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통史(4) 평통사 前史 _ 반핵평화운동연합

$평통史(4) $

 

2008년 1월, 25톤의 짐이 신공덕동에서 충정로로 이동하였습니다. 그 중 절반가량이 책과 문서들. 짐을 정리하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보물들이 나왔습니다. 신공덕동 사무실 깊숙한 곳에서 사람 손을 타지 않았던 사진과 문서들. 80년대 후반 영광, 울진 등의 핵발전소·핵폐기장 건설 저지투쟁 자료들부터 90년대 초반의 반핵평화운동 자료들이었습니다. 평통사가 한국 평화운동의 맥을 잇고 있다는 명실상부한 증거들…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평통사를 접한 필자는 조직의 뿌리를 찾은 듯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당장에라도 여러 분들과 공감하고 싶은 욕심에 덜커덕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가 귀중한 사료의 방대함에 놀라 내심 소심해진 채로 겉핥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평통사 전사(前史)를 소개합니다. 평통史 4회차에 1991년으로 되돌아간 사연입니다.

1991년 3월 13일 오후 5시. 흥사단 3층 강당에서는 한국사회운동 사상 최초로 평화운동단체를 표방한 반핵평화운동연합이 창립한다.

“각계각층 대중운동의 비약적 성장을 배경으로 반핵평화운동은 핵발전소 건설 저지를 위한 범국민적인 운동과 송악산, 매향리, 군산, 평택, 안면도 등 미군기지, 핵관련 시설, 핵폐기물에 대한 민중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으로 발전해 왔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은 이와 같은 평화운동의 자랑스런 전통을 계승하고 평화롭고 해방된 삶의 주체인 민중과 함께 이 땅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억압과 폭력에 맞서 싸워나갈 것이다” (창립 선언문 중)


△1989년 안면도, 영광 등 핵폐기장 건설 저지 투쟁에 나선 지역 주민들(왼쪽)
반핵평화운동연합의 기관지<반핵평화> 창간호(오른쪽)


△1991년 5월 18일 반핵평화운동연합 회원들(왼쪽)
1991년 6우러 3일 농섬쪽을 바라보며 설명하는 매향리 주민대책위 전만규 위원장(오른쪽)

1990년 6월부터 공해추방운동연합 반핵평화위원회 위원들을 중심으로 한 준비모임이 수차례 열렸고, 1991년 초에는 미-이라크 전쟁(걸프전)에 대한 반전활동을 전개하면서 590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하여 창립하게 된 것이다. 초대 공동의장은 김남주 시인과 김현 원불교 총무가 맡았다. 지도위원 명단에서는 반가운 이름 임종철 공동대표를 찾을 수 있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은 1991년부터 1992년까지 핵폐기장, 핵발전소 건설 저지 투쟁. 주한미군의 핵무기 폐기 촉구 투쟁, 일본 군국주의 부활 저지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투쟁 등을 과제로 삼고, 일본 자위대의 PKO 파병, 한국군의 PKO 파병, 한미전시접수국 지원협정을 주요 사안으로 공청회, 집회, 국회비준 반대 투쟁 등 실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미전시접수국지원협정(WHNS)은 91년 7월 한미 정부사이에 가서명 되고, 91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정식 조인한 협정이다.)

또한 기관지 <반핵평화>를 발간하였고(창간호~8호), 3차례의 반핵평화 시민교실을 열었으며, 회원의 날 행사와 기지탐방, 시민 캠페인도 활발히 하였다.  

그러나 1992년 말, 대선을 거치며 김낙중 선생과 손병선 선생 등 반핵평화운동연합의 지도부가 구속되는 등 공안탄압을 받으면서 반핵평화운동연합은 “조직 자체가 존망의 위기에 놓”인다. 반핵평화운동연합의 회지 <반핵평화> 8호에서는 실무자 명의로 “설령 저희 단체가 발전적 해체를 겨냥하여 간판을 내릴지라도 그것은 ‘반핵평화’의 사상-조직적 기반을 오히려 넓히기 위한 잠정적인 ‘깃발내림’일 뿐입니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반핵평화운동연합이 지향했던 ‘비핵’, ‘군축’, ‘평화’, ‘통일’의 이념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 이념은 1993년~1994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회의와 새로운 평화운동단체 준비모임 등을 거쳐 평통사로 이어지게 된다.


△1991년 10월 17일 한반도 비핵군축 실현과 전시접수국 지원 협정 저지를 위한 결의대회


△1992년 7월 29일 일본 군국주의 부활과 동북아의 평화문제 공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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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 평화 , 핵발전소 , PKO , 매향리 , 반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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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동만

    "無限 폭탄-核폐기물"~"原子爐 과연 安全한가",
    1974년 4월호 '新東亞' 에 실린 글 (필자:張東萬) 입니다.

    지난 37년 동안 原電 테크닉이 크게 진전, 安全 장치 또한 많이 보완 되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이번 일본 원전(폭발)사고에서 보듯, 원자로 그 자체 보다 '사용後-核연료', 즉 核 폐기물 (RAW) 문제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原電의 태생적 한계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無限 폭탄-核 폐기물', 이 RAW 문제를 본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위험을 안고 사는 현대인, 一讀을 '강추'하는바 입니다.

    글 全文은 다음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kr.blog.yahoo.com/dongman1936

    약 54분 전 http://twtkr.com/dong36 에서 작성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