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동분회가 참 좋다

$회원들의 이야기 마당$

 


△2006년 4월 1일 노동분회, 최문희 회원의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

사회단체 활동을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고비가 생기기 마련이다. 활동을 계속할지 말지 또는 활동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다.

나에게는 그런 고비가 세 번 있었다. 첫 고비는 ‘일사랑노동청년회’에서 일할 때다. 그때는 그냥 운동이 옳은 듯해서 활동을 시작 했고, 그러다 보니 힘들 때는 조직적으로 풀기 보다는 지리산 가는 것으로 해결했다.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이 세상에 이보다 힘든 일은 없다고 생각되었고, 그렇게 옴팡지게 고생하고 오면 그간의 어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다음, 두 번째 고비는 미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다. 미술대학 졸업 후 이러저러한 고민이 있던 차에, 프랑스에 사는 언니가 유학을 권유했다. 그래서 프랑스로 도망갈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선배님들과 운동과 삶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하면서 운동에 대해 새롭게 결정을 하게되고, 운동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는 정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고비는 재작년 서울 평통사 사무국장을 맡을 때였다. 내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였고, 그것을 스스로 풀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이미 활동을 접을 수 없는 것이라고 내 머릿속 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활동을 하긴 하지만 운동의 자긍심은 온데간데없고, 의욕상실의 임계점인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였다.

그때 내 마음을 추슬러 활동을 제대로 하게끔 해준 두 가지 힘이 있었는데, 첫째는 황윤미 국장에게서 느낀 동지애고, 두 번째는 나를 말없이 지켜봐준 노동분회 선배들이었다. 노동분회 선배들은 활동하는 어느 선배들보다 나 자신을 자괴와 자성으로 뒤돌아보게 하였다. 새벽 2-3시에 일을 나가야 하는 선배들은 모임이 밤 12시쯤 끝나기에 2-3시간 밖에 못자는 상황임에도 한 두 시간의 학습을 정말로 고마워했다. 그리고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마냥 행복한 모습으로 모임에 임했다. 상근 후배의 잘못에 대해서도 질책보다는 격려를 우선하는 선배들이었다. 그 선배들 중 한 분이 허세욱 선생님이셨다. 허세욱 선생님은 내가 너무 힘들어 할 때는 집회에 오셔서 “힘내세요.” 하실 때도 있고, 그것으로 부족하다 느끼실 때는 핸드폰에 “제가 열심히 투쟁할 테니 국장님은 아무 걱정 안하셔도 돼요, 투쟁 열심히 하고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시곤 했다. 그 당시 난 참 많이 부끄러웠다. 활동하면서 ‘내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다고, 또 아무리 힘들다 한들 현장에서 일하면서 활동하시는 노동분회 선배들보다 더 할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선배들의 실천적인 모습에 퍼뜩 정신이 들었고, 그 덕택으로 예전보다 더욱 단단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노동분회 선배들이 잘못 나가는 상근 후배 하나를 무던히 지켜봐주며, 말없이 실천하는 모습으로 결국 제자리를 찾게 해준 것이다.  

지난 2월 말, 노동분회 모임을 가졌다. 마침 한미연합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을 한주 앞두어서 그와 관련한 학습을 하였다. 모인 일곱 명이 왜 한미연합연습이 문제인지 돌아가면서 각자의 답을 나눴다. 너무 뻔한 질문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 답변들이 참 노동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회원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재작년 4월 1일, 노동분회를 만들었던 선배들과의 모임이 생각났다. 내 생일 챙겨주시려고 조용히 생일파티 준비하신 김영제 국장님, 한손에 케이크를 들고 사무실 저 멀리서부터 누가 오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게 큰소리를 내며 들어오시던 동식 선배, 학습지 노조일로 거의 매일 농성중임에도 모임만은 꼬박꼬박 나오시던 철호 선배, 버스노조 일이 바쁜 와중에도 시를 쓰면서 활동하신 동순 선배, 바빠서 못 오시겠다고 김영제 국장님께 말씀을 전하시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왔어요. 생신이라고 해서 샴페인을 사왔어요”라며 수줍게 인사하며 들어오시던 허세욱 선생님.

노동분회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에게는 활동의 버팀목이다. 느슨해지려는 마음이 들 때면 분회원들의 실천적인 모습에 스스로 반성하게 되고, 힘이 빠질 때는 분회원들의 씩씩하고 힘찬 모습에 저절로 에너지가 생겨난다.  

지금 노동분회의 성원들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선배들이 남긴 그 순수한 열정과 순박한 마음들이 느껴진다. 선배들의 기풍이 이어져 내려온 듯하다. 그래서 난 노동분회가 참 좋다.

이 글을 쓰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아마도 난 허세욱 선생님이 돌아가신 걸 인정하지 못하는가 보다. 나는 유물론자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하늘나라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8년 2월 28일 노동분회, 키 리졸브 연습의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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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 노동자 , 운동 , 실천 , 허세욱 , 분회 ,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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