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3호] 역사적 오류와 현실의 위험을 안고 있는 단일전선체 건설 논의 비판

오류투성이 전선체 운동론

통일전선, 혹은 전선체로 불리는 전술은 남한에서는 지독한 오류를 거듭한 주제이다. 남한에서 전선체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같은 오류를 계속해서 반복해왔다.

남한에서 전선체운동의 역사적 뿌리는 두가지인데, 하나는 반제통일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반파쇼인민전선이다. 반제통일전선이 강조되었던 사회는 식민지사회, 즉 자본주의가 아직 발달하지 못해 농민이 압도적인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그 세력도 미약한 노동자계급과 식민지 부르주아와의 계급갈등, 그 분화가 실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빈민과 중농과의 계층갈등을 강조하는 것은 분명 오류다. 그런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은 농민운동과 진보적인 부르주아 민족해방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유감스럽게도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사회이고, 노자간의 모순 때문에 하루도 조용히 지나는 날이 없는 사회다. 그래서 전선체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농민문제가 부각되는 쌀개방문제 등이 나오면 지나치게 전율한다. 그들의 대뇌속에 아직도 잠복되어 있는 한국사회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라는 인식에 용기를 주는 농민투쟁만 만나면 흥분을 감추지 않는다.

반파쇼인민전선의 오류는 남한에서 더욱 확대강화되었다. 파시즘에 반대해 파시즘에 적대하는 모든 세력을 끌어 모은다는 명분으로 자유주의 부르주아와 연합을 시도하는 것이 바로 반파쇼인민전선이다. 사회주의 운동 주류진영(스탈린주의)에서 저지른 오류라서, 그 비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결과는 끔찍했다. 대표적인 예로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를 들 수 있다. “랜드앤 프리덤”이라는 영화에서도 생생히 묘사되지만 부르주아와의 연대를 위해 같은 사회주의 동지를 공격하고 살해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은 스탈린주의자들 덕분에 혁명은 괴멸되었다. 더욱 코미디인 것은 스탈린의 갈지자 걸음이 초래한 사회주의운동의 해체과정이었다. 36년부터 주창된 반파쇼인민전선은 프랑스에서 파시즘의 대두를 막아냈다는 것을 내세워 전세계 사회주의 세력의 구호가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 당시 멀쩡한 두뇌를 가진 몇 사람 중의 하나였던 트로츠키는 집요한 공격을 했지만) 그런데 39년 소련은 독일과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독일은 동부전선에 대한 부담을 한 동안 덜고 싶었고, 소련은 시간을 벌자는 속셈이 맞아 떨어진 동상이몽이었다. 그런데 소련에서는 독소불가침조약을 맺고 나서 군대 내의 숙청을 단행해 수천명의 유능한 장교를 모조리 수용소로 보내, 결과적으로 시간을 번 것이 아니라 스탈린의 비극적인 원맨쇼를 위한 시간을 번 것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사태가 초래한 전세계 사회주의자들의 민망함이었다. 이제까지 반파쇼연대를 주장하던 자들이 파시스트와 협상을 해버리자, 졸지에 사회주의자(스탈린주의자)들은 부르주아들에게 배신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2년도 안되어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사회주의자들은 연합국의 승리를 위해 소련을 방어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발가벗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연합국 중 최고 동맹자였던 미국에서는 공산당이 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에 입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 되었던 것이다. 전후에 미국에서 공산당원들이 할 수 있던 최고의 세계혁명과제는 미국의 원자탄, 수소폭탄 기밀을 소련으로 빼돌리는 것이었고, candy club으로 불린 이 첩보망이 미정보부서에 의해 발각되자 공산당은 사면초가로 몰리게 되었다. 매카시즘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고 수십년동안 알고 있었던 로젠버그 부부도 소련문서가 공개되면서 남편이 실제 소련의 공작원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서 참 민망했던 몇 년전의 기억은 뒤로하자.

명백히 오류로 판명되었던 반파쇼인민전선이 한국에서는 군사독재시대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이 미약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실천되었다. 소위 민주화투쟁에서 민주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던 민추협(김대중, 김영삼과 재야세력이 연대했던)부터 시작해 '비판적 지지'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최근 탄핵사태 때 보여주었던 모습은 한마디로 철지난 반파쇼인민전선의 대향연이었다. 남한자본가의 최고 집행자였던 노무현에 대한 방어는 부르주아에 대한 투항이었고, 당시 벌어지고 있던 이라크 파병반대투쟁과 겹치면서 운동권을 정신분열로 몰아넣었다.

