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실천연대의 기관지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7호/쟁점] 비정규직 운동의 역사를 뒤틀어버린 민투위

그동안 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15호 쟁점과 16호 쟁점에서는 전국활동가조직 준비위원회(이하 활동가조직 준비위)에 대한 두 번의 비판 기사가 나갔다. 편집부가 판단하기에 두 기사 모두 비판의 요지는 ‘혁신의 대상과 함께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현대차 민투위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고 류기혁 열사를 부정했기 때문에 혁신의 대상이라는 것이고, 그런 민투위와 함께 활동가조직 준비위가 민주노조운동 혁신을 천명하면서 출범했기 때문에 활동가조직 준비위가 말하는 민주노조운동 혁신은 모순적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16호 기사가 나간 이후, 활동가조직 준비위나 민투위로부터 간접적으로 해방연대(준) 회원 일부에게 항의를 했던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편집부에 정식으로 문제제기 한 경우는 없었다. 분명하게 밝히지만, 편집부는 사실 관계에 잘못이 있다면 정정을 할 것이고, 가치판단에 차이가 있다면 반론을 실어줄 것이다. 활동가조직 준비위나 민투위가 사실 관계에 근거한 공식적인 반론을 편다면 충분한 지면을 할애할 것임은 당연하다.
이번 17호 쟁점에서는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겠다는 활동가조직 준비위가 함께 하는 민투위가 왜 혁신의 대상인지, 이를 보여주는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조합원의 기고를 직접 받았다. 물론 이로써 사실 관계는 다시한번 확인될 것이고, 활동가조직 준비위가 빠진 자가당착 역시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편집부)



지난해 1월 20일, 나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 우리노조 파견대의원 자격으로 참석했었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회장은 내내 긴장이 감돌았지만, 그때 내게 주어진 사명은 이틀 전 불법파견 철폐를 요구하며 돌입한 우리노조 파업에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들은 말의 대부분은 “정규직노조와 보다 긴밀히 소통하라”, “정규직노조와 관계를 좀 잘 풀어보라” 등이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11대 집행부는 현장조직 ‘현대자동차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약칭 민투위)로부터 탄생했다. 여러 차례의 조직 분화를 겪으며 상당한 변화가 있었지만, 90년 대 중반 한 때는 민주파 활동가들을 모두 포괄하기도 했었던 민투위가 현자노조 집행부로 등극하자, 전국의 노동자들은 - 이미 임기 중 1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인 현자노조를 그리고 있었던 듯하다. 민투위가 탄생시킨 집행부면 비정규직 투쟁에 계급적으로 연대하지 않겠냐, 아무리 못해도 기본은 할 것 아니냐는 일종의 편견들이 존재했던 셈이다.
또 현자노조 관계자들은 5공장 전면파업, 1·2·3공장 잔업거부 3일차를 넘어가며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대·소위원, 정규직 노조 사이 논쟁이 일고 있던 ‘불법대체인력의 규정과 처리’에 무척 예민해 있던 터였다. ‘어디까지를 불법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다툼의 와중에 대체인력은 이미 투입되었고, 우리노조가 죽을힘을 다해 조직한 파업과 잔업거부는 무력화되고 있었다.
나는 2004년 비정규직노조 임단투, 불법파견 집단 진정, 5공장 43명 정리해고 분쇄 투쟁과 안기호 당시 위원장의 38일 단식농성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대하는 현자노조의 천박한 관점의 일단을 확인한 바 있었다. 교감과 인정이 안되는 투쟁, 즉 현자노조의 관리와 통제를 벗어나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는 ‘연대’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했다.
1백여 명이 넘는 해고와 무더기 고소·고발, 손배·가압류, 출입금지·퇴거단행·업무방해금지·집회시위금지 가처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경비대의 폭력, 수배와 구속, 천문학적 벌금 등이 증명하듯 2005년 우리노조는 불법파견 철폐를 위해 현대차 자본을 상대로 격동의 1년을 치렀다. 그런데 딱 그만큼 현자노조와의 1년도 치열했다.
원하청 연대회의가 결정한 ‘비정규직 6월 조직화’를 앞두고 현자노조가 느닷없이 ‘비정규직 노조로의 조직화’가 아닌 ‘원·하청 공동투쟁단으로의 조직화’를 꺼내 드는 바람에 적잖은 시간을 논쟁으로 흘려야 했던 사례는 차라리 부차적 수준으로 머문다.
민투위가 배출한 11대 집행부는 지난해 있었던 두 가지의 상징적 사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비정규직 투쟁과 연대에 대해서는 계급적 관점에서 철저히 일탈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지난해 8월 25일 감행한 우리노조의 독자파업이 사실상 무위에 그치자, 아산과 전주의 제안으로 29일 열린 연대회의 간담회와 31일 연대회의에서 현자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파업이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이라는 연대회의 구성 정신을 훼손했음을 대중적으로 공식 천명하면, 이후 공동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사건.

