자리매김하여 접근하자는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핵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로 귀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박명림, "남북 평화협정과 한반도 평화 : 잠정 초안의 원칙, 내용, 비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법학』25호, 2004. 259쪽

3)이에 관해서는 강정구, "주한미군불가피론과 미래한미동맹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역사비평』통권 68호, 2004년.가을호.

 

태그

한반도, 평화협정, 종전선언, 정전협정, 핵무기, 미국, 조약, 북핵,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강정구(평화통일연구소 소장)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