특히 남한사회에서 분단을 극복하는 문제와 통일운동이 존재하면서 통일전선 문제는 더 꼬이게 되었다.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 과제이고, 우리에겐 제국주의 강점이후 아직도 미완의 과제가 되고 있다. 통일운동이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적 성격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김대중을 비롯한 노무현까지 부르주아들 내부에서 통일문제에서 일정하게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이 꿈꾸는 통일이 북한을 자본주의로 흡수통일하려는 것이기에 남북 노동자계급관점에서는 반동적이라는 것도 명백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통일운동과 관련해서 그 어느 분야보다도 연대전선을 형성하는 문제에서 부르주아와의 협력과 연대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이다. 6.15공동선언 실천이라는 이름으로 얼빠진 민족주의 신드롬을 만들려는 헛된 노력이 계속 추구되는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라 볼 수 있다.

그리고 단일연대체와 관련해서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당의 문제다. 그전에는 직면하지 않았던 민주노동당의 존재와 그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단일연대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은 당을 전선체의 하위파트너로 생각지 않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말을 뒤집어 보면 그럴 위험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합법정당활동을 개량으로 규정하는 소위 좌파진영 또한 당문제에 대해서 어정쩡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전선체운동을 강조하는 입장은 대안권력으로 일종의 소비에트를 꿈꾸는 점에서 동일하다. 단일연대체가 과거 전민련처럼 대의원구조를 가질 것을 주장하는 것은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결의로 만들어진 어설프지만 멀쩡한 민주노동당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꿈꾸는 남한 판 소비에트는 엉망에 뒤죽박죽이 된다. 당에 대의원을 얼마나 배정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순간, 당은 단일연대체의 결의를 집행하는 의회파견단 정도의 위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과반수를 배정하는 것은 연대체의 의사결정구조를 우습게 만든다.


단일전선체 주장의 현실적 위험성

투쟁과 운동의 성격에 따라 부르주아 정부와 연관을 맺는 정도가 다양한 것이 현실이다. 비정규직개악반대투쟁-파병반대투쟁-한미FTA반대투쟁-쌀개방반대투쟁-6.15공동선언실천, 이 정도의 순서로 부르주아 세력과의 연관의 정도는 강화된다. 지금 단일전선체는 그 동안 한시적으로 혹은 상설적으로 만들어졌던 투쟁체를 모두 하나로 결합시키자는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그 결과는 결국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일전선체가 변혁투쟁의 주체를 자임하고 있는 마당에 당과 단일전선체의 역할분담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전선체는 투쟁, 당은 정치활동(의회활동)이라는 잘못된 역할분담이 단일전선체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형성된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에게나 대중조직 모두에게나 나쁜 영향을 준다. 당의 의회주의는 깊어가고, 노동조합운동의 조합주의는 더 강화될 것이다.

단일전선체 건설은 이미 경로에 올라있다. 지역에서는 이미 단일전선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민주노총이 좀 논의가 늦어지고 있을 뿐, 대다수의 대중단위에서는 논의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이제 당에서 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런 식의 경로가 이미 당의 존재가 주는 거북함을 알고, 이를 해소하려는 의도가 깔린 행위다. 다시 말해 당의 위상과 역할을 흔들 수밖에 없는 단일연대체 건설을 다수의 분위기로 밀어붙이려는 속셈인 것이다.


헛된 단일연대체 건설을 중단하고, 문화혁명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전개하자

지금 운동진영은 그 기반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하루빨리 자각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고, 학생운동은 고사직전에 몰려 있다. 젊은 활동가들 사이에서 조차 혁명적 기개는 사라지고, 너절한 대중문화와 소위 신세대 담론에서 비롯된 산만함이 지배하고 있다. 문화운동은 그 명맥만을 겨우 잇고 있는 상태다. 진보학계의 사상, 이론적 산만함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단일연대체의 강령을 변혁적으로 다듬겠다고 호기를 부릴 때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운동진영은 최고의 강령적 합의수준이라 볼 수 있는 우리사회의 급진화와 건강성을 확대하기 위한 문화활동를 결의해야 한다. 학원에서는 지성의 흐름을 복구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 노동운동에서는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혁신활동, 젊은 세대를 운동진영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문화예술활동의 강화, 이런 것들을 위한 범단결의 기운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가지고 연대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모택동이 먼저 써서 조롱거리로 만들긴 했지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혁명인 것이다.
태그

통일전선 , 단일전선체 , 인민전선 , 반파쇼인민전선 , 반제통일전선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광수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