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비를 땅에 세우고 그 치욕을 뼈에 새긴다. - 미선 효순 7주기를 보내며 우리 손으로 위령비를 세우자. -

[기획_효순, 미선 추모 7주기]


△ 2009. 6. 12. 사고현장에서 열린 효순·미선 7주기 추모제

 “2002년 6월 13일,
불의의 사고로 열다섯 꿈 많은 나이에  생을 접은 신효순과  심미선.
모든 이들의 가슴에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준 그대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을 약속하며 용서와 추모의 뜻을 모아  이 추모비를 세우고 추모시를 바칩니다.
고운 넋 편히 잠드소서.”
2002년 9월 21일 미 2사단 일동

 미군 제 2사단이 유족들의 요구로 참사 뒤 석달여가 지난 뒤인 2002년 9월 21일 사고 현장에 세운 ‘심미선과 신효순을 추모하며’란 제목이 붙은 추모비 글이다. 왜 죽어야 했는지, 누가 죽였는지도 모를 두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비석 증명사진으로 새겨져 있다.

 이 비문을 읽고 있노라면 갑자기 부아가 치미는데 나만 그런가 했더니 다들 그런 모양이다. 왜 그럴까? 비를 세운 저들 나름으로는 ‘용서와 추모의 뜻을 모아’ 죽음을 애도한다는 데, 보통의 식견을 가진 평범한 한국인들이 이 글을 읽고 분노를 느낀다면 거기에는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다.

 말과 글이란 진실과 진정을 담아야 듣고 읽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진솔한 마음을 담지 않고 겉만 번드르한 글은 아무리 비장하게 썼더라도 상대에게 우롱당했다는 느낌을 주어 분노하게 만든다. 바로 이 추모비가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추모비가 미국과 미군의 참된 사죄의 뜻을 담은 비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진실과 진정이 담겨야 한다. 유가족의 요구와 온 국민의 비난이 들끓자 엉겹결에 세웠더라도 그 뒤 그들이 진실하게 행동했더라면 우리는 이 비를 의미있는 비로 여길 것이다. 곧, 철저히 사건을 조사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충분한 보상을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불평등한 소파와 관련 규정들을 구조적으로 바로잡는 등 노력했다면 이 비는 추모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비를 세운 뒤 미국과 미군이 한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만과 무시였다. 보상금을 높이려고 합의를 미룬다는 둥 하여 유족을 절망케 하고,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 누락시켰으며, 황급히 마무리 지으며 부실 수사했고, 드러난 결과도 덮기에만 급급했으며, 이를 토대로 가해자인 그들끼리 모여 앉아 무죄 판결을 해 관제병도, 운전병도 무사히 귀국시켜 풀어줘 버렸다. 참 이상한, 절대로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내놓고 우리들 보고 믿으라 윽박질렀다. 두 아이는 처참하게 죽었는데 잘못한 사람도, 상급자도, 기관도 아무도 없었다. 대명 세상천지 이런 처참한 비극과 황당한 결과가 어찌 있단 말인가?

 7년 전 일이지만 돌이켜 보자. 각본을 만든다해도 이보다 더 비극적 상황을 현실로 재현하기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일반 차량도 아니고 56톤이나 되는 그 엄청난 궤도운반용 장갑차, 굉음과 속도를 능히 알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아장아장 아기도 아니고 열다섯 살 두 다리 건강한 아이들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그것도 앞 뒤 서너발짝씩이나 떨어진 채로, 몸의 일부도 아니고 아주 온 몸을.....

 한미 관계는 처음부터 불평등이었다. 국내 지지기반 없는 이승만의 남한 단독 정부 출발부터 미국의 지시와 조종에 길들여져 말만 독립국이지 제대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절름발이였다. 그래선지 한국전쟁 중 미군에게 작전권을 넘겨주고, 즉 제 몸의 생사여탈권을 미군의 손에 맡기고도 천하태평으로 50여년을 살아오지 않았나? 정치나 군사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까지도 미국에게 종속당한 채 숭미사대주의자들과 친미파가 휘어잡아 왔다. 이런 대미 종속이 참으로 안전하고 평안하고 다행스러운 사람들이 판을 치는 동안 온 나라 곳곳의 민초들이 미군들의 악행에 시달리고 죽어갔다. 내 가족과 친지가 피해당하지 않았으니 모르쇠로 일관할 건가? 죄 없이 백주대낮에 죽고 다친 사건들이 어디 한두 건인가. 마땅히 하소연할 데도 없고, 오히려 피해당하고도 숨기고 두려워해야 하는 현실을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돌이켜 보면, 1945년 9월 8일 인천항.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UN기와 성조기를 들고 ‘해방군’ 미군을 환영 나갔다. 이 때 군중을 향해 일본군이 총을 쏴 독립운동가 권평근과 이서구씨가 즉사했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어처구니없는 이 사건을 두고 미군은 일본군을 두둔했다. 이 일은 이후 미군에 의한 한국 민간인 희생의 상징이었다.

 이제 우리는 미선 효순의 끔찍한 사건을 마지막으로 처참한 굴욕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윤금이, 전동록씨 등 수많은 미군 희생자들을 모두 모아 더 이상의 희생은 안 된다는, 이게 마지막 희생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을 세워야 할 때다. 더불어, 이들 희생자들을 위해 싸우고, 일하다 안타깝게 숨져간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와 추모 공원을 조성해 뼈아픈 현대사 학습관,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  이 끔찍한 사고 현장을 우리가 평화와 자주를 향해 한걸음 나아가는 터전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잠깐 ‘추모’와 ‘위령’의 뜻 차이를 생각해 보자.  추모는 ‘죽은 사람을 사모함’ 즉, ‘죽은 이를 떠올려 그의 성품과 생전 업적을 기려 사모함’ 이라는 뜻이 짙고, 위령은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함’ 이란 뜻인데, ‘영문도 모르는 채 안타깝게 희생당한 영혼을 위로함’ 이라는 뜻으로 구별된다. 지금 사람들이 이 둘을 크게 구별하지 않는데 미선, 효순의 경우는 추모라기보다는 위령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온 나라사람들의 안타깝고 부끄런 마음을 모아 미군 피해자,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이나 위령비를 세우고 이들을 위해 애쓰다 숨져간 분들을 위한 자주 평화의 추모공원을 만들자.
조선시대 이래 부끄럽게 한쪽으로 기운 사대 역사의 저울추를 미선 효순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평등하게 바로잡고 온 세상 사람들과 평화를 나누는 자랑스런 시민이 되자.

* 심우근 선생님은 2002년 당시 효순·미선양의 언니들이 다녔던 의정부 여고에서 근무하였습니다.


△ 심우근 선생님은 2002년 고 심미선 양의 언니가 다니던 의정부여고 교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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