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 10주년 기념집회가 열리던 날...

[특집 _ 반미연대집회 10년]


△ 2009.10.13. 광화문 열린시민마당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요즘은 좀 빠르게 변한다고 해서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들 한다.
미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10주년!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에 걸린 10년의 사진 전시물을 보니 그 시간들이 아주 빠르게 머릿속을 스친다.
10년 동안 참 많이 울었다.
매향리 농섬에서, 효순이와 미선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사과를 받기 위해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기름진 평택 들판을 둘러보며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매월 둘째주 화요일이면 미 대사관 앞에 다시 서서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되짚었다.

 

 10년 투쟁의 역사를 써내려간 주역들이 다시 광화문 시민마당에 다시 섰다. 김용한, 추영배, 조주형, 심우근, 신종원. 그분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속에 남지만 그 중에서도 신종원 이장(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주민대책위 조직부장이었던 그는 현재 마을 이장이다.)이 미군에게 고향땅을 빼앗기고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이야기 할 때는 나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고향땅을 빼앗긴 농민이, 불평등한 한미동맹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이 어떤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대추리 주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끔 투쟁의 현장에서 신종원 이장을 보면 너무나 반가운데 어떻게 반가운 마음을 표현할지 몰라 멋쩍은 웃음이나 손을 한번 잡는 정도이다. 그것은 평택 땅을 지켜내지 못한 나의 회한의 몸짓이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여든 사람들이 전시물도 보고, 서로 반가운 인사도 나누고 있다. 그동안 각 사안의 투쟁마다 앞장서 투쟁하셨던 주역들도 곳곳에 보인다. 적을 때는 50명이, 많을때는 400명이 집회에 참여했는데, 매달 만나다보니 모두들 친근함이 느껴진다.

 “조국의 자주통일 염원을 모아 폭우, 폭설에도 오직 한마음으로 10년을 함께 해주신 분들을 모시고 사회를 보게 되어 영광입니다!”는 이야기로 사월혁명회 한찬욱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았다.

 제일 먼저 평통사 상임대표이신 문규현 신부님이 10주년 기념사를 하셨다.
문규현 신부님은 “10년 전 첫 집회를 연 날로부터 한달 한달 이어져 오늘로 10년이 되었다. 그동안 파주 스토리 사격장에서, 매향리 폭격장에서, 효촌리 여중생 사고 현장에서, 평택 대추리에서, 군산과 직도 등 전국 각지에서 벌어진 미군들의 악행을 고발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였다. 눈이오나 비가 오나 이 집회는 이어졌고, 오늘 집회는 이제 주한미군을 완전히 내보내고 한반도 평화통일 실현을 다짐하는 자리이다. 반미연대 집회를 10년간 지켜온 동지여러분! 모두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하셨다.

 10주년 집회를 맞아 참가한 단체들도 훨씬 많았다. 한국진보연대 이강실 상임대표, 민주노동당 이영순 최고위원, 민주노총 황수영 통일위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세 분 모두 더 많은 국민들과 함께 이 집회를 함께 해 나갈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하였다.

 집회가 시작되고 좀 지나자 인천에 있던 회원이 “인천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좀 지나니 부천에 있던 회원이 “부천에도 비가 오기 시작했다. 서울은 어떠냐?”고 묻는 전화가 왔단다. 아니나다를까 축사를 시작할 무렵부터 한두방울씩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지난 7월 26일 평화협정 실현한마당 뒤풀이가 생갔났다. 그때도 이곳에서 뒤풀이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소나기가 쏟아졌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밥말아 먹고, 막걸리와 빗물을 함께 마시곤 했다. 미리 회원들이 알려준 정보 덕분에 그나마 근처 편의점을 뒤져 우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참여했던 박상희 목사님은 “우리대신 하늘이 눈물을 흘려준 것이다”라며 좋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 왼쪽부터 신종원, 강찬석, 심우근, 조주형, 김용한, 추영배, 주병준. 반미연대집회 10년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

 희망의 노래 꽃다지가 축하 공연을 하였다. 잔잔한 노래에 맞춰 일제히 하얀색 우비를 입은 150여 참가자들이 한반도 모양의 피켓을 들고 흔들었다. 하얀 우비를 입으니 늙고 젊음이 없고, 여성 남성이 구분없이 모두 똑같은 모습, 똑같은 마음이었다.
이어 반미연대 집회 10년의 역사를 써내려간 주역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무건리 주민대책위 주병준 위원장은 10년동안 이 자리를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시작으로 “미군을 내보내야만이 우리가 원하는 평화가 올 것이고 가능하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최근 오현지킴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지만 오현리에 남은 주민들은 꿋꿋하게 투쟁할 것이다.”며 22일 진행될 중앙토지위원회 수용 재결 회의 저지 투쟁에 주민들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매향리주민대책위 추영배 고문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싸워 매향리에서 미군을 내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매향리에는 미군이 버린 폭탄찌꺼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더 노력하여 매향리에서 그랬듯이 우리나라 땅에서 미군을 내보내고 해방세상을 만들자!”고 하였다.

