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수 없는 행진, 멈출 수 없는 우리의 투쟁

$현장$


“따르릉, 따르릉” 이른 아침부터 상황실의 전화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주민대책위 주병준 위원장님이었다. “경찰들이 새벽부터 마을입구에 와 있다는데...” 나가보겠다고 하고 서둘러 보도자료와 피켓 등을 챙겨 차에 올랐다. 오늘은 며칠 전부터 준비해 온 트랙터 순례를 하는 날이다. 파주 경찰서가 원천봉쇄 방침을 정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미 합법적으로 집회와 행진 신고가 나 있는 상황이어서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어제 촛불문화제에서도 주민들과 확인한 터였다.  

마을 입구인 오현삼거리에 나가서 우리가 본 광경은 상식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상조차 못한 상황이었다. 어제 오후 ‘훈련장 확장 반대’, ‘고향에서 살고 싶다’등의 깃발을 설치하고 주차해 놓은 트랙터들의 앞과 뒤, 그리고 양 옆이 사복 경찰들의 승용차들로 에워 싸여져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수십대의 승용차들로 트랙터가 포위되어 있었다. 이어 걸려오는 전화 속의 상황은 더 기가 막혔다. 마을 입구의 트랙터들 뿐만 아니라, 집과 농로에 세워져 있는 주민들의 모든 트랙터들 역시 승용차들로 포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들은 렌트까지 해가며 승용차 50여대로 트랙터마다 둘러쌌다. 이에 트랙터로 올라가 '결사항전'깃발을 흔들며 항의하는 주민. 웃동에는 "고향에 살고 싶다"는 붉은 매직글씨를 썼다.

이미 합법적으로 신고가 되어 있다는 점, 허가된 집회와 행진을 막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지적했지만 파주 경찰은 상부의 지시이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상부가 곧 국방부임은 어렵지 않게 확인되었다. 경찰들에 겹겹이 에워싸인 너머로 무건리훈련장사업단 단장인 오세일 중령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본 주민들이 그에게 달려가 따지려 들자 오중령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렸지만 파주 경찰의 배후에 국방부가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이 와중에 트랙터를 막은 차들 사이의 틈을 이용해 트랙터를 빼려하는 주민들과 이 마저도 막으려는 경찰들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분노한 주민들은 오열했으나 트랙터를 포위한 경찰차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트랙터가 안된다면 두 발로라도 파주 시민들에게 이 불법적 상황을 알리겠다고 결정한 주민들은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 트랙터 순례’라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우고 길고도 긴 도보 행진을 시작했다. 트랙터 없는 트랙터 순례, 아니 주민 한 명 한 명이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막아내고 고향을 지키기 위한 육중한 트랙터가 되는 순간이었다.


△트랙터가 안되면 두 발로라도... 출정식 후 도보행진에 나서는 오현리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작년 11월 국회예결위에서 “부대의 기동 등 훈련에 필요한 공간은 이미 충분히 확보되었다”며 주민들을 내쫓는 이유에 대해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억지 논리에 불과하다. 훈련장의 정 중간을 통과하는 56번 국도의 확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훈련장 내에 군부대가 존재한다는 것은 주민들도 안전하게 살 수 있음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상희 장관의 주장대로 주민들이 위험하다면 인가 주변을 통행하는 도로의 차량과 군부대 역시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지난 한달 동안 국방부장관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두 차례의 공문을 접수하고, 국방부 앞 집회 등을 진행하며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국방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형식적인 보상협의 요청서를 주민들에게 보내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중토위 재결 신청을 거쳐 강제 토지수용을 강행하겠다는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있다.

이에 무건리 훈련장 확장 예정지인 오현리 주민들은 사생결단의 각오로 투쟁에 나서고 있다. 국방부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주민들을 내쫓는다지만 이 땅에서 쫓겨나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안전이란 말인가?

파주 경찰이 스스로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트랙터 순례를 막은 배후에 국방부가 있듯이 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훈련장 확장 사업을 강행하는 국방부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 국방부는 무건리 한미공용 훈련장 확장의 이유로 우리 군이 훈련할 공간이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이미 2006년 당시, 국방부 교육참모였던 이덕건 대령이 밝힌 바와 같이 무건리 훈련장 확장사업은 2002년 한미간에 합의된 LPP(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에 의거해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의 새로운 군사전략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실현을 위해 한국에서의 기지와 군사훈련장을 재편·확장하고 있는데, 기지의 재편이 평택이었다면 군사훈련장 확장의 경우가 바로 무건리인 것이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 이어, 오현리 주민들까지... 언제까지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국의 군대를 위해 자신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우리가 오현리 주민들과 연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현리 주민들의 투쟁은 단지 생존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한미간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신군사전략을 막아내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이라는 저 거대한 세력과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오현리 주민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할 때,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