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어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만들자!

$회원들의 이야기 마당$

 

 사무실에서 평화협정실현 운동을 위한 추진위원과 길잡이를 모집하라고 한다. 평화협정 길잡이와 추진위원을 어디서 조직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가족이어서 후원회원이기도 한 여동생과 형에게 제안하였다.

또 거래처는 작은 공장이라 누구에게 딱히 제안하기도 그렇고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의 친하게 지내는 한사람에게 시험적으로 길잡이용 선전물을 주며 길잡이를 제안하긴 했는데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고 있진 않은 듯싶다. 더 이상 없는 것인가?

문득 10년이 훨씬 넘게 연락을 끊고 살았던 동아리 후배들 생각이 났다. 우선 부천에 사는 후배 2명과 당시 나와 가까이 지내던 후배 한명에게 전화를 했다. 연락이 끊긴지 오래되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지만 다행히도 날 잊어버리진 않은 듯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참 오랜만에 연락이 된 후배들이다. 반가움과 함께 부담감이 느껴진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10여년 넘게 연락하지 않던 사람이 선배랍시고 전화해서 만나자고는 했는데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고민이 된다.

며칠이 지나고 약속은 취소되었다. 갑자기 바빠져서란 이유였지만 너무 오랜만의 연락과 만남이 그 후배에게도 부담이 되었던 듯 싶다. ‘아~역시 안되는 것인가’하지만 내 주관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며칠이 지나 다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후배는 망설이다가 주말에 후배들과 함께 1박2일로 놀러 가기로 했는데 와서 같이 이야기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을 했다. 당연 좋다고 대답했다. 약속은 잡았는데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진다. 한 두 명도 아니고 20여명이 있는 자리에서 아무런 내용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 길잡이 제안을 한다는 것이 말이다. 그간 농땡이를 부렸던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어쩌겠는가... 부랴 부랴 사무장님께 참고로 읽을 만한 것들을 부탁하여 읽고 또 읽었다. 아마도 최근 들어 가장 집중해서 열심히 자료를 읽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깊이는 부족하였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되는 만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서, 짐을 내리고 푸는 동안 후배들에게 말을 꺼냈다. 현 정세와 길잡이 제안...다행히도 그 자리에 함께 있던 후배들은 흔쾌히 동의를 하고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다시 연락처를 들여다보았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는지 연락이 되지 않는 후배들이 꽤 되었지만 세 명의 후배들에게 연락이 닿았다. 한명은 군포에 살고 두 명은 안산에 산단다. 군포는 다음에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선 안산에 사는 후배들과 약속을 잡았다. 조합일을 하는 후배라 집회 때 여러 번 봤던 후배라 추진위원과 후원회원을 목표로 저녁 9시에 안산으로 향했다.

소주잔을 돌리며 노조 얘기, 집안 얘기, 아이들 얘기 등이 이어졌다. 한 후배가 자 이제 본론을 얘기하자고 한다. 뭔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줄 알고 있는 것이다. 정세부터 시작해서 평화협정 이야기가 이어졌다. 노동조합간부로 조합활동에 매진하는 후배였다. 후원회원까지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된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고 후원회원을 해주기보단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을 해봤으면 하는 생각에 좀 더 적극적으로 하진 않았다. 하지만 추진위원은 충분히 가능하리란 생각에 제안을 했는데 길잡이 10명조직과 7.27참가에 대한 부담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의 조합친목회에서 길잡이 이야기는 해보겠다고 한다. 그것이 추진위원이라고 했는데도 뭔가 모를 부담을 갖고 있는지 자신들도 길잡이를 하겠단다. 기꺼이 추진위원비용을 냈지만 길잡이로 참여했다. 이 후배들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4월에 다시 보자는 약속과 연락이 되지 않던 후배 녀석의  소식을 들으며 길을 나섰다. 새벽 늦은 시간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다.

며칠이 지났을까 안산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노동조합 상집 회의 때 기타 안건으로 길잡이 제안을 해서 간부들은 길잡이에 가입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작지만 불씨가 번지는 것인가? 무척이나 기뻤다.

후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끊겼던 동기와 선배의 최근 근황과 연락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어디서 일하는지 확인된 사람은 114로 전화해서 근무하는 곳의 연락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움직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좀 더 넓게 보고 있지 않았구나, 나 스스로 안될거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안될꺼야’ 하는 소극적인 생각은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기 귀찮아 편하게 생각하고, 가까이서 내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편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만 만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협정체결과 주한미군철수!! 내가 얼마나 관성적으로 대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다시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뛰어다니고 이 또한 나 자신과 투쟁하는 과정으로 여기며 길잡이, 추진위원을 조직해야겠다.

5월 동문 체육대회 때 나름의 선전물을 가지고 반드시 참석하여 길잡이를 조직해야겠다. 그전에 미흡한 나를 주한미군 철수시키는 평화협정체결의 내용으로 채워야겠지만.....하하하

태그

평화협정 , 체육대회 , 주한미군 철수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부천평통사 손종욱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