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공황과 미국발 금융위기

$기고$

 

 

작년 11월 이후 미국의 금융위기로 세계 증시에서 21조 달러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전 세계적으로 투자처를 찾아 떠도는 자금이 62조 달러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돈의 약 3분의 1이 몇 달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21조는 우리나라 돈으로 2경 5,000조원인데 경(京)은 조(兆)의 만 배나 되고 동그라미가 16개나 붙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다. 지구상에 있는 60억 인구에게 1인당 4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액수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즉 금융파산의 여파로 한국증시도 308조가 증발했는데 국민 1인당 640만원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세계평균보다 약 50% 더 많은 손해를 본 셈이다. 이 돈이면 860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2년 이상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 연간 7% 성장에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는 이명박 정권은 금년 4% 성장을 한다고 해도 달러 대비 1인 국민소득이 노무현 정부때보다 낮은 2만 달러 아래로 떨어질텐데, 이들이 지난 10년 좌파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떠들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달러가치 환산 국민소득이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의 모든 경제가치가 미제국주의, 특히 미달러제국주의 달러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이다. 미국경제가 기침하면 한국경제는 감기가 아니라 폐렴이 걸린다는 뜻이다.  

 

9월 16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개장한 한국의 증시는 바로 영향을 받았다. 코스피 지수가 6%나 하락한 1380선까지 밀렸다. 코스피지수선물도 5%가 하락하여 182.6을 기록하자 코스닥과 함께 선물거래 종목 중 거래량이 가장 많은 종목가격이 5%이상 상승 또는 하락한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될 경우 프로그램 매매의 매수 또는 매도 호가의 효력을 5분간 정지시키는 ‘사이드 카’를 발동할 정도였다. 원-달러 환율은 4년 만에 최고치인 1,150원에 달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초기 부결이라는 홍역을 치루면서 7,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쏟아 부었지만 경기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다우지수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10월 6일 현재 주가는 1358, 코스닥은 406으로 하락했다. 외환보유고를 200억 달러나 풀었지만 달러 당 원화는 1,270원으로 상승(원화 가치하락)하여 환율방어에 실패하고 있다. 단순히 주식하락과 환율상승문제를 넘어 실물경제의 위기라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위기의 암 덩어리가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있음을 정부당국자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부분의 경제학자나 자본언론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담보대출)사태로 말미암아 연쇄적으로 발생한 금융기관의 파산을 그 이유로 든다. 돈 한 푼이 없어도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차익을 남기고 파는 전형적인 부동산 투기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집값이 폭락하면 집값을 대출해 준 1차 금융기관이 망하고 곧이어 2, 3차 금융기관이 망한다는 논리다. 쉽게 말하면 동네에서 계를 하다가 계주가 야반도주하면 줄줄이 파산을 입는 경우다. 미국 월가라는 동네에서 큰 계가 터졌다고 보면 된다. 월가는 전 세계적인 곗돈이 오고가는 장소다.

 

