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군사당국이 북의 WMD 제거 능력 개발을 목적으로 한 ‘대확산 실무기구(Counter-Proliferation Working Group)'를 구성, 운용 중에 있다는 사실이 지난 12월 29일 언론을 통해 확인되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 부설 WMD 연구 센터가 최근 공개한 ‘WMD 근절을 위한 국제파트너십(International Partnerships to Combat Weapons of Mass Destruction)’ 보고서에 따르면, 미 태평양사령부는 북한이 외교적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군사력을 이용해서 이를 제거하기 위한 대책을 한미 공동으로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또 미 태평양사령부가 일본 방위청과는 화학, 생물, 방사능 및 핵(CBRN) 방어 실무기구를 설치했으며, 아시아태평양지역 33개 국가들과 다자간 기획 및 능력 향상팀(MPAT) 훈련을 시행 중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작년 연말 MB 악법 저지를 위한 민주당 농성 등 국내정치 이슈에 밀려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안이다. 미국의 전 방위적인 대북 봉쇄 미국은 북과 이란 등 이른바 ‘불량국가’의 핵 개발과 비국가 행위자(테러 단체 등)의 핵무기 또는 핵물질 취득을 중대한 안보상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핵확산의 물결이라는 실질적인 위협(A real danger of a cascade of nuclear proliferation)에 직면한다”며 북핵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국방부 부장관으로 지명된 린은 인사 청문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 이와 관련된 기술·물질·시스템의 확산은 미국은 물론 아시아, 전 세계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런 북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력한 동맹, 지역국가들과의 파트너십, 미군의 전진배치가 중요한 수단”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WMD 근절을 위한 국제 파트너쉽’ 보고서 역시 WMD 근절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화할 목적 하에 2007년 5월 16일~17일에 있었던 미 국방대 WMD 연구센터 주최의 비공개 토론회에 기초해 작성되었는데, 슈트어트 리비와 존 루드가 토론회의 기조강연을 맡았다고 한다. 슈트어트 리비는 미 재무부가 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마약 거래 방지를 위해 2006년에 신설한 테러 및 금융정보 담당 부차관보다. 북한과 불법자금을 거래했다는 구실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제재조치를 주도해온 장본인이 바로 리비다. 존 루드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직무대행) 역시 대북 PSI와 관련이 깊은 인사다. 미국은 2008년 5월,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창설 5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때 루드는 이란과 함께 북한을 WMD를 확산할 우려가 있는 주요국가로 지목하며 한국정부에 PSI 정식 참가를 요구한 바 있다. 한미 WMD 실무기구와 일미 CBRN 실무기구가 양자 동맹차원의 대응이라면, PSI와 북한 유사시와 같은 비상사태 시 신속한 다국적 사령부 구성 및 표준 작전절차 개발을 목표로 한 MPAT 훈련은 WMD 대확산과 관련된 국제적 협력의 일환이다. MPAT훈련은 2002년 1월에 미국의 제안으로 북한에 대량난민이 발생할 경우를 상정한 한반도 긴급 사태시 다국적군의 지원작전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워크샵 및 컴퓨터 도상 모의훈련이 서울에서 실시되었다. 이 사실은 WMD 제거를 구실로 한 미국의 대북 봉쇄망이 전 방위적, 입체적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대북 선제공격 능력 배양 북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핑계로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은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미 태평양사령부와 한국 합참사이에 대북 선제공격 능력 개발을 위해 실무기구가 구성되어, 운용 중에 있다는 사실이 밖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확산 실무기구’가 언제부터 구성됐는지는 모르지만 ‘WMD 근절을 위한 국제파트너쉽 보고서’가 2007년 5월 비공개 전문가 토론회에 기초해 작성됐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한미당국은 최소한 2007년 5월 전후, 대북 급변사태 대비 작전계획 5029의 발전과 함께 ‘대확산 실무기구’를 운용해왔다고 볼 수 있다. ‘대확산 실무기구’의 구성과 운용은 6자회담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북한 핵의 외부 유출 방지를 위한 육해공 수송로 봉쇄, 핵무기 관련 시설에 대한 파괴, WMD 관련 설비와 인원을 장악하기 위한 특수부대 투입 등의 군사적 옵션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또 이는 WMD제거를 핑계로 한 대북 선제공격적 군사작전이 실행 단계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대확산’(Counter Proliferation)은 비확산(Non Proliferation)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방법으로 핵확산에 대응한다는 개념이다. 국방부는 ‘대확산’을 ‘적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징후가 보일 때 군사적 정밀타격(Counterforce)을 포함하여 적극적, 공세적으로 WMD 위협에 대처하는 개념’(국방부, 대량살상무기(WMD)문답백과, 2004년)이라고 밝히고 있다. WMD를 사용할 징후가 보일 때 정밀타격 한다는 것은 선제공격을 의미한다. 미국도 ‘WMD 제거’는 ‘WMD 관련 프로그램이나 시설물의 위치 파악, 특성 규명, 대상물 장악, 불능화, 그리고 파괴를 뜻한다’(WMD 근절을 위한 국제파트너쉽 보고서)라고 못 박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대확산 실무기구’의 핵심적 목표는 대북 선제공격 시나리오의 발전과 이를 위한 군사력 배양으로 볼 수 있다. WMD 대확산을 명분으로 한미연합군이 대북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북봉쇄를 감행하는 것은 국제법적 측면에서 자위적 방어전쟁의 범위를 벗어난 불법이다. 