 전 SOFA개정국민행동 김용한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하셨던 문정현 신부님은 ‘행동으로 보여주자’, ‘낮은 단계부터 만들어가자’고 하셨다. 낮은 단계인 SOFA투쟁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미군 철수투쟁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몇 년 후면 환갑이 되는데 미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였다.

 전 공군차세대전투기 시험평가단장이었던 조주형 대령도 “이 자리를 지켜온 분들에 비하면 본인은 많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국방비의 절반이 무기구입에 사용되고, 구입되는 무기가 거의 대부분이 미국 무기다.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쓰이는 국방비가 악의 축인 미국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쓰여지고 있다. 그 돈이 통일 비용으로 쓰여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과 뜻을 모아 일궈나가자”고 하였다.

 여중생 압살사건 당시 효순, 미선의 언니들이 다니던 의정부 여고의 교사였던 심우근 선생은 “말을 하는 교사지만 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 앞에 서니 많이 떨린다. 미군들이 세워놓은 추모비 앞에서 추모를 하며 많은 분들이 안타까울 것으로 안다. 미군이 진정으로 여중생을 추모한다면 이 땅에서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니 가증스럽고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두 여중생, 이 땅에서 미군으로 인한 피해가 두 여중생이 마지막이 되도록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국민들의 뜻을 모아 추모비를 세워야 떳떳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추모비 건립에 힘을 모아 줄 것을 호소하였다.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 반대 운동을 했던 건축가 강찬석 님은 “나는 원래 반미주의자가 아니고 건축가이며 문화재 보호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 반대 투쟁을 4년동안 하다보니 사람들이 나를 반미주의자라고 부른다. 열심히 싸웠더니 덕수궁터 미대사관 건립을 막아냈고 앞으로도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더 열심히 싸울 것이다.”라고 밝혀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 당시 매번 반미연대집회에 참석해 왔던 평택주민대책위원회 신종원 조직국장은 “자기 땅을 빼앗기고 주민들이 살기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직접 찾아와서 봐 주었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이 농사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한시적 공공근로를 통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미군기지로 고향땅을 빼앗긴 주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알려나가 줬으면 한다”고 하였다.

 10년의 역사를 써내려갔던 많은 분들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이후 우리가 더 힘을 모아나가야 함을 느끼게 하였다. 마지막 발언을 하였던 신종원 이장님의 발언은 종속적인 한미동맹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고통받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10년이 눈보라와 비바람을 이겨낸 시간들이었다면 이제 이후 10년은 한반도에 불어올 회오리 바람을 맞아 국민들과 함께 이겨내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발언자들은 하나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일요일 하루를 꼬박 부천평통사 회원들과 정성스레 박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박을 터트리는 상징의식을 하였다. 참가자들은 미국과의 한판 승부에 새로운 마음과 힘을 모아 나가자면서 오자미를 마구마구 던졌다. 박이 잘 안터지만 어쩔까 걱정했는데, 걱정대로 한참을 버티디가 박이 터졌는데, 사탕도 많이 넣어 두어서인지 대학생 친구들도, 어르신들도 좋아라 하셨다. 박에서는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라고 써진 현수막이 내려왔다.
뒤풀이에서는 민대협 대학생들이 율동공연도 하고, 대구, 부산, 광주 등 멀리서 참여한 분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하였다. 젊은 대학생들이 반미투쟁에 함께 하고 있으니 대견하고 든든했다.

  

 이제 우리는 다가올 10년 안에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실현, 조국 통일 모두를 이루자는 결의를 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면 ‘비바람 눈보라에도 굴하지 않고’ 일 것 같다. 이후 10년은 비바람보다 더 큰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다.

 폭풍우 뒤 다가올 평화로운 세상, 그 날은 땅을 지켜내지 못한 회한의 몸짓이 아니라 역사를 써내려간 사람들과 기뻐 얼싸안을 수 있는 날일 것이다.
그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냥 오지는 않을 것이다. 10년간 그랬던 것처럼 더 큰 확신으로 실천할 때 가능할 것이다. 10주년 반미연대 집회는 나의 마음을 다지는, 더 많은 동지들의 마음을 모으는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 관련글 : [10/13] 미 대사관 앞 반미연대집회 10주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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