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시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갈 수 있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내가 일하는 책방으로 사복 경찰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그들은 내게 말을 걸지도 않고 30분 가까이 책방을 구석구석 살핀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회실천연구소에서 내는 ‘실천’,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노동자’, 다함께 기관지 ‘맞불’,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을 찾았다.

난 1993년 봄부터 책방을 꾸려오고 있다. 그때는 김영삼이 대통령이었다. 그땐 이런 경찰들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왔다. 스스로 어디서 일하는지 밝히기도 했다. 책방에서 가까운 경찰서를 비롯해서 국가정보원, 군기무사 사람들도 왔다. 그들이 사가는 책들은 사회주의 생각이 들어있는 책들이 많았지만 책방에서 책을 파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 있나 싶었다.  

그러다 난 1997년 4월 15일에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 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때 문제가 됐던 책들은 ‘전태일 평전’, ‘ 월간 말’, ‘철학에세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같은 책들이다. 그 책들은 지금도 큰 책방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하지만 큰 책방 대표들이 잡혀 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날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대표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끌려갔다. 그 뒤로 조직 사건이 예닐곱 개 터졌다. 그렇게 공안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해 대통령에는 김대중이 뽑혔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면서 책방에 뜸하게 오던 공안 경찰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활개를 친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치안유지법이 그 어머니다. 그 법은 일제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을 죽이려고 만들어졌다. 그 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이승만이 다시 고쳐 만들었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지 60년이 된다. 그동안 그 법으로 죽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러운 정권을 지키려고 만든 법이,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수없이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쓰였다.

난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에 따라서 벌을 받았다. 내가 국가 존립, 안전, 자유 민주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책을 팔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모두 공산당원이 돼서 총을 들고 나가 이 나라를 뒤집어엎을까. 그렇게 쉽게 세상이 바뀐다면 진짜 살맛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럼 돈에 눈먼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좋다고 떠든다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 더러운 세상에서 끽소리도 안 하고 살까.

아무튼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가. 오히려 대운하를 만들어 자연과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하고, 백성들이 먹고 죽을병에 걸리지도 모르는 미국 소를 자기들 마음대로 마구 들여오겠다는 이명박 정권이 이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뿌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한다. 내가 국가보안법으로 또다시 끌려가서 양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운동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좋겠다.

헌법에도 보장되었듯이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상과 양심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한다. 먹을거리를 일구는 농사꾼과 이 땅 목숨붙이들이 사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사회주의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런 세상이 와야 어른들 욕심으로 아파하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없어지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핀다. 그런 날을 앞당기는 데 내가 꾸리는 작은 책방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8년 4월 22일 화요일 새벽을 지나 아침이 환하게 밝은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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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 사회주의 , 자본주의 , 이명박 , 공산당 선언 , 공안 경찰 , 사복 경찰 ,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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