오늘날 금융시장은 전통적 상업금융이 아니다. 돈 자체가 상품이 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금융파생상품이 만들어지는 시장이다. 고대, 중세의 천재지변과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적 인재지변이 현실화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상품화하는 가운데 돈 자체가 상품화하면서 금융의 쓰나미가 만들어지고 있다. 상품화뿐만 아니라 무한정 뻥튀기까지 한다. 전 지구적 국내총생산이 50조 달러인데 반해 파생상품은 자그마치 그 10배인 516조 달러다. 그 중 미국이 283조 달러로 절반이 넘는다. 미국 국내총생산 11조 달러의 25배에 달한다. 한마디로 카지노자본주의다. 한 사람이 천원을 가지고 있으면 그냥 천원이지만 열 사람을 건너가면 만원이 되고 백 사람을 건너가면 십만 원이 된다. 시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파급효과는 크다. 오늘날 금융위기는 전 지구적이다. 그러나 이 위기를 구조적으로 자본주의체제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이 폭발하는 공황으로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위 주류경제학자나 지배자들은 현 상황을 자본주의체제 문제로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돌리려 한다. 이는 기만이고 사기다. 자본주의 역사 이래 공황은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공황은 상대적 과잉생산, 자본 축적 결과인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에서 발생한다. 그렇다고 반자본주의자들이 기대하듯이 공황이 곧 자본주의체제를 붕괴시키지는 않는다. 공황은 불균형 상태임과 동시에 잃어버린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들은 과잉생산시설을 파괴하고 과잉자본을 정리한다. 그 결과 물가폭락, 생산축소, 무역감퇴, 기업파산, 합병, 임금저하, 정리해고, 실업증가 등이 나타난다. 반면 공황의 충격을 견디는 독점기업은 중소기업이나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규모를 확대하고 지배를 강화를 기회로 삼는다. 자본주의사회의 주기적 공황이 곧바로 자본주의체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200년 동안 자본주의 공황을 크게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1단계는 1822~1851년에 걸쳐 영국을 중심으로 한 공황이다. 2단계는 공황이 세계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1852~1873년에 걸쳐 미국, 독일로 전파되었는데 남북전쟁 등으로 극복하기도 했다. 3단계는 1874~1894년에 걸친 공황으로 뉴욕거래소가 폐쇄되기도 했다. 4단계는 1895~1913년에 걸쳐 일어났는데 1차 대전으로 공황은 연기되었다. 5단계는 1차대전 이후에 발생한 것인데 1929년의 대공황이 특징적이다. 대공황은 미국 노동자의 4분의 1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유럽에서도 수 백 만명의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다. 결국 2차대전과 한국전쟁의 희생을 거치면서 회복되었다.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죽은 수 천 만의 영혼들은 모두 노동계급이었다. 자본이 노동자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개발하는 가운데 기술발전이 일어나고 이것이 자본주의 공황을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가?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생했고 인력과 군수품 수요가 늘자 자본주의 경제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그러나 수천만 명의 노동자가 허구적인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전쟁터에서 목숨을 빼앗겼고 이들을 대신해 가정주부들은 착취와 차별받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자가 되어 공장으로 내몰렸다. 기술은 진보하고 자본주의체제는 다시 위기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착취구조를 완성하였다. 전쟁은 독점자본의 세계화가 국경에서 부딪치는 국가간의 전쟁만이 아니다. 바로 체제 내부에서 발생하는 노동과 자본 간의 계급전쟁이 훨씬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 2차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적 자본주의 안정적 성장이나 서구의 사회복지는 이처럼 광범위하게 진행된 자본의 제국주의 전쟁과 집단 살상과 파괴의 기초 위에서만이 성립할 수 있는 비극적 영광이다.

 

그 이후에도 수 없이 많은 공황이 발생했지만 이번이 그 깊이, 넓이, 강도에서 가장 큰 타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공황은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정확하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자본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을 착취하고 그 과정에서 공황이 발생하면 자본은 다시 노동에 대한 추가착취를 통해 공황을 극복해 왔다. 이것이 자본주의 공황의 역사였다. 80년 만에 1929년의 대공황을 능가하는 금융위기가 닥쳐왔다. 슈퍼대공황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대공황이 발생하기 직전의 특징은 매우 호경기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호경기는 매우 투기적인 호경기이다. 두 번의 상황이 세계 경제의 3분의 1에 달하는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발생했고 전 세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0년간 미국 뉴욕월가, 미 재무부와 IMF 3자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변동환율제 도입과 금융시장 완전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추진했다. 나아가 한·미FTA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뉴욕월가와 직통하는 금융 고속도로인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정권의 시장주의 금융관료들과 1%밖에 안 되는 지배세력은 아직도 미국에서 다 망한 투자은행에 미련을 두고 있거나 일시적 위기이므로 경제체력을 보강할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희생을 누가 치를 것인가는 분명하다. 이미 1970년대 아랍전쟁으로 석유파동으로 발생한 1970~80년대 공황 이래 최근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체제는 자신들의 공황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국지전을 펼쳐왔다.

 

군산복합체에 기초한 제국주의 경제는 필연적으로 군수산업의 확장과 무기생산 그리고 전쟁과 파괴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군사제국주의와 달러제국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다. 이제 그런 미 제국주의가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이 공황적 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것인가는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여하에 달려 있다. 자본가들은 그들 나름의 극복방식으로 통화긴축정책, 공공지출과 조세의 삭감, 공기업의 사유화(민영화), 세계시장의 개척(FTA 등), 선진제국과의 국제관계 강화(한미동맹 강화), 노사정 대타협(노동운동 무력화)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일시적 공황탈출은 경제위기책임을 노동자민중에 전가하면서 추가착취를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에 노동자 민중진영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와 군사적 제국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끊임없이 학습하고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특히 세계 경제문제는 반드시 군사적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황적 성격을 지닌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을 노동자민중들에게 전가하려는 자본과 정권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대중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지난 시기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민영화한 은행과 공기업들이 사회적 공공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하고 국가적 사회적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노동자, 농민, 빈민을 비롯한 제 계급 계층의 연대투쟁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  공황의 시기라고 지레 겁먹고 위축되어 투쟁을 포기한다면 이 상황을 극복하는 대가를 노동자 민중들이 고스란히 짊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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