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꿈꾸는 사진가

<사람>

 “내가 피스보트에 대한 책을 내는데 그 인세를 모두 평통사에 기부하려구!”
몇 달 전 친분이 있던 한 사진기자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에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책이 나왔다. ‘Peace Boat(피스보트)’ 첫 장을 펼치니 표지 안쪽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책의 인세는 평화운동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에 기부합니다.’ 가슴가득 뿌듯함이 차오른다.

고층빌딩 사이로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의 어느 날, 공덕동 아담한 선술집에서 그 주인공인 한겨레 사진부 이정용 기자(45)와 마주 앉았다.

그는 고려대학교 통계학과에 입학했지만 (당시의 대부분의 젊은이가 그러했듯이) 공부보다는 거리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냈다. 전공보다는 사진과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탓에 다른 사람들보다 좀 늦은 졸업을 했다. 이후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출판을 전공하며 못다 한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88년 2월 사회사진연구소에서 노동자 투쟁과 민주항쟁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90년 월간 ‘말’, 94년 ‘한겨레21’을 거쳐 현재 한겨레신문사 사진부 뉴스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정용이 말하는…사람, 삶, 사진

나에게 사진은 사람을 돌아보게 하는 도구다.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모습들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자 넘치는 축복이었다.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순수함까지 기록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그 수준은 못된다. 하지만 지면을 통해 그런 모습들을 전달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기 때문에 계속 노력중이다.

 

#피스보트의 경험


△피스보트 선장과 함께


△수에즈 운하를 지나며

지난 2003년 3월말 이라크 전쟁 취재를 위해 40여 일간 바그다드에 머문 적이 있다. 그 곳에서 전쟁폭력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평화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느꼈다. 또한 내 자신도 막연하게 생각하던 평화에 대한 시각을 많이 바꾸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자 한국과 일본의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고, 그것을 취재하던 중에 *피스보트 쪽에서 연락이 왔다. 43회 피스보트에 게스트로 승선을 해서 이라크의 생생한 상황을 승객들과 함께 경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일본 동경에서부터 터키 이스탄불까지 피스보트의 첫 경험을 했고, 2005년엔 제51회 피스보트 세계일주 코스를 함께 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43회 때 8개국, 51회 때 17개국을 돌며 느낀 평화에 대한 단상들을 한국에 있는 독자들에게 한겨레 지면을 통해 일부 알렸지만, 미처 하지 못한 많은 얘기들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책을 내게 되었다.

원래는 이 책이 작년에 나왔어야 하는데 재작년 10월에 원고가 담긴 노트북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많이 늦어졌다. 그 늦됨이 오히려 섣불렀던 나의 생각들을 되새김질 해주고, 항해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까지 챙길 수 있게 해주어 좀 더 나은 책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평화는 ‘밥’이다

국어대사전에 평화는 ‘평온하고 화목함, 화합하고 안온함, 전쟁이 없는 세상이 평온함’이라 씌어있다. 나에게 평화는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 - 최저생계비에 대한 걱정이 없는 세상, 전쟁 걱정이 없는 세상, 모두가 웃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평화는 우리가 먹는 ‘밥’처럼 늘 섭취해야 하는 에너지이며, 특별 메뉴가 아니라 기본메뉴로 당연히 손에 쥐여져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평화운동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평통사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평통사에 힘을 보탠다면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우리가 꿈꾸는 모습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2003년 4월, 쿠르드지역인 키르쿠크로 이동하다 전통적인 복장으로 경계를 서고 있는
쿠르드 반군들을 만났다.

#평통사와의 인연

책을 쓰기 전부터 만약 내가 책을 낸다면 인세를 전부 기부하리라 생각했다. 기부 대상은 평화단체나 환경단체 쪽으로 생각했는데, 기왕이면 사정이 비교적 좋은 환경단체보다는 그렇지 못한 평화단체에 기부하는 게 낫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이라크전쟁을 통해 평화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으므로 한국의 대표적인 평화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에 기부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내가 존경하는 문규현 신부님과 홍근수 목사님을 비롯해 항상 건강하게 활동하는 평통사 간사들이 있기에 기부결정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평화협정 실현하려면...

아직은 평화협정실현운동에 대해 잘 모르지만, 확실한 건 진실과 순수함이 항상 승리한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쟁을 보라. 세계 모두가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미국의 승리를 예상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독재정권의 탄압을 뚫고 민중이 결국 승리하지 않았는가?

보수 정권 아래서 평화협정실현운동을 펼치는 것이 힘들긴 하겠지만, 대중들에게 평화와 전쟁위험 종식이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려나간다면 반드시 평화협정실현으로 그 뜻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누리 통일누리 독자에게

지금도 충분히 각 지역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열심히 합시다! 내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같이 갈 수 있다면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모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건강하게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평통사 회원들, 평화누리 통일누리 독자들은 벌써 그런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자. 평통사가 할일이 없어진 세상, 하루 빨리 평통사 간사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평통사 간사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 이게 내 꿈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라크전 취재 도중 미군의 에이브라함 전차옆에서

‘피스보트’는 얼마 전 한국간행물위원회로부터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평화의 공감대를 넓혀 나갔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적잖은 술병이 비었고, 이야기가 무르익은 만큼 밤도 깊어갔다. 자리를 파하기 전 이 기자는 정식으로 평통사 회원이 됐다. 그리고 평화협정 길잡이도 10명 쯤은 문제없이 받아오겠다며 인쇄물을 챙겨들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거창한 구호보다 우리 주변에서부터 진정한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오늘도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사진에 담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글 김현진 | 사진 이정용 제공

#전 세계 평화의 염원을 담은 피스보트

피스보트(Peace Boat)는 일본인들의 자성에서 비롯됐으며, 1983년 첫 출항을 시작했다. 1982년 일본의 아시아 군사침략을 ‘진출’이라고 바꾼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아시아 곳곳에서 비난의 여론이 거세게 일었을 때, 일본 내 뜻있는 젊은이들이 자국의 잘잘못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아시아의 곳곳을 2주가량 둘러보기 시작한 것이 그 첫 항해였다. 이후 아시아에 머물렀던 그들의 관심이 점차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1990년 11월의 제10차 항해 때부터 세계일주 코스가 마련됐고, 기존에 관심을 가졌던 분쟁과 갈등뿐 아니라 환경, 인권, 빈곤, 여성 등 지구촌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아우르게 되면서 ‘지구촌 시민을 위한 자유로운 연대와 교류를 추진하자’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세워 지금에 이르게 됐다. 현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자격의 지위를 갖고 있는 피스보트는, 스스로를 ‘국제NGO’라 일컫듯 단순한 여행을 뛰어넘어 ‘평화, 인권의 지속과 발전, 환경에 대한 존중’을 목적으로 세계를 돌고 있다. 평범한 일본인들의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해 긴 항해 기간 동안 인류가 겪고 있는 수많은 질곡의 현장들을 확인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 스스로 평화 활동가의 지위를 갖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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