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6호] “노동계 단일안 = 타협의 가능성 열어놓은 것”

[인터뷰] 김광호 민주노동당 원주시 지역위원장

비정규 법 개악이 임박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혼신의 힘을 다해 개악을 저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비정규직권리보장입법안을 수정하여 비정규직 철폐 원칙을 훼손하려는 흐름이 있다.
이에 편집부에서는 작년말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단병호 의원 수정안 폐기 결의문을 안건 상정하면서 수정안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던 김광호 민주노동당 원주시지역위원장 동지에게 민주노동당에 대한 쓴소리를 들어보았다.



1. 권영길 의원의 행보가 심히 의심스럽다. 이른바 ‘노동계 단일안’이 바로 그것이다. 작년 단병호 의원 수정안에 이은 또다른 수정안 아닌가?

권영길원내대표가 ‘노동계 단일안’을 만들겠다고 말한 것이 비정규직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정치적 발언에는 정치적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비정규법안을 둘러싼 논란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치적 발언은 곧 현실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힘의 역관계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어 쟁점을 선도하고 논의를 주도할 수 없는 당과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상은 순진하거나 아니면 타협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 새롭게 논의를 재개하고 논의 테이블을 만들면 지금까지의 수많은 투쟁(!)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주도하지 못했던 당과 민주노조운동의 실력으로 보아 이전의 과정을 무시하고 전혀 새로운 안으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진함을 넘어서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관계를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관계로 호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최악과 차악의 구별은 없다. 이미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차악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차별의 구조화를 스스로 용인하는 것이다.
양보할 것이라고는 목숨과 노예와 같은 삶 외에는 전혀 없는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무언가 양보할 것을 찾는 것은 올바른 투쟁이 아니다. 양보는 투쟁으로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이다.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은 것은 사상누각일 뿐, 잠깐의 불안한 평온을 위해서 미래를 저당잡히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98년 정리해고 동의 이후에 벌어진 현실을 다시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 외에는 방법이 없다.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밑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당론을 결정하는 과정이 더디더라도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권력은 구조적으로 의원단과 최고위원회의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또 다시 뒷북치는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문제해결의 방식은 당내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평당원에서부터 의견그룹들이 이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당론 결정과정을 공개적으로 만들어 갈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특히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비정규직노동자들과의 사전협의과정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당론결정 과정을 시스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권영길 의원 행보를 보면서, 작년 말 단병호 의원 수정안에 대한 평가를 빼놓을 수가 없다. 수정안 폐기 사건(?)을 통해서 당이 얻었어야 할 교훈이라면?

수정안이 나온 배경에는 투쟁으로 정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힘의 관계에 있어 약자인 당과 민주노조운동이 투쟁으로 돌파하기에는 조직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협상으로 해결하려는 현실론(?)이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양보된 협상안마저도 자본과 권력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그들에게는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정안의 교훈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양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자본과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준 것이다. 즉, 어려운 상황이지만 투쟁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계급투쟁의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더불어 당이 의회내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면서 ‘협상’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고백한 것이다. 이 상황은 역으로 생각하면 당 활동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하는지를 일깨워준 사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교훈을 얻은 당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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