지난해 1월 25일 현자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연대회의가 현자노조의 공식기구로 추인되자, 우리노조는 참여를 결정하면서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에 따른 완전합의제의 실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당시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 독자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리노조의 우려 표명에 대해, 연대회의 성원들은 “그렇지 않다.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에도 독자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고, 이를 가능한 범위에서 최대한 지지·엄호 하면 된다”고 확인했다. 우리노조는 누차 “의미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며 “완전합의제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자”고 촉구했으나, “너무 경직되게 가지 말자. 상호 신뢰로 극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하여 이를 인정하고 정리했었다.
현자노조는 ‘연대’와 ‘공동투쟁’을 무기로 이미 합의된 내용을 뒤집으면서까지 우리노조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고, 궁극에는 원하청 연대회의라는 허울을 이용해 자신의 통제권 내에 우리노조의 투쟁을 가두려했다. 거기서 계급적 단결과 연대는 매우 낯선 무엇이었다.


둘째, 류기혁 열사를 열사로 인정하지 않은 사건.

열사가 목숨을 끊은 다음 날인, 지난해 9월 5일, 현자노조가 쟁대위, 현장 제조직 간담회, 원하청 연대회의에 배포한 ‘고 류기혁 사망 건’ 제하의 문서는 “징계해고의 사유는 무단결근이며 이과정의 업체의 부당성이나 왕따 등의 내용은 없었음(비정규직노조 박○○)”, “해고 후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는 등의 2~3주 잠깐 실무를 봄(복직투쟁은 없음)”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문서는 ‘열사’로 규정할 수 없음을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된 징후가 뚜렷했다.
하지만 ‘비정규직노조 박○○’의 진술은 사실이 아님을 본인으로부터 확인받았다. 사실이 아닌 부분에 대한 정정 보도와 다른 진술인에 대한 신원 확인을 요구하는 우리노조의 공문에 현자노조는 ‘정정보도는 불가하며, 진술인의 신원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전화상의 한마디로 잘라 답했다.
현자노조는 열사의 자결을 철저히 개인적 사유, 성격상의 결함 등으로 몰아갔으며, “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조의 조합원으로 살았던 사실 하나만으로도 열사로 규정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는 상급단체 임원의 설득조차 외면하고, 열사라 지칭되는 대책위에는 절대 참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마무리 되어가는 현자노조 05년 임단협을 열사 투쟁에, 불법파견에, 비정규직 투쟁에 발목 잡힐 수 없다는 놀라운 집착 앞에서, 한 때는 계급적 연대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민투위’라는 이름값도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지난해 1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난해 말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투위에 대해 내가 토로하는 탄식과 분노를 이해해 주었다. 그러나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현자노조 11대 집행부로 인해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과 절망은 지금 이순간도 진행형이므로.
현대차 비정규직 운동은 단위노조 차원의 투쟁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규모 불법파견 판정을 근거로 한 정규직화 투쟁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현대차의 상징성을 감안했을 때 민투위는 비정규직 운동의 역사를 한참 뒤틀어놓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민주노조 운동이 진정으로 혁신되고 계급적 노동운동이 복원되기 위해서는 대공장 정규직 운동의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관성과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썩은 부위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 전국활동가조직, 민투위 문제 해결 못하나?
→ 전국활동가조직, 어용과 함께 혁신을 얘기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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