작전계획 5029 대확산 실무기구의 구체적 임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대북 (핵) 공격계획 및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발전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미국이 9.11이후 WMD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시한 대확산은 WMD 확산위협에 대해 선제공격을 허용하고 있다. 2001년 12월 31일 ‘핵태세 검토보고서(NPR)’를 의회에 제출한 부시 정권은 러시아와 중국과 함께 북을 비롯하여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5개의 이른바 불량국가를 핵 선제공격 대상 국가로 지목하였다. 특히 부시 정권은 2003년 북한과 이란을 대상으로 개념계획 8022라는 핵 선제공격 계획서를 작성한 바 있다. 2007년 6월, 공식적으로 폐기됐다고 알려진 개념계획 8022와 달리 북한,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을 대상으로 한 WMD 대확산에 관한 개념계획인 8099는 계속 발전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WMD 대확산 계획 수립과 함께 한국정부에도 WMD 제거를 위한 작전계획의 수립을 요구했는데 작전계획 5026, 5029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 내 핵, 생화학 무기 시설과 지휘/통제 시설 등 700여개에 달하는 표적을 핀 포인트 공격으로 폭격한다는 내용의 작전계획 5026은 2003년 7월에 완성되었지만 작전계획 5029는 한국정부의 반대로 개념계획 수준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2008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작전계획으로 발전시키기로 합의함에 따라 2009년에 완성될 예정이다. 작전계획 5029는 북한의 내부 소요나 심지어는 천재지변과 같은 사태에도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매우 도발적인 작전계획이다. 그런데 작전계획 5029의 핵심작전목표는 북한 유사시 북한의 핵시설과 핵무기, 핵물질 등을 남한이 아닌 미국 주도로 접수, 장악하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WMD 대확산 작전을 주도하는 미 전략사령부가 한미연합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 편성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국익과 국방목표에 역행 ‘대확산 실무기구’와 작전계획 5029는 WMD에 대한 미국의 국익을 반영할 뿐, 민족화해와 번영, 평화와 통일이라는 우리 국익에는 철저히 역행한다. 미국이 북한 유사시 한미연합전력을 동원해 북의 육해공 수송로 봉쇄, 핵무기 관련 시설 파괴, WMD 관련 시설과 인원의 장악을 노리는 것은 미국의 핵 패권을 위협할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다. 또 미국 주도의 대북 WMD 작전은 주한미군사령관(유엔사령관)에 의한 WMD 작전통제, WMD 위기관리 권한의 허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작전통제권을 환수한다 하더라도 껍데기 환수에 그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이처럼 북의 WMD 제거를 핑계로 한 작전계획 5029는 미국 주도의 ‘대북 선제공격론’과 ‘북한 점령통치론’을 담고 있는 위험한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 국익에는 철저히 역행한다. 또 ‘대확산 실무기구’는 국방부 스스로가 정한 “외부의 군사적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고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며,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국방목표에도 위배 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대북 적대정책 폐기해야 오바마 정권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제1의 안보목표로 내세웠다. 테러리즘과 핵확산을 가장 중대한 안보위협이라고 보고 러시아와 핵 감축협상을 벌이는 한편, 북과 이란 등을 겨냥한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의 강화, 핵연료은행 창설 등 핵(무기)비확산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계’는 미국이 점한 핵 우위를 전제로, 자국의 핵 패권을 위협할 어떤 확산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국익과 군사전략 측면에서는 공화당 정권의 대확산 정책과 유사할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와 힐러리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번째 공략 방법으로 ‘단호하고 직접적 대화’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바마 시대 북미 양자 대화, 한반도 평화포럼, 6자 회담의 전망은 한층 밝아 보인다. 미국은 지난 60년간 대북 적대정책을 펼침으로써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원인을 제공하였다. 실패로 끝난 부시 정권의 대북 정책에서 미국의 새 정부가 얻어야 할 교훈은 대북 적대정책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않고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진정으로 북핵 폐기를 원한다면 대북 적대정책 폐기 및 불가침에 대한 북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또 9.19 공동성명에서 북핵 폐기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미국의 대북 핵공격 위협의 철회와 함께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 역시 폐기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9.19 공동성명과 그 이행조치를 철저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북의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핑계로 한 북침계획을 모의하는 한미 ‘대확산 실무기구’를 해체하고 작전계획 5029는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