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평통사 창립 이야기

$회원들의 이야기마당$


전주평통사가 닻을 올리고 난 뒤 두 주가 흘러가고 오늘은 첫 번째 운영위원회가 열립니다. 이제 지난 창립과정을 한 번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평통사라는 말을 들어본 것은 2007년 12월 무렵이었습니다.
2007년 12월 29일 평화동 성당에서 열린 김은선 학생 1,000통 편지 기념 송년회* ‘평화로 한 마음, 통일로 한 걸음’에서 <전주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을 처음 제안했습니다. 당시는 대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터무니없는 패배를 당하고 시베리아 벌판 삭풍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망연자실해 하던 때였습니다.
그 뒤로 2008년 1월에 문규현 신부님 방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평통사의 항로는 이후로 결코 순탄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가치 있는 일 치고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치러야 할 대가들을 모두 치렀을 때 뜻한 바를 얻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봅니다.
준비모임-우리는 이를 ‘틀만들기 모임’이라고 부름-을 시작하자마자 모임을 제안했던 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에 갇히는 사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전 정권 아래서 꺼리가 되지 못하다고 판단해서 조사를 실컷 해 놓고서도 송치를 못하고 묵혀 두었던 일인데 말이죠. 사법부가 양심과 정의에 따라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는 기회주의 세력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명박 정권의 앞날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그분의 행동과 실천은 양심과 정의에 충실한 것이었고, 이른바 자유민주주의라는 잣대로 볼 때도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학문, 사상, 양심의 자유를 부정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자가당착일 뿐이죠. 대한민국은 그렇게 자유민주주의도 뭐도 아닌 기형 사회라는 걸 이 일이 똑똑히 증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안팎의 어려움 속에서도 ‘틀만들기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거르지 않고 끈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한 해에 있었던 일들 가운데 7·27 평화협정 실현 한마당, 9·6 군산 미군기지 평화 대행진, 11·8 회원 단합대회, 새해맞이 황방산 걷기 모임(2009. 1. 2) 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11·8 회원 단합대회 이후로 창립총회 준비를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준비모임 하면서 죽림교회와 김수돈 회원 방을 주로 드나들었습니다. 가장 고심했던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모임은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사람 세우는 일보다 큰일은 없었습니다. 사무국장이야 내뺄 명분 없이 굳어졌지만 대표에 대해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그럴 일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준비 모임 막판에 불거졌던 난관은 전주평통사를 제안했던 회원이 4월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선언을 하면서 준비모임에서 빠지게 된 일이었습니다.
이는 전주평통사의 진로 또는 구상에 있어서 판을 완전히 새로 짜야한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이 문제는 총회를 앞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시험이 되었고 숙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애시당초 내가 전주평통사를 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단순 참가를 했을 뿐인데, 이 짐을 혼자 떠맡고 가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놓을 것인가? 깰 것인가? 이 바닥에서 영원히 떠나버릴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어찌할 수 없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자칫하면 출범하기도 전에 깃발을 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부귀영화, 명예이익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닌 만큼 우리는 언제든지 이런 의문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믿음을 주고 믿음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활동의 거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깨끗이 사라져 버릴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만큼 한동안 씁쓸한, 쓸쓸한 심정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다시금 자신을 추스르고 거추장스럽게 얽힌 생각타래들을 떨쳐낼 수 있도록 힘을 불어 넣어준 것 또한 곁에 든든하게 서 있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새해맞이 황방산 걷기 모임(2009. 1. 2)을 즈음해서, 창립대회를 바라보고 흔들림없이 나아가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두 번씩이나 창립대회 일정을 미룬 것도 산고가 컸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창립대회를 앞두고 회원 25명(뒤에 30명으로 높임) 확보, 내외부 인사 60~70명 참가를 목표로 했는데, 창립대회 날까지 36명이 회원 가입을 했고 모두 100명 정도가 우리 잔치에 와 주셨습니다. 우리는 창립대회의 거의 모든 목표들을 훨씬 뛰어 넘어 이루어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을 ‘어제의 용사들(old boy?)’ 손으로 해냈습니다. 우리 가운데 활동가다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생활 현장 속에 푹 빠져 있던 사람들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그래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모든 회원이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는 전주평통사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 봅니다.
진보가 메마른 시대에 진보의 길이 사람으로서 가야만 하고 갈만한 길임을 보여주는 전주평통사가 되고 싶습니다. 

평화 없이 통일 없고, 통일 없이 평화 없다!
평통사는 하나다!!

*1,000통의 편지란 관촌중을 졸업한 김은선 학생이 2004년부터 3년 반 넘게 평양 륙교중학교 박유성 학생에게 1,000통의 편지를 쓴 것을 이르는 것입니다. 물론 분단의 장벽 때문에 부칠수 없는 편지가 되었습니다. 1,000통의 편지를 쓰는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 마침내 분단의 장벽을 무너뜨리게 되리라는 뜻에서 天通이라는 말을 썼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