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꼬맹이 가수'에서 '소리꾼 김경아'로

-인천평통사 김경아 회원-


“아무리 훌륭한 문화예술 작품이라도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는 거죠. 문화사찰도 알고 봐야 그 맛을 알고 그 깊이를 알 수 있지 않나요? 소리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아는 만큼 들립니다. 공부해야 돼요. 노력해야 합니다.” 

다섯 살 때, 낡은 전축에서 들려오던 트로트 가요 뽕짝 박자가 신나고 재미있어 금세 따라 부르는 걸 보고 부모님은 물론 동네 어른들까지 어쩜 그리 노래를 잘하느냐며 툭하면 볼을 꼬집고 흔들어 댔습니다. 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는 김경아는 동네에서는 알아주는 ‘꼬맹이 가수’였습니다. 그러던 ‘꼬맹이 가수’가 15살 나이에 겁 없이 소리에 덤벼들었다고 합니다.

“정말 겁이 없었지요. 소리를 하면서 늘 안개 자욱한 험준한 산을 넘는 기분이었어요. 정상에 왔다 싶으면 또 하나의 산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소리를 익히기 위해 육체적인 고통을 참아내며 외공을 익혔고, 정신적인 갈등을 떨쳐내기 위해 내공을 쌓았습니다. 그런 공력을 가진 소리꾼 김경아는 아직도 이렇게 되묻습니다. “소리란 무엇일까?” 도를 수양하는 마음으로 소리와 내가 진정으로 하나 된 그 심연의 깊이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소리를 한다는 김경아.  

주변의 많은 전문가들은 소리꾼 김경아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경아양의 소리는 화려한 백화(百花)가 없는 설중(雪中)에 홀로 피고지는 유덕(有德)한 매화의 암향(暗香)처럼 은은한 소릿결을 가진 소릿꾼입니다. 마음이 착실하고 곧으니 내적 경지가 안정되어 늘 수준 높은 예술 내용이 보이고 공력 또한 탄탄합니다. 바탕이 튼튼하고 소리가 윤택하여 어찌 보면 담담하고 청신(淸新)한 맛까지 있으니 중화(中和)의 아름다움을 지닌 소릿광대라 봅니다”       - 인간문화재 성우향 명창

서울 국악예고를 거쳐 단국대 국악과, 단국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남원전국대회, KBS대회, 판소리보존회 등이 주최하는 전국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렇듯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늘 겸손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김경아.

3월 황사바람과 꽃샘추위도 끝나고 4월의 훈훈한 꽃바람을 맞으며 그녀의 집을 ‘불쑥’ 방문하였습니다. 햇볕 좋은 창가 아래 소박하게 놓여 있는 다기와 북 그 옆에 놓여 있는 ‘평화누리 통일누리’. 깊은 맛이 우러나는 하동 녹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판소리는 무슨 소리인지 듣기가 어렵다?

아무리 훌륭한 문화예술 작품이라도 자기가 아는 만큼 보이는 거죠. 문화사찰도 알고 봐야 그 맛을 알고 그 깊이를 알 수 있지 않나요? 소리도 마찬가지에요. 자기가 아는 만큼 들립니다. 공부해야 돼요. 노력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한 두번 듣고 다 알려고들 하죠? 욕심이죠. 제가 나이는 젊지만 요즘 세대는 급하고, 빨리빨리 바뀌죠. 요즘 노래는 한번 듣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들으려하지 않아요. 대학 때 노래패 활동도 하고 락그룹에서 보컬로 노래도 불렀는데.. 깊은 맛이 없다고 할까? 저는 ‘사골 국물’ 같은 것이 좋아요. 10년, 20년이 지나도 갈수록 깊이 우러나는 소리. 그것이 판소리예요. 우리는요, 소리공연을 하고 나서도 뒤풀이 때  다시 소리를 해요. 왜냐하면, 부를 때마다 그 맛이 다르거든요   

북한에도 판소리가 있나요? (인터뷰 도중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제가 알기론 지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해방 전후로 많은 소리꾼이 북으로 가기도 했다는데... 북쪽은 아무래도 러시아나 북유럽쪽 영향을 받다보니 남도의 판소리가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지 않나 싶네요.  

북쪽에서 판소리 공연을 해 보실 생각은?

판만 벌어진다면 언제라도 가서 해보고 싶죠. 그런데 북쪽 사람들이 소리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평통사에 대한 느낌, 생각은?

이렇게 전문적인지 몰랐어요. 3월 한미연합연습 교육 할 때 굉장히 놀랐어요. 체계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엔 그냥 여타 시민단체이겠지 했어요. 열정이 느껴졌어요. 요즘은 시민단체도 많이 퇴색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데 아직도 80~90년대 치열하게 운동하던 그 열정이 느껴져서 좋아요. 내가 좋아하는 ‘사골 국물처럼 우러날수록 진국’인 그 맛이 느껴졌어요. 다른 시민단체에서 볼 수 없었던 순수함. 요즘 세대가 빠르고 감각적인 디지털이라면, 평통사는 뿌리가 튼튼한 진중한 아날로그 같은 느낌... 내용은 전문적이면서도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두 분(인천평통사 상근자)이 너무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사람이 느낌이라는게 있는데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신뢰가 느껴졌어요.

앞으로 본인의 평통사 활동에 대해서는?

평화와 통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또 정치활동과 무관하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때 개혁당 노사모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었어요.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좋아요. 원래는 서울에서 공연활동이 많아서 서울에서 거주하려고 했는데, 그 곳은 워낙 집값이 비싸서 인천에 잠깐 머물렀죠. 이제는 인천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죠. 인천에 와서 너무나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좋아하는 사람 좋은 뜻이 있는 자리에서 소리를 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정말 좋아요. 평화카페, 평통사 총회에서 소리를 했던 것은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했던 것이고 그것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는 것에 저 또한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아직은 제가 가야할 저의 길은 ‘소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소리 하나도 멀었는데 아직은 제가 (평통사 활동에) 나서서 하기는 주제 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소리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나면 힘이 생기지 않겠어요. 저는 그 힘으로 이런 일을 뒷받침하고 싶어요.   

평화협정 운동에 대해 물어보자, 얼굴까지 빨개지며 “사실 열심히 못해서 너무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아는 지인들한테 평화협정 운동 소개하고 서명도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인터뷰를 하다 보니 공통점 발견, 막내. 김경아  회원은 5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우리 ‘막내클럽’ 만들면 되겠다. 우리 한번 만들어 봐요. 이런 날은 막걸리 한잔 쫘~악 걸치면서 이야기 해야 하는데...” 살짝 좋아하는 이성상을 물었습니다. 한석규, 감우성 같은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김경아 회원은 ‘소리와 사귀느라(?)’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답니다.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 시켜줘요’라며 이야기 할 때는 영락없는 막내의 애교 섞인 귀여운 모습이 보입니다. 무대 위에서는 대중을 사로잡는 힘이 느껴지는 소리꾼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느꼈던 김경아 회원의 모습은 소녀 같은 여린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좋아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소리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