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 순례를 다녀와서

$회원들의 이야기 마당$

 


아침 9시경, 문경의 도자기 전시관 앞 넓은 마당에 둥글게 둘러섰다. 날씨 탓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내겐 새벽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소개를 받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평화롭게 해주는 모습이다. 순수하고 자유로워 보인다고 해야 할까? 그 분들 속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몸 풀고 2분 명상 후 도법스님의 생명평화 순례 때처럼 묵언으로 걷다. 나 역시도 중간에 잊고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누군가의 지적을 받았지만 말없이 걷는 일이 사람들에게 쉽지는 않다. 그렇지만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좋다. 고함치지 않고, 주먹 쥐고 상대방에게 분노를 표시하지 않고도, 그냥 하루 종일 걷는 것만으로 우리의 뜻을 밝힐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가? 그것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산과 들을, 강물을 보면서 걷는다는 것이.

이미 소문난 대로 금요일 출근길에 골목에서 튀어나온 차와 부딪혀서 차는 견적 150만원에 공장에 가 있다. 그래서 못 갈 줄 알았다. 망설였고, 안 하던 차멀미도 하여 헤매었지만 걷는 중에 말끔해졌다. 온종일 기쁘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지냈다.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주위에는 무관심하였다. 신문도 TV도 볼 짬도 안 났지만 볼 마음도 별로 없었다. 덕스럽지 않은 얼굴의 사람이 TV에 자주 나오면서부터 더더욱. 불문 등산에도 가을 이후로 한 번도 못 나갔다. 그러다 어제 대운하 반대 순례에 참가한 것이다.

안동에 이사온 지 10년째. 평통사 회원이 곧 전교조이고, 불문이기도 하고, 심지어 가톨릭 교우이기도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늘 그 분들과 어울렸지만 평통사 회원으로서 행사에 참가한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집을 짓고, 이사하고 정리하면서 행복하였다. 그렇지만 함께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일에만 빠져 있었음을, 너무나 오랜만에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있음을 느꼈다. 어제 미사 중에 생각한 것도 이와 같다. 성당에서는 지금이 사순절 시기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을 기억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그 분의 부활을 기다리는 가장 엄숙하고 아름다운 때이다. 그런데 나는 집 정리하는 일에 빠져 있고, 사람들 대접할 일, 집 자랑하는 기쁨에만 젖어 있었다.

그러다 어제 아침 차 사고가 났다. 많이 놀랐지만 그걸로 드러눕지 않고, 온종일을 걸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가벼운 회초리만 대신 것을, 내가 교사가 아니어도 함께 할 수 있는 자리와 일이 있음에 감사하다.남편은 옆에서 해석이 재미있다고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또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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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 안동 , 문경 , 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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