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이유

$회원들의 이야기 마당$

 

평통사 회원이 되고, 집회에는 가끔씩만 참여했었다. 집회라는 것은 나에게 ‘딱딱함’, ‘두려움’ 등 무겁고 부담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되었을 때에도 ‘집회’에 대한 내 느낌은 여전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민들의 냄비근성이 시작되었다’라는 말들이 나왔을 때에도 나또한 완전히 동의는 못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는 생각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회사일도 바빴지만 이런 마음이 있어서인지 선뜻 집회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 참여하게 된 5월 24일 촛불 집회는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갖는 엄청난 힘, 사람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 등 전혀 새로운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5월 31일의 촛불집회… 내가 참가한 두 번째 촛불집회였다.

31일 그날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지하철 입구계단을 오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도  회사 동료들과 같이 참가하였다. 거리 행진을 하는 중간 중간에도 사람들이 가져온 피켓들은 신선함 그 자체였고, 그들이 외치는 구호와 노래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왜 우리는 그동안 집회를 하며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을까?

그들의 아이디어들이 웃음과 카메라의 세례를 받았다. 또한 폭우 속에서도 촛불을 내리지 않는 사람들, 비를 맞으며 묵묵히 참가하는 사람들, 촛불을 들고 앞으로 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막는 사람들, 또한 촛불을 보호하는 사람들, 전경 버스 앞에서 앞으로 보내달라며 집회를 하는 사람들.

이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는 경찰들과 뒤로는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 나는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한발자국도 물러나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그들을 보며 ‘자발적인, 스스로 원해서 참여하게 되면 저렇게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무서움이 없어 보였다.

한편에서는 악기를 가져와 새벽에 지친 사람들에게 연주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컥하게 해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져온 것 같았다. 악기를 연주 할 수 있는 사람은 악기를 가지고 나와 연주를 하였고, 의료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의료 봉사를 하였고, 한쪽에서는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 자신이 챙겨온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는 사람들.

정말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한 이들에게 경찰은 물대포와 경찰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물대포를 맞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불을 지피고 있는 사람들.

내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여태 집에만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함께 목이 터져라 ‘재협상’, ‘전면무효’를 외치며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던 것은 ‘먹거리에서 위협받고, 국민으로써 무시당하고, 이번에 물러서면 앞으로 더욱 힘들어 질 것같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나 또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이 갔던 동료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시간 시청을 꽉 메운 사람들을 보던 순간, 눈물이 핑 돌았었다. 그리고 나 하나는 비록 힘이 없지만 집회에 참가하여 앞에서 힘들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공감이 되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앞에서 힘들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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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 물대포 , 재협상 , 전경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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